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랑군 수성현의 위치 - 이덕일 칼럼을 읽고 史랑방

2009/10/28 23:11

http://blog.naver.com/krighty21/50074729248

한겨레신문을 보다가 우연히 이덕일 씨의 칼럼을 보았습니다.

칼럼 링크 =">" ‘낙랑 한반도에 있었다’ 쓴 중국사서 하나도 없어 (기사등록일 2009-5-27)

‘이덕일, 주류역사학계를 쏘다’는 기획연재물 중의 하나인데 이 시리즈 전체에 좀 황당한 내용이 많네요. 제가 책을 잘 안 읽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한때 이덕일씨 책은 거의 다 사서 읽던 애독자였는데, 근래에 고대사를 본격적으로 다루면서 너무 이상한 얘기를 많이 하시는 거 같습니다. 물론 주어진 자료를 각자 다르게 해석할 수는 있지만 그런 범주를 넘어서는 기초오류가 많습니다.

또 무엇보다 학설비판에 그치지 않고 한국의 역사학자들을 ‘식민사학자 떨거지’라는 식으로 싸잡아 매도하거나 뜬금없이 ‘노론사관’ 어쩌고 하는 건 참 보기에 안 좋네요.

이 칼럼의 경우는 이병도 박사의 낙랑군고를 비평하고 있으나 그 설의 논리가 뭔지 정확히 이해를 못한 상태에서 동문서답 격의 엉뚱한 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류의 포스팅은 되도록 자제하는 편이지만 이 사안은 기본자료로서 약간의 의미가 있는 듯해서 몇자 적어보겠습니다.

이병도의 낙랑군고 해당 대목입니다. 칼럼에서 재인용합니다.

“수성현(遂城縣)…자세하지 아니하나, 지금 황해도 북단에 있는 수안(遂安)에 비정하고 싶다. 수안에는 승람 산천조에 요동산(遼東山)이란 산명이 보이고 관방조(關防條)에 후대 소축(所築)의 성이지만 방원진(防垣鎭)의 동서행성의 석성(石城)이 있고, 또 진지(晋志)의 이 수성현조에는 -맹랑한 설이지만- ‘진대장성지소기(秦代長城之所起)’라는 기재도 있다. 이 진장성설은 터무니 없는 말이지만 아마 당시에도 요동산이란 명칭과 어떠한 장성지(長城址)가 있어서 그러한 부회가 생긴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릇된 기사에도 어떠한 꼬투리가 있는 까닭이다. (이병도, ‘낙랑군고’, <한국고대사연구>)”

이 사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제가 되는 사료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① 사기 권110 흉노열전 燕亦築長城，自造陽至襄平. (중략) 因邊山險壍谿谷可繕者治之，起臨洮至遼東萬餘里. (권88 몽념열전 등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반복됨)

② 태강지리지 (당나라 때 지어진 사기주석서인 사기색은에 인용되어 있음) 太康地理志云「樂浪 遂城縣有碣石山, 長城所起.」

③ 진서 권14 지리지 上 遂城 秦築長城之所起.

④ 신증동국여지승람 제42권 황해도 수안군 조

“【산천】 요동산(遼東山). 고을 동북쪽 4리에 있는 진산(鎭山)이다. (중략) 【관방】 방원진(防垣鎭) 고을 북쪽 24리에 있는데 본군 및 우봉(牛峯)ㆍ신계ㆍ서흥 네 고을 군졸이 번갈아 방어한다. 진 동서쪽에 행성(行城)이 있는데 돌로 쌓았으며 주위가 6백 20척, 높이가 8척이다.”

①에서는 전국시대 연나라가 쌓은 장성은 조양(造陽) ~ 양평(襄平) ; 진(秦)나라 때의 장성은 임조(臨洮) ~ 요동(遼東) 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양평은 요동군의 치소로서 지금의 요령성 요양으로 비정하는게 통설입니다. 즉, 연나라 때 쌓은 장성이나 대체로 이를 물려받아 연결한 진나라 때의 만리장성은 대략 지금의 요령성 요하 유역이나 그로부터 멀지않은 곳까지 이어졌다는 뜻이 됩니다.

그런데 ②에 와서 좀 이상한 얘기가 나오는데 “낙랑군 수성현에는 갈석산이 있고 그곳이 장성이 일어나는(시작되는) 곳이다.” 즉, ‘만리장성의 동단="갈석산=낙랑군" 수성현’이라 한 것입니다. 태강지리지는 서지사항을 잘 모르겠으나 책이름 그대로 보면 사마씨의 진(晉)나라 태강연간(서기 280-289년)에 지어진 책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진서는 당나라 때 지어진 책인데 아마 ②를 참고해서 그대로 반영한 듯 하구요. 앞서 말한 사기색은도 그렇고 두우의 통전에서도 이 태강지리지 기사가 인용되는 걸 볼 때, 당나라 초에 지리관련 기사를 쓸 때에 이 태강지리지가 주요한 참고자료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④는 편의상 원문은 생략하고 한국고전번역원의 국역문으로 대신했습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제42권

그럼 이병도 설의 뜻은 뭐냐?

