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연의

 

   
 
한국사
1. 선사
2. 고조선
3. 삼국
4. 남북국
5. 고려
6. 조선전기
7. 조선후기
8. 일제
9. 공화국
10. 통사
· 오늘 :  1,506 
· 어제 :  3,680 
· 최대 :  6,990 
· 전체 :  1,978,173 
  2018-10-20 01:50:14777 
이덕일의 해역 "리지린의 고조선연구"
운영자
일반



[이덕일의 ‘역사의 창’] 남한의 역사학, 북한의 역사학

조선총독부에서 만든 식민사관의 핵심은 한국사의 시간과 공간을 축소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국조 단군을 부인하고,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가짜라고 주장해 반만년 한국사를 1500년 역사로 축소시켰다. 대륙성과 해양성의 역사에서 대륙과 해양을 잘라내 반도사의 틀에 가두었다. 그나마 반도의 북쪽은 ‘한사군’이란 중국의 식민지, 남쪽은 ‘임나일본부’란 일본의 식민지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일제의 식민지가 된 것은 한국사의 필연이란 논리였다.
그렇게 한사군을 한반도 북부에 설치하고 그 핵심인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는 ‘낙랑군=평양설’을 유포시켰다. 그러나 중국의 모든 고대 사료는 낙랑군이 지금의 평양이 아니라 고대 요동에 있었다는 ‘낙랑군=요동설’을 말하고 있다. 남한 강단사학계는 광복 후 이 문제에 대해서 단 한 차례의 학술토론회도 없이 ‘낙랑=평양설’이 하나뿐인 ‘정설’이라면서 학생들에게 외우라고 강요했다. ‘낙랑군=평양설’이 일체의 사료적 근거가 없는 조선총독부의 정치 선전이라는 비판이 거세지자 21세기 남한 강단사학계는 반성 대신 역습을 택했다.
2017년 한때 진보를 표방했던 ‘역사비평’은 이른바 ‘나이는’ 젊은 역사학자들을 대거 동원해 ‘낙랑=평양설’을 주창했고, 조선일보는 ‘무서운 아이들’이라고 칭찬해 주었다. 한겨레·경향신문 등이 이에 가세했고, 한국일보는 “낙랑군이 평양에 있다는 건 우리(무서운 아이들)뿐 아니라 제대로 된 학자는 모두 동의한다. 100년 전에 이미 논증이 다 끝났다. 바뀔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2017년 6월 5일)고 힘을 실어 주었다.
북한학계는 이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무서운 아이들’ 중 한 명인 안정준은 “해방 이후 북한에서 발굴한 낙랑고분의 수는 1900년대 중반까지 무려 3000기에 달한다. 현재 우리가 아는 낙랑군 관련 유적의 대다수는 일제 시기가 아닌 해방 이후에 발굴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한국고대사와 사이비역사학, 역사비평사, 2017)라고 단언했다. 북한도 ‘낙랑군=평양설’이라는 것이다.
‘한겨레 21’의 전 편집장 길윤형은 ‘국뽕 3각연대’라는 칼럼에서 “지금까지 북한 지역에서 진행된 고고학 발굴 결과 평안도와 황해도 일대에 2600여 기의 낙랑 고분이 확인됩니다. 옛 사서의 기록과 이 성과를 근거로 한국의 고대 사학자들은 대부분 낙랑군의 위치를 평양 인근으로 비정합니다”라고 가세했다. 북한학계도 ‘낙랑군=평양설’이라는 것이다.
물론 ‘새빨간 거짓말’이다. 북한 학자 리순진은 거꾸로 “지난 시기 일제 어용사가들과 봉건 사대주의 사가들의 력사 위조 행위로 만들어진 것이 ‘한나라 락랑군 재평양설’이다”라고 비판했다. 리진순은 해방 후 약 3000기의 무덤을 발굴한 결과 한나라 무덤은 단 하나도 찾지 못했다고 말했는데, 남한의 강단사학자와 언론들은 북한학계도 ‘낙랑군=평양설’을 주장하는 것처럼 속인 것이다.
북한학계는 광복 직후부터 이 문제를 두고 치열한 토론을 전개했다. 문헌 사학자들은 주로 ‘낙랑군=요동설’을 지지했고 고고학자 일부는 ‘낙랑군=평양설’을 지지했다. 열띤 토론회 도중인 1958년 경 북한 학자 리지린은 북경대 대학원으로 유학을 가서 고조선사를 연구했고, 1961년 9월 경 북한에서 그간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인 ‘고조선연구’(1962년)가 출간되면서 북한은 ‘낙랑군=요동설’로 정리되었다. 문헌 사료는 물론 만주의 여러 유적·유물도 ‘낙랑군=요동설’을 말하는 판국에 ‘낙랑군=평양설’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었다.
그러나 남한 강단사학계와 일부 언론은 21세기 백주 대낮에 북한학계도 ‘낙랑군=평양설’로 정리되었다고 거짓말까지 하면서 ‘낙랑군=요동설’을 주장하는 남한 학자들을 ‘유사·사이비 역사학자’라고 매도하는 매카시 사냥을 일삼았다. 여기에 보수 언론뿐만 아니라 이른바 진보 언론까지 가세해 남한 식민사학의 막강한 카르텔을 입증했다. 북한의 역사학도 물론 문제는 있다. 그러나 북한 바로 알기는 북한의 역사학 바로 알기부터 시작해야 하는 이유를 남한 강단사학이 잘 말해 주고 있다


