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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5-10 21:36:003245 
단재 신채호 선생
양승국

그를 무정부주의자로만 정의한다면 당신은 단재 선생에 대해서 많은 것을 놓치게 되리라.. 필자 생각엔 인터넷상에 사회주의니, 민주주의니, 민족자주, 자결이니, 수정자본이니, 신낭만주의니 등등의 목걸이와 팔찌등의 치장을 걸고 나온자들 중에서 단재 만한 사람을 찾아볼 수 없으니 이는 무엇 때문일까. 단재의 일생은 흔히들 반일제국주의로 인해 자연발생적인 투쟁의 연속이다라고 규정되기 쉬울것이며, 이것은 단재의 세수법의 일화가 일반 대중에게 가장 많이 소개되는 것에서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팔푼이의 눈으로 본 단재의 일생은 조선 말기의 내부적 오류와 무산대중의 어리섞음으로 인해서 생명력을 가지게 되었다고 보여진다. 단재가 역사를 희망이라 봤던것이 그 증거다. 즉, 조선 말기의 내부적 오류는 사대주의에서 비롯되었으며, 무산대중의 어리섞음은 대다수의 무산대중을 노예로 전락시키는 권력의 독점화, 종교의 독점화, 지식의 독점화에 의해서 노예주의가 산출되었다고 보았고, 이런 것들을 연구하기 위해선 역사학은 필수며, 역사학의 정리하에 미래에 대한 답이 나온다고 본것이다. 우선 조선역사상 일천년래 제일대사건朝鮮歷史上 一千年來 第一大事件이란 단재의 논문중의 일부를 발췌해서 단재 선생의 사대주의에 대한 논의를 보도록하자. 『민족民族의 성쇠盛衰는 매양 그 사상思想의 추향趨向 여하에 달린 것이며, 사상 추향의 혹좌혹우或左或右는 매양 모종 사건의 영향을 입는 것이다. 그러면 조선 근세에 종교宗敎나 학술學術이나 정치政治나 풍속風俗이 사대주의의 노예가 됨이 무슨 사건에 원흉함인가. --(중략)--나는 일언으로 답하여 가로되, 고려 인종仁宗 13년(서기 1135년) 서경전역西京戰役 즉 묘청妙淸)이 김부식金富軾에게 패함이 그 원인이라 한다.』 단재 선생은 이에 사대주의 김부식이 승리함으로서 조선사는 사대적, 보수적, 속박적 사상 즉, 유교사상에 정복되고 말았다고 일갈하고 있다. 또한 단재는 이에 맞물려 조선민중의 민족성을 개탄하면서 비판하고 있다. 『나아갈 때에 같이 와하다가 물러갈 때에 같이 우르르하는 사회가 어느 나라의 사회냐. 제 흉을 제가 봄이 좀 얼없는 일이지만 우리 조선의 사회라고 자인 할 수 밖에 없다. 삼국 중엽부터 고려 말세까지 염불과 목탁이 세가 나매 제왕이나 평민을 물문勿問 남은 여에게 권하며, 조祖는 손孫에게 전하여 나무아미타불의 한 소리로 천년의 긴 세월을 보내었으니, 이조 이래로 유교를 존상尊尙하여 5백년 동안이나 서적은 사서오경의 되풀이요 학술은 심성이기의 강론뿐이었나니, 이같이 단조로 진행되는 사회가 어디 있느냐. 이같이 맹종 부화附和하는 사회가 어디 있느냐.』 김창숙과의 설전이란 일화에서 단재의 이 일갈이야말로, 단재의 자연발생적 투쟁이 일제에 대한 저항의식 보다는 계급, 계급보다는 민족이란 포괄적 개념으로 정의되야 함을 분명이 나타내는 것이다. 『우리 민족에게 공자보다 훨씬 훌륭한 성현이 없었나? 우리에게 따로이 언어가 없었나? 우리 문자도 일찍이 있었건만, 자기 나라 전통을 무시하고 성현을 업신여기는 사람들이 남의 전통을 제것인양 아끼고 보살피면서 정작 제것은 등한시 해온 결과가 무엇이냐? 제나라까지 강도질 당해 백성은 노예가 되고, 지식층은 중국까지 쫓겨와서 망국민된 탄식만 토로했지 어디에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뉘우치지 못하는 네같이 어리석은 자들이 한국에 자손으로 있어, 독립은 고사하고 유학, 성현, 공자에 매달려 도무지 제정신을 못차리니, 어이구 분해라 원통해라, 어찌하여 우리 화랑도정신이 이 지경이 되었을까?』 이 밖에 많은 논문과 많은 논평 중에서 단재는 민족의 앞날을 개척해 내고자 했으며, 극복해야할 대상을 역사속에서 찾음으로서 역사가 희망이라고 말한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상가, 연구가, 글쟁이들이 단재에 미치지 못한 이유는, 그들에겐 민족의 형질과 민족성에 산실인 오늘날의 사회 전반적 문제에 대해서 매우 무감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매우 평향된 시각으로 정치이야기에만 몰두하기 때문이다. 이러함에 정치는 발전하되 민족은 발전하지 못하며, 정치는 진보적이되 역사는 보수적이다 못해, 폐기처분되는 오늘날을 목도하게 된것이다. 오늘날 글쟁이중에 단재 만한 인물이 없음을 크게 개탄한다

출전 : 21세기경제학 자유게시판

작성자 : 단군 [ [이 게시물은 운영자님에 의해 2011-03-25 22:44:54 7. 조선후기(으)로 부터 이동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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