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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진열전(蘇秦列傳) 9
양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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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육국재상의 인수를 허리에 차고 금의환향하는 소진.jpg  (225.4K)   download : 197
일반

열전9. 소진(蘇秦)

소진(蘇秦)은 동주(東周)의 낙양(雒陽) 출신이다. 스승을 찾아 동쪽의 제나라로 들어가 귀곡선생(鬼谷先生)1) 선생에게서 배웠다. 제후들에게 유세를 위해 몇 해를 돌아다녔지만 곤궁한 처지에 몰려 낭패한 끝에 집으로 돌아왔다. 형제, 형수와 제수, 처첩 등이 모두 속으로 소진을 비웃으며 말했다.

「주나라 사람들의 풍속에 따르면 모두가 농업에 종사하거나 공업과 상업에 힘써 2할의 이익을 추구하는 일을 본업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당신은 본업을 팽개치고 입과 혀를 놀리는 일만을 추구하고 있으니 곤궁한 처지를 당함은 당연하지 않습니까?」

소진이 듣고 참담한 생각에 부끄럽고 스스로 상심하여 방안에 들어박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는 책을 꺼내어 여러 번에 걸쳐 살펴보고는 말했다.

「무릇 선비란 머리를 숙여가며 글을 배움으로써 높은 벼슬을 얻어 높은 관직과 영화를 얻을 수 없다면 비록 많은 책을 읽었다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래서 그는 주서(周書)의 <음부경(陰符經)>2)을 구하여 집안에 틀어박혀 독파했다. 그리고 일 년이 되자 소진은 드디어 자기의 마음으로 상대편의 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췌마(揣摩)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생각하여 말했다.

「이것으로써 나는 당대의 군주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우선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주나라에 들어가 주현왕(周顯王)3)에게 유세하려고 했다. 주현왕의 측근들은 평소에 소진이라는 사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모두들그를 경시하고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주나라에서 박대를 받은 소진은 서쪽의 진나라로 갔다. 당시 진나라는 진효공(秦孝公)이 죽고 진혜왕(秦惠王)4)이 뒤를 잇고 있었다. 소진은 혜왕을 만나 유세했다.

「진나라는 사방이 산으로 막히고 위수(渭水)를 허리띠처럼 두르고 있는 요새와 같은 나라입니다. 동쪽으로는 동관과 하수로 막혀있고, 서쪽으로 한중(漢中), 남쪽으로는 파(巴)와 촉(蜀), 북쪽으로는 대(代)와 마(馬)5)가 있으니 천부지고(天賦之庫) 즉 하늘이 내려준 창고와 같은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천혜의 지리적인 이점을 이용하여 진나라의 백성과 선비들에게 병법을 가르친다면 가히 천하를 병탄하여 황제를 칭할 수 있습니다.」

진왕이 듣고 말했다.

「날개가 미처 자라니 못해 높이 나를 수 없소. 또한 문물과 도덕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니 천하를 손에 넣을 수 없소.」

상앙을 주살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아 유세가들에 대한 혐오감을 갖고 있던 혜왕은 소진을 등용하지 않았다.

소진은 진나라를 떠나 동쪽의 조나라로 갔다. 당시 조나라는 조숙후(趙肅侯)6)의 동생 성(成)이 상국이 되어 봉양군(奉陽君)이라고 불리고 있었다. 봉양군도 역시 유세객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조나라를 떠나 연나라에 들어간 소진은 일 년이 넘게 기다리다가 연문후(燕文侯)7)를 만날 수 있었다. 소진이 연문후를 향해 말했다.

「연나라의 동쪽에는 조선(朝鮮), 요동(遼東)이 있고, 북쪽에는 임호(林胡), 누번(樓煩)이 있습니다. 또한 서쪽에는 운중(雲中)과 구원(九原)이 있으며 남쪽에는 호타(嘑沱)와 역수(易水)가 있습니다. 사방 2천리에 달하는 땅에 무장한 군사들은 수십 만에 달하고 6백 승의 병거에 6천기의 기병과 수년 치의 식량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남쪽에는 갈석(碣石)8)과 응문(應門)9)의 비옥한 평야가 있고 북쪽에는 대추와 밤의 특산물로 나오는 이익으로 백성들은 농사를 짓지 않아도 풍족하게 살 수 있습니다. 이에 사람들은 천혜의 부고(府庫)라고 부릅니다.

대저 연나라가 안락하고 무사하여 군대는 무너지지 않고 장군들은 살해되지 않는 이유를 왕은 알고 계십니까? 연나라가 적대국의 침략으로 전화를 입지 않음은 조나라가 연나라의 남쪽 경계를 가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秦)과 조(趙) 두 나라는 모두 다섯 번 싸워 진(秦)이 두 번 이기고 조(趙)가 세 번 이겼습니다.10) 이로써 진조(秦趙) 두 나라는 서로 살상한 나머지 모두 쇠약해졌습니다. 그래서 왕께서는 온전한 연나라의 국력에 의지하여 조나라의 후방을 제압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연나라가 다른 나라로부터 침략을 당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항차 진나라가 연나라를 공격하려면 운중(雲中)과 구원(九原)을 넘고 대군(代郡)과 상곡(上谷)을 거쳐 수천 리를 행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설사 진나라 군사가 연나라 땅을 점령했을 경우라도 어떠한 방법으로도 지킬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조나라가 연나라를 공격할 경우에는 일단 명령이 떨어지기만 하면, 10일 도 안 되어 수십만의 군사를 동원(東垣)11)에 집결시켜 호타하(滹沱河)와 역수(易水)를 도하하여 출발한지 4-5일 만에 연나라의 국도에 당도할 수 있습니다. 그런 연유로 진나라가 연나라를 공격하는 행위는 천리 밖의 전장에서 싸움을 하는 것이고 조나라가 연나라를 공격하는 행위는 백리 밖의 전장에서 하는 싸움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무릇 조나라의 백리 밖의 우환을 진나라의 천리의 것 보다 더 무겁게 생각한다면 이보다 더 큰 과오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이유로 해서 대왕께서는 조나라와 우호관계를 수립하여 합종을 행하시기 바랍니다. 합종의 결과 천하가 하나가 되면 연나라는 필시 외적으로부터 전화를 받는 일은 없게 될 것입니다.」

「그대의 말이 옳다고 하나 우리 연나라는 소국이오. 서쪽에는 조나라가 우리를 압박하고 있고, 남쪽으로는 제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소. 조나 제 두 나라는 모두 강대국이오. 그대가 기어코 합종을 행하여 연나라를 안정시킬 수 있다고 한다면 과인은 나라를 그대에게 맡겨 합종이 이루어지도록 하겠소.」

그래서 연문후는 거마와 황금 및 비단을 내주어 조나라로 가게 했다. 그때 조나라에는 봉양군(奉陽君)이 이미 죽고 없었음으로 소진은 곧바로 조숙후(趙肅侯)를 만나 유세할 수 있었다. 소진이 조숙후를 알현하면서 말했다.

「천하의 경상(卿相)이나 남의 신하된 자, 혹은 벼슬하지 않은 선비들에 이르기까지 모두들 현명하신 군주님의 의로운 행동을 앙모하여, 모두가 앞에 나가 가르침을 받들어 충성스러운 마음을 바치려고 원한지가 이미 오래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진 선비들을 시기한 봉양군으로 인하여 군주께서는 정사를 제대로 돌볼 수 없었고 따라서 빈객들과 유세객들은 감히 대왕 앞으로 나와 하고자 하는 뜻을 충분히 개진할 수 없었습니다. 다행히 지금 봉양군이 이미 세상을 떠남으로 해서 군주께서 드디어 선비나 백성들을 친히 접견을 행할 수 있게 되었고, 그런 이유로 비로소 군주님 앞에 나와 어리석은 의견이나마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군주님을 위해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라를 태평하게 하는 방법 중에 백성들의 생활을 안정시키는 일보다 좋은 것이 없으니 일부러 일을 만들어 백성들을 번거롭게 하지 마십시오. 백성들을 안정시키는 일이야말로 외교의 근본입니다. 올바른 나라를 택하여 외교관계를 수립한다면 나라와 백성들은 안정되나, 엉뚱한 나라를 택하여 엉뚱한 외교를 펼친다면 나라와 백성들은 시종일관 불안하게 됩니다. 외환(外患)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제(齊)와 진(秦) 두 나라를 적대국으로 삼는 것, 진나라에 의지하여 제나라를 공격하는 것, 제나라에 의지하여 진나라를 공격하는 것 등은 모두 백성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그래서 다른 나라 군주를 도모하거나 다른 나라의 영토를 정벌할 때는 항상 다른 국가와의 외교가 단절되고 그 비밀이 공개되는 고통을 맛보게 됩니다. 원컨대 군주님께서는 조심하고 신중하시어 그와 같은 마음을 겉으로 드러내지 마십시오. 제가 군주님을 위해 이해득실을 흑백이나 음양을 구분하듯이 분명하게 분석해 드리겠습니다. 만일 군주님께서 능히 저의 충언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연나라는 반드시 담요, 갖옷, 말 및 개와 같은 특산물을 생산하는 토지를, 제나라는 물고기와 소금을 산출하는 그들의 해안 지방을, 초나라는 귤과 유자나무의 원림(園林)을 한(韓), 위(魏), 중산(中山) 등의 나라는 군주님과 비빈들을 위한 탕목금(湯沐金)12)으로 그 땅을 떼어 바칠 것입니다. 무릇 땅을 떼어 빼앗아 이를 취했음은 춘추오패(春秋五覇)가 다른 나라의 군대를 무찌르고 그 장수를 사로잡음으로 해서 구할 수 있었고, 자기의 친척이나 일가를 제후로 봉하거나 존귀한 신분이 되게 하는 일은 탕왕(湯王)과 무왕(武王)처럼 그 임금을 추방하거나 시해함으로 해서 얻은 땅으로 인해서입니다. 지금 군주님께서는 이 두 가지 모두를 높은 곳에 팔짱을 끼고 가만히 앉아서 취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신이 군주님께서 합종하기를 권하는 이유입니다. 만약 조나라가 진나라와 친하게 지내게 되면 진나라는 필시 한(韓)과 위(魏) 두 나라를 쇠약케 하고, 만약 제나라와 친하게 지내면 초(楚)와 위(魏)가 약화 됩니다. 약화된 위나라와 한나라는 하외(河外)와 의양(宜陽)의 땅을 각각 떼어 바칠 것입니다. 의양이 진나라에 넘어가면 한나라는 상당군(上黨郡)으로 통하는 길이 막히게 되고, 하외의 땅이 진나라에 넘어가면 위나라는 상군(上郡)에 이르는 길이 막히게 됩니다. 또한 초나라가 약화되면 고립된 조나라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이 세 방면의 대책에 대해서 심사숙고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무릇 진나라가 지도(軹道)13)를 공격하여 함락시키면 한나라 땅인 남양(南陽) 지역의 운명은 조석지간에 처하게 되고, 계속해서 진나라가 남양을 빼앗고 주나라를 포위한다면 그때는 조나라는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무기를 들고 일어서야만 합니다. 또한 진나라가 위(衛)나라를 점거하고 권성(券城)14)을 취하게 되면 제나라는 필시 진나라에 입조할 것입니다. 진나라는 산동에서 그 목적하는 바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조나라를 향해 군사를 진격시킬 것입니다. 계속해서 진나라의 무장한 군사들은 하수(河水)를 건너고 다시 장하(漳河)를 넘어 파오(番吾)15)에 주둔하게 되면 진과 조 두 나라의 군대는 필시 한단성(邯鄲城) 밑에서 전투를 벌이게 됩니다. 이것이 신이 군주님을 위해 걱정하는 바입니다.

지금 산동 지역에는 조나라보다 강대한 나라는 없습니다. 조나라의 강역은 사방 2천 리에 무장한 군사들은 수십만에 달하고 전차는 천 승, 기마는 만 필, 군량은 수년을 버틸 수 있을 만큼 넉넉합니다. 서쪽에는 상산(常山), 남쪽에는 장하(漳河), 동쪽에는 청하(淸河)16), 북으로는 연나라와 접하고 있습니다.

연나라는 원래 국력이 약한 나라로 두려워하지 않으나, 천지간에 진나라가 자기들에게 해를 끼칠 나라로서 조나라만한 나라가 없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나라는 군사를 일으켜 감히 조나라를 공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계십니까? 그것은 바로 한(韓)과 위(魏) 두 나라가 진군의 배후를 위협할까봐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한․위(韓魏) 두 나라는 조나라의 남쪽 방벽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진나라가 한(韓)과 위(魏) 두 나라를 공격한다면 그들의 땅에는 큰 강이나 높은 산이 없음으로 누에게 뽕잎을 갉아먹듯이 서서히 그들의 국토를 잠식하여 두 나라의 도성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한․위(韓魏)는 진나라의 공격에 버틸 수 없음으로 필시 신하라고 칭하며 진나라를 받들 것입니다. 진나라에 대한 한․위(韓魏) 두 나라의 위협이 사라지게 되면 그 전란의 화는 필시 조나라로 모아질 것입니다. 이것이 신이 군주님을 위해 걱정하는 바입니다.

