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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7-03 06:49:39548 
성공한 대통령 김대중(시사인)
운영자



대선을 앞두고 ‘정치의 계절’이 시작됐다. 그런데 한국에 성공한 대통령이 있었나?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나거나, 감옥에 가거나, 세간의 지탄을 받으며 은둔하지 않았던가? 5년마다 돌아오는 실망은 익숙해서, 별달리 기대할 힘도 없게 만든다.

한국에도 성공한 대통령이 있다고 주장하는 책이 나왔다. ‘아시아의 만델라’로 불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책 〈성공한 대통령 김대중과 현대사〉를 쓴 장신기씨(47·사회학 박사)는 2005년부터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에서 일하며 ‘김대중 사료’를 발굴하고 정리해왔다. 김대중이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라는 말을 언제 어디서 처음 했는지, 김대중의 경제이론이나 통일관은 어떠했는지 바로바로 답할 수 있는 ‘김대중 덕후’이자 ‘김대중 연구자’다.

김대중 후보가 당선하기 직전의 1997년 외환위기가 남긴 상처를 아직 기억하는 이들도 많다. 김대중이 재임하던 시절과 지금은 대통령의 권력이나 집권 여당이 가진 재량, 사회경제적 갈등 전선이 무척 달라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은 게 있다면, 우리 시대가 여전히 좋은 정치와 정치인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이 기사는 정치인 김대중에 대한 하나의 해석이다. 김대중이라는 인물을 장악한 한 사람이 해상도 높은 항공사진을 펼쳐 보여준다. 그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이 시기를 들여다보는 건 정치, 즉 ‘자원을 동원하고 배분하는 일’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장신기씨를 만나 김대중의 정치는 무엇이 달랐는지 물었다.

김대중을 ‘성공한 대통령’으로 규정했다. 한국에 성공한 대통령이 있다는 주장이 낯설다.

‘실패한 대통령’이라는 통념이 한국 정치 담론에 뿌리박혀 있다. 지나치게 자학적인 역사관이다. 역대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한국 현대사에 대한 평가로도 이어진다. 대통령이 모든 걸 했다는 뜻은 아니지만, 대통령으로 상징되는 정부의 리더십이 해당 국가의 궤적을 보여준다. 한국이 이만큼 발전해왔는데 지난 시기의 모든 대통령이 죄다 실패한 대통령이라는 건 일종의 정치 혐오다. 그럼 반증할 수 있는 근거가 있느냐. 나는 김대중 정부라고 본다. 김대중은 성공한 대통령이라고 규정해도 차고 넘칠 정도의 업적을 내놓았다.

복지만 해도 그렇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만들고 4대 보험을 보편적으로 적용해 한국을 복지국가 반열에 오르게 했다. 야당 때부터 가족법 개정으로 여성 인권신장을 이끌었고, 재임 시기 남녀평등을 국가적 과제로 제시한 최초의 대통령이다. IMF 외환위기를 빠른 시일에 성공적으로 극복해 세계 언론의 극찬을 받았다. 분단체제하에서 북한과 최초로 양국 정상회담을 열었다. 지식정보화를 선도적으로 추진했고, 한류 발전의 토대를 만들었다. 해석은 다를 수 있지만 이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은 아무도 부정하지 않는다. 이게 작은 성과라고 누가 얘기할 수 있겠나? 그런데도 실패한 대통령이라고만 본다. 우선 김대중 자체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있다. 특정 대통령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건 소위 ‘빠’가 하는 일일 뿐 보편적이거나 객관적이지 않다는 인식도 있다. 각 분야에서는 김대중의 업적을 인정하지만, 그 업적을 종합해서 성공했다고 규정한 경우는 없다. 나는 내가 유일하게 이야기했다고 생각한다.

왜 지금 김대중 재평가가 필요한가?

