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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정시대(김학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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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정시대


김학철(金學鐵, 1916-2001)



혁명 성장소설의 공간과 반식민주의1. 혁명 성장소설의 출현김학철의 장편소설 ≪격정시대≫를 통해 그동안 역사에서 본격적으로 다루지 못했던 조선의용군에 대한 역사적 탐구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른바 ‘혁명 성장소설’1)이라 할 수 있는 이 장편소설의 문학적 면들에 대한 집중적 탐구가 요구된다.


그리하여 ≪격정시대≫를 ‘혁명 성장소설’이란 측면에서 새롭게 읽어볼 필요가 있다. 김학철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작중인물이 어떻게 한 혁명가로 성장하는지 그 과정에 초점을 맞추는데, 특히 어느 한 지역에 갇혀 있지 않고 지역의 경계를 넘는 과정 속에서 혁명가로 거듭나는 삶의 구체적 계기에 대해 주목하고자 한다. 여기서 쉽게 간과할 수 없는 게 바로 공간성이다. 즉 혁명가로 거듭나기 위해 거쳐가는 공간의 구체성과 그 공간을 통과하면서 겪는 혁명가로서의 성장 과정에 주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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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혁명가로서 거듭나기 위한 성장의 공간≪격정시대≫의 주요한 문학 공간을 온전히 이해하지 않고 ≪격정시대≫를 읽어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무엇보다 이 소설은 ‘혁명 성장소설’의 특질을 갖고 있어, 한 혁명가로 거듭나는 과정을 파악하지 않고 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바로 여기서 한 혁명가로서 성숙하기 위해 작중인물이 구체적으로 놓이는 공간은 중요한 역할을 갖는다. 인물이 어떠한 구체적 공간에 놓이는지, 그 공간의 속성들과 인물이 맺는 관계를 통해 그 인물을 좀 더 자세히 파악해야 한다. 그리하여 혁명가로 성장하는 과정에 대한 문학적 형상화를 촘촘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


≪격정시대≫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인물은 선장이다. 일제 강점기에 어부의 자식으로 태어난 선장은 개별자와 역사적 존재로서의 파란만장한 운명을 견디며 혁명가의 모습을 갖추어나간다. 그런데 혁명가의 모습은 어느 날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는 게 결코 아니다. 혁명가로서의 자질을 갖추는 험난한 과정을 거칠 때 비로소 혁명가다운 혁명가의 위엄을 갖게 된다. 선장의 경우가 바로 그렇다. 선장은 혁명가로서 거듭나기 위해 다음의 공간을 거치며, 각 공간이 갖는 특성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성숙해진다. 선장이 거치는 주요한 공간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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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원산 ⇒ ② 경성⇒ ③ 상해 ⇒ ④ 태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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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산은 선장이 태어난 공간으로, 이곳에서 그는 유년 시절을 보낸다. 원산은 선장에게 아름다운 유년 시절의 기억을 간직하게 하는 곳이자, 민족사의 소중함을 깨닫게 함으로써 이후 민족적 주체 의식을 인식하게 되는 첫 계기를 갖도록 한 곳이다. 그러면서 편협한 민족주의에서 벗어나 국제주의자로서의 성숙의 계기를 만나는 곳이기도 하다. 원산에서 선장의 성숙에 중요한 역할을 맡은 인물은 씨동이와 한정희라는 선장의 이웃 형들이다. 이들은 처음에 무정부주의자로서 공산당원들과 대립ㆍ갈등의 시각을 보이지만, 서로 다른 이념의 투쟁으로 인해 정작 부딪치고 극복해야 할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을 간과할 수 있다는 판단을 갖게 되면서, 민족 내부의 이념적 갈등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이러한 민족 내부의 이념적 갈등은 원산부두노조 파업이 일어나면서 봉합된다. 작가 김학철은 이 원산부두노조 파업을 통해 원산이란 곳이 갖는 문제의식, 즉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자본과 맞서는 노동자의 해방운동이야말로 일국(一國) 중심의 민족 해방운동으로 자족할 게 아니라 인류 사회에서 노동자가 직면한 민중의 현실적 문제들에 맞서는 싸움이라는 것을 선장에게 인식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가령, 원산 부두 노동자들의 파업 행위에 대해 일본 선원들이 지지를 보내온 것은 ‘한국/일본’이라는 민족문제의 차원이기보다 협소한 민족주의를 초월한 노동자 계급의 국제적 연대를 보여준 것인데, 어린 선장이 그 맥락을 온전히 이해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하지만 원산에서 본 이 충격적인 장면은 선장이 훗날 배타적 민족주의를 넘어서서 국제주의자로서의 참다운 세계 인식을 획득하는 데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성장의 주요한 계기임에 틀림없다.

