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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12-27 00:40:144730 
백리해8. 40년 만에 가족들과 재회하는 백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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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백리해8. 40년 만에 가족과 재회하는 백리해




한편, 백리해의 처 두(杜)씨는 그의 지아비가 길을 떠난 후 매일마다 천을 짜서 먹고살다가 후에 기근이 들어, 먹고 살길이 없게 되자 그 아들을 데리고 먹을 것을 찾아 다른 곳으로 유랑을 떠났다. 후에 다시 섬진(陝秦)으로 들어와 남의 옷을 빨아 받은 삵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 아들은 이름은 시(視)라하고 자는 맹명(孟明)이라 했는데 매일마다 시골사람들과 사냥을 나가서 무예를 다투고 들판에서 자는 것을 예사로 했다. 두씨가 여러 번 그러지 말라고 했으나 듣지 않았다. 진나라 재상이 된 백리해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두씨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수레를 타고 지나가는 백리해를 보고자 했으나 감히 알아볼 수 없었다. 마침 백리해가 정사를 보고 있는 부중(府中)에서 옷을 빠는 아녀자를 구하자 두씨가 자원하여 부중에 들어갈 수 있었다. 두씨가 몸을 돌보지 않고 옷을 열심히 빨았다. 부중의 사람들은 모두가 기뻐하였다. 부중에서 백리해의 얼굴을 보고자 벼르고 있던 중 하루는 백리해가 당상에 앉아서 행랑에서 연주하고 있던 악공의 음악소리를 듣고 이었다. 두씨가 부중의 관리에게 말했다.




" 이 늙은이가 음률을 좀 알고 있습니다. 원컨대 저를 행랑에 들게 하여 음악소리를 한번 듣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부중의 관리가 두씨를 행랑으로 들게 하여 악공의 음악소리를 듣게 하였다. 두씨가 악공이 부르던 음악에 대해서 아는 체 하였다. 악공은 두씨에게 어디서 음률을 배웠냐고 물었다. 두씨가 대답했다.




" 거문고를 탈수 있을 뿐만 아니라 노래도 능히 부를 수 있습니다."




두씨는 악공이 건네주는 거문고를 받아 연주를 하며 북을 두드리고 노래를 부르는데 그 소리가 매우 처연하였다. 악공이 귀를 기울려 듣더니 자기도 못 미치겠다고 스스로 말했다. 악공이 다시 한 번 노래를 부르게 하자 두씨가 말했다.




" 노첩은 여기저기 유랑하면서 이곳까지 흘러오게 되었는데 아직 노래를 불러볼 기회를 갖지 못했습니다. 원컨대 상군에게 말씀을 올려 주시어 당에 올라가 노래를 한 번 부르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




악공이 두씨가 노래를 부르겠다는 뜻을 품하자 백리해가 당의 왼쪽에 서서 노래를 부르도록 명했다. 두씨가 눈썹을 깔고 소매를 걷어올리더니 목소리를 높이 올려 노래를 불렀다.




百里奚, 五羊皮 (백리해,오양피)

백리해, 오양피




憶別時, 烹伏雌 (억별시, 팽복자)

이별할 때 기억나는가? 암탉을 잡고




黃(艸+齋), 炊(戶+炎)(戶+多)(춘황제, 취염이)

서숙을 절구에 찧고, 빗장을 떼어 내어 불을 지폈다.




今日富貴忘我爲(금일부귀망아위)

금일 부귀하게 되어 나를 잊었는가?













百里奚, 五羊皮 (백리해,오양피)

백리해, 오양피




夫粱肉, 子啼飢(부양육, 자제기)

지아비는 서숙과 고기를 먹는데 그 아들은 배가 고파 우는구나




夫文綉 , 妻浣衣(부문수, 처완의)

지아비는 비단옷에 호강하는데, 그 처는 옷을 빨아 양식을 구하는구나




嗟乎! 富貴忘我爲 (오호, 부귀망아위)

오호라! 부귀가 나를 잊게 만들었는가?