현실 정치에 귀감이 될 수 있다. 한국 현대사에 가장 큰 영향을 준 3대 인물은 이승만, 박정희, 김대중이다. 물론 박정희 시대에 많은 발전과 성과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 박정희 리더십으로 뭘 어떻게 할 수 있나? 독재로 반대파를 다 깔아뭉개지 않았나. 이승만은 말할 것도 없고. 김대중은 어디까지나 민주주의 정치 리더십으로 어려운 여건에 대처했다. 예를 들면 1998년에 기업 대부분이 문 닫고 구조조정하는 상황에서 최루탄을 안 썼다. 당시 숫자를 보면 시위 발생 건수와 참여자 수는 급증하는데 시위대가 쓴 화염병 개수는 떨어진다. 민주적 리더십을 통해서도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김대중이란 인물은 현실 정치인의 측면과 역사 속 인물의 측면을 모두 갖고 있다. 민주당의 뿌리에서부터 정치를 시작했기에 현재의 민주당에 주는 함의가 클 수밖에 없다. 지금 민주당이 여러 가지로 어려움에 처해 있지 않나. 내년 대선을 앞두고 ‘더 나은 정치’의 모델케이스로서 김대중 정치를 볼 필요가 있다.

김대중은 어떤 정치인이었나?

포퓰리즘과의 동행과 긴장에 능한 정치인이었다. 1970~1980년대 독재정권 때 김대중은 굉장한 ‘선동가’였다. 자료를 보니까 4시간 동안 쉬지 않고 연설한 적이 있더라. 개요만 작성하고 현장에서 이야기했는데, 풀어놓은 걸 보면 사전에 작성한 논술처럼 완벽하다. 김대중은 이런 연설 능력으로 지지와 에너지를 끌어들였지만, 대중의 정서를 그대로 반영하는 수동적 태도를 취하지는 않았다. 본인의 철학과 소신을 설득하면서 대중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갔다.

일본과의 관계가 대표적이다. 심지어 1960년대 중반에 박정희 정권이 추진한 한·일 국교 정상화에도 김대중은 원칙적으로 동의했다. 다만 방식과 내용이 잘못되었다고 비판했다. 반공주의뿐 아니라 반일주의도 이용하지 않은 유일한 정치인이 바로 김대중이다. 집권 뒤 단행한 일본 대중문화 개방도 마찬가지다. 흔히 햇볕정책이 대북정책이라고만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북한에 평화적으로 관여해 동아시아의 안정과 번영을 구축하겠다는 목적이기 때문에, 북한만이 아니라 일본에도 햇볕정책을 썼다. 김대중은 ‘천황’ 호칭을 써서 일본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덕담 한마디로 상대방의 지지를 얻어 정책을 실현시킬 수 있다면 그게 더 도움이 된다고 보았다. 집권 후반기에는 고이즈미를 끌어들여 부시를 설득하려 했다. 이런 게 외교 아닌가? 목숨 걸고 싸우는 것도 용기지만, 포퓰리즘과의 긴장을 마다하지 않는 것도 큰 용기다.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의 조화’다.

김대중은 ‘정치적’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한국 사회에서 이런 평가는 부정적이다.

‘정치인은 오직 자리를 차지하려 술수를 부리는 존재’라는 인식이 뿌리 깊다. 군사독재 정권은 기본적으로 반정치적이었다. 정당정치가 비효율적이고 무책임하다고 깎아내렸다. 여기에 대항했던 사회운동 진영 역시 도덕주의적 정치관을 갖고 있었다. 정치란 순수함과는 거리가 멀며, 권력에 거리를 두고 할 말을 하는 것이 지사적인 삶이라 여겼다. 김대중은 정치를 ‘흙탕물 속에서 피는 연꽃’에 비유했다. 민주화투쟁 시기부터 양쪽의 정치 혐오와 싸운 ‘의회주의자’였다. 이미 1960년대부터, 국회도서관을 활성화하고 정당 보조금과 지방자치제를 제대로 운영해야 야당이 의정활동을 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정권을 전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선거를 통해 경쟁하자고 주장했다.

