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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11-18 15:37:513429 
형은 독립군자금 조달, 동생은 ‘방패막이’ 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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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은 독립군자금 조달, 동생은 ‘방패막이’ 친일




경주 최부잣집 12대손 최준·윤 형제 ‘눈길’

홍명희 집안도 ‘조부는 친일·부친은 자결’




‘친일인명사전’에 담지 못한 굴곡진 가족사




순종이 한-일합병 조약의 체결을 공표한 1910년 8월29일. 당시 충남 금산군수 홍범식은 목을 맸다. 그는 이완용·이용구·송병준 등 ‘을사 5적’이 나라를 내다 판 친일·반역 행위를 통탄하며 목숨을 던지며 저항했다. 그는 죽기 전 “죽을지언정 친일을 하지 말고 먼 훗날에라도 나를 욕되게 하지 말라” 는 말을 남겼다. 홍범식은 1962년 독립유공자(독립장)로 인정됐고, 국가보훈처는 ‘금산군수로 재임 중 경술합방 소식을 전문하고(듣고) 목을 매어 순국하였음’이라고 그의 공적을 짧게 기록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 홍승목은 아들이 자결하고 불과 2개월이 지나 중추원 찬의(고등관에 해당)에 올랐다. 그는 중추원에서 12년간 조선총독부의 자문역을 맡았고, 1912년 8월엔 한국병합기념장을 받았다. 이후에도 1차 대전 참전 일본 군인과 가족을 위로하는 ‘경성군인후원회’에 돈을 내거나, ‘조선물산공진회’의 후원조직에서 활동했다.




이 비극적인 부자의 운명은 대물림됐다. 일본에서 유학중이던 홍범식의 큰아들은 아버지의 자결 소식을 듣고 유지를 이으려 귀국했다. 그는 1919년 3·1운동 등에 참여해 여러 차례 감옥에 갔고, <동아일보> 편집국장과 <시대일보> 사장을 지내며 고초를 겪었다. 1928년부터는 <조선일보>에 10여년간 민중소설 <임꺽정>을 연재했다. 홍범식의 큰아들이었던 벽초 홍명희는 “나는 홍범식의 아들, 애국자다”라고 얘기하는 것을 자랑거리로 여겼다고 한다.




<친일인명사전>은 홍승목을 “경술국치 때 자결한 군수 홍범식이 그의 아들이며 신간회 부회장을 지낸 독립운동가이자 소설 <임꺽정>의 작가인 전 북한 부수상 벽초 홍명희가 손자”라고 기록했다.










지난 8일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을 내놓으면서, 여기에 담기지 못한 한국 현대사의 굴곡 많은 사연들이 알려지고 있다. ‘한국 최고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꼽히는 경주 최부잣집 12대손 최윤은 중추원 참의(지금의 국장급)를 지내 <친일인명사전>에, 그의 형 최준은 상해임시정부에 막대한 군자금을 대 독립유공자로 기록된 경우다. 동생이 ‘악역’을 맡아 형의 독립운동을 의심받지 않게 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들의 사촌 처남이었던 박상진은 대한광복회 총사령관으로 독립운동을 하다 체포돼 사형됐다.






일제강점기 ‘정미 7적’ 가운데 한명으로,
귀족 신분인 ‘자작’의 작위를 받은 이재곤은, 그의 셋째 아들 이관용이 1919년 국제사회주의자회의에 한국사회당 대표로 참석해 ‘한국독립 승인 요구안’을 낸 점이 인정된 독립유공자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후작(최고 귀족에 해당함)이었던 이철주는 보장된 부와 명예를 버리고 독립운동을 하다 징역형을 살았고, 자작 민영소의 큰손자 민병증은 독립운동을 하다 잡혀 습작(귀족 신분을 이어받는 것)의 자격을 상실했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쓴 주요섭은 2004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지만, 그의 형 주요한과 동생 주영섭은 시와 연극으로 침략 행위를 감쌌다.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은 11일 “일제 강점기가 만들어낸 아픈 역사들이 지금도 진행형으로 존재하고 있다”며 “이런 역사의 굴레에 얽힌 안타까운 사연들도 책으로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벽초(碧初) 홍명희(洪命熹, 1888.5.23~1968.3.5)




소설가. 일제하 민족운동의 지도자격인 인물이었으며 《조선일보》에 10여 년에 걸쳐 연재된 당대 최대의 장편 역사소설인 《임꺽정》으로 작가로서의 지위를 확보했다. 8.15광복 후에는 조선문학가동맹 중앙집행위원장을 역임하다 월북했다.




필명 가인(假人·可人)·백옥석(白玉石)·벽초(碧初). 1888년 충청북도 괴산(槐山)에서 출생하였다. 일본의 다이세이[大成]중학에서 수학했으며, 귀국 후 휘문고보 교사, 오산고보 교장, 연희전문 교수를 역임했다. 《시대일보(時代日報)》 사장으로 있다가 1927년 신간회가 결성되면서 부회장으로 참여했으며, 1930년 신간회 주최 제1차 민중대회사건으로 일본경찰에 검거되기도 했다.



일제하 민족운동의 지도자적 인물이던 그는 단 1편의 소설 《
임꺽정(林巨正)》(1928∼1939)으로 작가로서의 지위를 확보했는데, 이 작품은 《조선일보》에 10여 년에 걸쳐 연재된 당대 최대의 장편 역사소설이었다. 조선 명종(明宗) 때의 도적 임꺽정의 이야기를 소설화한 이 소설은, 천민계층의 반봉건적인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들의 생활양식을 다룬 데 그 특징이 있다.

또한 봉건 귀족을 우월성의 존재로 파악하지 않고 오히려 천민계층을 이상화함으로써 계급의식집단의식을 현저하게 드러냈다. 그는 역사소설을 통해 계급의 관점에서 식민지적 모순보다는 자본주의적 모순을 겨냥하는 특수한 역사의식의 시야를 노출시켰다. 8.15광복 후에는 조선문학가동맹 중앙집행위원장을 역임하다 월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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