************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는 ‘인생의 책’으로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기원전 70년~기원전 19년)가 쓴 서사시 <아이네이스>를 꼽은 적이 있다. 멸망한 트로이의 영웅 아이네아스가 생존한 일족과 함께 갖은 고초를 이겨내고 마침내 티베르 강 언저리에 새로운 문명을 건설한다는 얘기다. ‘아이네아스의 노래’라는 뜻의 이 말년 대작은 새로 지어낸 건국신화다. 베르길리우스는 위대한 제국 로마가 로물루스라는 ‘근본’ 불명의 목동이 아니라 고대 문명국가 트로이의 후예가 세운 ‘뼈대’ 있는 나라라고 주장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화려한 건국신화를 꿈꾸는 욕망은 고대 로마 시인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유라시아 호령한 고조선 기마군단…8000㎞ 초원길에 한민족 디엔에이(DNA)/세계 4대문명보다 1000년 앞선 고대 ‘훙산문화’ 존재”라는 한 신문의 칼럼 제목은 최근 역사학자인 듯 역사학자가 아닌 일부 인사들이 앞장서고 정부가 적극 후원하고 있는 ‘상고사 열풍’의 진면목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단군과 고조선의 재포장은, 저커버그처럼 영감의 원천으로 삼는 데 그치지 않고 신화를 사실로 확정하려 든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한국역사연구회 주최로 지난 19일 열린 심포지엄에서 ‘최근 한국상고사 논쟁의 본질과 그 대응’이라는 소논문을 발표한 송호정 한국교원대 교수는 고조선 강역, 낙랑군의 위치 등을 논쟁의 영역으로 집요하게 끌어들여 한국 고대사를 다시 쓰려고 하는 일부 인사들을 재야사학자와는 다른 ‘유사역사학자’로 규정하고 그들의 움직임과 인식, 의도를 찬찬히 분석·비판했다. 송 교수는 고조선 연구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고, <한국 고대사 속의 고조선사> <단군, 만들어진 신화> 등의 연구서를 낸 한국 고대사 분야의 중견 학자다.

송 교수에 따르면, 유사역사학자들은 고대사에 포괄돼야 할 고조선 시대를 굳이 상고사라고 따로 떼어 부른다. 배경에는 “단군조선 시기만을 부각시켜 우리 역사가 출발부터 만주지역을 지배한 웅대한 역사였음을 과시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 고조선의 강역과 낙랑군의 위치를 자꾸 들고나와 쟁점화하는 것도 그 연장선 위에 있다.

