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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1-31 07:54:263127 
일본군국주의 실체 ①군부 갈등과 2·26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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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국주의 실체


①군부 갈등과 2·26사건

일본 군부 황도파, 끊임없이 쿠데타…확전 또 확전


"1935년 8월 12일 도쿄 미야케자카(三宅坂)에 있는 육군성에 대만(臺灣) 보병 제1연대 소속의 아이자와 사부로(相澤三郞) 중좌가 들어섰다. 육군중장인 야마오카 시게아쓰(山岡重厚) 정비(整備)국장을 인사차 방문했다는 그가 향한 곳은 육군소장 나가타 데쓰잔(永田鐵山:1904~1935) 군무(軍務)국장실이었다.

아이자와는 군도(軍刀)를 빼어들고 “국가를 위태롭게 만드는 장본인을 베러 왔습니다”라고 말하고는 나가타를 내리쳐버렸다. 군국(軍國) 일본의 심장부인 육군성 내에서 발생한 살인극이 바로 ‘아이자와 사건(相澤事件)’이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헌병에게 아이자와는 “임지(任地)에 가야지”라고 태연하게 말했다.

현장에 달려온 야마오카 중장은 꾸짖기는커녕 아이자와의 상처 난 왼손을 손수건으로 감싸주고 ‘의무실로 데려가라’고 명령했다. 아무도 아이자와를 제지하지 않은 것은 물론 네모토 히로시(根本博) 대좌는 감격의 악수를 청했다가 야마시타 도모유키(山下奉文) 대좌에게 주의를 받았다.

여기 엉킨 다섯 명의 고급 장교들은 모두 육군유년학교 출신의 전쟁기계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육군유년학교는 13~14세의 어린아이들을 입교시켜 전쟁기계로 길렀다. 살해당한 나가타는 육군중앙유년학교와 육군대학을 각각 2위로 졸업하고 참모본부 제2부장 등을 역임했는데, 만주사변의 주역 이시하라 간지(石原莞爾)를 두고 ‘육군에는 이시하라가 있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그의 선배인 나가타 역시 ‘육군에는 나가타가 있다’며 장래의 육군대신감으로 칭송받던 인물이었다.

아이자와도 센다이(仙台) 육군유년학교와 육군중앙유년학교 출신이고, 야마오카 중장도 나고야 육군지방유년학교와 중앙유년학교 출신이고, 악수를 청했던 네모토 히로시도 센다이 육군지방유년학교와 육군중앙유년학교 출신이었다. 심지어 네모토에게 주의를 주었던 야마시타도 히로시마 육군지방유년학교와 육군중앙유년학교 출신이었다.


군·정계 거물들을 ‘간신·국적’이라며 습격

아이자와 사건은 육군 내 두 파벌이 극단적으로 충돌한 것이었다. 이른바 통제파(統制派)와 황도파(皇道派)의 충돌이었다. 두 파는 여러 번 충돌했지만 이념상의 차이는 크지 않아서 이 사건은 일종의 조폭 간 나와바리(縄張り) 빼앗기였다.