신이 듣기에 요임금은 그 소유하고 있던 땅이 3백 무(畝)17)를 넘지 못했고, 순임금은 그나마 손바닥만한 지척(咫尺)18)의 땅도 없었지만 천하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우(禹)임금은 백 사람이 사는 고을도 없었으나 제후들을 거느린 왕이 될 수 있었고, 상(商)을 세운 탕(湯)임금이나 주(周)를 세운 무왕(武王)은 삼천도 넘지 않은 무사들과 3백 승도 못되는 병거 및 3만도 안 되는 병졸들로 천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모두 참된 도리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현명한 군주는 밖으로는 적국의 강함과 약함을 헤아리고, 안으로는 자국의 사졸의 어질고 불초함을 분간하여 양군이 서로 대치하기도 전에 승패와 존망의 관건이 원래부터 자기의 흉중에 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찌 일반 대중의 분분한 의론에 가려 혼미하고 분명하지 못한 태도로 국가의 대사를 결정할 수 있겠습니까?

신이 천하의 지도를 놓고 살펴보건대, 제후들의 땅은 진나라의 5배가 넘고, 제후들이 보유하고 있는 군사들의 수는 진나라의 10배가 넘습니다. 육국이 하나가 되어 힘을 합하여 서쪽의 진나라를 공격한다면 어찌 격파할 수 없겠습니까?. 그런데 오늘날 제후들은 얼굴을 서쪽으로 향하고 진나라에 신하를 칭하며 받들어 모시고 있습니다. 무릇 적국을 무찌른 것과 적국에 의해 무찌름을 당하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을 신하로 거느리고 있는 것과 다른 사람의 신하가 되는 것, 모두를 어찌 동시에 논할 수 있겠습니까?

무릇 연횡론자(連橫論者)들은 모두가 제후들로 하여금 땅을 떼어 진나라에 바치라고 합니다. 진나라가 성공하게 되면 그들은 누대(樓臺)와 정자를 높이 짓고 화려하게 꾸민 궁실에서 생황(笙簧)과 거문고로 연주되는 음악을 감상하면서 고대와 화려하게 치장한 거마를 앞에 하고 그 뒤에는 교태가 넘치는 미인들을 거느리고 호사스러운 생활을 영위하게 됩니다. 제후의 나라들은 진나라에 의해 화를 입지만 연횡론자들은 켤코 근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연횡론을 주장하면서 진나라의 권세에 기대어 밤낮으로 제후들을 협박하여 그들로 하여금 땅을 떼어 바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에 저는 대왕께서 이 문제를 자세히 생각해보시라고 말씀드립니다.

신은 현명한 군주는 일단 결심하면 의심하지 않고 참언을 물리치며 유언비어의 유포를 금지시키며 사람들이 붕당으로 뭉치는 일을 막는다고 들었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그 군주를 높이고 영토를 확장시키며 강한 군사를 기르는 계책을 면전에서 충심으로 간할 수 있습니다. 이에 신이 대왕을 위해 계책을 올린다면 한(韓), 위(魏), 조(趙), 초(楚), 연(燕), 제(齊) 등의 6국이 합종하여 진나라에 대항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열국의 재상과 장군들에게 명을 내려 원수(洹水)19)의 강가로 모이게 하여 서로 인질을 교환하고 백마를 잡아 그 피로 다음과 같이 맹세하도록 하십시오. ‘진나라가 초나라를 공격한다면 제(齊)와 위(魏) 두 나라가 정예부대를 출동시켜 초나라를 돕고, 한나라는 진군의 양도를 끊으며 조나라는 군사를 일으켜 장수(漳水)와 하수(河水)를 건너 진격시키고 연나라는 상산(常山)의 북쪽을 굳게 지키도록 합니다. 만일 진나라가 한․위 두 나라를 공격한다면 초나라는 진군의 퇴로를 끊고, 제나라는 정예한 군사를 보내 한․위 두 나라를 돕고, 조나라는 장수와 하수를 건너 구원군을 보내고 연나라는 운중(雲中)을 지키게 합니다. 다시 진나라가 제나라를 공격한다면 초나라는 역시 진군의 퇴로를 끊고, 한나라는 성고(城皐)를 철통같이 지키며, 위나라는 양도를 막고 조나라는 그 군사를 일으켜 장수와 하수를 건너 박관(博關)으로 출동시키며 연나라는 정예군을 출동시켜 돕도록 합니다. 또한 만일 진나라가 연나라를 공격한다면 조나라는 상산(常山)을, 초나라는 무관(武關)을 지키고, 제나라는 발해를 건너고, 한․위(韓魏) 두 나라는 정예군을 보내 연나라를 돕습니다. 다시 진나라가 조나라를 공격하면, 한나라는 의양(宜陽)에, 초나라는 무관(武關)에, 위나라는 하외(河外)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제나라는 군대를 일으켜 청하(淸河)를 건너게 하고 연나라는 정예부대를 보내 돕습니다. 제후들 중 맹약을 지키지 않는다면 나머지 5국이 힘을 합하여 군사를 일으켜 토벌합니다. 여섯 나라가 합종을 행하여 공동으로 진나라에 대항한다면 진나라의 군대는 틀림없이 감히 함곡관을 나와 산동의 나라들에게 해를 끼칠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된다면 패왕의 업이 저절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조숙후(趙肅侯)가 듣고 말했다.

「과인은 어린 나이에 군주의 자리에 오른 지 일천하여 아직까지 사직을 지킬 수 있는 계책을 들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지금 고명하신 선생께서 천하를 보존하고 제후국들을 안정시키려고 하시니 과인은 나라를 들어 경의 뜻에 따르려고 합니다.」

말을 마친 조숙후는 소진에게 황금 천일(千鎰)21), 백벽(白璧) 100쌍, 수를 놓은 비단 천 필을 주어 제후들과 합종을 행하는데 비용으로 사용하도록 했다.

그때 주천자가 종묘의 문왕과 무왕에게 제사 지낸 고기를 진혜왕(秦惠王)에게 보냈다. 진혜왕이 서수(犀首)22)를 대장으로 삼아 위나라를 공격하도록 했다. 서수는 위장 용고(龍賈)를 사로잡고 조음(雕陰)23)을 점령한 후에 계속해서 동쪽으로 진출하려고 했다. 진나라의 군사가 조나라를 공격할 경우 합종이 와해 될 것을 우려한 소진은 장의를 격노케 하여 진나라에 들어가도록 했다.

소진이 한(韓)나라에 들어가 한선왕(韓宣王)24)을 보고 합종을 유세했다.

「한나라의 북쪽에는 공(鞏)과 성고(城皐)라는 견고한 성(城)이, 서쪽에는 의양(宜陽), 상판(商阪)와 같은 요새가, 동쪽에는 완(宛)과 양(穰), 유수(洧水)가, 남쪽에는 형산(陘山)의 험애가 있는 사방이 900리에 달하는 나라입니다. 보유하고 있는 군대는 수십만에 달하고 세상에서 제일 강한 활과 쇠뇌는 모두 한나라에서 만들어집니다. 계자(谿子)25), 그리고 소부(少府)26)에서 생산되는 시력(時力)이나 거래(距來)27) 등의 쇠뇌는 모두가 600보 밖에서 목표물을 명중시킬 수 있을 정도로 성능이 좋습니다. 또한 한나라 군사들은 다리 받침대를 이용하여 연속해서 100발의 화살을 쇠뇌에서 발사할 수 있습니다. 멀리 있는 적을 향해 발사하면 화살은 갑옷을 뚫고 가슴에 박히고, 가까이 있는 적을 향해 발사하면 화살은 적군의 심장을 관통하여 화살 끝이 보이지 않게 됩니다. 한나라 군사들이 소지하고 있는 검(劍)과 극(戟)은 모두 명산(冥山)28), 당계(棠溪)29), 묵양(墨陽)30), 합부(合賻)31), 등사(鄧師)32) 완풍(宛馮)33), 용연(龍淵), 태아(太阿)34) 등은 모두 육지에서는 소나 말을 가르고 물속에서는 고니나 기러기를 베며, 싸움에 임해서는 적군의 목을 베고, 견고한 갑옷이나 철갑을뚫습니다. 그리고 그 밖의 장구로써 혁결(革抉)35), 발예(㗶芮)36) 등 갖추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견고한 갑옷에 다리받침대를 밟고 발사하는 강력한 쇠뇌와 예리한 검을 차고 있는 용맹한 한나라 병사 한 사람은 100명의 적을 당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 말은 그다지 과장된 말은 아닙니다. 대저 용맹한 군사들을 거느리고 있는 현명한 대왕께서 서쪽을 향해 두 손을 들고 진나라를 받들며 복종한다면 그것은 한나라 사직의 수치이며 천하의 웃음거리이니 이보다 더 큰 치욕은 없을 것입니다. 원컨대 대왕께서는 이 문제를 심사숙고하시기 바랍니다.

대왕께서 진나라를 받든다면 진나라는 필시 의양(宜陽)과 성고(城皐)의 할양을 요구할 것입니다. 오늘 그들의 요구를 따른다면 다음 해는 다시 다른 땅의 할양을 강요받게 됩니다. 계속 땅을 할양하다보면 결국은 줄 땅이 없게 되며, 그래서 주지 않는다면 전에 행했던 공은 모두 없어지고 결국 전화를 입게 될 것입니다. 즉 대왕의 땅은 유한하고 진나라의 요구는 끝이 없으니 유한한 국토로 그칠 줄 모르는 진나라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게 된다면 그것은 바로 원한을 사고 재앙을 불러들이게 되는 일입니다. 결국 한나라는 싸워보지도 못하고 땅만 줄어들 것입니다. 저는 속담에 ‘닭의 부리가 될지언정 소의 꼬리는 되지 말라!’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대왕께서 서쪽을 향해 두 손을 비비며 진나라를 받든다면 그것은 바로 소의 꼬리가 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무릇 대왕의 어짐과, 강한 한나라의 군대로 소꼬리라는 오명을 얻고 있으니 신은 대왕을 위해 수치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한왕(韓王)은 정색을 하고 발연히 노하여 두 팔로 가슴을 두드리며, 두 눈을 부릅뜨고 검을 어루만지며 하늘을 향해 긴 한숨을 토하더니 말했다.

「과인이 비록 불초하지만 나는 결코 진나라를 받들지 않겠소! 오늘 경이 조왕의 가르침을 나에게 전하니 한나라 사직을 그대에 맡겨 합종을 따르겠소.」

소진이 위나라로 들어가 위양왕(魏襄王)37)에게 합종을 유세하며 말했다.

「대왕의 국토는 남쪽으로는 홍구(鴻溝)38), 진(陳)39), 여남(汝南)40, 허(許)41), 언(郾)42), 곤양(昆陽)43), 소릉(召陵)44), 무양(舞陽)45), 신도(新都)46), 신처(新郪)47) 등의 고을과 땅이 있고, 동쪽으로는 회수(淮水), 영수(潁水)48), 자조(煮棗)49) 무서(無胥)50) 등이, 서쪽으로는 장성(長城)51)을 경계로 하고 북쪽으로는 하외(河外)52)와 권(券)53), 연(衍)54), 산조(酸棗)55)에 이르러 그 넓이는 사방으로 천리에 뻗쳐 있습니다. 땅은 겉으로 보기에도 협소하여 전답 사이에는 가옥들로 가득 차 있어 가축을 방목할 만한 땅도 없습니다. 그러나 인구는 조밀하고 거마의 수효는 많아 밤이 되어도 그 행렬이 끊이지 않아 그 지나가는 소리는 마치 삼군(三軍)이 행군할 때 내는 굉음과 같습니다. 신이 가만히 생각해보니 위나라의 국세는 초나라와 비교해 봐도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입니다.

그러나 진나라와의 연횡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왕을 유혹하여 호랑이나 이리처럼 흉악한 진나라가 천하를 침탈하려는 진나라를 받들라고 하며, 결국은 화근 덩어리인 진나라로 인한 재앙을 돌아보지 않고 있습니다. 강포한 진나라의 세력을 업고 안으로는 그 군주를 위협하니 이보다 더 큰 죄는 없습니다. 위나라는 천하의 강국이고 대왕은 천하의 어진 임금입니다. 그런데 오늘 날 서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진나라를 받들면서 동쪽을 지키는 속국이 되어 진나라를 위해 제왕(帝王)의 궁궐을 건설하여 이궁(離宮)으로 바치고, 진나라로부터 분봉을 받은 후에 진나라의 사직을 위해 제사를 지낼 때 경비로 쓰라고 공물을 보내시려 합니다. 신은 대왕을 위해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는 사료됩니다.

월왕 구천(句踐)은 3천의 피로한 군사로 오왕 부차(夫差)를 간수(干遂)56)에서 사로잡았으며, 주무왕(周武王)은 군사 3천 명과, 병거 3백 승으로 은나라의 주왕(紂王)을 목야(牧野)에서 제압했습니다. 어찌 그들이 군사의 수효에만 의지했겠습니까? 그것은 그들은 바로 자신들의 위세를 발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신이 가만히 대왕의 군사들을 헤아려보건대 무장한 군사들은 20만, 창두군(蒼頭軍)57) 20만, 돌격부대 20만, 잡병 10만, 전차 600 량, 전마 5천 필을 보유하시고 계십니다. 대왕의 군사적인 역량은 월왕 구천이나 주무왕을 훨씬 능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신들의 말을 듣고 신하의 신분으로 진나라를 받들려고 하십니다. 대왕께서 만일 진나라를 받들게 된다면, 진나라는 반드시 대왕께 영토의 할양을 요구하여 충성심을 표하라고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군대를 써보지도 못하고 나라는 훼손될 것입니다. 대왕으로 하여금 진나라를 받들라고 하는 신하들은 모두 간신들이지 충신이 아닙니다. 무릇 신하된 자가 그 군주로 하여금 땅을 떼어 주어 남의 나라를 받들라고 권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일시적인 공만을 몰래 취하여 그 뒷일은 염두에 두지 않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공실을 무너뜨려 사사로운 가문의 이를 취하고, 외부의 강력한 진나라의 위세에 의지하여 안으로 자신의 군주를 범하여 그 땅을 나누어 받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원컨대 대왕께서는 잘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주서(周書)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綿綿不絶 蔓蔓奈何(면면부절, 만만나하)

면면할 때 끊지 않아 무성하게 되면 어찌하리!

