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가로서 엄복을 유명하게 한 작품은 <천연론(天演論)>(토마스 학슬리의 작품으로 <원명은 진화와 윤리(Evolution and Ethics)을 번역 해설한 책)이었다. 청나라 말기 정치적 부패와 사회적 혼란 속에서 사람들은 새로운 국면이 펼쳐지기를 간절히 바랬다. 그래서 그들은 서구 각국의 신사조를 갈구하며 서양의 학술 문화에서 중국을 구제할 수 있는 길을 찾고자 했다. 이런 때 엄복이 번역한 <천연론>에서 재시한 생존경쟁, 자연도태 적자생존 등의 이론은 당시 민심을 사로잡고 중국인의 생각과 국가의 위기를 인식시키는 역할을 했다.

그의 본명은 송광(宋光)이고 자는 우릉(又陵)이었다가 후에 엄복으로 개명하고 자도 기도(幾道)로 바꾸었다. 복건 후관(侯官) 사람으로 청말 1853년에 태어나서 1921년에 죽었다. 14세 때 당시 복건 지역의 순무 심보정(沈<艸+保>楨)이 창설한 해군학교에 입학했고 졸업 후 군함에서 실습 생활을 했다. 1876년네는 24세의 청년 장교로 영국의 그리니치 해군대학에서 유학했다. 그때 동양에서 온 두 명의 생도가 성적이 가장 좋았는데 하나가 엄복이고 다른 하나가 나중에 일본 수상이 된 이토오히로부미 였다. 들운 동창생으로서 매우 친하게 지냈는데, 이토오히로부미는 학업이 엄복에 늘 뒤쳐짐을 한탄했다. 그러나 졸업 후 이토오히로부미는 일본으로 돌아가 크게 출세하여 위세 당당한 국제 정치가가 되었고, 엄복은 사회가 온통 부패로 찌든 조국에서 뜻을 펼치지 못하다가 번역 사업으로 울분을 달래야 했다. 이 두 동창의 인생 항로는 서세동점의 시기에 있었던 당시의 중국과 일본의 운명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엄복은 영국에서 공부할 때 해군 업무뿐 아니라 서양의 정치경제와 철학 사상에 대해서도 주의깊게 연구하였다. 당시 중국의 주영대사는 유명한 동성파 작가 곽숭도(郭嵩燾)였다. 곽숭도는 서구의 학술문화를 매우 중시했기에 평소 서양의 정치제와 학술을 열심히 연구하던 해군장교 엄복을 대단히 아끼며 늘 가까이 하여 시국에 대해 토론하곤 했다. 그는 이 젊고 유망한 인재가 서양의 문명을 더욱 많이 배우고 흡소하여 이미 늙고 위험에 처해 있는 만청 제국을 구제하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엄복이 귀국한 후 무능한 만주족의 청나라 정부는 그를 해군 선정학당(船政學堂)의 교원으로 임명했고 나중엔 기껏 천진(天津) 수사학당(水師學堂)의 총교습(總敎習)으로 승진시켰을 뿐이었다. 겨우 해군의 협도통(協道統)이란 직분으로 그가 영국에서 배워온 많은 지식을 발휘할 수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나름의 포부를 펴볼 수도 없었다. 곧 중일 양국 사이에 갑오전쟁이 발발하여 중국 해군은 겉으로는 위풍당당했지만 일본의 일격에 쓰러지고, 육군도 여지없이 패배했다. 엄복의 오랜 동창 이토는 그때는 이미 일본의 수상이 되어 중국의 강화대표 이홍장(李洪章)과 마관에서 조약을 맺고, 영토를 할양해 배상할 것을 중국에 요구했다. 엄복은 이런 국가의 위급과 자신의 신세에 비통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그는 크게 분개하여 많은 정치 논문을 써서 시대의 병폐를 지적하고 영국학자 헉슬리가 지은 천연론을 번역하면서, 이 책을 통해 쓰러진 국혼을 다시 일깨우고 온 국민이 떨쳐 일어나기를 회망했다. 열강들의 침략으로 도탄에 빠져 있던 국민들에게 천연론은 크게 부합되어 출판되자마자 즉시 전국적인 선풍을 일으켰다.

이후 엄복은 좌절에 빠진 중국인은 서양의 학술 문화를 흡수하여 떨쳐 일어나는 바탕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해, 계속적으로 비중있는 많은 학술 명저를 번역하였다. 그는 번역을 하면서 자신의 경험을 종합하여 번역의 3대 표준을 제했다. 곧 신(信), 달(達), 아(雅)였다. 신(信)은 번역이 원전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고, 달(達)은 번역문이 매끄러워야 한다는 것이며, 아(雅)는 번역한 문장이 간결하고 품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 표준은 별로 대단해 보이지는 않지만 이를 성실하게 이행하려면 매우 어렵다. 신(信)으로 원작이 품격을 전달하려면 아(雅)를 돌보기 어려워 문구의 수식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 그리고 달(達)과 아(雅) 사이에도 중종 모순이 발생하여 달(達)을 중시하려다 아(雅)를 지킬 수 없게 된다. 엄복 자신도 왕왕 문장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 달(達)과 신(信)을 희생하기도 했다. 어찌 되었던 이 세 가지의 원칙은 번역에 임하는 엄복의 엄숙한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엄복의 번역 사업은 근대 중국의 문화 혁신과 문학 개량에 상당한 공헌을 했지만, 만년의 잘못으로 그의 업적은 크게 손상되었다. 중화민국 초의 특수한 상황을 틈타 대통령 직에 오른 원세개(袁世凱)는 신해혁명의 열매를 삼키고 황제의 자리에 오르려 했다. 그는 부하들을 부추겨 군주제를 찬성하는 주안회(籌安會)를 조직했는데, 당시 명성이 높았던 엄복을 가담시켜 육군자(六君子)의 하나가 되었다. 이로써 엄복은 중국인민들의 지탄을 받게 되었고, 원세개의 정권 찬탈 음모가 실패하자 그 명성도 빛을 잃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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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세화 저 <중국문학사> [이 게시물은 운영자님에 의해 2011-07-25 09:16:10 중국이야기(으)로 부터 이동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