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1회 讓國召兵 僞地欺楚(양국소병 위지사초)

나라를 선양하여 병화를 불러들인 연왕 쾌와

거짓 땅으로 초나라를 속인 장의

1. 蘇秦當反間

- 소진이 제나라에 들어가 연나라를 위해 반간활동을 하다.-

한편 여섯 나라를 합종책으로 묶고 합종장의 자리에 오른 소진은 여섯 나라의 군주들이 서명한 맹약문 한 통을 진나라 변경의 관문 안으로 던져 넣었다. 관문을 지키던 관리가 맹약문을 함양으로 보냈다. 혜문왕이 받아 읽고 크게 놀라 상국 공손연에게 말했다.

「만약에 육국이 합종을 행하여 하나로 뭉친다면 중원으로 진출하려는 진나라의 앞길에 방해가 되지 않겠소? 반드시 계책을 내어 합종으로 뭉친 그들을 해산시켜야만 천하를 경영하려는 나의 큰 뜻을 이룰 수 있을 것이오.」

「합종을 앞에서 제창한 나라는 바로 조나라입니다. 대왕께서 군사를 일으켜 조나라를 정벌하시고, 조나라에 구원군을 보내려고 하는 나라가 있다면 군사를 이동시켜 그 나라를 정벌한다고 열국에 공포하십시오. 저의 계책을 따르시면 나머지 제후들은 두려워하게 되어 합종을 깨뜨릴 수 있습니다.」

그때 조나라에 대한 정벌을 막아 소진에게서 받은 은혜를 갚으려는 생각을 품고 있던 장의가 앞으로 나와 자기의 생각을 말했다.

「육국이 합종을 맺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세가 아직 흩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진나라가 만일 조나라를 정벌한다면 나머지 육국은 군사를 일으켜 한나라는 의양(宜陽)을 통하여 진격해 오고, 초나라는 무관으로 다가올 것이며, 위나라는 하외(河外)에서 나오고, 제나라는 제수(濟水)를 건너게 되고, 연나라는 나라 안의 모든 정예군사들을 동원하여 육국의 싸움을 도울 것입니다. 진나라 군사들은 한 나라와 싸우기도 바쁠 터인데 어찌 한가롭게 군사를 이동해 가며 다른 제후국들을 공격할 수 있겠습니까? 대저 진나라와 가장 가까운 나라는 위나라이고 가장 먼 나라는 연나라입니다. 대왕께서 성의를 다하여 많은 폐물과 함께 사자를 위나라에 보내 화친을 청하면, 나머지 다섯 나라에게 의심하는 마음을 품게 할 수 있으며, 또한 연나라의 태자에게 우리의 공녀를 시집보내 혼인을 시켜 연나라와 인척관계를 맺으면 그들의 합종은 자연히 깨지게 되어 있습니다.」

장의의 계책이 훌륭하다고 칭찬한 혜문왕은 그 즉시 위나라에서 빼앗아 진나라의 영토로 삼은 양릉(襄陵)을 포함한 7개의 성을 위나라에 돌려주고 강화를 맺도록 했다. 위나라 역시 사자를 진나라에 보내 옛날 영토를 반환해 은혜에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이어서 위나라의 공녀를 시집보내 진나라 태자의 배필로 삼아 인척관계를 맺었다.

연과 위 두 나라가 합종의 대열에 이탈하여 진나라와 수호를 맺었다는 소식을 들은 조왕이 소진을 불러 책임을 추궁했다.

「경의 주장을 따라 합종을 맺어 육국이 서로 화친하여 진나라의 침략에 대항하기로 했는데, 지금 1년도 지나지 않아서 위와 연 두 나라가 진나라와 수호를 했으니 합종으로 맺은 맹약을 믿고 있다가는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겠소. 만일 진나라 군사가 갑자기 군사를 발하여 우리 조나라를 쳐들어온다면 그때도 여전히 두 나라가 우리를 구원하리라고 생각합니까?」

소진이 몹시 두려워하며 말했다.