豪釐不伐 將用斧柯(호리불벌 장용부가)

터럭같이 어릴 때 베지 않으면

장차 도끼를 사용해야 함이라

사전에 생각하여 마음을 정하지 않는다면 후에 큰 근심이 생길 것이니 그 때는 어떻게 하시렵니까? 대왕께서 6국의 합종을 권하는 신의 말을 듣고 전력을 다하여 한 뜻으로 힘을 모은다면 그때는 틀림없이 강포한 진나라에 대한 걱정은 사라질 것입니다. 그래서 조왕(趙王)께서는 신을 보내어 어리석은 계책을 바치고 대왕의 상세하고도 분명한 약속을 받들어 오도록 하셨습니다. 대왕의 조칙이 계시면 사람들을 불러 글로써 기록하도록 하겠습니다.」

위왕이 말했다.

「나는 불초하여 이와 같은 훌륭한 가르침을 받아 본 적이 없소. 지금 경이 조왕의 명을 받들어 나를 깨우쳤소. 이에 나는 엄숙히 선언하노니 나의 나라 전 백성을 이끌고 그대의 권고를 따르겠소!」

위나라를 떠난 소진은 이어서 동쪽의 제나라로 들어가서 제선왕(齊宣王)을 만나 유세했다.

「제나라의 남쪽에는 태산(泰山)이 있고 동쪽에는 낭야산(瑯邪山)이, 서쪽에는 청하(淸河), 북쪽에는 발해(渤海)가 있어 제나라는 4면이 모두 천연의 험지로 둘려 싸여진 천혜의 나라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제나라는 종횡으로 2천리에 달하고 무장한 군사들은 몇 십만에 달하고 군량미는 마치 큰 산처럼 높고 많이 비축되어 있습니다. 3군의 정예군과 오가(五家)의 민병(民兵)58)들은 예리한 칼날처럼 정예하고 화살처럼 재빠르게 전진하고, 우레처럼 위력이 있는 기세로 싸움에 임했다가 비바람처럼 신속하게 후퇴합니다. 설사 싸움이 벌어졌었더라도 태산(泰山)을 넘고 청하(淸河)와 발해를 건넌 적은 없었습니다. 제나라의 도성 임치에는 모두 7만 호가 사는데 제가 가만히 헤아려보니 매 호마다 남자 세 명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21만이 됩니다. 즉 멀리 떨어져 있는 현이나 읍에서 군사를 징발하지 않고 임치의 백성들만으로도 21만 명의 군사를 동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임치는 매우 부유하고 튼튼합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모두가 생황(笙簧)을 불고 비파를 타며 거문고를 연주하고 축(筑)을 두들기며 즐깁니다. 또한 투계와 개경주[구주(狗走)]를 즐기며 도박과 공치기 놀이도 합니다. 임치성의 거리는 수레는 서로 지나가다 바퀴통이 서로 부딪치고, 사람들은 어깨를 스칠 정도로 번잡합니다. 사람들의 옷깃은 서로 이어져 휘장을 이루고, 옷소매를 들면 장막이 되고 사람들이 흘리는 땀은 비가 될 정도로 집과 사람들은 많고 많아 모두들 높은 곳에 뜻을 두고 의기양양합니다. 대저 대왕의 어진 마음과 제나라의 강성함은 천하의 어느 나라도 당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지금 대왕께서 서쪽을 바라보며 진나라를 받들려고 하니 신은 가만히 대왕을 위해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한과 위 두 나라가 진나라를 두렵게 생각하는 이유는 진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양국의 군대가 일단 출동하면 서로 교전에 들어가 불과 10일도 되지 않아 승패가 결정되어 국가 존망의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비록 한(韓)과 위(魏) 두 나라가 진(秦)나라와의 싸움에서 승리를 취한다 할지라도 그 군사들은 태반이 꺾이게 되어 사방의 국경을 지킬 수 없게 됩니다. 더욱이 두 나라가 진나라와 싸움에서 지기라도 한다면 곧 나라는 위태롭게 되고 종내에는 멸망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한과 위 두 나라가 진나라와 전쟁을 벌리기에는 그 처지가 매우 곤란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진나라의 신하가 되는 일을 쉽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진나라가 제나라를 공격하는 행위는 한나라의 경우와는 같지 않습니다. 진나라는 연(燕)과 위(衛) 두 나라의 땅을 뒤로 하고 양진(陽晉)60)의 길과 항보(亢父)61)의 험지를 지나야 하는데 좁은 길로 인해 병거는 서로 교차할 수 없으며 기병은 나란히 서서 행군할 수 없어 100명의 군졸이 요해처를 지키면 1000명의 군졸이라도 감히 통과하지 못합니다. 진나라가 비록 제나라 깊숙이 침입하려고 하나 퇴각할 때의 걱정이 앞서 이리처럼 뒤를 돌아보며 한과 위 두 나라가 후방을 교란할까 두려워합니다. 그런 까닭에 두려워하고 의심하는 마음에 허장성세로 공갈을 치며 교만하게 굴고 뽐내곤 하지만 감히 제나라를 공격하지 못하고 있음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이를 보아도 진나라가 제나라를 해칠 수 없음은 명백합니다.

대저 진나라가 제나라를 어찌할 수 없다는 명백한 사실을 깊이 생각해 보지 않고 서쪽으로 얼굴을 향하고 진나라를 섬기자고 간하는 신하들의 계책은 참으로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강국의 면모를 갖고 있는 제나라가 오히려 진나라에 신하로써 받드는 행위는 오명을 역사에 남기는 일이기 때문에 신은 원컨대 대왕께서 그 점을 잠시 생각하기시 바랍니다.」

제왕이 듣고 대답했다.

「불민한 과인이 멀리 떨어진 변방에서 바다를 지키고 있어 길이 끊겨 왕래를 할 수 없는 동방의 나라라 아직까지 그대와 같은 고매한 사람의 가르침을 얻어 들을 수 없었소. 지금 조왕의 명을 받들고 와서 나를 깨우치니, 나는 장차 제나라 모든 백성들을 들어 그대의 계책을 따르기로 엄숙히 선언하는 바이오.」

다시 발길을 남쪽의 초나라로 돌린 소진은 초위왕(楚威王)62)을 향해 합종을 유세했다.

「초나라는 천하의 강대국입니다. 또한 대왕께서는 천하에 보기 드물게 어지신 왕이십니다. 서쪽에는 검중(黔中)과 무군(巫郡)이, 동쪽에는 하주(夏州)63)와 해양(海陽)64)이, 남쪽에는 동정(同庭)과 창오(蒼梧)65)가, 북쪽에는 형색(陘塞)66)과 순양(郇陽)67)의 요해처가 있으며, 영토는 사방 5천리에 달하고, 무장한 군사는 백만이며, 병거는 천 대이며 기병은 만 기에 비축한 식량은 10년을 견딜 수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패왕의 업을 이룰 수 있을 정도의 국력입니다. 대저 대왕의 현명함으로 다스려지는 강성한 국력의 초나라와 다툴 나라는 천하에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대왕께서 얼굴을 서쪽으로 돌리시고는 진나라를 섬긴다면 천하의 제후들 중 어느 누구도 감히 입조하여 진나라 궁전 안에 높이 솟아있는 장대(章臺) 밑에서 진왕을 받들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진나라로부터의 해침을 당할 나라로는 초나라보다 더한 나라는 없습니다. 초나라가 강하게 되면 진나라는 약하게 되고, 진나라가 강하게 되면 초나라는 약화되어 두 나라는 세상에 결코 같이 양립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신은 대왕을 위해 합종을 행하여 진나라를 고립시키라는 계책을 드리는 것입니다. 만일 대왕께서 합종을 행하지 않으신다면 진나라는 필시 두 군데의 길로 군사를 일으켜 일군은 무관을 나오고 다른 일군은 검중(黔中)으로 나와 언영(鄢郢)68)을 진동시킬 것입니다.

신은 듣기에 일이란 어지러워지기 전에 다스려야 하고 화환(禍患)이란 발생하기 전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환이 닥친 후에야 그것을 염려하는 행위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신은 원컨대 대왕께서는 미리 이 점을 깊이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대왕께서 만일 신의 계책을 진실로 들으신다면, 신은 산동의 열국들을 설득하여 사계절에 따라 예물을 바치게 하고 대왕의 밝은 명령을 받들도록 하여 그들의 종묘와 사직을 대왕께 맡기게 하고 병사들을 훈련시켜 대왕의 소용되는 바대로 움직이게 하겠습니다. 대왕께서 능히 진실된 마음으로 어리석으나마 신의 계책을 채용하신다면 한(韓), 위(魏), 제(齊), 연(燕), 조(趙), 위(衛) 등의 절묘한 음악과 미녀들로 대왕의 궁전은 가득 찰 것이고 연(燕)과 대(代)에서 나는 낙타와 훌륭한 말은 대왕의 마구간을 채울 것입니다. 그래서 합종을 행한다는 것은 즉 초나라가 천하의 왕이 됨을 의미하고, 연횡이 성공하는 것은 진나라가 제왕이 됨을 의미합니다. 오늘 패왕의 공업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버리고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은 신이 가만히 생각해 보건대 대왕을 위해서 취할 계책이 아닙니다.

무릇 진나라는 호랑이나 이리와 같은 흉악한 나라로 항상 천하를 병탄할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 진나라는 천하의 원수나라임에도 연횡을 행하자고 하는 자들은 모두 제후들로 하여금 땅을 떼어 주고 진나라를 받들자고 합니다. 이것은 소위 원수를 길러서 받드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대저 남의 신하된 자가 그 주인으로 하여금 땅을 떼어 강대하며 호랑이나 이리와 같은 진나라와 외교를 맺도록 하여 침략을 당하게 하는 행위는 대역불충한 자들로 이보다 더 큰 죄는 없습니다. 따라서 합종을 행함은 제후들로 하여금 땅을 떼어 초나라를 섬기게 하는 것이며 연횡을 행함은 초나라의 땅을 떼어주고 진나라를 받들자고 하는 행위입니다. 이 두 가지 계책은 그 차이가 매우 큽니다. 대왕께서는 어느 계책을 따르시겠습니까? 이런 이유로 패국의 조왕께서는 신을 보내 어리석은 계책이나마 올려 대왕의 밝고 확실한 공약을 받들어 오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것은 초나라 대신들을 깨우치게 하는 대왕의 효유(曉喩)에 달려있습니다.

초왕이 대답했다.

「우리 초나라는 서쪽으로 진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습니다. 파(巴)와 촉(蜀)을 병탄한 진나라는 우리의 한중(漢中)까지 넘보고 있습니다. 진나라는 호랑이나 이리와 같은 아주 흉악한 나라라 결코 가까이 지낼 수 없습니다. 한(韓)과 위(魏) 두 나라는 항상 진나라의 침략으로 위협을 받고 있음으로 해서 그들과는 계책을 깊이 의논할 수 없었습니다. 만일 그들과 계책을 깊이 의논한다면 그들은 우리를 배반하고 진나라에 우리의 계책을 폭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계책을 시행도 해보기 전에 우리 초나라는 위험에 빠질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헤아려 보건대 초나라만으로는 진나라에 대항한다면 반드시 이길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조정에는 계책을 같이 의논할 만한 신하들도 없었고 그리고 또한 그들을 믿을 수도 없었습니다. 때문에 나는 침상에 누워 편안히 잠도 청하지 못하고 무엇을 먹어도 단 맛을 못 느끼고 심신은 황량해져 공중에 매달린 깃발처럼 흔들려 마음을 의지할 만한 곳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경은 천하통일을 위해서 제후들을 단결시키고 위기에 처한 열국들을 보존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과인은 황공한 마음으로 원컨대 나라를 경에게 부탁하여 처분에 따르기로 했소.」

그래서 합종은 성사되었고 육국은 한 마음으로 협력하게 되었다. 소진은 합종을 주관하는 맹약장(盟約長)이 되고 동시에 육국의 재상을 겸하게 되었다.

소진이 합종이 성사 되었음을 조왕에게 고하기 위해 북쪽으로 올라가다가 중도에 낙양을 들르게 되었다. 소진의 뒤를 따르는 수레와 마필들은 재물을 만재하고 제후들이 소진을 호송하기 위해 파견한 사자들로 인해 그 행렬은 마치 제왕(帝王)과 같았다. 주현왕(周顯王)이 그 소식을 듣고 해를 입지나 않을까 두려워하여 사람들 시켜 도로를 청소케 하고 다시 사신을 보내 소진의 일행을 교외에서 영접하고 노고를 위로케했다.