百里奚, 五羊皮 (백리해,오양피)

백리해, 오양피


昔之日, 君行而我啼(석지일, 군행이아제)

옛날에, 당신이 길을 떠날 때 나는 울었다.




今之日, 君坐而我離(금지일, 군좌이아리)

오늘은 그대는 앉아 있고 나는 떠나려 하네




嗟乎! 富貴忘我爲?(오호! 부귀망아위)

오호라! 부귀가 나를 잊게 만들었는가?




백리해가 노래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불러서 물어보니 정히 그의 아내였다. 두 사람은 서로 손을 잡고 크게 울었다. 시간이 얼마간 지나자 백리해가 물었다.




" 아들은 지금 어디에 있소?"




두씨가 대답했다.




" 시골에서 사냥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백리해가 곧 사람을 시켜 불러오게 했다. 헤어진지 40년 만에 부부와 아들이 다시 만나서 모여 살게 되었다. 목공이 백리해의 처자가 모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곡식 천 가마와 비단 한 수레를 보냈다. 다음날 백리해가 그 아들 맹명시(孟明視)를 데리고 왕을 뵙고 고마움을 표했다. 목공이 맹명시를 대부로 임명했다. 서걸술(西乞術), 백을병(白乙丙)과 함께 맹명시(孟明視)를 장군으로 삼아 진나라의 '삼수(三帥)'라고 했다. 진목공은 삼수(三帥)로 하여금 병사의 일을 주관하게 하였다. 이때 강융(戎)의 군주 오리(吾離)가 군사를 이끌고 섬진(陝秦)의 변경을 침략해 왔다. 삼수가 군사를 이끌고 나가 싸워 오리를 패주시켰다. 싸움에서 패한 오리는 당진(唐晉)으로 도망가서 강융(姜戎)의 땅이었던 과주(瓜州)는 모두 섬진의 소유가 되었다. 뒤이어 서융(西戎)의 군주 적반(赤斑)이 섬진이 강성해지고 있음을 알고 그의 신하인 요여(繇余)를 보내어 목공의 위인 됨과 나라의 허실을 알아오게 하였다. 목공이 요여와 같이 동물원이 딸린 후원으로 데리고 가서 삼휴대(三休臺)에 올라 궁궐과 동물원이 달린 후원의 아름다움을 자랑하였다.




요여 " 이 모든 것을 짓는데 귀신을 부리셨습니까? 아니면 사람을 억압하여 만드셨습니까? 귀신을 부리셨다면 귀신들에게 수고를 끼치셨을 것이며 사람을 시키셨다면 백성들이 매우 괴로웠겠습니다. "




목공은 오랑캐의 나라에서 온 요여(繇余)가 뜻밖의 말을 한다고 생각하며 말했다.




" 그대의 나라 융이(戎夷)는 예악(禮樂)과 법도가 없는데 무엇으로 나라를 다스리는가? "




요여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 말씀하시는 예악과 법도는 중원의 나라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옛날의 성군(聖君)들도 법을 글로 만들어 백성들과 약속을 하여 근근히 다스릴 수 있었습니다. 그 후에 날이 지나감에 따라 군주들이 교만해지고 황음에 빠지게 되면서 예악의 이름을 빌려 그 몸에 장식을 두르고 거짓된 법도의 위엄을 이용하여 밑의 사람들을 닥달한 결과 백성들로 부터 원성을 사게 됨과 동시에 군위가 찬탈 당하게 되는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그러나 융이(戎夷)의 습속은 그렇지 않습니다. 윗사람은 순박한 덕으로 아래 사람들을 대하고 아랫사람들은 충성과 신의로써 윗사람들을 섬깁니다. 상하가 한결 같아 서로간에 속이지 않습니다. 형적(刑籍)이 없어도 서로 속이지 않고 법을 글로 써 놓지 않아도 서로 근심하는 법이 없으니 이와 같은 다스림은 전에 본적이 없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다스림의 극치라 할 것입니다."




목공이 아무 대답도 못하고 요여와 헤어진 후에 백리해에게 그가 한말을 전했다.




백리해 " 그 사람은 당진 출신의 대현(大賢)입니다. 신은 이미 그의 이름을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




목공이 불쾌한 기색을 얼굴에 띄고 말했다.