「신은 청하옵건대 대왕을 위해 연나라에 사자로 가서 반드시 위나라에 보복하도록 하겠습니다.」

소진이 즉시 조나라를 떠나 연나라로 갔다. 그때 연나라는 연문공(燕文公)은 재위 29만인 기원전 333년에 죽고 연이왕(燕易王)이 뒤를 잇고 있었다. 연이왕이 새로 즉위하여 연나라의 국내정세가 불안정한 틈을 노린 제선왕이 군사를 보내 침략하여 열 개의 성을 빼앗간 직후였다. 소진을 상국으로 임명한 이왕이 소진에게 말했다.

「옛날 선왕께서 그대의 말을 듣고 여섯 나라가 서로 힘을 합하여 진나라에 대항하기로 했는데, 선왕의 시신에 온기가 미처 가시기도 전에 제나라 군사들이 우리나라의 국경을 침범하여 열 개의 성을 빼앗아 갔으니, 원수(洹水)에 모여서 맹약한 합종의 뜻은 어디로 갔단 말이오?」

「신이 대왕을 위해 제나라에 사자로 가서 그들이 빼앗아간 열 개의 성을 돌려받도록 하겠습니다.」

연이왕이 소진의 청을 허락하자 소진은 연나라를 떠나 제나라로 갔다. 소진은 제선왕을 접견하고 말했다.

「연왕은 대왕과 옛날에 원수에서 만나 동맹을 맺었으며 또한 진왕이 사랑하는 사위가 되는 사람입니다. 대왕께서 연나라의 열 개의 성을 탐한 결과 연나라는 대왕을 원망하게 되었으며 또한 진나라로부터 원한도 사게 되었습니다. 열 개의 성은 비록 얻었다하나 두 나라의 원한을 사게 되었으니 그것은 좋은 계책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바라옵건대, 부디 연나라에게 열 개의 성을 돌려주시고 연과 진 두 나라와 좋은 관계를 맺기 바랍니다. 제나라가 연과 진 두 나라의 도움을 얻게 된다면 천하를 호령하는 패권국이 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만은 아닙니다.」

제선왕이 대단히 기뻐하며 연나라로부터 빼앗은 열 개의 성을 돌려주었다. 소진이 제선왕에게 감사의 말을 올리고 연나라에 돌아왔다.

한편 연이왕의 모친은 연문공의 부인으로 문부인이라고 불렀다. 평소에 소진의 풍모와 재주를 사모하고 있던 문부인이 어느 날 좌우의 시녀를 시켜 소진을 궁궐로 불러들여 정을 통했다. 이왕이 그 일을 알았으나 모친의 일이라 내색을 하지 못했다. 소진이 두려워하여 즉시 상국 자지(子之)와 교우 관계를 맺고 그의 딸을 주어 혼인을 맺었다. 당시 소진의 부름을 받고 연나라에 들어와 함께 살고 있던 그의 동생 소대(蘇代)와 소려(蘇厲)에게 명하여 자지와 결의형제를 맺도록 하여 문부인의 부름을 물리쳐 자기의 안전을 꾀했다. 그러나 문부인으로부터 여러 번 계속해서 부름을 받은 소진은 더욱 두려운 마음이 되어 감히 부름에 응하지 못하고 이왕을 찾아가 말했다.

「연과 제 두 나라의 형세를 살펴봤을 때 결국 두 나라는 같이 서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신은 원컨대 대왕을 위해 제나라에 가서 반간(反間) 노릇을 하려고 합니다. 」

「반간이란 무슨 말이오?」

「신이 거짓으로 연나라에서 죄를 짓고 도망쳐 제나라로 가면 제왕은 필시 신을 중용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신은 진나라의 재정을 고갈시키는 정치를 펴도록 하겠습니다. 제나라에 나쁜 일을 일으키는 일은 즉 연나라에 이익이 되는 일입니다.」