소진의 형제, 처, 형수 등은 모두 곁눈으로 볼뿐 감히 고개를 들고 그 얼굴을 정면으로 쳐다보지 못했다. 그들은 모두 땅을 쳐다보며 지극히 공손한 태도로 소진이 식사하는 것을 시중들었다. 소진이 웃으면서 그의 형수에게 말했다.

「예전에 제가 집에 있을 때는 저에게 그렇게 거만하게 구시더니, 지금은 어찌 이렇게 공손하신 것입니까?」

소진의 형수가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사죄의 말을 했다.

「나는 지금 시숙의 지위가 높고 부귀한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소진이 듣고 길게 탄식하며 말했다.

「나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 같은 사람인데, 가난할 때는 친척도 경시하더니 부귀해지자 나를 높이 받들며 두려워하니 하물며 일반 백성들이야 오죽하겠는가? 만일 내가 낙양성 외곽에 전답이 2경(頃)69)이라도 있었더라면 내 어찌 허리에 육국의 재상의 인장을 찰 수 있었으랴!」

소진은 천금의 재물을 풀어 종족들과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처음 소진이 연나라로 들어갈 때 노자로 쓰라고 100전의 돈을 빌려 준 사람에게는 백금(百金)의 돈으로 갚았다.70) 또한 이전에 그에게 은혜를 베푼 사람들에게는 모두 상응하는 보답을 했다. 그의 수행원 중 유독 한 사람만이 소진으로부터 보답을 받지 못하자 그가 직접 소진을 찾아가 하소연했다. 소진이 말했다.

「나는 그대를 잊은 것이 아니다. 처음 그대가 나를 따라 연나라에 들어갔을 때, 역수(易水) 강변에 이르자, 그대는 세 번이나 나를 떠나려고 했었다. 그때 나는 참으로 곤궁한 처지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나를 떠나려고 했던 그대를 매우 원망했었다. 그래서 그대에게 보상하는 것을 제일 뒤로 미루었다. 이제 그대에게도 보상을 해 주겠다.」

소진이 육국의 합종을 위해 맹약을 맺고 조나라로 돌아오자 조숙후(趙肅侯)가 그 공으로 그를 무안군(武安君)으로 봉했다. 이어서 소진은 합종을 행한 맹약서를 진나라에 보냈다. 이후로 15년 동안 진나라는 감히 함곡관 서쪽의 나라를 넘보지 못했다.

후에 진나라는 서수(犀首)를 사신으로 파견하여 제와 위 두 나라를 속여 그들로 하여금 조나라를 공격하도록 함으로 해서 함종을 깨트리려고 했다. 제와 위 두 나라가 조나라를 공격하자 조왕은 소진을 책망했다. 소진은 두려워하여 연나라로 사신으로 가기를 자청하여 반드시 제나라에게 보복하겠다고 했다. 소진이 조나라를 떠나자 합종은 결국 와해되고 말았다.

주현왕(周顯王) 36년 기원전 333년 진혜왕(秦惠王)이 그의 딸을 연나라의 태자비로 시집보냈다. 그 해에 연문후(燕文侯)가 죽고 태자가 즉위했다. 이가 연이왕(燕易王)이다. 제선왕은 연나라에 상이나 연이왕이 막 즉위하여 정사에 어두어 나라가 혼란한 틈을 기회로 연나라를 공격하여 10여 개의 성을 연달아 함락시켰다. 이에 연왕이 소진에게 말했다.

「예전에 선생께서 연나라에 들어왔을 때 선왕께서는 경비를 내어 선생이 조왕을 알현하도록 도왔소. 그때서야 비로소 육국의 합종이 이루어졌소. 그런데 지금 제나라가 앞장서서 조나라를 공격하더니 계속해서 진격하여 우리 연나라를 공격하고 있소. 그것은 모두 선생으로 인해 일이난 일이라고 할 수 있소. 이로써 우리 연나라는 천하의 웃음거리고 되고 말았소. 선생께서는 능히 연나라가 빼앗긴 영토를 수복해줘야 되지 않겠소?」

소진은 매우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청컨대 대왕을 위해 제나라에 빼앗긴 땅을 찾아오도록 하겠습니다.」

소진은 제나라로 들어가 제선왕을 만나 두 번을 절하고, 재배를 하고 일어나더니 허리를 굽혀 경하의 말을 올리고 다시 얼굴을 들어 하늘을 보며 애도를 표시했다. 제왕이 의아해 하며 물었다.

「경하와 애도의 표시를 연속해서 행하는 이유가 무엇이오?」

「사람이 아무리 굶주려도 오훼(烏喙)71)라고 하는 독초만은 먹지 않은 이유는 그것이 배에 가득차면 찰수록 굶어죽는 것과 똑같은 해를 입기 때문입니다. 지금 연나라는 비록 약소국이지만 그 왕은 강대한 진나라의 작은 사위입니다. 대왕께서 연나라의 10개 성을 취하여 오랫동안 점령하여 그 이를 취한 반면에 강대한 진나라와는 원수를 맺게 되었습니다. 오늘 약한 연나라가 기러기 떼의 선두처럼 선봉이 되고 강대한 진나라가 그 뒤를 엄호하며 달려온다면 제나라는 천하의 정예병들을 불러들여 공격을 받게 되는 경우가 되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마치 배가 고프다고 오훼를 먹는 행위입니다.」

제왕의 안색이 변하더니 걱정하는 기색이 되어 정색하며 물었다.

「그렇다면 내가 어찌해야 하오?」

「옛날부터 일을 처리하는데 능숙한 사람은 화를 복으로 바꾸고 실패를 성공으로 이끌 수 있다고 했습니다. 대왕께서 진실로 저의 계책을 채용하실 수 있다면 지금 즉시 연나라의 10개에 달하는 성을 돌려주어야만 합니다. 아무런 이유 없이 10개의 성을 돌려받은 연나라는 틀림없이 기뻐할 것입니다. 자기 때문에 연나라가 10개의 성을 돌려받게 된 사실을 진왕이 알면 그 역시 기뻐할 것입니다. 이것은 원수의 마음을 바꿔 반석과 같은 굳은 우의의 친구로 만드는 일입니다. 이렇게 되면 연과 진 두 나라가 같이 달려와 제나라를 받들게 됩니다. 그때 천하에 호령을 내리시는 대왕께 그 누가 감히 복종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대왕께서 빈말로 진나라를 귀의케 하고 10개의 성으로 천하를 얻게 되어 패업의 공을 이루게 되는 일입니다.」

제왕이 ‘좋습니다.’라고 대답하고 소진의 말을 쫓아 10개의 성을 연나라에 돌려주었다.

어떤 사람이 소진을 비방했다.

「소진은 오른쪽과 왼쪽을 왕래하는 위인으로 나라를 팔아먹고, 반복무상한 신하라 장차 란을 일으킬 것입니다.」

소진이 죄를 얻을까 두려워하여 연나라로 돌아갔으나 연왕은 그에게 벼슬을 내리지 않았다. 소진이 연왕을 접견하고 말했다.

「저는 동주의 한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비루하고 천한 사람입니다. 한 점의 공도 세우지 못했음에도 대왕께서는 종묘사직 앞에서 저에게 관직을 수여하시고 조정에서는 저를 예로써 대했습니다. 오늘 저는 대왕을 위해 제나라의 군대를 물러가게 했으며 또한 제나라에 빼앗긴 10개의 성을 회수해 왔으니 마땅히 대왕께서는 저를 더욱 친근하게 대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연나라로 돌아온 저에게 관직을 내리시지 않음은 틀림없이 어떤 사람이 저를 불충한 죄명으로 대왕께 중상했을 것입니다. 사실은 저의 불충은 대왕께 복입니다. 신은 듣건대 충성된 자는 스스로 자신을 위하고 진취한 자가 분발하는 이유는 남을 위하기 때문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저는 제왕(齊王)을 향해 유세를 행했지 결코 속이지는 않았습니다. 또한 제가 노모를 동주에 머무르게 한 일은 원래 본인의 개인적인 명성을 세우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 진취하는 자가 되기로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만일 증삼(曾參)과 같은 효자, 백이와 같은 고결한 인격의 처사, 미생(尾生)72)과 같은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 있어, 이 세 사람으로 하여금 대왕을 섬기도록 하면 대왕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대단히 만족스럽게 생각하겠소.」

「증삼과 같은 효자는 그의 부모에게 효도를 행하기 위해 결코 하루 밤도 그 곁을 떠나 밖에서 잠을 자지 않습니다. 그와 같은 사람을 대왕께서는 어떤 방법으로 능히 그를 천리 밖의 연나라로 오게 하여 위기에 빠진 약소한 연나라 군주를 위해 봉사하게 하겠습니까? 고결한 정신의 소유자 백이는 의를 굳게 지켜 고죽국(孤竹國)의 국왕 자리도 마다했으며, 주무왕의 신하가 되는 일도 달갑게 생각하지 않은 나머지 제후의 봉작도 받아들이지 않고 결국은 수양산에 들어가 굶어죽고 말았습니다. 그와 같이 고결한 사람을 대왕은 무슨 방법으로 능히 천리 밖의 제나라에 가게 해서 한 번의 사업으로 10개에 달하는 성읍을 찾아오게 할 수 있겠습니까? 신의(信義)의 대명사 미생은 한 여자와 다리 밑에서 밀회하기로 약속했으나 강물이 불자 약속 때문에 자리를 뜨지 못하고 교각을 붙들고 기다리다가 결국은 물에 빠져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은 신의의 인물을 대왕께서는 또한 무슨 방법으로 능히 그를 천리길을 가게 해서 강대한 제나라의 군대를 물러가게 하겠습니까? 저는 대왕께 충성스럽고 성실했기 때문에 죄를 얻었을 뿐입니다.」

「그대가 불충하고 성실하지 못했기 때문이지 어찌 충성스럽고 성실했기 때문에 죄를 얻었다고 하겠소?」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이런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먼 지방의 관리가 되어 집을 떠나 있게 되자 그의 처가 다른 남자와 간통을 했습니다. 그녀의 남편이 빨리 집에 오고 싶어 한다는 소식을 듣고 정부가 걱정했습니다. 그 처가 말했습니다.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이미 술에 독을 타서 준비해 놓고 그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3일 후에 그 여자의 남편이 돌아왔습니다. 그 처가 시첩에게 독이 든 술을 주어 남편에게 권하게 했습니다. 시첩은 술에 독이 있음을 그 주인에게 알리려고 했으나, 그녀가 고하면 그 부인이 내쫓기게 될까 두려웠고, 말을 하지 않으면 그 주인이 죽게 될까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시첩은 일부러 넘어져 독주를 엎질렀습니다. 그 주인이 대노하여 시첩에게 50대의 태형을 가했습니다. 그러나 그 시첩이 독약이 든 술을 엎지름으로 해서 위로는 그 주인의 목숨을 보존케 했고, 밑으로는 그 부인이 쫓겨나지 않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공을 세우고도 태형을 면하지 못했으니 충성스럽고 성실했음에도 어찌 죄를 얻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신의 잘못은 불행하게도 이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선생에게 다시 벼슬을 내리도록 하겠소.」

연왕은 소진을 옛날보다 더욱 후하게 대했다.

연이왕의 모친은 문후(文侯)의 부인이다. 소진이 태후와 사통하자 이왕이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왕은 오히려 소진을 더욱 극진하게 대했다. 이에 소진은 주살될 것을 두려워하여 연왕에게 말했다.

「신이 연나라에 머물러 있으면 연나라의 지위를 중요하게 만들 수 없으나 제가 제나라에 가있게 된다면 연나라의 지위를 중요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오로지 선생의 뜻대로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소진은 거짓으로 연왕에게서 죄를 얻은 것으로 꾸민 후 제나라로 도망쳤다. 제선왕은 그를 객경(客卿)으로 삼았다.

제선왕(齊宣王)이 죽고 민왕(湣王)73)이 뒤를 이었다. 소진은 민왕에게 권하여 지나칠 정도로 허세를 부려 장엄하고 화려하게 장례를 치르게 하여 효도를 밝히게 하고 높은 궁궐을 짓고 대대적으로 식물원과 동물원을 조성케 하여 자기의 만족하는 뜻을 명백하게 들어나게 하니 그것은 모두 제나라를 피폐하게 하여 연나라를 도우려는 소진의 계산에서였다. 연나라에서도 이왕(易王)이 죽고 쾌(噲)가 뒤를 이어 국왕의 자리에 올랐다. 후에 제나라의 많은 대부들이 소진과 민왕의 총애를 다투다가 그 중 한 사람이 자객을 보내 소진을 찔러 죽이려고 했다. 소진이 현장에서 즉사하지 않고 칼에 찔린 채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도망쳐 제왕에게 고했다. 제왕이 사람을 시켜 소진을 찌른 자객을 체포하도록 했으나 찾지 못했다. 이윽고 소진의 숨이 넘어가려고 할 때 제왕에게 말했다.

「제가 죽게 되면 대왕께서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시정에서 저의 시신을 거열형에 처하시고 방을 붙여 ‘소진은 연나라를 위해 제나라에서 반역을 도모했음으로 이와 같은 형에 처했다.’라고 공표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면 저를 찌른 자객을 틀림없이 잡을 수 있습니다.」

제민왕이 소진의 말대로 행했더니 과연 자객이 스스로 몸을 나타냈다. 제왕 은 그 자객을 잡아서 죽였다. 연왕이 그 소식을 듣고 말했다.