" 과인은 '이웃나라의 성인은 우리나라의 우환이다'라는 말을 들었오. 오늘 요여(繇余)가 그 지혜를 융나라를 위해 쓰고 있으니 장차 우리의 화근이 되지 않겠습니까?"




백리해 " 내사(內史)의 직(職)에 있는 요(廖)가 지혜가 있으니 군께서 부르셔서 그 계책을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




목공이 즉시 내사요(內史廖)를 불러 요여(繇余)에 대한 생각을 말하자 그가 대답했다.




" 융의 군주는 멀리 떨어진 황야에 살고 있어 중원의 아름다운 노래 소리를 아직 들어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주군께서 여자 악공을 시험삼아 보내시어 견융주의 뜻을 빼앗아 보기 바랍니다. 또한 요여(繇余)를 이곳에 머물게 하고 귀국일을 어기게 하여 오랫동안 돌려보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융주는 결국은 정사를 태만히 하여 돌보지 않게 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상하가 서로 의심하게 되어 그 나라도 취할 수 있을 것인데 항차 한 사람의 신하정도야 문제가 될 것이 있겠습니까? "




목공 " 훌륭한 계책이로다 "




그 뒤로는 목공은 요여(繇余)와 자리를 같이 하여 식사를 할 때는 같은 그릇에 먹고 항상 건숙(蹇叔), 백리해(百里奚)와 공손지(公孫枝) 등과 같이 머물게 하고는 서로 번갈아 가면서 요여와 같이 다니면서 융(戎) 땅의 지형의 험함과 병세(兵勢)의 강약과 허실을 탐문하게 하였다. 한편으로는 곱게 치장한 미녀와 노래를 잘 부르는 미녀 여섯 명을 선발하여 옷을 화려하게 입히고 난 다음에 내사요(內史廖)를 답례사절로 융국으로 파견하고 미녀들을 딸려 보내 융주에게 바치게 했다. 융주 적반(赤斑)이 크게 기뻐하여 매일마다 낮에는 노래 소리를 듣고 밤에는 같이 데리고 놀기에 바빠 자연히 융국의 정사를 소흘히 하게 되었다. 요여(繇余)가 섬진에 일년 동안이나 머무른 뒤에 융국에 귀국하였다. 융주는 요여가 늦게 돌아온 것을 괴이하게 생각하자 요여가 융주에게 설명했다.




" 신이 밤낮으로 귀국을 졸랐지만 진군이 고집을 피워 보내주지 않아 이렇게 늦게 되었습니다. "




융주가 요여를 의심하게 되어 자연히 멀리하게 되었다. 요여는 융주가 미녀 악사들에게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자 힘들여 간했다. 융주는 요여의 말을 물리치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목공이 비밀리에 사람을 보내 요여를 데려오게 하였다. 요여가 융주를 버리고 섬진(陝秦)에 오자 목공은 즉시 요여를 아경(亞卿)에 임명하여 건숙과 백리해와 함께 국정을 돌보게 하였다. 요여가 곧 융국을 정벌하기 위한 계책을 목공에게 말했다. 목공이 요여의 계책을 받아들여 삼수(三帥)에게 병사를 주어 융국을 정벌하게 하였다. 융국의 지리를 상세하게 전해 들은 섬진의 세 장수는 마치 익숙한 길을 가듯이 진격할 수 있었다. 융주 적반이 감히 대항하지 못하고 진나라에 항복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후세 사람이 이일을 두고 시를 지었다.




虞違百里終成虜(우위백종성로)

우공은 백리해의 말을 듣지 않더니 결국은 진나라의 포로가 되었고




戎失繇余亦喪邦(유실요여역상방)

융주는 요여를 잃더니 역시 나라마저 뺏겼구나




畢竟賢才能幹國(필경현재능간국)

필경은 훌륭한 사람만이 나라를 다스릴 수 있으니




請看齊覇與秦强(창간제패여진강)

제후가 중원의 패자가 되고 진나라가 강성해진 것을 보기 바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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