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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5-12 12:06:357085 
평원군우경열전(平原君虞卿列傳) 16-1.조승(趙勝)
양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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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평원군(平原君)

1120. 爭馮亭以權(쟁풍정이권),

조나라의 평원군은 풍정(馮亭)과 권력을 다투다가

1121. 如楚以救邯鄲之圍(여초이구한단지위),

초나라로 가서 구원군을 얻어 한단의 포위를 풀고,

1122. 使其君復稱于諸侯(가기군복칭우제후).

그 군주로 하여금 제후들 사이에 이름을 드높이게 했다.

1124. 作<平原君虞卿列傳>第十六(작<평원군우경열전>제십육

그래서 <평원군우경열전> 십육을 지었다.

1. 殺笑躄者(살소벽자)

- 선비의 불구를 보고 웃은 애첩을 죽이다. -

평원군 조승(趙勝)은 조나라 여러 공자 중의 한 사람이다.1) 그 공자들 중 가장 현명하여 빈객들을 좋아해서 나중에는 찾아온 빈객들의 수효가 수천 명에 달하게 되었다. 평원군은 조나라의 혜문왕(惠文王)과 효성왕(孝成王) 양대에 걸쳐 재상을 지내가다가 세 번 물러났다가 다시 세 번 복위하고 동무성(東武城)2)을 봉지로 받았다.

평원군의 집에는 민가를 내려다 볼 수 있는 높은 누각이 있었다. 그 민가에는 한쪽 발을 저는 사람이 살면서 절뚝거리며 물을 길었다. 평원군의 애첩이 누각 위에 있다가 그 절름발이가 절뚝이며 물을 길어 나르는 모습을 보고 크게 웃었다. 다음날 그 절름발이가 평원군의 집 대문 앞에 와서 청하며 말했다.

「제가 듣기에 군께서는 선비들을 좋아한다고 했는데, 그 선비들이 천리길도 멀다하지 않고 군을 찾아온 이유는 군께서 능히 선비들을 귀하게 여기고 첩들을 천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불행하게도 파륭병(罷癃病)3)에 걸려 자리를 절뚝이는 모습을 군의 후궁이 누각에서 내려다보고 비웃었습니다. 소인은 원컨대, 저를 비웃은 후궁의 목을 얻기를 바랍니다.」

평원군이 웃으면서 그 사람에게 대답했다.

「그렇게 하겠소!」

그 사람이 발을 절뚝거리며 물러가자 평원군이 웃으면서 주위의 빈객들을 보고 말했다.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로다! 자기를 보고 한 번 웃었다고 내가 사랑하는 후궁을 죽이라고 하다니 너무 심하지 않은가?」

평원군은 결국 그의 애첩을 죽이지 않았다. 이어서 1년여가 지나자 문하의 빈객들이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어느덧 그 수효가 반 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평원군이 괴이하게 생각하여 좌우에게 물었다.

「이 승이 여러 선비들을 접대하는데 아직까지 예를 잃은 적이 없는데 어찌하여 많은 빈객들이 나의 문하를 떠났는가?」

남은 문객 중의 한 사람이 대답했다.

「그것은 군께서는 애첩을 죽이지 않고 그 절름발이 선비를 비웃음으로 해서 선비들은 천하게 여기고 애첩은 귀하게 여기고 있다고 생각해서입니다. 그래서 선비들이 군의 문하에서 떠난 것입니다.」

그래서 평원군은 절름발이를 보고 웃은 애첩의 목을 베어 자신이 직접 들고 그의 집 대문 앞으로 가서 주고 사과의 말을 했다. 그러자 천하의 선비들이 다시 평원군의 집으로 서서히 몰려들었다. 당시 제나라에는 맹상군(孟嘗君), 위나라에는 신릉군(信陵君), 초나라에는 춘신군(春信君)이 있어 선비들을 초빙하여 모시기를 서로 경쟁했다.

2. 毛遂自薦(모수자천)

- 모수가 스스로 자신은 천거하다. -

진나라가 한단성(邯鄲城)을 포위하자 조나라는 평원군을 사자로 보내 초나라와 합종을 맺고 구원을 요청하려고 했다. 평원군은 문하의 식객 중 용력과 문무를 겸비한 사람 20명을 뽑아 같이 가기로 하며 말했다.