「제나라가 소진을 위해 원수를 갚아 주었으나, 그 방법이 참으로 심하구나!」

소진이 죽고 얼마 후에 연나라를 위해 제나라를 피폐시키려고 했던 그의 활동이 대대적으로 누설되었다. 제나라는 그 사실을 알고 연나라에 대해 분노했다. 연왕은 제나라의 보복을 두려워했다.

소진에게는 소대(蘇代)와 소려(蘇厲)라는 동생이 있었다. 두 형제는 소진 형의 뒤를 따라 유세학을 공부했다. 이윽고 소진이 죽자 소대가 연왕에게 접견을 청하고 그의 형이 뒤를 잊고 싶다고 하면서 말했다.

「신은 동주의 촌 구석에 살던 사람입니다. 가만히 들으니 대왕께서 품은 뜻이 높고 천한 춘신에 불민한 사람도 불초하지만 호미와 괭이를 버리고 대왕을 모시기 위해 달려왔습니다. 도중에 한단에 들렸으나 .제가 동주에 있을 때 들은 소문과는 달라 신은 마음속으로 매우 실망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윽고 연나라에 당도하여 왕과 신하들을 보니 대왕께서는 천하의 현명한 군주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대가 소위 말하는 현명한 왕이란 어떤 사람을 말하는가?」

「신은 듣기에 현명한 왕이란 그의 과오에 대해 듣기를 열심히 하고 그의 훌륭한 점에 대해서는 듣기를 원치 않는다고 했습니다. 신은 원하옵건대 왕의 과오를 여쭙게 하옵소서. 무릇 조나라는 연나라의 원수 나라인 반면에 초와 위 두 나라는 연나라의 우방국입니다. 오늘 원수의 나라를 받들어 우방국을 정벌하려고 하시니 이는 연나라에 이익이 되는 일이 아닙니다. 왕께서는 이 점을 숙고하시면 이는 곧 잘못된 계책이라는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런 말을 듣지 못하니 신하들은 충신이 아닙니다.」

「무릇 과인의 원수 나라라 과인이 정벌하고자 하나 단지 우리 연나라가 피폐해져 약해진 국력을 근심할 뿐이요. 그대는 능히 연나라를 위해서 연나라 국력으로 제나라를 정벌할 수 있다면 과인은 나라를 들어 그대에게 맡기겠소.」

「지금 천하에는 서로 간에 전쟁을 벌릴만한 나라가 일곱이 있는데 그 중 연나라가 국력이 가장 약하기 때문에 단독으로 싸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연나라가 어느 한 나라에 붙는다면 그 나라가 어느 나라이건 중하게 됩니다. 즉 연나라가 초나라에 붙는다면 초나라가 강해질 것이고, 서쪽의 지난라에 붙는다면 진나라가 강해집니다. 또한 중원의 한위(韓魏)에 붙는다면 한위가 강해집니다. 뿐만 아니라 의지하는 나라가 강해지면 이는 자연히 대왕의 명성과 위세가 높아지게 됩니다. 오늘날 제나라의 늙은 군주는 고집불통으로 남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남쪽으로는 5년 째 초나라를 공격하여 축적했던 군량과 재물을 모두떨어지고 서쪽으로는 진나라를 몰아부쳐 사졸들은 피로에 지쳐있습니다. 또 북쪽으로는 연나라와 싸워 그 삼군을 복멸시키고 장군 2명을 사로잡았으며 그런 후에 그 남은 병력을 남쪽으로 돌려 5천 승의 대국 송나라를 점령하여 12제후들을 아우려고 합니다. 이것은 군주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백성들의 힘을 소진시키는 일이라 취할 바가 못 됩니다. 이에 신은 듣기에 전쟁을 빈번히 일으키면 백성들이 피곤하고 용병을 우래하면 군사들은 지친다고 했습니다.」

「내가 들으니 제나라는 청하(淸河)와 제수(濟水) 및 탁하(濁河)에 의지하여 견고하게 지킬 수 있고 장성(長城)과 거방(鉅防)을 요새로 삼을 만하다고 하는데 정말로 그렇소?」

「천시(天時)가 그 나라를 돕지 않으면 비록 청하나 제수 및 탁하가 있다하나 어찌 그런 것들을 견고하다고 할 수 있겠으며 비록 장성이나 거방이 있다하나 어찌 그런 것들을 요새로 삼을 수 있겠습니까? 또한 옛날 제서(濟西)에서 군사를 징집하지 않은 이유는 조나라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서였고, 하북에서 징집하지 않은 이유는 연나라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제서나 하북의 군사를 남김없이 모두 징발하여 경내가 모두 피폐해지고 말았습니다. 무릇 교만한 군주는 이를 다투게 되어있고 망국의 신하는 재물을 탐하게 되어있습니다. 왕께서는 성의를 다하여 사랑하는 아들, 모친, 동생들을 인질로 보내는 일과 다시 보물과 주옥 및 비단으로 제왕의 측근들을 모시는 일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으신다면 장차 연나라에 덕을 베풀고 경솔하게 송나라를 멸망시키려고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장차 제나라를 멸망시킬 수 있습니다.」

「나는 마침내 그대로 인하여 하늘의 명을 받았음이오!」

연나라는 즉시 왕의 아들을 인질로 제나라에 보냈다. 이에 소려는 연나라의 인질을 이용하여 제왕의 접견을 청해 만났다. 소진의 반간활동을 원망하고 있던 제왕이 소려를 감옥에 가두려고 했다. 연나라의 인질로 온 공자가 소려를 위해 용서를 빌자 소려는 몸을 굽혀 제나라의 신하가 되었다.

  연나라의 재상 자지(子之)와 소대가 혼인으로 맺고 연나라의 정권을 차지하려고 했다. 그래서 즉시 소대를 인질로 보내는 공자의 시종으로 제나라에 보냈다. 이에 제나라는 소대를 다시 연나라에 보내 복명케했다. 연왕 쾌가 소대에게 물었다.

「제왕이 패자를 칭할 수 있겠소?」

「할 수 없습니다.」

「어째서요?」

「신하들을 불신하고 있어서입니다.」

그래서 연왕 쾌는 연나라 정사에 대한 전권을 자지에게 일임하고 종내에는 왕위를 물려주었다. 이에 연나라는 대란이 일어났다. 그 틈을 나서 제나라가 연나라를 쳐들어와 연왕 쾌와 자지를 살해했다. 연나라는 공자 직(職)을 추대하여 연왕으로 세웠다. 이가 연소왕(燕昭王)이다. 이 일로 인해 소대와 소려는 감히 연나라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고 결국에는 제나라에 귀의했다. 제나라는 두 사람을 잘 대우했다.

위나라가 연나라를 위해 경내를 지나가던 소대를 붙잡아 두었다. 제나라가 사자를 보내 위왕에게 말했다.

「제나라가 새로 점령한 송나라 땅을 경양군(涇陽君)의 봉지로 바치려고 해도 진나라는 필시 받지 않을 것입니다. 진나라가 제나라로부터 송나라 땅을 얻는 일이 이익이 되서가 아니라 제왕과 소자(蘇子)를 믿지 못해서입니다. 지금 제와 위 두 나라가 이 처럼 심히 불화하니 제나라는 감히 진나라를 속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진나라가 제나라를 믿으면 두 나라는 서로 마음을 합치면 경양군은 송나라 땅을 얻을 것입니다. 그것은 위나라에 이롭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니 왕께서는 소자를 동쪽의 연나라로 보내지 마십시오. 진나라는 필시 제나라에 대해 의심하는 마음을 품게 되고 또한 소자도 믿지 않을 것입니다. 제와 진 두 나라가 서로 합치지 않으면 천하의 형세는 큰 변화가 없어 제나라를 정벌하려는 환경이 조성될 것입니다.」

그래서 위나라는 소대를 나라 밖으로 보내주었다. 소대가 송나라로 들어가자 송나라는 그를 잘 대우했다.

제나라가 송나라를 공격하자 위급하게 된 송나라가 소대를 연나라에 보내 편지를 연소왕에게 바치게 했다.

「무릇 만승의 나라 왕 자리에 있으면서도 제나라에 인질을 보냄은 명성이 실추되고 권위가 가볍게 되는 일입니다. 또한 만승의 나라 왕이 만승의 나라 왕의 명을 받들어 송나라를 침은 백성은 지치고 국고는 탕진됩니다. 무릇 송나라를 점령한 제나라는 초나라의 회북지역을 차지하여 다욱 큰 나라가 될 것이고 또한 원수의 나라를 강대하게 하고 연나라를 해치는 일입니다. 이 세 가지 계책은 모두 연나라에게는 큰 재앙입니다. 그러함에도 왕께서 이 일을 행하려고 함은 장차 제나라로부터 신임을 얻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그러나 제왕은 더욱 더 왕을 믿지 않을 것이고 연나라를 싫어하기를 더욱 심하게 할 것입니다. 따라서 왕의 이런 계쳑은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무릇 송나라땅에 회북(淮北)의 땅을 보탠다면 만승의 나라에 해당하는 영토가 되어 제나라와 맞먹는 또 다른 제나라가 생기게 되는 일입니다. 사방 7백리에 당하는 북이(北夷)의 땅을 노(魯)와 위(衛) 땅에 합친다면 또한 만승의 나라에 해당하는 영토가 되어 원래의 제나라와 맞먹는 또 다른 제나라가 생겨 이는 두 번째 제나라입니다. 하나라의 제나라 강한 군사력도 못 당해 지탱할 수 없는데 지금은 세 개의 제나라에 임하려고 하니 그 화는 필시 클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있는 사람은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화를 복으로 돌리고 실패를 성공으로 이끕니다. 제나라 산의 자색 비단은 못쓰는 흰색 비단을 물들인 것이나 그 가격은 다른 비단보다 10배나 비쌉니다. 회계산에 들어가 농성했던 월왕 구천이 강력한 오나라를 멸하고 천하를 지배하는 패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화를 복으로 만들고 실패를 성공으로 만든 일이었습니다. 지금 왕께서 화를 복으로 돌리고 실패를 성공으로 만들려고 하신다면 제나라를 패자로 부추겨 높이고 사자를 주왕실에 보내 제나라를 맹주로 받드리고 맹세하고 진나라와 맺은 맹약의 부절을 불태우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게 하십시오. ‘ 가장 좋은 계책은 진나라를 무찌르는 일이고 그 다음의 계책은 진나라를 멀리하는 일입니다.’진나라가 배책을 당해 파멸을 기다리게 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면 진왕은 필시 걱정할 것입니다. 진나라의 군주들은 오대에 이르는 동안 계속해서 제후들을 정벌해왔으나 지금은 제나라 밑에 있어 진왕의 마음은 진실로 제나라를 궁지로 몰아 놓을 수만 있다면 온 나라의 힘을 기우려 공업을 이루려는 일을 꺼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한즉 왕께서는 어찌하여 변사를 진왕에게 보내 다음과 같이 유세하도록 시키지 않습니까?

<연·과 조 두 나라가 송나라를 파한다면 제나라를 살찌우게 하고, 제나라를 높여 그 밑에 들어가는 일을 감수하게 되니 이는 연·조 두 나라에게 이로운 일이 아닙니다. 연·조 두 나라에게 유리하지도 않은데 이러한 형세가 된 것은 바로 진왕 전하 당신을 믿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왕께서는 어찌하여 사자를 보내어 믿을 만한 사람을 사자로 보내 연·조 두 나라를 진나라 편으로 끌어들이지 않습니까? 먼저 경양군과 고릉군(高陵君)을 연조 두나라에 보내 진나라가 마음을 변하는 경우를 대비해 인질로 삼게 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연조 두 나라는 진나라를 믿을 것입니다. 연후에 진나라는 서제(西帝),연나라는 북제(北帝),조나라는 중제(中帝)가 되어 삼제가 마음을 합하여 천하를 호령할 수 있습니다. 韓魏(한위)가 말을 듣지 않으면 진나라가 정벌하고 제나라가 말을 듣지 않으면 연조가 정벌하면 천하의 어떤 나라가 말을 듣지 않겠습니까? 천하가 진나라에 복종하면 한위 두 나라를 이끌고 제나라를 정벌하면서 송나라 땅을 돌려주고 회북의 땅을 초나라에 반환하라고 하십시오. 제나라가 송나라 땅을 돌려주고 회북의 땅을 초나라에 반환하는 것은 연조 두나라에 이익이 되는 일입니다. 즉 삼제(三帝)가 나란히 서는 것은 연조도 바라는 일입니다. 무릇 실제적인 이득을 얻고 원하는 바의 존귀한 지위를 얻는다면 연조는 제나라 버리기를 마치 헌신짝 버르듯이 할 것입니다. 오늘날 연조를 진나라에 편에 끌어들이지 않는다면 제나라는 필시 패업을 이루게 됩니다. 제후들이 제나라를 따르고 있는데 왕만이 따르지 않는다면 제후들의 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제하둘이 제나라를 따르는데 진왕께서 따른다면 그것은 또한 이름이 실추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연조를 끌어들이면 나라는 안정을 취하고 이름을 높일 수 있으나 연조를 한편으로 끌어들이지 않는다면 나라는 위태롭게 되고 이름은 실추됩니다. 무릇 높은 이름과 안정을 버리고 실추된 이름과 불안을 취하는 일은 지혜로운 자의 행위가 아닙니다.>

진왕이 이 말을 들으면 그 마음은 마치 가시에 찔린 것 처럼 아플 것입니다. 그런데 왕께서는 어찌하여 변사를 사자로 보내 이와 같은 내용으로 진나라에 유세를 행하게 하시지 않으십니까? 이렇게 한다면 진나라는 틀림없이 끌어들일 수 있고 제나라를 틀림없이 공격할 것입니다. 무릇 진나라를 한편으로 끌어들이는 일은 훌륭한 외교이고 제나라를 정벌하는 일은 정당한 나라의 이익입니다. 훌륭한 외교를 행하고 정당한 이익에 힘쓰는 것은 성왕의 일입니다.」

그 편지를 훌륭하다고 생각한 연소왕이 말했다.