김대중의 이런 태도는 한국의 민주화 이행에 결정적이었다. 5·18민주화운동의 충격으로 1980년대 한국에는 극단주의 노선이 발호했다. 김대중은 내란음모 조작 사건으로 사형선고까지 받은 5·18민주화운동의 당사자다. 이 문제에 강경하게 대응했다면 호남의 피해자들에게 오히려 더 호소력을 발휘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대중은 전면적 타도나 처벌 노선을 택하지 않았다. 민주화 세력이 색깔론의 공격을 받는 상황에서 극단주의 노선으로 가면 중산층과 미국의 지지를 얻기 힘들다고 봤다. 이 경우 민주화 세력이 ‘좌경·용공 세력’으로 고립됨은 물론 김대중 자신의 목숨도 부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김대중이 ‘단절 청산’ 대신 ‘화해 통합’ 노선을 택함으로써 1987년 (재야 사회운동 진영과 야당이) ‘총연합전선’을 만들어 6·29 선언을 끌어낼 수 있었다. 민주화 이행이라는 ‘결과’를 중시했기에 가능한 판단이었다. 김대중은 정치란 결과를 내는 일이라고 믿었다. 집권 뒤 이헌재나 임동원처럼 보수 진영에 속해 있던 주류 엘리트에게 중요한 자리를 맡긴 것도 그래서다. 정치인은 마음에 안 드는 사람도 만나고, 때로는 하고 싶은 이야기도 참아야 한다. 결과를 내는 게 중요하니까.

재임 중 복지와 문화 예산을 전년 대비 30~40%씩 늘렸다. 김대중은 관료의 반대를 어떻게 뚫었나?

관료를 압도할 수 있는 지식이 있었던 것 같다. 관료는 대통령과 상하관계에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 분야 전문가다. 자신만의 노하우로 정부 정책에 반박할 수도 있는 존재다. 김대중은 관료의 능력을 효과적으로 끌어내면서도 관료에게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페이스로 끌고 갔다. 본인의 철학과 의지, 정책에 대한 이해가 확고했고 워낙 똑똑했다. 정책이란 결국 말로 하는 거다. 독재정권도 아닌데 ‘조인트’를 깔 수는 없으니까. 대통령이 관료의 반대를 논파하고, 치밀하면서도 성실하게 관여하면 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도 정부 내 반대가 그렇게 심했다는 것 아닌가(당시 보건복지부 담당자는 “이 법이 만들어지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전자정부도, 김대중이 귀가 따갑도록 계속 보고받고 지시해서 가능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거 어떻게 되었냐고.

김대중에 대해 보수는 북한에 퍼주었다고, 진보는 신자유주의를 들여왔다고 비판한다.

햇볕정책을 단순한 유화정책으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 북한을 그냥 믿는 게 아니라 일정한 전제가 깨지면 제재하게 되어 있다. 북한이 본인 대선에도 개입했는데 왜 믿겠나. 김대중은 철저하게 현실주의 관점에서 북한 체제를 보고 능동적으로 문제를 풀려고 했다. 북한에 평화적으로 관여하지 않고 어떻게 해결이 가능하겠나? 김대중은 미·중 관계가 복잡해지기 전에 북한을 세계 질서에 편입시켜야 한다고 1990년대 중반부터 강조했다. 미국에 가서도 중국을 내세워 북한 문제를 이야기했다. 미국의 관심사를 잘 알기 때문이었다. 당시는 중국의 위상이 지금 같지 않았다. 국제문제를 바라보는 혜안이 놀랍다.