소진의 청을 허락한 연이왕이 소진으로부터 재상의 인장을 거두어 들였다. 이윽고 소진은 연나라를 떠나 제나라로 갔다. 평소에 소진의 명성을 들어 앙모하고 있던 제선왕은 그를 중용하여 객경으로 삼았다. 소진이 선왕에게 사냥과 가무의 즐거움을 논했다. 원래 재물을 좋아했던 선왕에게 백성들로부터 부세를 무겁게 걷으라고 부추겼다. 다시 색을 좋아했던 선왕으로 하여금 궁녀 중에서 용모가 뛰어난 사람을 따로 뽑도록 했다. 소진은 제선왕에게 정사를 그르치게 하여 제나라가 어지럽게 되기를 기다렸다가 연나라로 하여금 그 기회를 타도록 했다. 제선왕은 소진의 그런 속마음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 상국 전영과 객경 맹가가 극력 만류했으나 제선왕은 결코 그 말에 귀를 기우리지 않았다. 그러다가 선왕이 재위 18년 만인 기원전 301년에 죽고 태자 지(地)가 제왕의 자리를 물려받았다. 이가 민왕(湣王)이다. 즉위 초년에는 제법 정사에 부지런했던 민왕은 진나라로부터 왕녀를 취하여 왕후로 삼고 전영(田嬰)을 설(薛)에 봉하고 정곽군(靖郭君)이라는 봉호를 내렸다. 소진은 객경에 명하여 옛날의 직책을 맡겼다.

2. 張儀相魏(장의상위)

- 장의가 위나라의 상국이 되어 합종을 와해시키다. -

한편 장의는 소진이 조나라를 떠났다는 소식을 듣자 합종의 맹약이 장차 깨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위양왕에게 돌려주기로 한 양릉을 포함한 일곱 개의 성을 주지 않았다. 위양왕이 대노하여 진나라에 사자를 보내 위나라에 돌려주기로 한 땅의 반환을 요구하였다. 진혜문왕은 군사를 대거 일으켜 공자화(公子華)를 대장으로 장의를 부장으로 삼아 위나라를 정벌하도록 했다. 진나라 군사들이 포양(蒲陽)①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장의는 진왕에게 새로 점령한 포양을 위나라에 돌려주고 다시 공자요(公子繇)를 인질로 보내 위나라와 우호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상주했다. 진왕의 허락을 받은 장의는 공자요를 위나라에 보냈다. 위양왕은 진왕의 뜻에 마음속 깊이 감격했다. 장의가 그 틈을 이용하여 위나라로 들어가 위양왕에게 말했다.

「진왕께서 위나라를 매우 후하게 대하며, 공격하여 얻은 성읍도 차지하지 않고 돌려주시고, 다시 인질도 위나라에 맡기셨습니다. 위나라는 진나라에 예를 갖추어 마땅히 감사의 표시를 하십시오.」

「어떤 방법으로 진왕에게 감사의 표시를 해야 하오?」

「토지 말고는 아무 것도 진나라는 바라지 않습니다. 대왕께서 영토의 일부를 떼어 진나라에 바쳐 고마운 마음을 표시한다면 진나라는 더욱 위나라를 위할 것입니다. 만약 진과 위 두 나라가 군사를 합하여 제후들을 도모한다면 대왕이 그 보상으로 필시 진나라에 바친 땅의 10배나 더 큰 땅을 보상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위양왕이 장의의 말에 혹하여 즉시 소량(少梁)②의 땅을 진나라에 바쳤다. 그는 다시 감히 상국으로 받드는 진나라의 인질을 데리고 있을 수가 없다고 하면서 공자요를 진나라로 돌려보냈다. 진왕이 크게 기뻐하며 공손연을 상국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고 그 자리에 장의를 앉혔다.

그때 초나라에서는 초위왕이 재위 11만인 기원전 329년에 죽고 태자 웅괴(熊槐)가 그 뒤를 이었다. 이가 초회왕(楚懷王)이다. 장의가 즉시 사람을 보내 국서를 회왕에게 전하여 자기의 처자를 진나라에 돌려 보내주도록 청하고 옛날에 자기가 화씨벽으로 인하여 도둑으로 몰려 곤욕을 치렀던 일을 말했다. 초회왕이 소양을 불러 면전에서 책망하며 말했다.