「문으로 능히 일을 성취할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이고, 문으로 일을 성사시킬 수 없다면 무력이라도 행사하여 맹회가 열리는 호화로운 궁전 아래에서 삽혈을 행하여 반드시 합종을 이루어낸 다음 돌아와야 될 것이오. 같이 갈 선비들은 바깥에서 구할 필요가 없고 우리 식객 중에서 뽑아도 충분할 것이오.」

평원군은 식객 중 19명을 얻었으나 나머지 한 명은 해당하는 사람이 없어 20명을 다 채우지 못했다. 평원군의 문하에 모수(毛遂)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평원군 앞으로 나오더니 스스로 자기를 천거하며 말했다.

「이 수(遂)가 듣기에 군께서 식객 중 20명을 뽑아 초나라에 같이 가서 합종을 맺으려고 하는데 밖에서 찾지 않고 문하에서 구했으나 지금 한 사람이 부족하다고 했습니다. 원컨대 이 수를 부족한 한 사람으로 해서 20명에 채워 데려가시기 바랍니다.」

「선생은 이 사람의 문하에 계신지 얼마나 되셨습니까?」

「지금까지 3년이 되었습니다.」

「무릇 현명한 선비가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마치 자루 속의 송곳과 같아 당장에 그 끝이 드러나 보이는 법입니다. 그러나 선생은 3년이나 이 사람의 집에서 기거했음에도 내 좌우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선생에 대한 칭찬 한 마디 하지 않고 나 또한 들은 적이 없으니 이는 선생이 가진 재주가 없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오. 선생은 나와 함께 같이 갈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 것 같지 않으니 이곳에 남아있으시오.」

「이 사람이 오늘 이 자리에서 군의 자루에 들어가기를 청합니다. 이 수가 군의 자루에 일찍부터 들어가 있었더라면 몸통 전체가 다 드러났을 것입니다. 어찌 송곳만 들어나겠습니까?」

평원군은 결국은 모수도 같이 동행하는 것을 허락했다. 19명의 선비는 서로 눈짓을 하며 모수를 비웃었지만 겉으로는 내색을 하지 않았다.

이윽고 모수가 초나라에 가는 도중에 길을 가다가 나머지 19사람과 대화를 하는데 모두가 모수의 식견에 탄복했다.

3. 口若懸河(구약현하)

- 현하와 같은 구변으로 초왕을 설득하여 합종을 성사시키는 모수 -

평원군이 이윽고 초왕을 만나 합종의 이해에 관해 설파하는데 아침에 해 뜰 때에 시작해서 해가 중천에 이르도록 결론을 내지 못했다. 19명의 선비들이 모수에게 말했다.

「선생께서 전당에 올라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모수가 허리에 칼을 차고 한 걸음에 한 계단씩 밟고 전당에 올라 평원군을 향해 말했다.」

「합종의 이해는 단 두마의 말이면 족한데, 오늘 아침 해 뜰 때부터 지금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말해도 결론이 안 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초왕이 평원군에게 물었다.

「이 사람은 누구입니까?」

「이 승의 문객입니다.」

초왕이 듣고 모수를 향해 큰 소리로 질책했다.

「당장 전당 밑으로 내려가지 못할까? 내가 너의 주인 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데 네가 도대체 무엇을 하는 사람이건대 전당에 올라 무례하게 구는가?」

모수가 칼을 어루만지며 초왕 앞으로 다가서서 말했다.