이렇게 작가 김학철은 선장으로 하여금 한정희와 씨동이를 통한 민족 내부의 갈등에 대한 성찰을 지켜보게 하고, 더욱이 배타적 민족주의를 벗어나 노동자계급의 국제적 연대의 가능성을 목도하도록 함으로써 혁명가로서의 성장 기반을 다지도록 한다. 따라서 원산은 선장에게 혁명가로서의 자양분을 제공한 역사의 구체적 공간인 셈이다.


이제 선장은 원산을 떠나 식민지 근대의 한복판으로 이동한다. 그곳은 경성이다. 경성에서 그는 온갖 식민지의 근대적 문물을 “난생처음” 접한다. 경성의 근대적 문물들(상가에 전시된 온갖 상품들, 전차라는 교통수단, 근대적 목욕 시설, 근대적 교육제도, 영화 등)은 선장에게 모두 낯선 것이며 새로운 것이다. 그는 이 경성에서 양가적 세계를 경험한다. 하나는 원산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근대적 생활 세계이며, 다른 하나는 보성고보에서 받는 근대적 교육을 통해 민족의 현실을 자각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 두 가지는 식민지 근대라는 한 뿌리를 두고 있다. 경성의 근대적 문물과 제도는 표면적으로 볼 때 봉건적 삶의 속박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역할을 맡고 있으나, 그것의 본래 의도가 일본의 식민지 속국으로 만들기 위한 억압적 제도의 일환이라는 사실은 선장이 다니는 보성고보에서 일어난, 민족주의적 각성을 촉구하는 일련의 움직임과 밀접한 맥락을 이룬다. 선장은 목도한다. 보성고보의 학생들이 식민지 노동자의 해방 문제를 다룬 연극을 올린 데 대해 식민지 관료의 전형인 교장은 학생들의 연극을 비난한다. 이에 대해 학생들은 교장이 반민족적ㆍ반민중적이라며 교장 퇴출 운동을 강력히 벌인다. 말하자면 학생들의 교장 퇴출 운동은 식민지 국민을 철저히 지배하려는 식민지 근대 교육에 대한 비판이자 부정의 성격을 띤다. 작품 속에서 학생들이 동대문 밖 쓰레기 처리장으로 교장을 축출한 행위는 바로 이러한 일본의 전도된 근대적 교육제도, 다시 말해 이것을 좀 더 확장시키면 경성으로 대별되는 일본의 식민화를 위한 근대적 문물에 대한 부정의 행위와 다를 바 없다.


