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이령지혼(利令智昏)
- 일신의 안녕에 눈이 멀어 나라를 망친 이사 -

조고가 곧바로 승상 이사를 찾아가 말했다.
「황제가 붕어할 때 장자 부소에게 보내는 유서를 남겨 함양으로 들어와 황제의 자리를 계승하라고 했으나 아직 유서는 보내지 않았습니다. 오늘 황제가 죽었으나 사람들은 아직 그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부소에게 보내는 유서와 옥새는 모두 호해가 갖고 있습니다. 태자를 정하는 일은 승상과 이 고의 입에 달려있는데 어찌 생각하십니까? 」
이사가 대답했다.
「어찌 이런 망녕된 말을 할 수 있단 말이오? 결코 남의 신하된 자가 입에 올려 왈가왈부할 수 있는 일이 아니오.」
조고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이사를 향해 말했다.
「승상께서는 몽염과 비교해서 누가 더 능력이 뛰어나고 또한 세운 공이 누가 더 높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심모원려하여 실패하지 않고, 천하로부터 원한을 산 일이 없으며, 부소와 오래 함께하여 친하게 지낸 일 등은 몽염과 비교해서 누가 더 낫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다섯 가지는 모두 내가 몽염보다 못하오. 그런데 어찌하여 대감은 나를 그렇게 크게 나무라시오?」
「이 조고는 원래 하찮은 일이나 하는 내관이었습니다. 다행히 형옥의 글을 읽어 진나라 궁전으로 들어가 그 일을 해오기를 20여 년이 되도록 지켜봐왔습니다. 그것으로 저는 진나라에서 파면된 승상이나 공신들의 봉록이 2세까지 이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은 결국 모두 주살되어 비참한 최후를 마쳤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승상께서는 20여 명의 공자들 중 아무도 알지 못하고, 특히 강직하고 용맹한 장자 부소는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어 분발시키는 자질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가 황제로 즉위하면 필시 몽염을 승상으로 삼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승상께서는 결국 통후(通侯)통후(通侯) : 진나라의 20등작 중 가장 높은 작위로 원래 철후(徹侯)였다가 한무제 유철(劉徹)을 휘하여 통후(通侯)로 바뀌고 다시 한 대에 이르러 열후(列侯)로 개칭했다.
의 인수(印綬)를 지니지 못한 체 향리로 돌아가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이 고는 황제의 명을 받아 호해를 가르쳤습니다. 그에게 법률을 몇 년 동안 가르치면서 아직까지 그의 잘못을 보지 못했습니다. 성품이 인자하고 후덕하며 재물을 가볍게 여기고 선비들을 정중하게 대합니다. 말은 어눌하나 마음은 남의 생각을 분별할 수 있을 정도로 총명하고, 정성을 다해 예를 갖추어 선비를 공경하니 여러 공자들 중 아무도 호해공자에게 미치지 못합니다. 능히 황제의 자리를 이을만 합니다. 승상께서는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대감은 자기 자리로 돌아가시오. 이 사는 황제의 명을 받들고 하늘의 명에 따라야 하겠습니다. 어찌 우리가 태자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단 말이오?」
「안전한 것이 오히려 위태로울 수 있고, 위태로운 것이 안전할 수 있습니다. 안전한 것과 위험한 것을 정하지 못한다면 어찌 성인의 지혜를 귀하다고 하겠습니까?」
「이 사는 상채의 시골마을 골목에서 살던 평민출신으로 돌아가신 황제에게 발탁되는 행운을 얻어 작위가 통후에 이르고 자손은 모두가 높은 지위와 많은 봉록을 받는 자리에 올랐소. 그것은 장차 진나라의 존망과 안위를 이 사람에게 맡기려는 황제의 뜻에서였다고 말할 수 있소! 어찌 내가 그 뜻을 받들지 않겠소? 무릇 충신은 죽음을 피하지 않고 요행을 바라지 않는 법이오. 그리고 효자는 지나치게 애써 몸을 위태롭게 하지 않으며 남의 신하된 자는 각기 그 직분을 지키기만 하면 그뿐이오. 대감은 다시는 그와 같은 말을 입에 담아 이 사로 하여금 죄를 얻지 않도록 하시오.」
「대저 성인은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변화를 취해 시의를 따르며, 결말을 보고 그 본질을 알아냅니다.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고 돌아갈 곳을 압니다. 세상의 이치는 원래 이와 같이 변화무쌍한데 어찌 고정된 법칙만 있다고 하겠습니까? 지금 천하를 다스릴 수 있는 권력은 호해의 한 몸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고는 능히 호해의 마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대저 밖으로부터 안을 제압하는 일을 미혹하다 하고 아래로부터 위를 제어하는 것을 적(賊)이라 합니다. 따라서 가을에 서리가 내리면 풀잎과 꽃은 떨어지고, 봄이 되면 얼었던 물이 녹아 요동치며 만물을 움직입니다. 이런 것들은 때가 되면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자연의 법칙입니다. 승상께서는 그 이치를 아직도 아시지 못하십니까?」
「당진의 헌공(獻公)이 태자를 바꾸었다가 3대가 혼란에 빠졌고, 제환공의 아들들은 군위를 다투어 형제가 서로 죽였소. 또한 은주(殷紂)는 친척을 살해하고 충간하는 말을 듣지 않아 나라를 폐허로 만들어 사직을 망하게 했소. 세 사람은 모두 하늘의 뜻을 거역해서 종묘에 제사를 끊어지게 만들었소. 이 사도 그들과 같은 사람이 될 터인데 어찌 대감의 모의에 따르겠소?」
「상하가 서로 힘과 마음을 합하면 권세를 오래 지탱할 수 있고 밖과 안이 하나가 되면 일의 표리가 없어집니다. 승상께서 저의 계책을 들으신다면 장자는 제후에 봉해져 세세대대로 고(孤)를 칭하며 교송(喬松)의 수명을 누리게 되어 공자나 묵자의 지혜를 지녔다고 칭송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분명한 일임에도 이를 따르지 않는다면 화는 자손에 미치게 되어 그로 인하여 생기는 두려운 결과는 소름이 끼칠만큼 충분할 겁니다. 처세에 밝은 사람은 화를 복으로 만든다고 하는데 승상께서는 어디에 몸을 두시겠습니까?」
이사가 하늘을 쳐다보며 한탄하고 눈물을 흘리며 긴 한숨을 쉬고 난 뒤에 말했다.
「오호라! 홀로 난세를 만나 능히 죽지도 못하니 어디에 내 목숨을 맡겨야 한단 말인가?」
이사가 마침내 조고의 말을 따르기로 하자 조고가 호해를 찾아가 고했다.
「신이 태자의 밝은 명을 받들어 승상에게 품했습니다. 승상 이사가 어찌 감히 령을 받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윽고 조고, 호해 그리고 승상 이사가 비밀리에 모의하여 시황이 써서 봉하여 부소에게 전하라고 맡긴 새서를 뜯고 글을 바꾸었다. 승상 이사가 시황으로부터 사구평에서 유조를 받들었다고 하면서 호해를 태자로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