「대왕께서 이 모수를 보고 호통치는 것은 곁에 있는 대왕의 신하들과 호위병들을 믿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대왕이 계시는 곳에서 열 걸음 내에는 믿을 수 있는 신하나 호위병이 없다는 사실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 대왕의 목숨은 저의 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제가 우리 주인의 앞에 있는데 대왕은 어째서 다른 사람의 신하된 사람을 꾸짖는 것입니까? 제가 들으니 은나라를 세운 탕(湯) 임금은 사방 70리 되는 조그만 곳에서도 천하를 다스리는 왕 노릇을 하였고, 주나라의 문왕은 사방 100리 되는 땅에서 일어나 제후들을 복종시켰다고 했습니다. 어찌 두 왕이 천하를 다스린 것이 모두 많은 군사들 때문이라고 하겠습니까? 그것은 진실로 그 세력에 의지해서 떨쳤던 위엄에 힘입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초나라는 사방 5천리의 땅에 군사는 백만을 헤아리고 있어 패왕이 될 수 있는 국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강성한 초나라에 대적할 수 없는 나라는 하나도 없습니다. 백기라는 어린아이가 수만의 군사를 이끌고 초나라를 공격하여 한 번 싸움에 언(鄢)과 영(郢)을 함락시키고 두 번 싸움에 이릉(伊陵)을 불태웠고, 세 번 싸움에 초나라 조상들을 욕보였습니다.4) 이것은 초나라로서 백세에 걸치는 원한인 것이며 우리 조나라조차도 수치로 여기고 있는 일입니다. 합종을 행하고자 하는 이유는 바로 초나라를 위해서이지 우리 조나라를 위한 일이 아닙니다. 제가 제 주인 앞에 서 있는데 대왕께서는 어찌하여 저를 책망하는 것입니까?」

마음이 움직인 초왕이 모수를 향해 말했다.

「아! 과연 그렇습니다. 선생의 말씀이 옳습니다. 삼가 사직을 받들어 합종을 행하겠습니다.」

「정말로 합종을 따르기로 마음을 정하셨습니까?」

「정했습니다.」

모수가 초왕의 좌우에 있던 사람들에게 외쳐 말했다.

「닭과 개와 말의 피를 가져오시오!」5)

이윽고 모수가 무릎을 꿇고 희생의 피가 담긴 동으로 만든 쟁반을 들어 초왕에게 바치며 말했다.

「대왕께서는 삽혈을 행하여 합종이 맺어 졌음을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대왕을 따라 우리 주인께서 하시고 그 다음은 이 수가 할 것입니다.」

이윽고 합종의 맹약이 전당에서 이루어졌다. 이어서 모수가 왼손으로 희생의 피가 든 쟁반을 들고 단하에 있던 19명의 수행원들을 불러 말했다.

「그대들은 이 피로 당하에서 삽혈을 행하도록 하시오. 그대들은 별다른 재주도 없으면서 소위 일을 성사시킨 다른 사람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평원군이 초나라와 합종을 성사시키고 조나라에 돌아와서 어떤 사람에게 말했다.

「이 승(勝)은 앞으로 도저히 선비들에 대해 왈가왈부 할 수 없다는 사실을을 알았소. 이 승이 지금까지 수천 명에 적게는 수백 명의 선비들을 골라 지금까지 뛰어난 선비라면 한 명도 놓치지 않았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오늘 모수 선생을 잃을 뻔했소. 모수 선생이 한 번 초나라에 가니 조나라는 구정(九鼎)이나 대려(大呂)보다 더 무겁게 되었소. 모수 선생의 세 치 혀는 백만 대군보다 더 강했소. 나는 앞으로 감히 다시는 선비에 대해 논하지 않겠소.」

그리고 평원군은 모수를 상객으로 삼았다.

4. 邯鄲解圍(한단해위)

- 가산을 털어 한단의 포위를 풀은 평원군 -

평원군이 조나라에 돌아가자 초나라는 즉시 춘신군(春信君) 황헐(黃歇)을 시켜 군사를 이끌고 출전하여 조나라를 구원하도록 했다. 위나라 신릉군(信陵君) 위무기(魏無忌)도 역시 장군 진비(晉鄙)의 군권을 빼앗아 조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달려왔다. 두 나라 군사들이 미처 이르기 전에 진나라가 재빨리 한단을 포위하자, 한단이 위급하게 되어 항복할 지경에 처하게 되었다. 평원군이 이를 근심했다. 한단의 전사(傳舍)6)를 관리하던 사람의 아들이었던 이동(李同)이 평원군을 찾아와 말했다.