두 파는 모두 군부가 일본을 주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육군대학 출신의 엘리트들이 포진한 통제파도 당초 쿠데타를 계획했다가 육군대신을 통해 정치적 요구를 실현하면서 서구 열강에 맞서는 ‘고도국방국가(高度国防国家)’를 건설하는 것으로 수단을 조금 바꾸었을 뿐이다. 황도파라는 말은 육군대신이었던 아라키 사다오(荒木貞夫)가 일본군을 ‘황군(皇軍)’이라고 부른 데서 유래하는데, 이들은 군부 쿠데타로 정당과 의회를 무력화시키고 일왕(日王) 친정의 군국(軍國)국가로 개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황도파는 끊임없이 군부 쿠데타를 도모했다. 1934년 11월에는 무라나카(村中孝次), 이소베(磯部淺一) 등이 사관학교 학생들을 이끌고 쿠데타를 결행하려다가 통제파에게 발각되어 미수로 끝난 이른바 ‘사관학교 사건’도 발생했다. 1935년 8월 육군대신 하야시 센주로(林銑十郞)가 황도파의 수장이었던 마사키 진자부로(眞崎甚三郎) 교육총감을 파면한 뒤 통제파였던 와타나베(渡邊錠太郎)를 임명한 사건은 아이자와를 격분케 했다. 1936년 1월 28일부터 제1사단 사령부의 군법회의에서 재판이 열렸는데 특별변호인 미쓰이(滿井佐吉) 중좌는 이 사건이 군부 내에 확산되고 있는 국가개조운동의 한 단면이라면서, “이 사건을 잘못 처리하면 제2, 제3의 아이자와가 나타날 수 있다”고 협박했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한 협박이 아니었다.

1936년 2월 26일 새벽. 1사단 소속의 구리하라 야스히데(栗原安秀) 중위를 비롯한 황도파 청년 장교들은 보병 제1연대, 제3연대, 근위보병 제3연대 사병들을 눈 덮인 연병장에 소집했다. 구리하라는 “지금부터 소화유신(昭和維新)을 향한 행동을 개시한다”고 훈시하고선 ‘존황(尊皇)’과 ‘토간(討奸)’을 암호로 하달하고 실탄을 나누어주었다.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2·26사건’의 시작이었다. 구리하라는 아이자와가 데쓰잔을 살해한 직후 사관학교 사건으로 정직된 이소베 아사이치(磯部淺一)에게 “아이자와가 행한 것은 바로 청년 장교들이 실행했어야 하는 일이었다”고 토로한 인물이었다.

이들의 제거 대상인 ‘간신’의 범주는 어마어마했다. 두 단계에 걸쳐 간신 제거 계획을 세웠는데, 제1차 목표는 총리대신 오카다 게이스케(岡田啓介:해군대장)를 필두로 일왕의 시종장 스즈키 간타로(鈴木貫太郎:해군대장), 내대신 사이토 마고토(斎藤實:해군대장, 조선총독과 수상 역임), 대장(大藏)대신 다카하시 고레키요(高橋是清:전 총리대신) 등과 정계 최고 원로였던 사이온지 긴모치(西園寺公望:전 수상) 공작 등이었다. 이렇게 간신들이 득실거리는데 어떻게 나라가 망하지 않았는지 신기할 지경이었다.

1차 습격 대상이 주로 내각과 일왕을 둘러싼 인물들이었다면 제2차 제거 대상은 주로 의회와 재계 인물들이었다. 추밀원 의장 이치키 기토쿠로(一木喜德郎) 남작, 전 대만총독인 귀족원의장 이자와 다키오(伊澤多喜男), 미쓰이(三井)재벌 총수 미쓰이 하치로에몬(三井八郎右衞門), 미쓰비시(三菱) 재벌 총수 이와사키 고야타(岩崎小弥太), 내무대신 고토 스미오(後藤文夫) 등이 그들이었다.

1931년에 잇따라 발생했던 3월 쿠데타 기도나 9월의 만주사변, 10월의 쿠데타 기도사건 등을 모두 하시모토 긴고로(橋本欣五郞), 이시하라 간지(石原莞爾) 같은 영관급 장교들이 주도했다면 2·26사건은 위관급 장교로 더 내려갔다. 구리하라 중위 등이 이끄는 이른바 결기부대(決起部隊)는 모두 1483명이었다. 구리하라는 300명의 병력으로 수상 관저를 포위한 뒤 권총으로 대항하는 경비경찰을 제압하고 관저 안으로 들어갔다.