유사역사학자들은 고조선의 중심이 한반도가 아니라 중국 랴오닝(요령)성 일대에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 ‘고조선 중심지 재요령성설’은 조선 시대 이익·안정복에서 발원해 신채호를 거쳐 북한의 리지린이 종합 정리한 것이다. 리지린은 <고조선 연구>에서 <산해경>을 비롯한 중국 문헌들에 나오는 요수, 패수 등 강 이름을 언어학적으로 추적해 그런 결론을 냈다. “리지린의 주장은 남한 학계의 윤내현에 의해 그대로 확대 해석” 됐다. 윤내현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고조선이 조-중 국경인 허베이성 난하 이동 지역에서 한반도 서북에 걸쳐 있었으며, 이미 고대 제국의 단계까지 발전해 있었다고 주장했다. 윤내현의 계승자가 이덕일이다. 90년대에 윤내현, 2000년대 초반 최재인이 있었다면, 지금은 이덕일의 전성시대다. 그는 중국 문헌 <위략>에 나오는 ‘서방 2천리 상실’ 기사를 절대적 사실로 전제하고서 고조선의 강역을 요하 서쪽 일대라고 확언한다.

그러나 동호를 밀어내고 요동(요하 동쪽)까지 장성을 설치했다는 <사기> ‘흉노열전’의 기록을 보면 요서(요하 서쪽) 지역을 고조선의 중심으로 설정하긴 어렵다. ‘비파형동검문화’ 분포지역을 곧바로 고조선의 강역으로 보는 유사역사학자들의 주장도 이 문화의 객관적 분포 범위를 볼 때 고조선이라는 구체적인 국가나 주민 집단과 일치시키는 것은 무리다. 게다가 청동기 시대 이후 중국 문헌들엔 요서 지역이 동호·산적 등 융적의 거주지라는 기록도 나온다. 2000년대 들어 유사역사학자들이 부쩍 내세우고 있는 4천년전 신석기 시대 요하문명론, 즉 ‘훙산문화’는 고조선보다 2천년이나 앞선 신석기 문화로 아직 이를 뒷받침할 문헌 기록이 전무하다.

유사역사학자들은 낙랑군의 위치도 만주라고 한다.(‘낙랑군 재만주설’) 그들은 “낙랑군이 한반도 내에 있었다는 1차 사료가 단 한 건도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서> 지리지, <후한서> ‘최인열전’ 등을 보면 낙랑군은 중국 본토에서 가장 동쪽~한반도 서북지방에 설치돼 “요동군의 관할 범위”에 있었다. 더욱이 대동강 유역에 한사군의 하나인 낙랑군이 설치됐다는 것은 “논의가 필요 없는 역사적 사실”이며, 이는 각종 문헌 기록과 대동강 유역에서 출토되는 고고학 자료들이 뒷받침한다.

그럼에도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후 국정 역사 교과서 추진과 함께 이덕일 등이 역사 교과서에 상고사 부분을 대거 보완하겠다”고 나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한반도를 시원부터 ‘순결한 땅’으로 포장하려 드는 것일까. 송 교수는 “이민족 식민통치라는 부끄러운 역사를 한반도 밖으로 밀어내려는” 국수주의적 열등감, 일제 식민 경험에 따른 피해의식의 산물이라고 진단한다. 특히 이덕일 등은 자신들의 환상을 반박하고 한반도의 식민 경험을 인정하는 강단 역사학계를 “(친일사학자) 이병도와 신석호 제자들의 식민사학 카르텔, 사피아(사학 마피아)”라고 싸잡아 매도하고 있다. 그들의 주장은 “시대착오적 애국주의와 전체주의로 나아가는 현 정부의 논리와 연결되는 부분이 크다.”

송 교수는 유사역사학의 배후로 정부를 지목한다. 실제로 정부는 2013년 말 ‘식민사학 극복, 상고사 연구’를 위한 예산 수십억원을 편성하고, 교육부에 ‘역사교육지원팀’을 만드는가 하면 ‘한국사 연구 종합계획’을 수립하기도 했다. 국회도 ‘동북아역사왜곡대책 특별위원회’라는 특별 기구까지 만들어 유사역사학자들에게 활동 무대를 제공했다. 과장된 영토관과 중심지 논쟁은 국수주의의 온상이 되거나 이웃 나라들과 외교적 마찰 등 과도한 정치화의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송 교수는 “전문 역사학자들이 용감하게 이 문제에 대해 발언함으로써 유사역사학이 설 자리가 없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애초 베르길리우스는 죽기 전 완성하지 못한 <아이네이스>의 원고를 폐기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하지만 아우구스투스가 황제의 이름으로 이 작품을 발표하도록 ‘명령’한다. 위대한 건국신화와 현실 정치의 함수관계는 기원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강희철 기자 hckang@hani.co.kr