「군께서는 조나라가 망하는 것을 걱정하지 않습니까?

「조나라가 망하게 된다면 이 승은 진나라의 포로가 될 것인데 어찌 걱정되지 않겠는가?」

「한단의 백성들은 진나라 군사들에 대항해 싸우느라 사람의 해골을 주어다 불을 떼고 그 자식들을 바꾸어서 먹고 있어 가히 위급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그러나 군께서는 수백 명에 달하는 후궁을 거느리고 그 비첩들은 모두 화려한 비단옷을 입고 쌀밥과 고기를 먹다 남깁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갈포로 만든 옷이나마 다 갖추지 못하고 술지게미와 쌀겨조차도 없어서 못 먹고 있습니다. 백성들은 곤궁하고 군사들은 기진맥진해 있으며, 어떤 사람들은 병기조차 갖추지 못해 나무를 깎아 창과 화살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군께서는 예전과 다름없이 기물(器物)에 집착하고 종경(鐘磬)7)을 즐기시고 계십니다. 만일 진나라가 한단성을 함락시킨다면 군께서는 어찌 이런 것들을 보유하고 또한 즐길 수 있겠습니까? 또한 조나라가 안전하게 보전된다면 군께서는 이러한 것들이 없어지지나 않을까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 군께서는 진실 된 마음으로 희첩들과 아랫사람들에게 명하여 한단성을 지키는 병졸들에게 속하게 하여 일을 나누어 맡게 하시고, 집안에 있는 기물들을 모두 내어 군사들에게 베풀어주신다면 위태롭고 어려움을 당한 군사들은 쉽게 군의 은혜에 감격할 것입니다.」

평원군이 이동의 말을 따르니 죽음을 각오한 결사대 3천 명을 얻었다. 이동이 그 3천 명의 결사대를 이끌고 진나라 진영으로 돌격하자 진군은 한단성에 포위망을 풀고 30리를 뒤로 후퇴했다. 이윽고 초와 위 두 나라의 구원군이 당도하여 진나라 군사들은 물러가 한단성을 지켜낼 수 있었다. 이동은 싸움 중에 전사했다. 조왕은 이동의 부를 이후(李侯)8)로 봉했다.

5. 공손룡이 봉지를 받지 말라고 평원군에게 간하다. -

우경(虞卿)은 신릉군(信陵君)이 위나라 군사를 이끌고 출병하여 한단을 보존할 수 있게 된 것은 평원군의 공이라고 생각하여 그 봉지를 더 해 줄 것을 조왕에게 청했다. 공손룡(公孫龍)이 듣고 밤새도록 수레를 몰고 평원군에게 달려와서 말했다.

「이 사람이 듣기에 신릉군이 한단을 보전한 것은 군의 공이라고 생각한 우경이 군을 위해 봉읍을 더해 줄 것을 조왕에게 청했다는데 그 소문이 사실입니까?」

「그런 일이 있소.」

「이것은 매우 옳지 않은 일입니다. 옛날 조왕께서 군을 발탁하여 상국에 임명한 이유는은 당시 조나라에 지혜와 능력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 군 한 사람만이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또한 동무성(東武城)을 떼어 군을 봉한 것은 그 당시 군께서 나라를 위해 세운 공을 포상하기 위해서도 아니었습니다. 나라를 위해 아무런 공도 세우지 못했음에도 조나라의 상국이 되고 동무성에 봉해진 것은 단지 공실의 친척이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오늘 군의 요청으로 구원군을 이끌고 온 신릉군이 진나라 군사를 물리치고 한단을 보전시켰다고 해서 그 공으로 봉읍을 더 해달라고 청하는 행위는 친척의 신분으로 성을 받고 또 조나라 사람의 신분으로 공을 계산하는 것입니다.9)이는 옳지 않은 일입니다. 이것은 우경이 양다리를 걸치고 있으면서 일이 이루어지면 우권(右券)10)을 쥐고서 그 보답을 요구할 것이며,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군을 위해 봉읍을 청했다는 헛된 이름을 가지고 군에게 생색을 내려고 할 것입니다. 군께서는 결코 더해 주는 봉읍은 받지 말기 바랍니다.」

평원군은 마침내 우경의 말을 듣지 않고 봉읍을 청하지 않았다.

