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白凡 김구

[경향신문 2005-05-17 15:03]

백범 김구(1876~1949)가 농민군활동, 의병투쟁, 계몽운동가를 거쳐 항일 독립운동가로 확실히 자리매김한 것은 상해 임시정부를 통해서였다. 30여년을 임정에서 활동하며 주석까지 오른 백범이지만 지금까지 임정 시기 김구는 우파 지도자의 모습으로만 다가왔다. 그러나 임정이 우파만의 정권이 아니고 해외 독립운동의 통합 전초기지라는 평가가 나오면서 민족운동 통합에 앞장선 지도자라는 점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백범학술원 신용하 원장은 “백범은 자기와 생각이 달라도 협상과 연합을 통해 협동해야 한다고 확신하고 또 그렇게 행동했다”며 백범의 특징 중 하나로 ‘포용성’을 꼽았다. ◇‘문지기’에서 주석으로="3·1운동" 직후 혈혈단신 상해로 망명한 백범은 계몽운동시절의 선배 이동녕의 주선으로 임시정부에 참여한다. 초창기 임정을 주도했던 도산 안창호는 문지기를 원하는 백범에게 경무국장을 권했다. 경무국장의 임무는 임시정부 청사를 수호하고 임정 요인들의 경호를 맡는 일. 일제의 밀정을 찾아내 설득하거나 처단하는 것도 중요한 일 중의 하나였다. 1923년 백범은 내무총장으로 취임한다. 임정 내부의 화합을 도모해야 할 자리였지만 당시 임정은 사회주의, 민족주의로 갈려 사상 갈등이 심각했다. 1925년 초대 대통령 이승만을 탄핵, 후임에 박은식을 선출한 임정은 내각책임제를 도입한다. 이상룡, 홍진이 내각 대표인 국무령에 잇따라 올랐으나 조각도 못한 채 무정부상태에 빠지자 백범이 국무령에 취임한다. 1932년 이봉창, 윤봉길 의거로 임정의 상해시대는 막을 내리고, 두 의거를 기획한 백범의 피신·유랑 세월도 계속된다. 항주, 진강, 장사, 광주, 유주, 기강 등 중국 대륙 각지로 옮겨다닌 임시정부는 1940년 중경에 정착한다. 중경 시기 김구는 임시정부를 당·정·군 체제로 개편한다. 민족주의 세력을 통합, 한국독립당을 창당하고 군사조직으로 한국광복군을 창설했다. 이와 함께 주석제를 도입, 한국독립당 중앙집행위원장, 임시정부 주석, 광복군 통수권자를 겸하였다. 임정의 문지기가 되기를 원했던 백범이 명실상부한 해외독립운동의 최고지도자로 우뚝 선 것이다. ◇끝없는 항일투쟁="프랑스" 조계에 위치한 상해 임시정부는 단순한 해외 망명정부가 아니었다. 해외독립운동의 전초기지이기도 했다. 임정 초기인 1922년 백범이 만든 한국노병회는 독립전쟁을 목표로 조직됐다. 10년 안에 1만명의 노동자 병사를 양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조직된 노병회는 한인 청년을 선발하여 중국 군관학교에 파견하고 자금모금활동도 펼쳤다. 백범이 계획, 조종한 의열투쟁은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1926년 심산 김창숙이 상해에 찾아와 의열투쟁요원을 부탁하자 백범은 임정 경무국 경호원 출신으로 한국노병회원이었던 나석주를 추천하며 소개했다. 그해 12월 나석주는 국내에 잠입해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을 던지고 자결했다. 1931년 당시 독립군을 갖추지 못한 임정은 의열투쟁을 독립방략으로 채택하고 백범에게 임시정부 특수공작대인 한인애국단을 창설하게 한다. 일본 요인 암살과 식민기관 폭파를 목적으로 한 한인애국단 활동의 대표적인 거사는 1932년 1월과 4월에 잇따라 터진 이봉창의 동경의거와 윤봉길의 홍구공원 의거. 두 의거로 백범은 일약 유명해지고 임시정부는 중국 국민당 정부의 지원하에 활로를 개척하게 되었다. ◇민족운동의 통합을 위해="상해" 임시정부는 1919년 4월 수립됐다. 그러나 임시정부의 법통을 갖게 된 것은 그해 9월 한성, 연해주 임시정부와 통합하면서부터다. 그러나 사회주의 좌파와 민족주의 우파의 통합은 출발부터 삐걱댔다. 사회주의 계열의 이동휘, 친미·반공의 외교노선을 내세운 이승만 등 초기 지도자들은 하나 둘 임정을 떠났다. 임정 초기, 백범에게는 민족운동 통합보다 임정을 지켜내는 일이 더 큰 관심사였다. 국내외의 독립운동 지도자들이 국민대표회의를 열고 임시정부의 방향을 놓고 논쟁할 당시 내무총장으로서 회의를 해산시킨 것은 단적인 사례이다. 이를 두고 학계 일부에서는 민족운동 통합에 부정적이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장석흥 국민대 교수는 “이것은 단견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1926년부터 상해에서 일기 시작한 유일당 운동의 영향으로 독립운동 단체 통합 운동에 참여한다. 1930년 들어 한국독립당을 창립하고 30년대 후반 민족주의 단체를 통합한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를 조직한 것 등은 그 결실이다. 민족운동의 통합 움직임은 좌우합작으로 이어졌다. 백범은 1939년 좌파 계열의 김원봉과 좌우익 독립운동단체를 통합한다는 원칙에 합의한다. 이후 1942년 김원봉이 이끄는 조선의용대가 광복군에 편입되고, 김원봉 등 좌파 지도자들이 임시정부에 참여하게 된다. 이로써 임시정부는 좌우연합정부로 재편되었다. 장교수는 “해방 후 백범이 벌인 남북통일운동은 일제강점기 좌우합작운동의 연장선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조운찬기자 sidol@kyunghyang.com〉