목록
2012
[일반] 이덕일의 해역 "리지린의 고조선연구"

[이덕일의 ‘역사의 창’] 남한의 역사학, 북한의 역사학 조선총독부에서 만든 식민사관의 핵심은 한국사의 시간과 공간을 축소하는 것이었다.
운영자 18-10-20
[일반]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 11. 조선의 북방강역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 이성계 때 고려 강역도 계승…‘철령~공험진’까지 엄연한 조선 땅 <11> 조선 북방강역조선왕조실록·
운영자 18-04-12
[일반]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 백두산정계비와 간도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 淸, 국경 획정에 조선 대표 배제해 역관이 참석… 백두산에 정계비 <12>백두산정계비와 간도300여년 전인 숙종
운영자 18-04-12
[일반]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 14.남북 역사학 체제 경쟁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 광복 후 유명 역사학자들 월북·납북… 남한은 식민사학자들 장악 <14>남북 역사학 체제 경쟁북한의 역
운영자 18-04-12
[일반]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 10. 철령위는 중국의 요녕성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 10. 철령위는 중국의 요녕성 사료 없는 역사학의 미래 역사는 사료로 말하는 학문이다. 그러나 상당수
운영자 18-04-11
[일반]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 <9>사료로 본 고려 북방 경계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 <9>사료로 본 고려 북방 경계 역사학은 사료로 말하는 학문이다. 검경의 수사나 법원의 재판이 증거
운영자 18-04-11
[일반]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 <8> 동북아역사지도 사업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 <8> 동북아역사지도 사업 ‘동북아역사지도’ 사업이란 것이 있었다. 동북아역사재단에서 2008~2015
운영자 18-04-11
[일반] 식민사관이란 무엇인가? -(1)

식민사관이란 무엇인가?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 한국은 아직도 정신적인 식민지식민사관을 연구하다 보면 ‘대한민국은 과연 독
운영자 18-03-29
[일반]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아사히신문의 오보와 인민일보의 논평

"일본군 위안부 문제 본질 직시하라"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아사히(朝日)신문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자는 취지로 5일
운영자 14-08-14
[일반] 일본군국주의 실체 ⑩한반도 분단의 단초가 된 관동군의 허망한 붕괴

그릇된 과거의 족쇄를 끊지 못한 사회는 미래로 갈 수 없게 된다. 현재 동아시아 평화를 위협하는 일본 극우세력들의 뿌리는 일제 말기 군국주의 세
운영자 13-03-05
[일반] 일본군국주의의 실체 ⑧ 대미 개전론 공방

일본군국주의의 실체 ⑧ 대미 개전론 공방 ‘군부 파시스트’ 도조 내각 개전 결정 … 日, 진주만 기습[이덕일의 事思史 근대를 말하다] 1941년
운영자 13-02-25
[일반] 일본군국주의의 실체 ⑦ 삼국동맹 체결

‘사이 좋은 삼국’이란 제목의 독일·이탈리아·일본의 방공협정 체결 홍보 엽서. 1938년 소학관(小学館)의 『소학3년생(小学三年生)』
운영자 13-02-17
[일반] 관동군이 소련군에게 참패한 노몬한전투 ( Battle of Khalkhingol River.)

38년 8월 두만강 하류 장고봉에서의 소련군과 일본군의 충돌은 일단 쌍방이 물러나는 것으로 타협했으나 한낱 미봉책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양측의
운영자 13-02-04
[일반] 일본군국주의의 실체⑤ 관동군, 몽골을 넘보다 벌어진 노몬한 전투로 소련에게 대패

1930년대 일본의 군부는 물론 정계에도 ‘짝퉁’ 이시하라 간지(石原莞爾)들이 득실거렸다. 이시하라가 상부의 명령 없이 만주사변을 도발한 것이 만
운영자 13-02-04
[일반] 일본군국주의의 실체 ④ 천인침과 남경학살

남경 점령 후 일본군을 시찰하는 마쓰이 이와누 상해파견군 사령관. 패전 후 전범재판에서 남경학살의 주범으로 인정돼 사형을 당했다. 전쟁은 정치의
운영자 13-01-31
1 [2][다음][맨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