이처럼 경성은 선장에게 원산과 달리 식민지 근대라는 구체적 현실에 대한 인식과 함께 그것의 문제성을 실감하고, 적극적으로 그 문제성을 극복하고자 하는 행동을 표출시키는 저항적 공간으로 인식된다. 비록 선장이 아직까지는 주도적으로 저항적 행동을 보이지는 않지만, 보성고보에서 그가 학생들과 동참한 교장 퇴출 운동은 행동적 지식인의 표상을 그 스스로 발견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간단히 지나칠 수 없는 성장의 계기다. 필자가 이 대목에서 주목하게 된 것은 식민지 내부에서 식민지를 극복하는 저항적 공간의 속성이다. 선장과 보성고보 학생들은 분명 식민지 근대의 혜택을 받되, 그것에 만족할 수 없으며, 식민지 근대라는 것이 반민족적ㆍ반민중적 억압 이데올로기이며, 식민지 지배 질서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명백히 인식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러한 식민지 지배 질서를 부정하는 움직임을 보이는데, 그것은 바로 식민지 지배 질서를 공고히 하는 데 동원되는 근대적 학교 교육의 내부에서 이 교육을 부정하는 저항적 행동을 과감히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작가 김학철은 바로 이 점을 주목하고 있다. 경성이 식민지 지식인으로 하여금 식민지 근대의 문물을 제공받게 해주는 공간이되, 김학철과 같은 혁명가는 그곳을 식민지 근대를 전복시킬 수 있는, 즉 식민지 내부에서 식민지를 해체시킬 수 있는 저항적 공간으로도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저항적 공간의 속성은 분명한 한계가 있다. 교장 퇴출 운동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김봉구라는 인물이 학교 바깥으로 쫓겨난다. 하지만 간과해서 안 될 것은 작가 김학철은 경성을 식민지 근대의 수혜자적 입장에서 인식하는 게 아니라 식민지 근대의 문제점을 극복해야 할 저항적 공간으로 인식하여, 이러한 식민지 근대를 부정하고 극복해야 할 혁명가에게 근대의 야만과 폭압을 생활 세계에서 경험하도록 하고 있다는 점이다. 식민지 근대를 극복할 혁명가는 이렇게 식민지 근대의 생활 세계를 구체적으로 부딪치는 가운데 형성되는 것이지, 관념적 인식에 의한 성급한 행동주의자로서는 혁명가의 자질을 제대로 갖출 수 없다.


이제 선장은 경성의 식민지 근대가 갖는 본질적 문제점을 인식하는 가운데 윤봉길 의사의 폭탄 투척 사건 소식을 접하고, 경성을 떠나 항일 독립운동에 직접 가담하기 위한 각오를 다진다.


선장은 임시정부가 있는 상해를 찾아간다. 중국의 상해는 이미 서구 열강의 근대적 침탈로 인해 각국의 이해관계 속에서 조차 지역으로 나뉘어 있었으며, 중국의 국민당 정부와 공산당 사이에 대립ㆍ갈등이 진행 중에 있었다. 상해는 경성과 달리 근대의 복잡다기한 측면이 한층 뒤엉켜 있는 곳이다. 상해에서 선장은 동아시아의 근대적 세계와 접촉하면서 그토록 욕망하던 항일 독립운동의 최전선에 뛰어들 준비를 착실히 하게 된다. 특히 이곳에서 선장은 마르크스주의를 공부하면서, 세계에 대한 과학적 인식을 통해 협소한 민족주의의 경계를 벗어나게 된다. 상해 그 자체가 근대 전환기 무렵부터 일국 중심의 민족주의에서 벗어나 세계 여러 나라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는 국제적 관계가 팽배한 곳임을 고려해 볼 때 선장은 상해에서 이후 조선의용군의 이념인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과학적 인식을 갈무리한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심장한 공간이라 아니할 수 없다. 말하자면 상해는 원산과 경성을 거쳐 도달한, 혁명가로서의 이론과 실천을 갈고 다듬어 조선의용군의 활동을 본격적으로 하기 위한 중요한 성장의 장소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리하여 선장은 마침내 조선의용군으로서 중국의 태항산을 오른다. 그곳에서 선장은 조선의용군 특유의 ‘혁명적 낙관주의’로써 항일 독립 무장투쟁을 벌인다. 상해에서는 테러 운동의 조직을 통해 항일 독립운동에 가담했다면, 태항산에서는 조선의용군의 일원으로서 일본군을 상대로 무장투쟁을 벌여나간다. 태항산은 선장에게 회피와 침묵 혹은 소극적 참여의 공간이 아니라 직접 총칼을 들고 싸워야 하는 전쟁터다. 돌이켜보면, 원산에서 민족적 각성 의식을 갖고, 경성에서 식민지 근대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저항에 참여하고, 상해에서 혁명가로서의 이론과 실천을 착실하게 준비하던 선장은, 마침내 태항산에서 항일 독립 무장투쟁을 벌이는 조선의용군의 위엄을 갖추게 된다. 비록 태항산이 한반도를 벗어난 중국에 위치해 있는 곳이어서 태항산에서의 무장투쟁이 한반도를 일제의 식민지 예속 상태에서 직접 벗어나게 할 수는 없지만, 일본 제국주의를 직접 대상으로 한 무장투쟁이 적극적으로 전개되었다는 사실은 태항산의 존재를 결코 가치 폄하할 수 없게 한 것이다. 이 점은 작가 김학철뿐만 아니라 조선의용군이 마르크스주의적 이념으로서 국제주의자적 면모에 관심을 가질 것을 요구한다. 말하자면 태항산은 선장뿐만 아니라 조선의용군에게 민족 해방 투쟁의 진지이면서 항일 독립운동사에서 망각되어서는 안 될 독립운동의 주요 격전지로서의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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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김학철의 문학과 동아시아의 평화김학철의 문학은 한반도와 중국을 가로지르는 공간성을 확보하고 있어, 동아시아의 복잡다기한 근대적 문제들을 배타적인 민족주의적 관점이 아니라 민중의 국제적 연대를 통해 반식민주의 문학으로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간직하고 있다. 여기에는 무엇보다 김학철이 지속적으로 복원하고 있는 조선의용군의 항일 무장 독립 투쟁의 역사적 동력을 동아시아의 평화적 가치를 확산시키는 데 적극적으로 전화시켜야 한다는 과제가 제기된다.