2 임정, 우파만의 정부인가

[경향신문 2005-05-17 15:03]

1919년 9월 설립된 임시정부는 해체되기까지 여러 분파의 독립운동 역량을 하나로 결집시키는 구심체 역할을 해왔다. 1920년 민족유일당운동에서 40년대 좌우합작운동까지. 계급적 이해, 정치적 이념, 세계관 등의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각 세력들이 공동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끊임없는 민족통일전선운동을 펼쳐온 것이다. 임시정부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임정은 좌우가 민족해방을 목표로 연합을 모색해 간 좌우연합 정권의 성격이 강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즉 임정은 우파만의 정부가 아니었다는 주장이다. ◇20년대 민족유일당 운동="임정" 수립 당시에는 연해주에서 활동하던 한인사회당의 이동휘가 국무총리에 취임해 좌우세력의 연합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3·1운동 이후 다양한 사회주의 단체들이 결성돼 독립운동전선은 우파와 좌파로 분열된다. 독립을 위해선 단결이 필요했다. 독립운동전선의 모든 세력을 통일하여 유일한 정당을 조직하고, 이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자는 운동이 일어났다. 민족유일당운동이다. 안창호가 먼저 나섰다. 안창호는 26년 7월 상해 삼일당에서 민족의 단결을 촉구하는 연설회를 개최한 후 좌파대표 원세훈을 만나 좌우통합당을 세우기로 합의한다. 유일당의 전 단계인 촉성회가 다섯 지역에서 결성되고 이를 하나로 묶은 한국독립당관내촉성회연합회가 이듬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두 세력간의 입장차이로 민족유일당 운동은 실패로 돌아간다. 특히 외부적인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 27년 중국의 국민당과 공산당의 1차 국공합작이 무너졌고 28년 국제공산당 코민테른이 ‘12월 테제’를 통해 좌파세력에게 민족부르주아와의 결별을 요구했다. ◇30년대 독립운동정당의 통일운동="민족유일당" 운동 이후 임정을 유지하고 있던 이동녕, 안창호, 김구 등이 30년 1월 임정의 순수 우파 정당 한국독립당을 만든다. 그러나 좌우합작의 꿈은 언제나 갖고 있었다. 국민대 장석흥 교수는 “한국독립당 강령에 토지와 대생산기관을 국유화하는 사회주의적 성향을 담고 있었던 것이 그 증거”라고 말했다. 한국독립당 창당 이후 조선혁명당, 의열단 등 임정 주변에 여러 정당조직이 나타난다. 이들 정당에 의해 32년 다시금 민족전선통일운동이 일어났다. 같은 해 10월 상해에서 비밀리에 결성된 대일전선통일동맹이 그것이다. 유일당을 조직하기 위한 논의가 계속됐지만 임정의 해체 여부를 두고 좌우가 돌아선다. 39년에도 한국국민당(김구), 한국독립당(조소앙), 조선혁명당(이청천), 민족혁명당(김원봉), 조선민족해방동맹(김성숙), 조선혁명자연맹(유자명), 조선청년전위동맹(신익희) 등 7당 통일회의를 열어 독립운동 최고기구를 모색했지만 실패에 그쳤다. ◇40년대 좌우합작운동="김구," 조소앙, 이청천을 대표로 하는 우파 3당이 통합된다. 임정은 김구가 주석을 맡는 단일지도체제를 이루며 세력 기반을 강화한 반면 좌파세력은 분열을 거듭했다. 결국 김원봉의 민족혁명당(좌파)이 41년 12월 임정에 합류한다. 임정은 42년 8월 좌우익 출신 23명 의원으로 구성된 의정원이 만들어지고 좌우 대통합을 이루게 된다. 임정은 통합 직전 광복을 염두에 두고 ‘대한민국건국강령’을 발표했다. 핵심은 민족주의 우파 대표 조소앙의 삼균주의(정치·교육·경제의 균등). 건국강령 6항에는 “중소기업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경제관계를 국가 통제하에 두고 토지는 국유화한다”고 명시돼 있다. 원로학자 조동걸 교수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건국강령’이라는 논문에서 “건국강령은 사회민주주의 성격이 강하며 김구와 안창호의 사상과도 일맥상통한다”고 밝혀 임정의 색깔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았음을 시사했다. 