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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8-17 14:17:133642 
분파주의자 이승만의 실체
운영자

“1915년 국민회 분열, 이승만 ‘자산 사유화’가 씨앗”



사료수집가 로버타 장, 하와이 부동산 등기자료 추적

“국민회 자금으로 부동산 구입 담보대출 상환책임도 떠넘겨

한인들이 준 독립운동자금 단 한번도 전달된 적 없어

자기이익 챙긴게 그의 실체”




1903년부터 1905년 사이 7200여명의 한국인들이 갤릭호를 타고 미국 하와이주 호놀룰루에 도착했다. 하와이 여러 섬에 있는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기 위한 이 대규모 노동이민은 그 뒤 크게 불어날 미국 한인사회의 계기가 됐다. 특히 1909년 만들어진 ‘국민회’는 한인사회를 대표하는 단체로서 하와이와 샌프란시스코에서 각각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1910년 한일 강제병합으로 모국을 잃어버린 하와이 한인들은, 사탕수수 농장에서 고된 일을 하면서도 언젠가 올 독립을 바라며 국민회에 성금을 냈다. 1912년 네브래스카대에서 군사공부를 한 독립운동가 박용만을 초청해 국민회 임원을 맡기고 소년병학교를 지원했던 것은 당시 한인들의 바람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그러나 1913년 국민회와 박용만의 초청으로 이승만이 하와이에 온 뒤로 모든 것이 변했다. 이승만에게 하와이 시절은 미국 사회에 한인 독립운동가로서 자신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알린 시기이지만, 하와이 한인들에겐 분열과 반목, 대립으로 점철된 시기였다. 하와이 동포 2세이자 사료 수집가인 로버타 장(80)씨는 “한인사회의 분열은 이승만으로부터 비롯됐다”고 말한다. 하와이 이민 100년사를 정리한 책 <하와이의 한인들>을 펴내기도 했던 장씨는 지난 6월 귀국한 뒤 기자와 인터뷰했고, 이달 초엔 하와이 한인사회의 분열에 대한 자신의 새로운 연구자료를 <한겨레>에 보내왔다.




하와이 한인사회의 분열에 대해서는 법정소송 자료, 당시 한인사회 내부에서 일어난 폭동에 대한 신문기사 등 다양한 기록들이 이미 나와 있다. 또 흔히 무력투쟁을 강조한 박용만파와 외교 노선을 강조한 이승만파의 대립이 분열의 중심이었다는 식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장씨는 한인사회 분열의 정확한 실체를 보기 위해 다른 접근법을 택했다. 국민회와 이승만의 부동산 거래 내역을 들여다본 것이다. 하와이 등기소에서 찾아낸 기록들과 법정송사 기록 등을 꿰어보면, 당시 한인사회를 분열로 몰아간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얼추 짐작할 수 있다.




1915년은 국민회에 커다란 혼란이 있었던 시기로 꼽힌다. 당시 회장이었던 김종학과 박용만 등 주요 간부들은 자금 횡령의 의혹을 받고 남학생들의 습격을 받아 부상을 입었다. 그 뒤 홍한식 목사가 새 회장직을 맡는 등 이승만 지지자들이 국민회 주요 간부직을 접수했다. 로버타 장씨는 이 사건의 실체를 이해하기 위해선 1914년 이승만의 부동산 거래를 봐야 한다고 말한다. 이승만은 1914년 7월16일 여학교 기숙사를 만들기 위해 한인사회에서 거둬들인 자금 2400달러로 부동산을 구입하고, 같은 날 그 부동산을 담보로 연리 8%로 1400달러를 대출받았다. 1년 뒤인 상환일을 앞둔 상황에서 국민회를 장악한 것이다. 실제로 국민회를 장악한 직후인 1915년 7월27일 국민회는 국민회 자산인 여학교를 1달러에 이승만에게 매각했다. 그러나 대출받은 돈을 어디에 썼는지는 아무런 기록도 남아 있지 않고, 상환의 책임은 국민회에 있었다.




이처럼 하와이에서 이승만은 줄곧 국민회의 그림자를 지우고 국민회 자산과 한인사회 공동의 자산을 자신의 것처럼 쓸 수 있도록 하는 작업에 매달렸고, 이를 위해 한인사회를 극심한 분열로 몰고 갔다고 장씨는 주장한다. 부동산 등기 기록과 법정소송 기록이 바로 그 증거라는 것이다. 이승만은 1916년에는 자신의 이름으로 4500달러에 사들인 부동산과 여학생 기숙사를 담보로 삼아 4250달러를 대출받았고, 국민회 자산인 남학교를 양도받아 이를 담보로도 3500달러를 대출받았다. 그러나 대출금을 어디에 썼는지 기록을 남기지 않고 상환 책임은 국민회에 떠넘기는 패턴이 계속됐다고 한다. 이에 반대했던 새 국민회 회장 홍한식 목사는 별다른 이유 없이 다른 섬으로 전출을 갔고 다른 이승만파 국민회 간부들이 이를 승인했다. 1918년에는 이승만이 주도한 자금 집행에 의문을 품고 반발한 국민회 회원들이 살인미수 혐의로 고소를 당하는 일도 벌어졌다.




장씨의 기록을 보면, 이런 패턴은 이승만이 임시정부 수반이 되기 위해 상해로 떠났다가 다시 하와이로 돌아온 1921년 뒤에도 계속된다. 임시정부 수반의 권위로 국민회를 해체하고 ‘교민단’이라는 새로운 한인단체를 세운 이승만은 “마치 부동산업자처럼 끊임없이 부동산을 사고팔았”고, 1918년 자신이 독자적으로 만든 ‘한인기독학원’에 국민회 자산을 끌어들였다는 것이다. 국민회의 재정 감시를 피하기 위해 가짜 임원들로 구성된 이사회로 부동산 매각을 승인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패턴에 이승만 지지자들도 결국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새로운 한인촌 개간, 벌목사업 등 여러 가지 사업을 벌이기 위해 이승만이 주도해 만든 ‘동지식산회사’를 두고 벌어진 폭동이 대표적이라 한다. 동지식산회사가 잇따른 사업 실패로 파산에 이르자, 여기에 투자했던 이승만 지지자들마저 크고 작은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장씨가 문제로 삼는 것은, 하와이 한인들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힘겨운 노동을 하면서도 선뜻 냈던 자금이 독립운동에 쓰이기는커녕 출처도 제대로 알 수 없이 쓰였다는 점이다. 장씨는 “중국과 한국의 독립운동 투사들에게 자금 지원을 하려던 것이 국민회의 본뜻이었는데, 이승만이 한인사회를 장악한 동안 단 한 번도 그들에게 자금이 전달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장씨는 “한인사회를 분열시켜 자신의 사사로운 이익을 챙긴 것이 이승만이란 인물의 본질”이라고 비판했다. 장씨의 자료를 검토한 재미한인 독립운동사 전문가인 안형주씨는 “기존의 연구성과에 더해 부동산 기록을 통해 하와이에서 이승만이 어떤 일을 벌였는지 직접적으로 밝혀줬다”며 “이 부분에 대해 역사학자들이 연구를 집중해 이승만의 실체적인 모습을 더욱 드러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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