21세기의 동아시아는 아시아의 평화는 물론, 세계의 평화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최근의 국제 정세는 숨 가쁘게 펼쳐지고 있다. 21세기의 민족 문학은 더 이상 일국 중심의 민족 문학이 아니라 분단 문학을 넘어 통일 문학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통일 문학은 한반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김학철의 문학을 통해 확연히 증명되듯, 우리 민족 구성원의 항일 독립운동의 무대가 동아시아 전역에 걸쳐 있고, 바로 그곳에서 민족 문학의 훌륭한 성과물이 산출되고 있다는 것은 우리 문학의 외연이 확장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것은 단순한 외연적 확장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분쟁을 해결하고 평화를 모색하기 위한 소중한 민족 문학적 성취라는 점에서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해도 손색이 없다. 김학철의 문학은 그 좋은 사례다. 특히 김학철의 문학이 “식민주의와 자본주의에 유효하게 저항하고, 그것들을 어떻게 바꿔나갈 것인가 하는 논리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면, 근대 아시아의 역사적 유산으로서 민족 해방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의 동력, 격정적이고 미완성인 임무는 모두 새로운 아시아 상상으로 전화되”2)는 데 긴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보탤 것이 있다면, 김학철의 문학은 늘 새롭게 읽혀야 하며, 김학철 문학에 자리한 민족 해방운동의 동력에 대한 현재적 해석이야말로 반식민주의를 기반으로 평화를 추구하는 문학의 가치를 드높여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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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격정시대≫는 중국의 요령민족출판사에서 1986년 상, 하권으로 출간되었는데, 한국의 풀빛출판사에서 1988년 상, 중, 하 3권으로 재출간했다. 풀빛출판사에서 간행한 상권의 <이 책을 읽는 분들에게>에서 ≪격정시대≫를 ‘혁명 성장소설’로 규정하고 있는데, 필자는 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성장소설인 경우는 흔히 서구의 부르주아적 성장소설을 지칭하는데, ≪격정시대≫의 경우 서구의 부르주아적 성장소설과 그 성격이 확연히 다르다. 무엇보다 주인공이 프롤레타리아 계급으로서 민족 해방운동에 직접 참여하게 되는 성장의 과정을 통해 한 혁명가로 거듭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 부르주아적 계급의 교양을 갖추어나가며 성장의 통과제의를 겪는 서구의 성장소설과 그 전개 과정에서 뚜렷이 구별된다. 특히 ‘혁명적 낙관주의’를 통해 공동체의 전망을 향해 실천해 가는 한 혁명가로 성장해 가는 과정은 서구의 성장소설이 비관적 세계 인식을 통과하며 개별적 자아의 완성을 추구한다는 점과 차이를 갖는다. 다시 말해 ≪격정시대≫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인 유소년이 혁명가로서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혁명 성장소설’로서 손색이 없다고 하겠다.

2) 왕후이, <아시아 상상의 계보> ≪새로운 아시아를 상상한다≫(이욱연 외, 창작과비평사, 2003), 225면.



고명철(광운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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