평원군은 효성왕(孝成王) 15년 즉 기원전 251년에 죽었다. 그 자손이 뒤를 이었다고 조나라가 망할 때 같이 그 운명을 같이 했다.

평원군은 견백지변(堅白之辯)11)에 뛰어난 공손룡을 후대했다. 그러나 후에 추연(鄒衍)12)이라는 사람이 조나라를 지나가다 ‘지도(至道)’13)에 대해 논하자 평원군은 결국은 공손룡을 내쳤다.

태사공이 말한다.

평원군은 혼란한 시대에 새가 하늘 높이 나는 것처럼 뛰어났던 재주 있는 공자다. 그러나 그는 세상을 다스리는 커다란 도리를 보지 못했다. 항간에서는 '이익이라고 하는 것은 지혜를 어둡게 만든다(利令智昏)'고 했다. 풍정(馮亭)14)의 사악한 유세를 좋아했던 평원군은 조나라로 하여금 장평(長平)에서 40여만 명의 군사를 산 채로 매장되어 죽게 하였고 이어서 조나라의 서울 한단을 거의 함락 일보 직전까지 몰고 갔다.

- 끝 -

주석

1)평원군은 조무령왕(趙武靈王)의 막내들이고 효문왕의 동생이다.

2)동무성(東武城)/ 지금의 하북성 청하현(淸河縣)으로 평원군 조승의 봉지다.

3)파륭병(罷癃病)/ 허리가 굽어서 몸이 앞으로 구부러진 병

4)언영지전(鄢郢之戰)/ 기원전 279년 진나라 소양왕의 명을 받은 백기는 무관(武關)을 통해 나와 초나라의 별도(別都)인 언(鄢)을 주위의 강물을 끌어 들여 십여 만의 수비군과 함께 언성을 수장시켰다. 이어서 계속 남진하여 남전(藍田)과 초나라의 도성이었던 영성(郢城)을 함락시켰다. 백기는 서진하여 초나라 선대의 왕릉이 있던 이릉(伊陵)을 불태우고 다시 동진하여 경릉(竟陵), 안릉(安陵), 서릉(西陵)을 점령하고 그 곳에 남군(南郡)을 설치하고 진나라의 군현으로 삼았다. 영은 초문왕이 기원전 670년 경 천도한 이래 오자서가 이끌던 오나라 군사들에게 의해 점령당한 것 외는 한 번도 400년 가까이 외군의 침입을 받지 않았던 난공불락의 요새였었다. 이로써 초나라는 동쪽의 진현(陳縣)으로 옮겨야만 했고 이후로는 진나라와의 패권 다툼에서 탈락하게 되었다.

5)삽혈(歃血)/ 고대 중국의 회맹을 하고 맹세하는데는 신분에 따라 각각 다른 희생물을 사용했다. 천자는 말을, 제후는 수퇘지나 개를, 대부들은 닭을 잡아 그 피로 맹세했다.

6)전사(傳舍)/ 고대에 있어서 관에서 제공하여 왕래하는 행인들이 머물게 했던 여사(旅舍)를 말한다.

7)종경(鐘磬)/ 북채를 말하는 것으로 종(鍾)은 동으로, 경은 옥으로 만든 북채이다.

8)이후(李侯)/ 이(李)는 지금의 하남성 온현(溫縣) 서남의 고을이다.

9)전국책과 내용이 다르다. 사기(史記)에는 「今信陵郡存邯鄲而請封, 是親戚受城而國人計功也. 此甚不可」로 되어 있으나 전국책(戰國策)에는 「夫君封以東武城, 不讓無功, 佩趙國相印, 不辭無能. 一解國患, 欲求益地, 是親戚受封而國人計功也, 爲君計者 不如勿受便 (도대체 군께서는 동무성에도 봉해져도 공이 없다고 사양하지도 않았고, 조나라의 재상의 인장을 주어도 능력이 없다고 고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일단 나라의 우환이 풀리자 봉지를 더해 달라고 청하는 것은 봉읍은 친척의 신분으로 받고 공(功)은 조나라 국인(國人)의 신분으로 꾀하는 것입니다. 군을 위해 말씀드리자면 받지 마시기 바랍니다.」

10)우권(右券)/ 고대 중국에서 계약을 할 때 계약서를 둘로 나누어 채무자와 채권자가 각각 보관했댜. 채권자는 계약서의 오른쪽이나 왼쪽 중 한 쪽을 가지고 채무자에게 돈의 변제를 요구했다.