「장의는 지혜로운 선비인데 경은 어찌하여 그를 선군에게 천거하지 않고 오히려 그를 핍박하여 쫓아내 진나라가 그를 쓰도록 했소?」

소양이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마음속으로 심히 부끄러워하며 자기 집으로 돌아가더니 이어서 병이 들어 죽고 말았다. 진나라가 장의의 계책을 이용하여 초나라에 압박을 가해올까 걱정한 회왕은 소진이 제창한 합종의 맹약을 다시 천명하며 제후들과 우호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소진은 죄를 짓고 연나라를 떠나 제나라로 가버린 뒤였다. 장의가 즉시 진왕을 뵙고 진나라의 상국의 자리를 내놓은 후에 위나라에 가겠다고 청했다. 혜문왕이 물었다.

「경이 진나라를 버리고 위나라로 가겠다고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육국이 소진의 말에 깊이 빠져 아직 합종이 깨지지 않았습니다. 신이 만약 위나라로 들어가 상국의 자리의 앉게 된다면 위왕에게 청하여 진나라를 받들도록 만들어 다른 나라의 제후들이 그 뒤를 따르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혜문왕이 장의의 청을 허락하였다. 장의가 즉시 위나라로 들어가자 위양왕은 과연 장의를 위나라의 상국에 임명하였다. 장의가 위양왕에게 말했다.

「위나라는, 남쪽으로는 초나라와, 북쪽으로는 조나라, 동쪽으로는 제나라, 서쪽으로는 한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나 믿고 의지하여 싸울만한 산과 강의 천험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위나라의 형세가 사분오열되는 모습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위나라가 진나라를 받들지 않는다면 나라는 안정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

위양왕이 주저하며 자기의 생각을 선뜻 정하지 못했다. 장의가 아무도 몰래 사람을 진나라에 보내 진나라로 하여금 군사를 내어 위나라를 공격하도록 청했다. 위군을 하동에서 크게 무찌른 진군은 곡옥(曲沃)을 점령했다. 이 일을 두고 사관이 시를 지어ㅜ 한탄했다.

소진은 연나라를 위해 제나라에 가서 벼슬을 살고

장의는 진나라를 위해 달려와 위나라의 상국이 되었다.

비록 합종과 연횡이 가는 길이 다르다고는 하지만

반복무상하는 소인들의 행위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仕齊却爲燕邦去(사제각위연방거)

相魏翻因秦國來(상위번인진국래)

雖則縱橫分兩路(수즉종횡분양로)

一般反覆小人才(일반반복소인재)

위양왕이 노하여 진나라를 받들려는 생각을 버리고 합종으로 돌아서서 옛날처럼 초회왕을 합종의 맹주로 추대하려고 하였다. 자연히 소진은 이 일로 인하여 제나라의 신임을 더욱 깊이 받았다.

3. 受命不于門楣(수명불우문미)

- 사람의 명은 문설주 따위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

그때 제나라의 상국의 자리에 있더누 정곽군(靖郭君) 전영(田嬰)이 노환으로 죽고 그의 아들 전문(田文)이 설공(薛公)의 자리를 물려받았다. 전영의 봉호는 맹상군(孟嘗君)이다. 전영에게는 아들이 40여 명이 있었는데 전문은 그 중 천비 소생으로 그가 태어난 날은 5월 5일었다. 전문이 태어나자 전영은 그의 첩에게 그를 기르지 말고 밖에다 버리라고 말했다. 그의 첩이 차마 버리지 못하고 아무도 몰래 전문을 키웠다. 전문이 다섯 살이 되었을 때 그의 모친이 그의 손을 이끌고 전영에게 데려가 인사를 시켰다. 전영은 그의 첩이 자기의 명을 어겼다고 해서 크게 노했다. 전문이 전영에게 큰절을 올리며 말했다.