「선군이 소씨들에게 덕을 베풀었는데 자지의 란을 일어나 소씨들은 연나라를 떠났다. 제나라에 원수를 갚기 위해서는 소씨들의 도움이 없이는 안될 것이다.」

그 즉시 연소왕은 소대를 불러 예전처럼 후하게 대접했다고 제나라를 정벌하는 계책을 세웠다. 마침내 제나라를 파하자 제민왕은 나라 밖으로 도망쳤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진왕이 연왕을 소환했다. 연왕이 부름에 응하려고 하자 소대가 만류하며 말했다.

「초나라가 軹(지) 땅을 얻은 후에 나라가 망했고, 제나라는 송나라 땅을 얻은 후에 나라가 망했습니다. 제와 초 두 나라가 지 땅과 송나라 땅을 얻고 망했음은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제초 두 나라가 지 땅과 송나라 영토를 얻지 않았다면 진나라를 받들었는데 그 것은 어째서입니까? 즉 공업이 있는 자라면 누구를 막론하고 진나라의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기 때문입니다. 진나라가 천하를 취하는 방법은 의로운 행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폭력에 의해서입니다. 진나라는 폭력을 행사하면서 천하에 공포했습니다. 예를 들면 초나라에 다음과 같이 위협했습니다.

<촉 땅의 갑병을 문강(汶江)에서 배에 실어 여름의 물이 불었을 때 하류로 띄어 보내면 5일이면 수도인 영도(郢都)에 당도하고 한중의 갑병을 배워 실어 파(巴)에서 여름의 물이 불었을 때 띄어 보내면 4일이면 오저(五渚)에 이를 수 있소. 또한 과인의 친히 왕군을 이끌고 완현(宛縣)의 동쪽에서 나와 수읍(隨邑)으로 진공한다면 지모있는 자라도 미처 계책을 세울 수 없고 용기있는 자라로 감히 노하여 대항할 수 없는 사이에 과인은 마치 매를 쏘는 것처럼 재빨리 공격할 것이오. 그러함에도 초왕께서는 여전히 천하의 험처인 함곡관을 공격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으니 그것은 너무 아득한 일이 아니겠소?>

초왕은 결국 이로 인해 17년 동안을 진나라에 복종했습니다. 또 진왕은 한나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위협을 가했습니다.

<우리는 소곡(少曲)에서 출발하면 하루면 상당으로 통하는 태항산의 길을 끊을 수 있고, 의양(宜陽)에서 일어나 평양(平陽)과 마주보게 되면 2일이면 한나라 땅은 동요하지 않는 곳은 없게 되오. 내가 동서 양주(兩周)를 떠나 정성(鄭城)에 당도하여 한나라를 멸하는데는 5일이면 충분하오.>

이에 한나라는 그렇다고 생가하여 진나라를 받들었습니다. 다시 위나라를 향해 다음과 같이 경고했습니다.

<우리가 안읍의 군사를 일으켜 여극(女戟)을 막아버리면 한나라의 태원을 석권할 수 있소. 우리가 지읍(軹邑)을 함락시키고 남양(南陽)을 통하여 나아가 기읍(冀邑)을 봉쇄하고 동주와 서주를 포위할 수 있소. 여름에 불어난 하수의 물을 이용하여 빠른 배를 띄우고 강력한 쇠뇌부대를 앞세우고 예리한 창을 든 부대를 뒤따르게 한 후에 형택 어귀의 제방을 터뜨리면 위나라의 수도 대량성은 사라질 것이오. 어어서 백마진(白馬津) 어귀의 제방을 끊으면 위나라의 외황(外黃)과 제양(濟陽)은 사라질 것이오. 다시 숙서(宿胥) 어귀의 제방을 끊으면 허(虛), 돈구(頓丘)는 사라지고 말 것이오. 육로를 통하면 하내(河內)를 공격할 것이고 수로를 통하면 대량(大梁)을 칠 것이오.>

위나라가 수긍하고 진나라를 받들었습니다. 위나라의 안읍을 공격하면 제나라가 구원병을 보낼 것을 걱정했던 진나라가 송나라를 제나라에 맡기면서 말했습니다.

<송왕은 무도하여 나무로 과인의 인형을 만들어 그 얼굴을 쏜다고 합니다. 과인의 땅은 너무 멀어 군사를 보낼 수 없어 칠 수 없스니 제왕께서는 이 참에 능히 송나라를 무찔러 제나라 땅으로 하십시오. 과인이 얻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겠습니다.>

그래서 진나라는 안읍을 얻고 상당으로 통하는 길목인 여극(女戟)을 막았으며 이로 인하여 송나라를 명망시킨 죄명을 제나라에 덮어씌었습니다.

한나라를 공격하려고 했으나 천하의 제후들이 구원병을 보내지 않을까 걱정했던 진나라가 제나라에 대한 처리를 제후들에게 맡기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제왕은 과인과 4번 약속하여 4번 속였음습니다. 제왕은 필시 천하의 제후들을 이끌고 우리 진나라를 공격하려고 했던 일이 3번 있었습니다. 제나라가 존재하면 진나라는 망하고 진나라가 존재하면 제나라는 망합니다. 따라서 반드시 제나라를 정벌하여 멸망시켜야 합니다.>

그러나 진나라는 한나라의 의양(宜陽), 소곡(少曲), 조나라의 인(藺)과 석(石)을 빼앗아 가고는 도리어 제나라를 정벌한 죄를 천하의 제후들에게 물었습니다. 후에 다시 초나라와 동맹을 맺은 후에 위나라를 공격하려던 진왕이 초나라와 동맹을 맺고 남양을 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과인은 본래부터 한나라와 절교하려고 했습니다. 만일 초나라가 한나라의 균릉(均陵)을 깨뜨리고 맹액(鄳阨)을 막는 일이 초나라에 이익이 된다면 과인이 그곳을 점령한 것처럼 여길 것입니다. >

그래서 위나라가 함종을 버리고 진나라와 연횡하자 진나라는 맹액의 요새를 막은 행위에 대해 초나라에 죄를 물었습니다. 진나라 군사들이 위나라를 공격하다가 임중(林中)에서 위험에 처했을 때 연과 조 두 나라가 힘을 합칠 것을 두려워하여 연나라에는 교동(膠東)을 조나라에는 제서(濟西)를 주었습니다. 이윽고 위나라와 강화를 맺은 진나라는 위나라의 공자 연(延)을 인질로 잡고 서수를 장수로 삼아 조나라를 공격하게 했습니다. 다시 진나라 군사들이 초석(譙石)에서 조나라 군사들에게 패하고 다시 양마(陽馬)에서 패퇴하자 위나라와 강화를 맺고 엽(葉)과 채(蔡) 땅을 주었습니다. 후에 조나라와 강화하자 다시 위나라를 겁박하여 주기로 한 땅을 할양하지 않았습니다. 싸우다가 곤란한 지경에 이르면 태후의 동행 양후(穰侯) 위염(魏冉)을 시켜 강화를 맺게 하고 유리하면 모후와 외삼촌을 속였습니다. 연나라의 잘못을 책망할 때는 교동(膠東)을 빼앗아간 일을 구실로 삼고, 조나라의 잘못을 지적할 때는 제서(濟西)를 빼앗아 간 일을, 위나라를 비난할 때는 엽과 채를 빼앗아 간 일을 구실로 했으며 제나라를 책할 때는 송나라의 일을 구실로 삼았습니다. 진왕이 남을 책망할 때의 말은 둥근 고리처럼 돌고 돌아 말의 끝과 시작이 없게 만들었으며 용병을 할 때는 마치 나는 새처럼 재빠르게 행동하여 모친도 그 행동을 막지 못했으냐 외삼촌은 약속을 지킬 수 없었습니다. 용가지전(龍賈之戰),안문지전(岸門之戰),봉릉지전(封陵之戰),고상지전(高商之戰),조장지전(趙莊之戰)등의 싸움에서 진나라가 살해한 삼진의 백성들은 수백 만 명에 달하여 지금의 살아있는 자들은 모두 지나라가 죽인 군사들의 고아와 과부들입니다. 진나라로부터 전화를 입은 삼진의 땅은 서하(西河) 이외도 상락(上雒), 삼천(三川) 등 삼진의 영토 절반에 이릅니다. 진나라로 받은 전화는 이처럼 큽니다. 그러함에도 진나라에 들어간 연조의 유세가들은 모두 그 군주들에게 경쟁이나 하듯이 진나라를 섬기라고 강권하고 있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신이 크게 걱정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연소왕은 진나라에 들어가지 않았고 소대는 다시 연나라에서 중용되었다.

연나라는 소진 살아있었을 때처럼 제후들과 합종을 시도했으나 어떤 나라는 따르고 어떤 나라는 따르지 않았다. 그러나 천하는 소씨들로 인하여 합종을 원칙으로 생가각하게 되었다. 소대와 소려는 천수를 누리다가 죽어 그 이름을 제후들 사이에 떨쳤다.

태사공이 말한다.

「소진 삼형제는 모두 제후들에게 유세를 행하여 이름을 떨쳤다. 그들의 유세술은 권모(權謀)와 변사(變詐)에 뛰어났다. 그러나 소진은 연나라에서 반간활동을 하다가 죽음으로써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어 사람들은 그의 유세술을 배우기를 기피했다. 그러나 세상의 소진에 대한 평가는 이견이 많다. 다른 시대에 발생한 유사한 일이라도 모두 소진이 행한 일이라고 갖다 부쳤다. 무릇 소진은 평민의 신분에서 몸을 일으켜 육국의 합종을 이뤄냈으니 그 지혜가 일반 사람과 비해 매우 뛰어 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그의 행한 일을 때의 순서에 따라 기록하여 유독 그에게 가해진 악명만을 덮어씌우려고 하지 않았다.」

주석

1)귀곡선생(鬼谷先生)/ 전국 때 제나라의 출신의 종횡가로 이름은 전하지 않는다. 일설에는 초나라 출신이라고도 한다. 지금의 하남성 방성(方城) 부근의 영천(穎川) 양성(陽城)의 귀곡(鬼谷)이라는 곳에 은거하여 살았기 때문에 귀곡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했다. 귀곡(鬼谷)은 일설에는 지금의 섬서성 경양(涇陽)의 부풍(扶風)의 지양(池陽) 부근이라고도 한다. 그의 사상은 황노(黃老)의 <심술(心術)>에서 출발했다. 세상의 일을 논하여 일을 도모함에 있어서 우선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는 <반응(反應)> 단계를 거쳐, 자기의 마음으로써 미루어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췌마(揣摩)>에 이르러, 마침내 상대방의 마음의 문을 열게하는 <비합(俾闔)>의 술로 발전시키여 한다고 함으로 해서 전국시대 유세가들의 조종(祖宗)이 되었다. 장의(張儀)와 소진(蘇秦)은 그의 제자이며 <귀곡자(鬼谷子)> 3편이 수서(隋書) 경적지(經籍志)에 실려있으나 일설에는 소진이 저술하고 신비감을 보태기 위해 그의 이름을 빌린 것이라고도 한다.

2)음부경(陰符經)/ 전국책(戰國策)에 태공 여상(呂尙)이 지은 병법서라고 전해지나 실전되어 전해지지 않는다. 지금 전해지는 음부경(陰符經)이라는 책은 황제가 저술했다고 하며 후에 태공(太公), 범려(范蠡), 귀곡자(鬼谷子), 장량(張良), 제갈량(諸葛亮), 이전(李筌) 등의 주가 달려있는 병법서라기 보다는 일종의 도가서이다. 이전(李筌)은 입산하여 신선이 되었다는 당나라 때의 도가(道家)다.

3)주현왕(周顯王)/ 기원전 396년부터 321년까지 즉위한 전국시대 동주의 군주다. 주열왕(周列王)의 동생으로 이름은 편(扁)이다.

4)진혜왕(秦惠王)/재위 기원전 337-311년이다. 진효공으로 아들로 태자시 상앙에게 원한을 품고 있다가 효공이 죽고 진왕의 자리에 오르자 상앙을 반역으로 몰아 거열형에 처했다.

5)마(馬)/ 지금의 산서성 삭현(朔縣)이다.

6)조숙후(趙肅侯)/ 재위 기원전 349-326년 이름은 어(語)다. 조성후(趙成侯)의 태자로 성후가 죽자 공자 설(紲)과 후계자 자리를 놓고 싸워 이김으로써 기원전 349년 조나라 군주의 자리에 올랐다. 재위 기간 중 제(齊)와 위(魏) 등의 나라와 빈번하게 싸움을 벌렸고 북쪽의 운중(雲中)과 대(代)를 잇는 장성을 축조했다. 재위 24년 만에 죽고 아들 무령왕(武寧王)이 즉위했다.

