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부와 부친 독립운동 서훈 기대”

[경향신문 2005-05-31 17:33]

김찬의 아들 김연상씨(70)의 얼굴에는 힘든 삶의 흔적이 배어 있지만 표정은 어린아이처럼 밝았다. 시대를 잘못 만난 김씨의 삶 역시 부친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꺼번에 부모를 잃은 그는 큰어머니 손에 자랐다. 부자였던 큰아버지는 아이를 낳지 못한 큰어머니에게 60평짜리 집하나를 줘 따로 생활하게 했다. 큰어머니는 이 집을 세놓으면서 김씨를 키웠다. 김씨는 “평양 출신인 큰어머니는 중국말을 잘 못해 세를 든 사람이 월세를 안내도 독촉을 못하는 바람에 항상 생활이 어려웠다”며 “다행히 외가에 잘 사는 사람이 많아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중국공산당으로부터 부모가 총살형을 당한 그의 삶도 순탄치 않았다. 그는 1954년 중국 항공대학교에 입학했으나 57년 우파(반당·반사회주의자)로 몰려 공장으로 쫓겨났다. 김씨는 “나는 공산주의자는 아니었지만 사회주의 지지자였다”고 말했다. 노동학습이 끝난 김씨는 베이징 크레인 기사 직업을 얻었다. 하지만 60년대 문화혁명때 그는 다시 감옥에 끌려가 6년여 감옥생활, 3년반은 농촌에서 노동개조를 받았다. 김씨는 “어려서부터 조선말을 써 조선말을 잘했는데 감옥에서 안쓰다보니 모두 잊어버렸다”며 “나를 길러준 큰어머니도 감옥에 있을 때 돌아가셨는데 장례식 참석도 못했다”고 말했다. 80년 투옥과 노동개조를 마친 그는 크레인 기사로 복직했다. 그는 중앙당에 잘못을 따졌고 결국 항공대의 결정이 잘못임을 이끌어 내 대학 졸업장을 받았다. 김씨는 아예 크레인 기사를 그만두고 부모 복권작업에 나섰다. 하지만 당의 반응은 냉담했다. 김씨는 “결국 중국당간부인 손위 이모가 나서 당시 상하이시당 위원장의 보증과 당기율 위원회에서 2년간 심사를 마친 끝에 어머니의 무혐의 결정을 이끌어냈다”며 “하지만 조선인인 아버지에 대해선 중국공산당 누구도 증명해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인 여성(의사)과 결혼해 딸(24세)만 하나 뒀다. 큰고모가 키운 여동생(소나)은 지금 선양에 살고 있어 가끔 만난다. 김씨는 혹시 친척이 서울에 사는데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큰고모 일경씨가 김종회(金鐘會)씨와 결혼해 서울에서 살았고 아들 종일(鐘日)과 49년까지 편지 왕래를 했다고 한다. 그후로는 연락이 끊겼다. 김씨는 4살때 자신을 길러준 큰어머니 부친의 환갑잔치가 서울에서 열려 서울을 한번 가봤지만 지금 서울에 대한 기억은 없다. 김씨는 “할아버지도 독립운동을 했고 아버지도 조선독립을 위해 노력하다 중국공산당에 의해 억울하게 죽었다”며 “혹시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대해 대한민국 정부가 서훈을 해줄 수 있으면 신청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부모와 자신, 그리고 중국공산당에 대한 책을 쓰고 있다. 그의 삶은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거대권력의 잘못된 결정과 이를 바로잡는 싸움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지금까지 한번도 조선사람임을 잊고 산 적이 없다”면서 “하지만 딸의 세대는 다른 것 같다”며 씁쓸히 웃었다. 그는 시대의 아픔을 간직한 중국에서의 마지막 조선인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베이징|원희복기자 wonh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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