「아버님께서는 저를 버리라고 명하신 이유는 무엇때문입니까?」

「옛날부터 5월 5일이라는 날자는 상서롭지 못한 날이라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그 날에 태어난 아이가 자라 키가 문설주에 닿을 때가 되면 장차 그 부모가 해를 입게 된다는 말이 있어서이다.」

「사람의 운수는 모두가 하늘에서 정해주는데 어찌 그따위 하찮은 문설주에 달려 있겠습니까? 설사 사람의 운수가 문설주에 달려 있다한들, 그 문설주를 높여 버리면 될 일인데 무엇을 그렇게 근심하십니까?」

전문의 당돌한 말에 전영은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그가 기재라고 생각하여 기뻐하였다. 이어서 전문의 나이가 10살이 넘어서자 제법 빈객들에 대한 접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전문의 접대를 받았던 빈객들은 모두 즐거운 마음이 되어 그와 함께 하는 놀이를 명예스러운 일로 생각하였다. 열국의 제후들도 전문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듣고 제나라에 사자를 보낼 때 그를 찾아가 만나보고 오라는 명을 별도로 내릴 정도였다. 그래서 전영은 전문을 지혜로운 아들이라고 생각하여 적자를 세우고 그가 갖고 있던 설공이라는 작위를 잇게 했다.

4. 玄孫之玄孫(현손지현손)

- 현손의 현손을 무어라 합니까? -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전문은 그 부친 전영이 한가한 틈을 타서 물었다.

「아들의 아들은 무엇이라 합니까?」

「손자라 한다.」

「그렇다면 손자의 손자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현손(玄孫)이라 한다.」

「그렇다면 현손의 현손은 무엇이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모르겠다.」

「부친께서는 출사하여 제나라의 상국이 된 이래 지금까지 세 왕을 모셨지만, 제나라는 그 영토를 한 뼘도 넓히지 못한 반면에 부친은 오히려 그 사재만 늘려 누만금의 부를 쌓으셨습니다. 그리고 부친의 문하에는 한 사람의 현자도 보이지 않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장군의 집에는 필시 장군의 재목이 있고, 재상의 집에는 재상의 제목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부친의 첩실들은 비단 옷을 밟고 다니지만, 선비들은 짧은 잠방이도 얻어 입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부친의 비첩과 노복들은 하얀 쌀밥에 고기들을 다 먹지 못하고 남기지만, 선비들은 술지게미나 겨조차 없어서 못 먹고 있습니다. 더욱이 부친께서는 아직도 창고가 넘쳐나도록 축적한 재산을, 비록 자손이라고는 하겠지만 까마득한 훗날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유산으로 물려주려고 하십니다. 부친의 생각이나 행동은 나라의 일을 날이 갈수록 크게 손상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계십니다. 부친께서는 그것을 알고 계십니까?」

이에 전영은 마침내 전문을 예를 갖추어 대하고 그로 하여금 집안의 일을 주재하고 빈객들을 접대하도록 했다.

5. 疑飯自剄(의반자경)

- 맹상군이 먹는 음식을 의심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식객 -

맹상군이 전영의 작위를 잇자 관사를 크게 증축하고 천하의 모든 선비들을 불러들이기 시작했다. 맹상군에게 몸을 의탁하러 온 사람들은 그 지혜나 어리석음을 따지지 않고 모두 받아 들여 자기의 관사에 묶게 하였다. 죄를 짓고 도망치던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맹상군이 지어 논 숙사에 달려와 몸을 의탁했다. 맹상군의 신분은 고귀한 사람이었지만 그가 식사를 할 때는 문객들과 똑같은 반찬으로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맹상군이 저녁때 문객들과 같이 식사를 하는데 그의 식탁만은 사람들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문객 중 한 사람이 자기의 부실한 반찬을 보고 전문이 자기를 홀대한다고 의심하여 젓가락을 던져버리고 자리에 일어섰다. 전문이 자리에 일어나더니 자기가 먹던 밥상을 들고 그 손님에게 보여줬다. 그 손님이 보니 과연 자기가 먹던 반찬과 다르지 않았다. 그 손님이 탄식하며 말했다.