“③(="②)은" 허무맹랑하고 터무니없는 말이지만 견강부회도 어떤 꼬투리가 있어서 생기기 마련이다. 어쩌면 황해도 수안군의 행성(行城) 등 어떤 유지나 요동산 따위의 지명으로 인해 당시 사람들이 이를 진나라가 쌓은 만리장성의 흔적으로 오인해서 ③ 같은 엉터리기사가 나오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바로 황해도 수안이 예전의 낙랑군 수성현일 것이다.”…이런 뜻입니다.

낙랑군 수성현이 만리장성 동단이라는 기사(②와 ③) 내용은 엉터리지만 그 엉터리 기사를 통해 ‘당시의 낙랑군 수성현이 지금의 황해도 수안에 있었음’은 짐작해 볼 수 있다는 거죠. 황해도 수안을 설명하다가 진지(="위의" ③)를 거론한건 바로 이렇게 추론의 고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느닷없’는게 아니라요.

참고로 황해도 수안은 평양보다도 더 남쪽(정확히는 동남쪽)입니다. 그러니 ②기사를 인정한다면 평양보다 남쪽에 있는 황해도 수안으로 비정할 리가 없습니다. 그리되면 결국 고조선 수도가 만리장성보다 더 북쪽에 있었다는 황당한 말이 되어버리니까요. 그러니 애초에 그런 뜻일 리가 없고, 당연히 ②를 부정하니까 ‘낙랑군 수성현="황해도" 수안’이라는 주장이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고조선의 왕검성을 현재의 북한 평양으로 보는 통설의 입장에서는, 만약 ②를 긍정한다면 낙랑군 수성현은 적어도 평양보다는 북쪽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맹랑하고 터무니없다’는 식의 사료비판이나 선행판단이 나온 거죠, ‘비학문적인 수사’가 아니라요.

어쨌든 이병도 설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 만리장성의 동단은 낙랑군 수성현이 아니다. 그건 오인에서 비롯된 거다.

- 하지만 그 오인하는 과정으로써 추론해 볼 때 낙랑군 수성현은 현재의 황해도 수안인 듯 하다.

#2

이후의 자료발견이나 연구성과에 어떤 진척이 있는지, 과연 이 설이 현재에도 그대로 계승되고 있는지는 제가 공부가 부족해서 아는 바 없습니다만, 사족으로 제 의견을 추가해보자면 결국은 ②의 태강지리지-및 이를 답습한 후대의 기사들-을 어떻게 보느냐가 관건인 듯 합니다.

①과 ②가 서로 배치되는 기술이며 이병도 설처럼 ②를 오기로 볼 수도 있으나, 진나라 때에 고조선의 서쪽 땅을 빼앗아 최대한 척경했을 때(염철론. 뒤에 다시 고조선이 이 땅을 수복하고 한나라는 요동의 옛 요새라인과 패수 선으로 후퇴함)에 쌓은 上下鄣 등을 다 포함시켜 최대한 늘려 서술한 것으로 볼 수 있겠죠. 꼭 오기로 볼만한 특별한 근거는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위만이 건넜던 패수(사기 및 한서 조선전의 浿水="염철론과" 한서 지리지의 沛水)를 서영수 교수의 설에 따라 혼하의 하류이거나 또는 압록강 쯤으로 추정합니다. 그렇다면 ‘秦故空地’로서 장새 바깥의 군사시설이 있을 만한, 그래서 ‘遂城 秦築長城之所起’라는 기술이 나왔을 만한 곳은 중국 요령성의 혼하 – 평양 사이의 어느 곳이 되는데, 평양과의 거리를 생각하면 청천강 북쪽 쯤이 가장 유력하겠죠. (단, 서영수 교수는 秦故空地를 압록강 이북으로 봄)

참고로, 중국학자인 담기양의 역사지도집을 보니 수성현을 평양 바로 서쪽인 지금의 평안남도 강서 쯤에다 박아놨는데(아래 그림 참조), 그때 정황상 소위 만리장성 동단이라는 낙랑군 수성현이 평양(왕검성)과 이렇게 가까울 수는 없으니 이건 잘못된 비정입니다.

어떤 근거로 이렇게 해놓은지는 모르겠으나 제 짐작으로는 한서지리지의 浿水를 청천강으로 보고 沛水를 박천강으로 보는 설에 따라 요동군 번한현을 평안북도 박천 쪽에 박으면서 낙랑군은 그 아래로 줄줄이 다 밀려난 듯 합니다. 그러나 위략에 나오는 ‘만번한’이란 합칭에서 보듯 요동군 문현과 번한현은 서로 가까운 곳으로 둘다 요령성 쪽(그림에서 文縣 부근)으로 보는 게 맞죠.

역사지도집을 보면 특히 낙랑군의 경우는 우리 정설과도 다른 부분이 종종 보이고 학설을 취사선택하는데 있어 동북공정적인 마인드가 많이 들어있는 거 같습니다.

어쨌든 지명을 보기에 편하므로 중국역사지도집 서한(="전한)" 유주 편의 해당부분을 참고용으로 올립니다.

검은색은 당시 지명, 갈색은 현재 지명이며, 이 글과 관련되는 곳에는 제가 빨간색 원을 그려넣았습니다.

[출처] 낙랑군 수성현의 위치 - 이덕일 칼럼을 읽고- 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