신자유주의는 취사선택했다. 일부 수용했지만, 반대되는 행보도 많이 했다. 단적인 예로 스크린쿼터를 사수한 게 김대중이다. 의료보험 통합이나 국민연금 일원화도 신자유주의 흐름에는 배치되는 일이었다(의료보험이 지금의 단일한 국민건강보험으로 통합된 것도, 국민연금이 도시 영세 자영업자를 포함한 모든 시민에게 확대된 것도 김대중 정부 때다). 어떤 요소 하나를 추출해서 ‘이건 나쁜 거야’라고 규정하는 것은 선악의 세계관이다.




김대중은 자신만의 경제 이론과 외교안보 이론이 있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인에게 비전과 전략이 있다는 게 왜 중요한가?

김대중은 집권능력과 통치능력 모두를 결과로 보여줬다. 국정운영 방향에 대한 비전과 전략이 준비되어 있었기에 가능했다. 김대중은 정치의 본령이 국민 삶을 증진시키는 데 있다고 보았다. 흔히 민생이라고 표현하지만 핵심은 경제다. 김대중이 사형선고를 받고 쓴 일기에 보면 경제 얘기가 나온다. 가족 얘기, 자기 인생 얘기를 써도 모자랄 판에 이건 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미국 하버드 대학에 유학 가서 쓴 논문 주제도 ‘대중 참여 경제’다. 김대중은 경제정책을 항상 우선순위에 두었다. 이를 통해 지지세를 공고히 한 다음에 본인이 추진하고 싶어 했던 이념적 이슈를 실현시켜갔다. 1999년 단행한 양심수 석방이 대표적이다(사상전향제를 폐지하는 대신 준법서약서를 도입하는 문제로 양심수 문제 해결이 늦어졌다. 보수층의 반발을 고려한 조치였다). 이념적 이슈는 지지층이 제한적이고, 상대방의 공격을 받기 쉽다. 전면화시킬 경우 성공하기도, 지속 가능하기도 어렵다. 이걸 알았기 때문에 김대중은 혁명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단계적으로 접근했다. 남북관계도 처음부터 막 치고 나가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국정운영에서 검찰개혁에 우선순위를 뒀다. 김대중이라면 어땠을까?

내가 김대중이 아니기에 단언할 수는 없지만, 이렇게까지 끌고 오진 않았을 것 같다. 어떤 식으로든 적정한 수준에서 정리했을 것이다. 일부 강경파는 이 문제를 근본주의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게 되어야 모든 게 다 된다’는 식으로. 물론 검찰을 개혁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장기적으로 끌고 갈 만한 국가적 의제는 아니었다고 본다. 지금 검찰개혁이 제일 중요한 이슈처럼 되어 있잖나. 정권은 5년인데.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 이념적 이슈는 허약해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맞는 얘기라도 설득이 안 된다. 문재인 정부는 보수가 궤멸적 타격을 입은, 굉장히 유리한 조건에서 촛불연합 정부로 출발했다. 안타깝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김대중 정치가 줄 수 있는 통찰이 있다면?

다원주의 사회에서 열성 지지층의 정서에 충실해지면 전체를 포괄할 수 없다. 김대중을 보라. 한 번도 배제의 정치를 한 적이 없다. 기록을 보면 이분은 어두운 얘기를 하는 법이 없다. 한국전쟁 이후 최대 비극인 5·18민주화운동을 갈등 요소로 활용하지 않았다. 자신의 사형선고를 두고도 ‘정치보복 하지 마라, 민주화는 반드시 온다’고 했다. 1970~1980년대의 엄혹한 시기에도 ‘우린 해나갈 수 있다’고 미래지향적이고 생산적인 의제를 설정했다. 독재정권에 의해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야당을 이끌던 시절에도, 대통령이 되어서도 피해의식적인 발언을 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정권 일부이든 지지층에서든 ‘토착왜구’ 담론이 나온 건 뼈아프다. 혐오의 정치를 답습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젠더나 세대 등 적대의 요소가 더 세분화되는 지금, 좌든 우든 ‘누군가를 배제하거나 타자화하지 않고 민주주의 정치가 무엇인지 보여준’ 김대중 정치를 다시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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