「맹상군이 그 손님을 대하기를 이와 같이 하는데 내가 그를 지나치게 의심하였으니 나는 진실로 소인배라! 내가 어찌 얼굴을 들고 그의 문하에 여전히 있을 수 있겠는가?」

그 손님은 말을 마치자 옆에 있던 칼을 손에 들더니 자기의 목을 찔러 죽었다. 그 문객의 장례를 치러 주라 이른 맹상군은 빈소에 들려 곡을 하며 매우 슬퍼하였다. 주위의 문객들이 보고 감동하였다. 그 소문을 듣고 그를 찾아오는 문객들의 수가 더욱 많아져 맹산군의 집에는 그 식객의 수가 3천 명에 달하여 들끓게 되었다. 제후들은 맹상군이 지혜로운 사람이며, 또한 그를 따른 문객들이 수천 명에 이른다는 소식을 듣고 제나라를 두렵게 여기고 그들의 신하들에게 절대로 제나라의 국경을 침범하면 안 된다고 엄명을 내렸다. 이에 대한 시가 있다.

산중에 호랑이가 사니 뭇 들짐승들은 모두 달아나고

수중에 교룡이 사니 잡어들은 모두 숨어버렸다.

집안에 불러드린 문객들만 3천 명이라

천하 사람들은 모두가 맹상군을 두려워했다네!

虎豹距山群獸遠(호표거산군수원)

蛟龍在水怪魚藏(교룡재수괴어장)

堂中有客三千輩(당중유객삼천배)

天下人人畏孟嘗(천하인인외맹상)

한편 장의가 위나라의 상국이 된지 3년 만인 기원전 319년에 위양왕이 죽고 그의 아들 애왕(哀王)이 뒤를 이었다. 초회왕이 사자를 보내 위왕의 상을 조문하게 하면서 두 나라가 힘을 합쳐 진나라를 정벌하자고 제안해 왔다. 위애왕이 허락했다. 한선혜왕(韓宣惠王), 조무령왕(趙武靈王), 연왕(燕王) 쾌(噲) 등, 삼국의 왕들도 흔쾌히 초회왕의 말을 따랐다. 이어서 초나라의 사자가 제나라에 당도하여 진나라를 정벌하는데 참여해 주기를 청했다. 군신들을 조당에 모이게 한 제민왕이 계책을 물었다. 제왕의 좌우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한입으로 말했다.

「진나라와 제나라는 사위와 장인의 친척관계이며 또한 그들과는 원수진 일도 없습니다. 진나라를 정벌하는데 참여하시면 안 됩니니다.」

소진이 옆에 있다가 합종의 맹약을 지켜 정벌군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맹상군이 의견을 말했다.

「정벌해야 한다는 사람이나 정벌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람이나 모두 옳지 않습니다. 정벌전에 참여하면 그것은 곧 진나라의 원한을 사는 일이 되고, 정벌전에 참여하지 않으면 곧 나머지 오국의 분노를 사게 됩니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군사를 일으키되 그 행군을 지연시키십시오. 그렇게 한다면 군사를 일으켰으나 오국과는 행동을 같이하지 않을 수 있고, 행군을 천천히 함으로서 사태의 추이를 관망하며 진퇴를 정할 수 있습니다.」

제민왕은 맹상군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여 즉시 그를 대장으로 삼아 군사 2만 명을 주어 다섯 나라의 연합군이 벌이는 진나라 정벌전에 참여하라고 하였다. 맹상군이 제나라 도성 밖 교외를 벗어나자마자 갑자기 몸이 아파 치료를 받아야한다고 지체하면서 앞으로 나가지 않았다.