11)견백지변(堅白之辯)/ 전국시대 때 공손룡이 주장한 궤변이다. 즉, 눈으로 돌을 보면 희다는 것을 알 수 있으나 견고하다는 것은 알 수 없다. 또 손으로 돌을 만져보면 견고하다는 것은 알 수 있으나 희다는 것은 알 수 없다. 그러므로, ‘견고한 흰 돌’이라는 것은 동시에 성립될 수 없는 개념이라는 논법을 사용하여, 옳은 것을 그른 것이라고 하고 같은 것을 다르다고 말하는 변설을 말하는 것이다.

12)추연(鄒衍)/ 태어난 해는 알 수 없고 기원전 240년에 죽었다.전국 때 직하학사(稷下學士) 중의 한 사람. 음양가의 대표적인 학자로써 추자(鄒子)라 한다. 제나라 출신으로 위혜왕(魏惠王)이 어진 선비들을 세상에서 널리 구할 때 위(魏)나라로 가자 위혜왕이 도성 밖 교외에까지 나가 맞이하고 갈석궁(碣石宮)이라는 집을 지어 그곳에 살게 하고 스승으로 모셨다. 후에 제선왕이 추연을 제나라로 초빙하여 직하(稷下)에 머물게 하고 상대부의 봉록을 내리고 신선(神仙)의 일에 대해 연구하도록 시켰다. 연소왕(燕昭王)이 즉위하자 그는 또다시 제나라에서 연나라로 들어가 소왕(昭王)의 신임을 받았다. 만년에 제나라를 위해 조나라에 사신으로 가자 조나라의 평원군(平原君)이 그를 접대하면서 감히 그와 마주 대하며 앉지 못했다. 그의 학설은 오행상생(五行相生)을 근거로 하여 저술한 <오덕종시(五德終始)> 56편이 있었으나 모두 일실되어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13)지도(至道)/ 지극한 도의 뜻으로 추연이 음양오행설에 입각하여 주장한 설이다.

14)풍정(馮亭)/ 태어난 해는 알 수 없고 전 262년에 죽은 전국시대 한(韓)나라의 상당군 태수다. 주난왕(周赧王) 52년, 전 263년, 진나라가 한나라의 상당군을 공격하여 본국으로 통하는 태행산 길을 끊었기 때문에 스스로 상당군을 지킬 수 없다고 생각한 풍정은 성을 들어 조나라에 항복했다. 조나라는 그를 화양군(華陽君)에 봉했다. 다음 해인 기원전 262년, 조괄과 함께 장평에서 진나라와 벌어진 싸움에서 전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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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04-05-12
[일반] 중니제자열전(仲尼弟子列傳) 7

열전7 仲尼弟子(중니제자) -공자의 제자들- 공자가 말했다. 「나에게 배워 육예에 통한 자는 77명이다. 그들은 모두 뛰어난 재능을 지닌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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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외전. 도주공(陶朱公) 범려(范蠡)

외전 범려(范蠡) 범려외전(范蠡外傳)은 사마천의 사기 월왕구천세가(越王句踐世家) 편과 화식열전(貨殖列傳)의 범려 부분을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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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오자서열전(伍子胥列傳) 6

오자서(伍子胥) 열전5. 1073. 維建遇讒(유건우참), 태자건(太子建)이 비무극으로부터 참소를 당해 1074. 爰及子奢(원급자서), 그 화가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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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 5-1. 손무(孫武)

열전5-1. 孫武列傳(손무열전) 손자(孫子) 무(武)는 제나라 사람이다. 병법으로 이름이 나, 오왕 합려(閤閭)를 접견하게 되었다. 합려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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