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한국전투병의 파병을 요청하면서 파병문제가 큰 쟁점이 되고 자칫하면 우리끼리 또 한차례 극심한 이념갈등에 빠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달초 부시 미국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윤영관 외통부장권을 ‘만나주고’ 미국 관리들이 북핵문제 해결에 유연한 발언을 쏟아내면서 무엇인가 낌새가 이상하다 싶더니 결국 전투병파병의 밑자리깔기 였음이 드러났다.
미국이 그동안 유엔이나 우방국가들을 무시한채 일방주의로 이라크를 침략하여 전쟁을 벌이다가 상황이 불리해지자 뒤늦게 유엔을 끌어들이고 우방에 파병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미국은 어디까지나 자국의 이익을 위해 한국에 파병을 요청했다. 문제는 우리의 자세다. 최병렬 한나라당대표가 미국방문중 ‘파병지지’를 시사하면서 보수 정치인과 언론ㆍ지식인들 사이에 파병지지가 세를 타고 있다.
이들의 주장을 듣다보면 마치 일제말기 친일파들이 “청년학도여 성전에 나서라”고 외치며 설치던 역사가 연상된다. 친일파들은 언필칭 ‘내선일체’ ‘동양평화’를 내세우며 ‘귀축영미’의 성전에 나서라고 글쓰고 강연을 하면서 무고한 청년들을 일제의 침략전쟁에 끌어들였다. 그리고 수십만 명의 희생자를 냈다.
지금 파병론자들은 ‘한미혈맹’ ‘세계평화’를 내세우며 ‘귀축이라크’를 주창한다. 당시 친일파들은 “일ㆍ청전쟁때 일본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조선은 청국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보은하는 마음으로 일본을 도와야 한다”는 역사왜곡을 서슴지 않았다. 지금은 일본이 미국으로 바뀌었을뿐 유사한 소리가 들린다. 역사는 되풀이 되는가 섬뜩한 생각이 든다.
파병론자들은 입만 열면 베트남파병의 사례를 들면서 ‘한미 혈맹’ 관계와 ‘이라크 특수’를 제기한다. 베트남 참전은 반공전선이라는 명분이라도 있었고 부족하지만 ‘피의 댓가’를 받았다. 5000여명의 전사자, 1만 6000여명의 부상자와 5만여명의 고엽제환자에는 눈을 감더라도 말이다.
지난봄 서희부대와 제마부대의 파병이후 이라크 석유자원은 미국이 독차지하고 우리 몫은 하나도 넘겨주지 않았다. 또 우리돈으로 파병하기 때문에 특수는 커녕 ‘피의 댓가’도 받기 어렵다. ‘무고한 희생’만 생기게 된다.
이라크파병은 명분도 실리도 없다. 있다면 오직 미국의 국가이익이 있을 뿐이다. 반대로 손실은 막대하다.
해외의 분쟁만 나면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것은 평화애호의 우리 본디 모습과는 크게 역행한다. 국제사회에 호전국가로 인식되면 국가이미지에 먹칠을 하게되고 ‘미국의 용병국가’로 낙인되면 향후 50개가 넘은 이슬람국가들과의 외교와 교역에 치명적이 된다.
한말 일제는 대한제국의 치안과 질서회복을 명분으로 파병하고 15만명의 의병을 학살했다. 우리 의병이 농기구와 죽창으로 무장한데 비해 일본군은 영국에서 수입한 스나이더(snider)소총과 자신들이 개발한 무라타소총으로 무장한 신식군대를 파병하여 의병을 닥치는대로 학살했다. 양측의 화력이 1대 250~500의 차이에서 의병은 일방적으로 희생되었다. 지금 미군과 이라크군의 화력의 수준과 비교된다.
동티모르의 파병과는 성격이 다르다. 오랜 식민지통치에서 해방된 동티모르의 치안과 질서유지에 한국군의 역할은 필요하다. 하지만 미국의 일방적인 침략을 받은 이라크 치안은 침략군이 물러나고 스스로 해결할 문제이지 외국전투병이 할일은 아니다. 오히려 거센 민족주의 감정을 불러일으켜 장기항전으로 더깊은 수렁에 빠져들지 모른다.
국내의 사정도 만만치 않다. 한쪽에서는 아이의 미국시민권을 얻고자 원정출산이 줄을 선다. 지난해 5000명선에서 올해는 7000명선에 달할 것이라 한다. 보다 못한 ‘혈맹 미국’이 단속에 나섰다. 다른쪽에서는 미국 부시정부가 남북화해협력을 방해한다구 미국의 한반도 정책을 거세게 비판한다.
‘원정출산’ 쪽일 수밖에 없는 측에서는 3ㆍ1절과 8ㆍ15날에 성조기를 흔들고 미국가를 부르면서 주한미군의 주둔을 주장하고 반대측에서는 남북통일에 미국이 방해하지 말 것을 요구한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압력으로 전투병이 이라크에 파병된다면 국가적인 이해득실 이전에 미국에 대한 다수 한국인의 감정은 순화되기 어려울 정도록 악화될 것이다.
“성전에 나서라”고 청년들을 침략자들의 총알받이로 몰아넣은 역사적 과오를 되풀이 하지 말기를 파병론자들에게 충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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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5-12 15:2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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