7)연문후(燕文侯)/ 기원전 361년에 즉위하여 333년까지 재위한 전국시대 때 연나라 군주로 소진을 기용하여 합종을 행하여 진나라에 대항했다.

8)갈석(碣石)/ 원래 지금의 하북성 창려(昌黎) 북쪽에 있는 갈석산을 말하나 소진이 말하는 갈석은 사기색은에 의하면 상산(常山) 구문현(九門縣)에 있다고 했다. 구문현은 지금의 하북성 호성(蒿城) 서북에 있는 태항산맥 줄기에 해당한다.

9)응문(應門)/ 지금의 산서성 북부지방의 대동 일대를 말한다.

10)소진이 연나라에 들어가 연문후를 만난 해는 문후 재의 28년 즉 기원전 334년의 일이다. 당시에는 진(秦)나라가 본격적으로 동진정책을 추진하기 전으로써 조나라와는 직접적인 교전은 없었다. 단지 진(秦)이 위(魏)와 하서(河西)와 하동(河東)의 땅을 다투는 과정에서 조(趙)가 위(魏)를 위해 원군을 보내 진군을 퇴각시킨 일이 2번 정도 있었을 뿐이다. 기원전 364년 진(秦)이 위의 석문(石門)을 공격하여 위군(魏軍) 6만의 목을 벴다. 이에 조(趙)가 군사를 일으켜 구원군을 보내자 진군이 퇴각했다. 다시 다음 해인 기원전 363년 진(秦)이 위(魏)의 소량(少梁)을 공격하자 조나라가 다시 구원을 보내 도왔다. 즉 진과 조가 다섯 번 싸웠다는 말은 소진의 말은 잘못이다.

11)동원(東垣)/ 지금의 하북성의 성도였던 석가장시(石家庄市) 경내에 있었던 고을로 중산국(中山國) 령이었다.

12)탕목금(湯沐金)/ 황제와 그 일족들을 위해 사용되는 경비를 말한다.

13)지도(軹道)/ 지금의 하남성 제원현(濟源縣) 경내에 있었던 고대의 도로의 이름이다. 산서성 고원지대와 예북(豫北) 평원을 잇는 도로로써 옛날부터 전략적인 요충지였다. 또한 섬서성 서안 북쪽에 지도정(軹道亭)이라는 지명이 있는데 진나라의 자영(子嬰)이 항복의 의식을 행한 곳이다.

14)권(券)/ 하남성 원양현(原陽縣) 서북의 고을로 전국 때 위나라 령이다.

15)파오(番吾)/ 지금의 하북성 자현(磁縣)에 있던 고을로 전국 때 조나라 령이다.

16)청하(淸河)/ 산동성 관도(館陶)에서 출원하여 북으로 흘러 하북성 위현(威縣)을 경유하여 다시 동쪽으로 꺾여 흐르다 다시 산동성의 무성(武城)의 경계에서 황하로 합류했던 강으로 옛 하천명은 기수(淇水)다.(사기지명고)

17)무(畝)/ 전한 시대 이전의 1무는 지금의 약 60평에 해당한다. 즉 300무란 18,000평을 의미한다.

18)지척(咫尺)/ 주나라 때 길이를 재는 단위로 지(咫)는 소척으로 8촌 즉 18cm의 길이를 척은 대척으로 10촌 즉 22.5cm의 길이를 말하는 것으로써 대단히 짧은 길이를 의미한다.

19)원수(洹水)/ 지금의 하남성 북쪽의 임현(林縣)의 융려산(隆慮山)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흘러 안양시(安陽市)를 지나 내황현(內黃縣) 북쪽에서 황하에 유입되었던 하천을 말한다.

20) 박관(博關)/ 춘추 때 제나라가 지금의 산동성 임평현(荏平縣)인 박릉(博陵)에 설치했던 관문이다.

21)일(鎰)/ 고대 중국의 중량의 단위로서 20량 혹은 24량에 해당 한다. 춘추전국 시대 때의 한 량은 16 그람으로 한 일은 약 300그람 혹은 400그람에 해당 함. 따라서 천일(千鎰)은 300키로 혹은 400키로의 중량을 말한다.

22)서수(犀首)/전국 때 위(魏)나라의 고위직의 금위(禁衛) 무관직 이름이다. 후대에 이르러 왕의 근위대였던 호분장군(虎奮將軍)에 해당한다. 전국 때 대표적인 유세가 중의 한 사람이었던 공손연(公孫衍)이 위나라에서 있을 때 역임했던 관계로 그를 지칭한 이름으로 사용되었다. 공손연의 성은 희(姬)이고, 씨는 공손(公孫), 이름은 연(衍)이다. 위나라 음진(陰晉 : 지금의 섬서성 화음현(華陰縣) 동) 사람이며 위나라 혹은 진(秦)나라 공족 출신이라고도 한다. 처음에 진나라에 들어가 진혜왕(秦惠王)에게 유세하여 신임을 얻어 중용되었다. 진혜왕 5년 기원전 333년 대량조(大良造)에 임명되어 진나라의 군사를 이끌고 위나라를 공격하여 그 장군 용고(龍賈)를 사로잡고 조음(雕陰 : 지금의 섬서성 감천(甘泉) 서)을 점령했다. 다시 진나라를 위해 제(齊)와 위(魏)나라에 유세하여 세 나라가 힘을 합쳐 조나라를 공격하여 소진(蘇秦)의 합종책(合縱策)을 무너뜨렸다. 후에 장의(張儀)와 사이가 벌어져 위나라로 들어가자 위혜왕(魏惠王)은 그를 위나라의 대장으로 삼았다. 그는 한(韓), 조(趙), 위(魏), 연(燕), 중산(中山) 등의 5국의 재상이 되어 합종을 이끌고 진나라의 세력에 대항했다. 이어서 위혜왕(魏惠王) 후원년(後元年) 16년 기원전 319년 위(魏), 조(趙), 한(韓), 연(燕), 초(楚) 등의 5국의 군사를 일제히 일으켜 진나라를 공격하고 다시 진나라의 서쪽에 자리잡은 의거(義渠)의 군주와 통하여 진나라의 배후를 기습하도록 하여 동서 양쪽에서 진나라를 공격하여 곤경에 처하도록 했다. 새로 즉위한 진무왕(秦武王)은 장의(張儀)를 쫓아내어 죽도록 하고 공손연을 불러들여 재상으로 삼았다. 공손연을 진나라의 재상이 된 후에도 허리에는 5국의 재상인을 차고 다니며 연횡(連橫)의 약장(約長) 노릇을 했다. 진무왕 4년 기원전 307년 감무(甘茂)에 의해 참소 당하여 진나라에서 다시 쫓겨나 위나라로 돌아갔다. 이어서 얼마 안 있어 어떤 사람에게 모함을 당하여 위왕에게 살해당했다.

23)조음(雕陰)/ 지금의 섬서성 감천현(甘泉縣) 남쪽에 있었던 고을로 위(魏)나라가 황하 이서 지역에 설치한 상군(上郡)의 전략적인 요충지였다.

24)한선왕(韓宣王)/ 선혜왕(宣惠王)이라고도 한다. 기원전 332년에 즉위하여 312년에 죽은 전국 때 한나라 군주다. 재위 기간 중 합종과 연횡을 수시로 바꿔 진나라로부터 빈번히 침략을 받다가 만년에 진나라와 함께 초나라를 공격하여 초나라를 대패시켰다.

25)계자(谿子)/ 고대 중국의 남방에 거주하던 이민족 이름으로 산뽕나무로 만든 쇠뇌로 유명했다. 여기서는 한나라가 계자족의 것을 모방하여 만든 쇠뇌를 지칭한다.

21)소부(少府)/ 산과 바다, 땅과 소택지에서 산출되는 재화와 황실과 왕실의 수공업과 제조업을 관장하는 관청 이름이다. 전국시대에 설치되기 시작해서 진한시대로 이어져 9경에 포함되었다.

22)시력(時力), 거래(距來)/ 한나라의 소부에서 생산되는 쇠뇌의 이름들이다.

26) 계자(溪子)/ 고대 남방의 만이(蠻夷)의 부족명으로 그곳에서 산출되는 산뽕나무와 대나무로 만든 활은 강궁으로 이름이 있었다. 후에 강궁을 지칭하는 말로 쓰이기 시작했다.

27) 시력(時力), 거래(距來)/ 모두 양궁의 명칭이다.

28)명산(冥山)/ 지금의 하남성 신양시(信陽市) 동남에 있었던 고을로 초나라와의 경계를 이루고 있었다. 전국 때 견고한 철제품의 산지로 유명했다.

26)당계(棠溪)/ 하남 서평현(書平縣) 서쪽의 고을이다.

29)묵양(墨陽)/ 하남성 석천현(淅川縣) 북쪽으로 묵산(山)의 남쪽으로 전국 때 명검의 산출지로 유명했다.

30)합부(合賻)/ 합백(合伯)이라고도 하며 역시 전국 때 한나라의 철검 산지로 유명했다. 지금의 하남성 서평현 서쪽에 있었다.

31)등사(鄧師)/ 전국 때 등이라는 제후국의 고지였던 등(鄧) 땅은 철검을 주조했던 공장이 있었던 곳으로 유명했다. 등이라는 곳에서 산출되는 명검의 이름을 말한다.

32)완풍(宛馮)/ 풍지(馮池)라는 곳에서 완인(宛人)이 주조했던 검의 명칭이다.

33)용연(龍淵), 태아(太阿)/ 모두 검의 이름이다. 이상 명산(冥山)에서 태아(太阿)까지 모두 그 날이 예리한 검의 이름으로 산지의 이름이거나 혹은 만들었던 사람으로 이름을 붙였다.

34)혁결(革抉)/활을 쏠 때 오른손의 손가락에 끼워 시위를 당기는데 사용했던 일종의 골무처럼 생긴 것을 말한다.

35)발예(㗶芮)/ 발(㗶)은 방패를 예는 방패를 잇는 끈을 말한다.

36)위양왕(魏襄王)/ 전국 때 위나라 군주로 성은 희(姬)고 위(魏) 씨에 이름은 사(嗣)다. 혜왕(惠王)의 아들로 기원전 334년에 즉위하여 319년에 죽었다. 즉위 초에 제후들과 서주(徐州)에서 회맹을 행하고 왕호를 칭하기 시작했다. 진나라와의 싸움에서 계속 패한 결과 서하(西河), 분음(汾陰), 곡옥(曲沃), 상군(上郡) 등을 모두 상실하고 다시 음진(陰晉)의 땅을 진나라에 바쳤다. 초나라를 공격하여 형산(陘山)의 땅을 점령했으나 얼마 후에 양릉(襄陵)에서 초군과 싸워 패했다. 명가(名家) 출신의 혜시(惠施)를 기용하여 재상으로 삼아 친제정책을 취했다. 후에 혜시를 쫓아내고 장의롤 대신 재상으로 삼았다. 장의가 진나라를 받들라고 권하자 듣지 않고 다시 장의를 재상에서 파면했다. 일설에는 기원전 기원전 319년에서 296년 사이에 재위했으며 그의 사적 중 일부는 위애왕의 것이라고도 한다.

37)홍구(鴻溝)/ 전국 때 위나라가 건설한 운하로 지금의 하남성 형양시(滎陽市) 북쪽에서 황하의 물을 끌어들여 동쪽으로 흐르게 했다가 위나라의 도성인 대량(大梁 :지금의 개봉(開封))을 관통한 다음 남쪽으로 꺾어져 회양시(淮陽市)에서 영수(潁水)와 합류시켰다. 홍구는 이후로 황하유역과 회수(淮水) 사이를 연결하는 중요한 수상교통로가 되었다.

38)진(陳)/ 춘추시대 진(陳)나라의 옛 땅으로 대부분은 초나라에 속하고 일부가 위나라에 속했다. 기원전 278년 진나라의 장군 백기(白起)에 의해 영성(郢城)을 점령당한 초나라가 나라를 이곳으로 옮겼다.

39)여남(汝南)/ 여수(汝水)의 남쪽 땅으로 지금의 하남성 상채시(上蔡市) 일대를 말한다. 참고로 여수(汝水)는 지금의 하남성 서쪽의 복우산(伏牛山)에서 발원하여 동남쪽으로 흘러 안휘성 회빈(淮濱)에서 회수와 합류한다.

40)허(許)/ 지금의 하남성 허창시(許昌市)에 있던 고을로 춘추 때 허나라의 옛 땅으로 대부분의 영토는 초나라에 병탄되었다.

41)언(郾)/ 지금의 하남성 언성현(郾城縣)이다.

42)곤양(昆陽)/ 지금의 하남성 엽현(葉縣)에 있었던 고을로 후에 후한을 세운 광무제가 이곳에서 왕망(王莽)의 45만 대군을 물리친 곳으로 유명하다.

43)소릉(召陵)/ 지금의 하남성 언성현 동쪽 30리에 소릉채라고 있다. 기원전 656년 초나라의 사자로 온 굴완이 제후의 군과 소릉에서 회맹을 행했다( 춘추 회공 4년조). 사기 진본기에 기원전 311년 진군이 초나라를 공격하여 소릉을 점령했다(진본기 혜문왕 후원년 14년)

44)무양(舞陽)/ 무양(武陽)이라고도 하며 하남성 엽현(葉縣) 동남의 고을이다.