독립기념관 김희곤 소장은 “남북이 권력욕이 아닌 이념의 차이에 의해 분단됐다면 이같은 좌우연합을 모색하는 과정 속에서 역사적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심희정기자 heejung@kyunghyang.com〉 3. “나는 광복군이다” [경향신문 2005-02-20 17:21] 상하이 임시정부가 그랬듯이 임정의 직속군대인 광복군도 우파만의 군대는 아니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임정이 1919년 설립 이래 지속적인 좌·우연합을 모색해온 것과 마찬가지로 광복군도 후기에 좌파 무장세력들을 합류시킨 것이다. 여기에 중국군 및 일본군 학도병 출신, 심지어 무정부주의자까지 합류해 이념과 신분, 계층을 초월한 총체적 항일무장연합 세력으로 조국독립을 위해 한마음으로 싸웠다. ◇이데올로기는 없었다="41년" 11월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면서 일본 패망은 가시화됐다. 이념과 지역 연고에 따라 흩어져 있는 독립운동단체들 사이에 이제는 임정 산하에 결집해 항일운동에 총력을 바쳐야 한다는 공감대가 조성됐다. 마지막 전쟁을 위해선 뭉쳐야 했다. 김원봉의 조선민족혁명당(좌파)이 임정의 좌·우합작에 따라 41년 12월 합류하고 그가 이끄는 군대 조선의용대도 후기 광복군 제1지대(충칭)로 편입된다. 제1지대는 45년 국내정진작전의 일선에 참여할 군대로 성장하기까지 한다. 전문가들은 “김원봉이 광복군에 합세한 것에 대해 이준식, 이범석, 김학규(이상 우파) 등 전기 광복군 지대장들 사이에 반발이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며 “독립전쟁이 최우선 목표인 이들에게는 좌우의 개념을 떠올릴 겨를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광복군에 무정부주의자도 합류했다. 항일전쟁을 위해 39년 일찌감치 한국청년전지공작대를 결성한 무정부주의 독립운동 단체는 소규모 초모활동(병사모집)과 첩보활동을 벌이다 41년 광복군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전기 광복군 5지대장을 맡은 나월환이 대표적 인물이다. 일본 유학 도중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하던 나월환은 모든 힘을 결집시켜야 할 때가 왔다고 감지하고 임정의 문을 두드렸다. 국사편찬위 김광재 연구원은 “대부분 무정부주의자인 5지대 대원들과 기존의 우파 대원들 사이에 갈등은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깝게 지냈다”고 밝혔다. ◇애국자는 누구든지 오라="국민대" 장석흥 교수는 “광복군은 좌파나 무정부주의자들뿐 아니라 일제에 강제징집된 학도병, 중국군에 포로로 잡힌 한인청년 가운데 애국의 의지만 있다면 누구든 포용했다는 사실이 최근 더욱 의미있는 것으로 부각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창건 당시 30명에 불과하던 광복군은 초모활동에 전력을 기울였다. 애국청년은 물론 중일전쟁 당시 일본군에 강제징집돼 일본군복을 입은 학도병의 포섭과 편입에 주력했다. 일본군으로 있다가 전투 중 중국군 포로가 된 한인청년들을 탈출시켜 광복군으로 끌어들이는 데도 앞장섰다. 중국이든 일본이든 과거 어느 쪽을 위해 싸웠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광복군의 선전활동에 따라 300여명의 학도병들이 목숨을 걸고 탈출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광복군을 찾아가다 중국군의 포로가 되거나 목숨을 잃는 이들도 생겨났다. 김준엽(전 고려대 총장), 장준하, 한성수, 김우전(광복회장), 윤경빈(전 광복회장) 등은 학도병으로 끌려갔다 탈출해 광복군이 된 이들로 유명하다. 김광재 연구원은 “45년 3월말 500명이던 광복군이 광복 당시엔 1,000명 가까이로 늘었다. 이는 계속되는 중국의 견제와 임정이 국제사회에서 국가로 인정받지 못한 열악한 상황에 비춰볼 때 대단한 숫자임에 틀림없다”고 설명했다. 〈심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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