오카다 게이스케(岡田啓介) 수상은 총소리가 나자 해군대장 출신답게 잽싸게 가정부 방 장롱 속으로 숨었다. 결기부대는 총리의 매부이자 개인비서였던 마쓰오 덴조우(松尾傳蔵) 전 육군대좌를 수상으로 오인해 사살했다. 구리하라 일행은 만세를 부르면서 다른 부대에 ‘소화유신’이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고 알렸다.

그러나 숨죽이고 숨어 있던 오카다는 문상객으로 가장하고 27일 밤 관저를 극적으로 탈출했다. 나카하시 모토아키(中橋基明) 중위는 근위보병 3연대 병력을 이끌고 대장대신 다카하시의 사저를 습격했다. ‘국적(國賊)’이라는 외침과 함께 침실에서 사살된 82세의 대장대신 다카하시의 시신에 나카시마(中島莞爾) 소위는 ‘천벌’이라면서 군도로 난도질했다.


조선총독 지낸 78세 사이토도 난자 당해

사카이(坂井直) 중위는 보병 제3연대 병력을 이끌고 조선총독과 수상을 역임했던 사이토 마고토 내대신(內大臣)의 사저를 습격했다. 총소리에 놀라 침실에서 뛰어나온 일흔여덟 노구의 사이토도 권총과 기관총, 군도로 난자당했다. 사이토는 47발의 총탄과 10번의 난도질을 당했는데 한 장교는 사저를 포위하고 있는 병사들에게 피 묻은 손을 들어올리며 ‘보라, 국적의 피를!’이라고 외쳤다. 사이토를 처단하려고 폭탄을 던졌다가 매국경찰 김태석에게 체포되어 사형당한 강우규 의사가 들었으면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이외에 교육총감 와타나베(渡邊錠太郎) 육군대장도 살해되었다. 안도(安藤輝三) 대위는 보병 3연대 병력을 이끌고 전 총리대신이었던 스즈키 간타로 시종장의 관저를 습격했다. 안도는 4발의 총알을 맞은 스즈키의 목을 자르려다가 부인 스즈키 다카(鈴木たか)의 애원을 받고는 곧 죽으리라는 판단으로 중지했다. 그러나 스즈키는 겨우 목숨을 건졌고, 일왕 히로히토(裕仁)의 유모였던 부인 다카는 궁성에 이 소식을 전했다. 히로히토는 자신의 친정(親政)을 내걸고 쿠데타를 일으킨 젊은 병사들보다 유모의 남편에게 더 애정이 갔는지 스즈키의 부상 소식에 격분해 진압명령을 내렸다. 2월 28일 라디오에서 “칙령이 나왔다…폐하의 명령에 따라 원대로 복귀하라…”는 ‘병사에게 고한다’는 방송이 나왔다.

결기부대는 29일 아침 원대로 돌아갔으나 이 실패한 쿠데타에 히로히토가 분노했으므로 가혹한 뒤처리가 뒤따랐다. 노나카 시로(野中四郎)와 고노(河野壽) 대위는 자결했고, 구리하라 등 16명의 장교는 사형당했다. 이뿐만 아니라 황도파에게 소화유신의 이념을 제공했던 극우파 사상가 기타 잇키(北一輝)와 니시다 미쓰기(西田税)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 사건을 주도한 대부분의 청년 장교들 역시 육군유년학교 출신의 전쟁기계들이었다. 쿠데타는 실패로 끝났지만 군부는 이 사건을 빌미로 정계와 언론계를 협박했다. 소화유신을 모방한 10월 유신이 의회와 정치권, 언론을 극도로 위축시켰던 것처럼 소화유신을 표방한 2·26사건 이후 일본 사회는 극도로 위축됐다.

그러면서 군부는 군수산업을 중심으로 하는 중공업 재벌과 결탁해 확전의 길로 나섰다. 조직폭력배에 불과한 군부와 무기상으로 변신한 중공업 재벌의 이른바 군상(軍商)복합체가 이후 일본을 병영국가로 몰고 갔으니 확전은 불가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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