45)신도(新都)/ 지금의 하남성 신야현(新野縣)이다.

46)신처(新郪)/ 지금의 안휘성 태화현(太和縣) 서북쪽의 처구(郪丘)다.

47)영수(潁水)/ 지금의 하남성 숭산(嵩山)에서 발원하여 허창시(許昌市)와 주구시(周口市)를 지나 안휘성 영상현(潁上縣)에서 합류하는 회수의 가장 큰 지류이다.

48)자조(煮棗)/ 지금의 산동성 하택현(荷澤縣) 서남의 고을

49)무서(無胥)/ 미상이다.

50)황하 이서 지역의 하서군 서쪽에 축조한 진나라에 대비한 장성을 말한다.

51)하외(河外)/ 지금의 섬서성 화음(華陰)에서 하남성 섬현(陝縣) 일대의 황하 이남 지역를 말한다.

52)권(券)/ 지금의 하남성 원무현(原武縣) 서북

53)연(衍)/ 하남성 정주시(鄭州市) 북

54)산조(酸棗)/ 하남성 연진현(延津縣) 북

55)간수(干遂)/ 지금의 강소성 소주시 북쪽으로 이곳에서 월왕 구춘과의 싸움에서 패한 오왕 부차가 자살했다.

56) 창두군(蒼頭軍)/ 전국 때 위(魏)나라가 용맹한 무사들로만 뽑아 구성한 부대이름으로 그 표시로 머리에 푸른 두건을 둘렀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무적의 군대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진말 진승이 기의할 때 동양(東陽)의 젊은이들이 호응하여 무적의 군대라는 뜻으로 창두군이라고 칭했다.

57)오가지병(五家之兵)/ 춘추 때 관중이 창시한 일종의 군제로써 그 내용은 오가(五家)를 궤(軌), 10궤를 리(里), 4리(里)를 연(連), 10련(連)을 향(鄕) 3향에 1사(師)를 둔다는 것이다. 여기서의 뜻은 삼군(三軍)의 경우는 정규군, 오가지병의 경우는 일종의 예비군을 의미한다. 일설에는 6국 중 제나라를 제외한 나머지 5국의 군사를 지칭한다는 설도 있다.

58)車穀擊人肩摩, 連衽成帷, 擧袂成幕, 揮汗成雨 家殷人足

59)양진(陽晉)/ 지금의 산동성 운성현(鄆城縣) 서로 전국 때 위나라 령의 고을이다.

60)항보(亢父)/ 지금의 산동성 제령시(濟寧市) 서남

61)초위왕(楚威王)/ 기원전 339년 즉위하여 329년에 죽은 초나라 왕으로 이름은 웅상(熊商)이다. 전336년 제나라를 공격하여 서주(徐州)에서 제군(齊軍)을 격파했다.

62)하주(夏州)/ 지금의 호북성 성도인 무한(武漢) 일대를 말하며 한수가 장강과 합류되는 지점이다.

63)해양(海陽)/ 장강이 황해로 유입되는 강어귀의 북안으로 지금의 강소성 태주시(泰州市) 일대를 말한다.

64)창오(蒼梧)/ 지금의 호남성 영원현(寧遠縣) 남쪽에 있는 구의산(九疑山) 일대를 말한다. 순임금이 순행 나갔다가 죽어 묻혔다는 전설이 깃든 곳으로 유명하다.

65)형색(陘塞)/ 지금의 하남성 탑하시 동쪽에 있는 형산(陘山)에 건설한 관문을 말한다. 전국 때 한나라 영토였다.

66)순양(郇陽)/ 지금의 안휘성 태화(泰和) 서북의 신양(神陽)

67)언영(鄢郢)/ 언(鄢)과 영(郢)을 말한다. 언(鄢)은 지금의 호북성 의성현(宜城縣)이고 영(郢)은 초나라의 수도로 강릉시(江陵市)를 말한다. 기원전 278년 과연 소진의 예측대로 무관을 나온 진나라의 장군 백기가 검중 및 무군(巫郡) 등에서 초나라로 진격한 진군과 협동 작전을 펼쳐 초나라의 언(鄢)과 영(郢)을 함락시키고 그곳에 남군(南郡)을 설치했다. 초나라는 이에 하남성 진성(陳城)으로 나라를 옮겨야만 했다.

68)경(頃)/ 일경(一頃)은 백 무(畝)에 해당하고 춘추전국 시대 때 한 무(畝)는 55평(약 180a)이다. 즉 일경은 5,500 평임으로 2경의 단위는 지금의 평수로 계산하면 만 평 정도를 말한다.

69)전국 시대 때 일금은 만전에 해당한다. 소진이 갚은 100금을 전으로 환산하면 백만금에 해당한다. 즉 빌린 돈을 만 배로 갚았다는 뜻이다.

70)오훼(烏喙)/ 오두(烏頭) 혹은 부자(附子)라고하는 한방의 약초로 쓰이는 독초의 이름이다. 그대로 말린 것을 생부자(生附子), 소금물에 담갔다가 석회가루를 뿌려서 말린 것을 백하부자(白河附子), 약 120 ℃로 가열하여 다소 유효성분이 변질한 것을 포부자(炮附子)라고 하며, 모두 약용으로 쓰인다.

71)미생(尾生)/ 춘추 때 노(魯)나라 사람으로 신의로 유명한 고대 전설상의 인물이다. <장자(莊子). 도척(盜拓)> 편에 ‘ 미생이 한 여인과 다리 밑에서 기한을 정해 만나기로 약속했다. 여자는 오지 않고 강물이 불어났으나 미생은 여자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리밑을 떠나지 않아 물에 익사하고 말았다.’라는 기사가 있다.

72)제민왕(齊湣王)/ 기원전 300년부터 284년까지 재위한 전국 때 제나라의 군주다. 전(田) 성에 이름은 지(地)이고 제선왕의 아들이다. 재위 기간 중, 진소왕과 함께 제(帝)를 칭하다가 후에 제호(帝號)를 버리고 왕호를 다시 사용했다. 제나라의 강한 군사력에 의지하여 빈빈히 주위의 제후국들을 침략하여 남쪽으로는 초나라의 회수(淮水) 이북의 땅을 빼앗고, 서쪽으로는 삼진(三晋)을 공격하여 다시 주나라의 영토를 병합하여 천자가 되려고 시도했다. 다시 군사를 대거 일으켜 송나라를 멸하여 병탄함으로 해서 진소왕의 분노를 샀다. 이에 진소왕은 연(燕), 초(楚) 및 삼진과 연합하여 제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군사를 일으켜 연나라 장수 악의(樂毅)를 5국 연합군의 대장으로 삼았다. 임치(臨淄)에서 악의의 연군에게 참패한 제민왕은 도주하여 거성(莒城)으로 달아났으나 초나라 장수 요치(淖齒)에게 살해되었다.

73)청하(淸河)/ 전국 때 조나라와 제나라 사이에 흐르던 강 이름이다. 발원지는 하남성 내황(內黃) 남이나 하류는 미상이다.

74)탁하(濁河)/ 황하의 별칭이다.

75)장성(長城)/ 춘추전국 때 제나라가 태산 남쪽에 오와 초의 침략을 대비하여 건설한 장성을 말한다. 제장성이다.

76)거방(鉅防)/ 제수 강안에 건설한 관문으로 지금의 산동성 장청현(長淸縣)에 있었다.

77)경양군(涇陽君)/ 진공자 불(芾)의 봉호다. 진선태후(秦宣太后) 미팔자(羋八子)의 아들로 진소양왕의 동모제다.

78) 문강(汶江) / 민강(岷江)의 별칭이다.

79) 오저(五渚)/ 상수(湘水), 원수(沅水), 자수(資水), 풍수(灃水) 등의 네 줄기의 강물이 동정호(洞庭湖)의 북쪽에서 만나 다섯 번 째의 큰 물줄기를 이룬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라고했다. - 수경주(水經注) 상수(湘水). 일설에는 완(宛)과 등(鄧) 사이의 한수 강심에 있는 다섯 군데의 모래섬을 지칭하는 말이라고 했다.(사기색은)

80) 소곡(少曲)/ 소수지곡(少水之曲) 즉 소수가 꺾이는 곳의 지명으로 지금의 하남성 제원현(濟源縣) 서쪽, 태항산 서남이다.

81) 여극(女戟)/ ①水經․涑水注 : 鹽水‘巫咸山北’②地里志 : 山在安邑縣南③史記地名考 : 疑<海外西經>‘巫咸國在女醜北’ 女醜 則 女戟 (발음으로 인해 와전)

82) 용가지전(龍賈之戰)/ 기원전 314년에 일어난 진나라와 위나라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다. 주난왕(周赧王) 원년 진혜왕(秦惠王)이 장수 서수(犀首)와 공자앙(公子卬)을 시켜 위나라를 공격하자 위나라는 용가에게 4만 5천의 대군을 주어 막도록 했다. 용가는 진군과 지금의 섬서성 감천(甘泉) 남쪽의 조음(雕陰)에서 싸워 대패하고 자신은 포로가 되었다.

83) 안문지전(岸門之戰)/ 기원전 338년 (周顯王 31년) 진나라와 위나라 사이에 지금의 산서성 하진(河津) 남쪽의 안문(岸門)에서 벌어진 전쟁. 이 싸움에서 위군은 대패하고 그 대장 위조(魏錯)는 진군의 포로가 되었다.

84) 봉릉지전(封陵之戰)/ 봉릉은 현 삼서성 예성(芮城) 남으로 황하의 북안 도시다. 전국 때 위나라 성읍으로 6국 연표에 위애왕(魏哀王) 16년(전296년) “ 진나라가 위나라를 공격하여 포판(蒲坂), 진양(晉陽), 봉릉(奉陵)을 빼앗아 갔다.”라는 기사가 있다. 6국 연표의 위애왕은 위양왕(魏襄王)의 잘못이다.

85) 고상지전(高商之戰)/ 미상이다.

86) 조장지전(趙莊之戰)/ 조무령왕(趙武靈王) 13년 (전313년) 진나라가 조나라를 공격하여 인(藺)을 점령하고 조군대장 조장(趙莊)을 포로로 잡아간 싸움을 말한다. 인(藺)은 지금의 산서성 이석(離石) 서다.

< 소진열전-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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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소진열전(蘇秦列傳) 9

열전9. 소진(蘇秦) 소진(蘇秦)은 동주(東周)의 낙양(雒陽) 출신이다. 스승을 찾아 동쪽의 제나라로 들어가 귀곡선생(鬼谷先生)1) 선생에게
양승국 04-10-11
[일반] 상군열전(商君列傳) 8.상앙(商鞅)

상앙(商鞅) 열전8. 1. 不能任用 不會殺之(불능임용 불회살지), - 나를 임용할 능력도 없으니 죽일 능력도 없다. -. 상군(商君)은
양승국 06-04-16
[일반] 신릉군열전(申陵君列傳) 17.위무기(魏無忌)

열전17-1 신릉군 위무기(信陵君魏無忌) 能以富貴下貧賤(능이부귀하빈천), 부귀한 신분이면서 빈천한 사람들과 능히 사귈 수 있었고 賢能#
양승국 04-05-12
[일반] 춘신군열전(春申君列傳) 18.황헐(黃歇)

열전18. 춘신군황헐(春申君黃歇) 以身徇君(이신순군), 모시던 군주를 위해 몸을 바침으로 遂脫强秦(수탈강진), 결국은 강포한 진나라로부
양승국 04-05-12
[일반] 평원군우경열전(平原君虞卿列傳) 16-1.조승(趙勝)

평원군(平原君) 1120. 爭馮亭以權(쟁풍정이권), 조나라의 평원군은 풍정(馮亭)과 권력을 다투다가 1121. 如楚以救邯鄲之圍(여초이구한
양승국 04-05-12
[일반] 맹상군열전(孟嘗君列傳) 15.전문(田文)

열전15. 맹상군(孟嘗君) 1116. 好客喜士(호객희사), 맹상군(孟嘗君) 전문(田文)은 문객과 선비를 좋아하여 1117. 士歸于薛(사귀우설), 천
양승국 04-05-12
[일반] 중니제자열전(仲尼弟子列傳) 7

열전7 仲尼弟子(중니제자) -공자의 제자들- 공자가 말했다. 「나에게 배워 육예에 통한 자는 77명이다. 그들은 모두 뛰어난 재능을 지닌 재
양승국 04-05-12
[일반] 외전. 도주공(陶朱公) 범려(范蠡)

외전 범려(范蠡) 범려외전(范蠡外傳)은 사마천의 사기 월왕구천세가(越王句踐世家) 편과 화식열전(貨殖列傳)의 범려 부분을 발췌
양승국 04-05-12
[일반] 오자서열전(伍子胥列傳) 6

오자서(伍子胥) 열전5. 1073. 維建遇讒(유건우참), 태자건(太子建)이 비무극으로부터 참소를 당해 1074. 爰及子奢(원급자서), 그 화가 오
양승국 04-05-12
[일반] 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 5-1. 손무(孫武)

열전5-1. 孫武列傳(손무열전) 손자(孫子) 무(武)는 제나라 사람이다. 병법으로 이름이 나, 오왕 합려(閤閭)를 접견하게 되었다. 합려가 말했다.
양승국 04-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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