한국사 > 일제 > 양세봉의 조카 양의찬씨

지난달 30일 요령성 청원현 북삼가자 기차역 인근에 있는 양의찬씨(53)의 집을 방문했을 때 그는 대문 앞에 나와 기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의찬씨는 양세봉의 조카다. 양세봉의 직계 후손 모두가 해방 후 북한으로 건너갔으니 가장 가까운 혈육인 셈이다. 양씨는 양세봉을 본적이 없다. 그러나 양세봉이 항일운동에 투신하자 아버지 양시봉과 어머니가 큰집 살림을 맡아 어느 누구보다도 삼촌 양세봉의 얘기를 가까이에서 들을 수 있었다.

“아버지는 큰집 가족들을 돌보며 조선혁명군에게 군자금을 모아 전달했답니다. 어머니는 독립군들에게 빨래하고 밥을 지어줘 맏아버지(양세봉)가 ‘우리 제수 같은 분이 없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해요.”

양세봉 장군 활동에 대해서는 “적이 들어오면 농사꾼 복장으로 변장한 채 귀신처럼 달아나곤 했다”면서 “어머니는 ‘맏아버지의 걸음이 그토록 빨랐다’는 얘기를 자주했다”고 말했다.

양세봉이 죽자 양시봉은 형수와 노모를 모시고 신빈현에서 청원현으로 이사했다. 일제의 눈을 피하기 위해 김씨로 성을 바꿔 행세한 양시봉은 이곳에서 정미소를 운영해 번 돈으로 한국독립당을 지원했다고 양의찬씨는 말했다. 양시봉 가족은 일제 패망 뒤에야 양씨 성을 되찾았다.

의찬씨는 “아버지가 ‘한국독립당 재정부장을 맡고 자본가와 연계해 일을 했다’ 해서 문화혁명 때 가족이 많은 핍박을 받았다”면서 “그때 홍위병들은 아버지에게 ‘한국독립당 반혁명분자’라고 쓰인 고깔모자를 씌우고 형에게 아버지를 때리라고 했다”며 눈물을 떨구기도 했다.

“문화혁명으로 가족들이 곤욕을 치르고, 이 바람에 소학교 5학년때 학교를 그만뒀다”는 의찬씨는 현재 북삼가자촌에서 돼지를 치며 생계를 꾸리고 있다. 돼지 30여마리, 소 5마리를 치느라 마당을 온통 돼지우리로 꾸민 의찬씨는 부인과 아들(24), 딸(12)과 단칸방에서 살고 있었다. 그는 “너무 힘들게 살다보니 10년전 왕청문에 (양세봉의) 석상을 세울 때 돈이 없어 한푼도 내지 못했다”며 한숨을 지었다.

집을 나오면서 “독립운동 집안으로 한국정부에 바라는 게 없냐”고 물었다. ‘아버지도 독립유공자로 선정됐으면…’ 하는 대답을 기대했으나 돌아온 말은 의외였다. “한국에 갔다온 동포들은 다 살림이 폈어요. 기자 선생님, 어떻게 한국에 나갈 수 있도록 힘좀 써주세요. 소학교 5학년인 문선이(딸)가 중학교는 마쳐야 할텐데요.”

〈청원|조운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