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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3-09 19:24:493523 
고구려의 후계국가- 이정기의 치청제국
운영자

당나라 때 산둥반도 일대 15개 주를 다스린 고구려 유민 출신의 장군. 중국 사서에는 사료가 많이 남아 있지만, 국내에는《환단고기》에 산둥반도 일대 15개 주를 중심으로 제(濟)를 세웠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뿐이다.







본명은 이회옥(李懷玉)이다. 고구려 유민의 후예로, 732년에 지금의 랴오닝성[遼寧省] 차오양[朝陽]에서 태어났다. 26세 때 평로절도사(平盧節度使) 왕현지(王玄志)가 죽자, 그의 아들을 죽이고 고종사촌인 후희일(侯希逸)을 절도사로 내세웠다.




762년 당(唐) 숙종(肅宗)이 후희일을 평로절도사로 임명한 뒤에는 성덕(成德)절도사 이보신(李寶臣)과 연합세력을 구축해 청주(靑州:지금의 益都)에서 사조의(史朝義)의 난을 진압하였다. 이 때부터 후희일과 함께 평로·치청(淄靑)·기주(沂州)·제주(薺州)·해주(海州)·밀주(密州) 일대를 관할하였다.




765년에는 후희일을 몰아내고, 평로치청절도사, 해운압신라발해양번등사(海運押新羅渤海兩蕃等使), 검교공부상서 겸 어사대부(檢校工部尙書兼御史大夫), 청주자사(靑州刺史)가 되었다. 이후 신라·발해·왜(倭)를 오가는 해상·육상 무역을 관장하는 한편, 산둥[山東]에서 염전을 운영해 막대한 부를 축적하였다.




775년 이보신과 함께 위박(魏博)절도사 전승사(田承嗣)의 군대를 물리치고 덕주(德州)를 손에 넣은 뒤, 이듬해에는 전승사를 사로잡으면서 2개의 주를 다시 손에 넣었다. 전승사를 사로잡은 공으로 이정기는 검교상서우복야(檢校尙書右僕射)를 거쳐 요양군왕(饒陽郡王)에 봉해진 뒤, 다시 검교사공(檢校司空)과 동중서문하평장사(同中書門下平章事)에 올랐다.




781년 이보신이 숨을 거둔 뒤에는, 덕종(德宗)이 이보신의 아들 이유악(李惟岳)에게 절도사 자리를 세습하지 않자, 이유악·양숭의(梁崇義)·전열(田悅) 등과 함께 산둥지역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이정기는 자신이 관할하던 15개 주에서 얻은 막대한 부와 10만 명에 달하는 병력을 바탕으로 당군과 맞서, 강회(江淮)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같은 해 종양으로 숨을 거두는 바람에 낙양(洛陽)을 함락시키지는 못하였다.




이정기가 죽은 뒤에도 그의 아들 이납(李納)이 평로치청절도사를 세습하면서 819년까지 산둥반도 일대를 다스렸다. 《구당서(舊唐書)》 《신당서(新唐書)》 등 중국 사서에는 이정기에 관한 사료가 많이 남아 있지만, 국내에는 거의 없다. 다만 《환단고기(桓檀古記)》에 산둥반도 일대 15개 주를 중심으로 제(濟)나라를 세웠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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