한편 한(韓), 조(趙), 위(魏), 연(燕) 네 나라의 왕들은 초회왕과 함곡관(函谷關) 밖에서 만나, 시각을 정해 관문을 공격하기로 했다. 초회왕이 비록 합종의 맹주라고 했지만 나머지 네 왕들이 각기 자기들의 군사들을 지휘했기 때문에 서로 의견이 통일되지 못하여 일사불란한 지휘를 할 수 없었다. 진나라의 수장 저리질(樗里疾)③이 관문을 열고 대군을 휘몰아 달려나와 군사들을 포진시킨 후에 싸움을 걸어왔다. 오국의 왕들은 서로 출전을 회피하고 남에게 전가하며 아무도 출전하여 진나라의 도전에 응하려고 하지 않았다. 양군이 몇 달을 계속 대치하던 중 저리질이 별동대를 만들어 초나라 군사들의 양도를 끊었다. 이윽고 군량이 부족하게 된 초나라 진영은 큰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저리질은 그 틈을 타고 군사들을 이끌고 나와 초나라 진영을 급습했다. 싸움에서 크게 패한 초회왕은 본국으로 회군하고 말았다. 그 결과 나머지 네 나라의 왕들도 휘하의 군사들도 군사를 거두어 자기나라로 돌아가 버렸다. 맹상군이 이끄는 제나라 군사들이 미처 진나라 국경에 당도하기도 전에 다섯 나라의 군사들이 싸움에 지고 물러난 것이다. - 이것은 참으로 맹상군의 교묘한 계책이라고 할 수 있었다. - 맹상군이 제나라로 회군하자 제민왕이 기뻐하며 말했다.

「소진의 계책을 따랐더라면 내가 일을 그르칠 뻔했구나!」

제민왕은 즉시 맹상군에게 상으로 황금 백 근을 하사하여 그가 거느리고 있던 식객들의 비용으로 쓰게 하고 이후로는 맹상군을 더욱 총애하였다. 소진은 자신에 대한 민왕의 총애가 맹상군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스스로 부끄러워하였다. 초회왕은 제나라와 진나라가 서로 힘을 합하여 초나라를 공격하지나 않을까 두려워하여 사자를 보내어 맹상군의 환심을 사서 제나라와 맺은 우호관계를 재차 맹세했다. 이어서 두 나라 사이에는 친선사절의 왕래가 끊이지 않게 되었다.

6. 淆亂功罪 誘獲兇手(효란공죄 유획흉수)

- 죄인을 상으로 유인하여 자기의 원수를 갚은 소진 -

제선왕의 치세 때부터 소진이 제왕의 총애를 독점하자 좌우의 왕족들 대부분이 소진을 시기하였다. 이어서 민왕이 즉위하게 되었으나 소진에 대한 총애가 여전했다. 그러다가 육국이 일으킨 진나라 정벌전에 군사를 출동시킬 때부터, 제민왕은 소진의 계책을 쓰지 않고 맹상군의 말을 따르기 시작했다. 제민왕은 만일 소진의 계책을 따랐더라면 진나라와 사이가 악화되어 실리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맹상군이 민왕으로부터 많은 황금을 상으로 받자 좌우의 측근들은 그 일로 해서 민왕의 소진에 대한 총애가 식었다고 의심하였다. 제왕의 측근들은 소진을 죽이기 위해 장사 한 사람을 수배하여 자객으로 삼았다. 그 자객은 가슴에 비수를 감추고 조당으로 들어가는 소진을 기다렸다가 품고 있던 비수를 뽑아 달려들어 소진의 복부를 찔렀다. 소진이 자기 배에 꽂힌 칼을 손으로 싸안고 민왕에게 달려와 자객이 자기를 죽이기 위해 비수로 찔렀다고 호소하였다. 민왕이 명을 내려 그 자객을 잡아오라고 명했다. 그러나 그 자객은 이미 아무도 몰래 도망쳐버렸기 때문에 잡을 수 없었다. 소진이 고통을 참으면서 민왕에게 말했다.

「신이 죽거든 대왕께서는 신의 머리를 베어 저자거리에 효수하고 다음과 같은 방을 써서 붙이십시오. ‘소진은 연나라를 위해 제나라에 와서 반간(反間) 행위를 하다가 오늘 다행히 죽었다. 이렇게 나라를 위해 좋은 일을 한 사람이 누구인줄 아는 사람이 있어 고한다면 천금의 상으로 포상하리라!’ 그렇게 하시면 그 자객을 붙잡을 수 있으실 것입니다.」

소진이 말을 마치고 자기 배에 꽂혀 있던 비수를 뽑아내자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가 온 땅을 적시고 이어서 숨을 거두었다. 민왕이 소진의 말을 따라 그의 머리를 베어 저자거리에 걸어놓고 방문을 붙였다. 며칠도 지나지 않아 어떤 사람이 소진의 머리가 걸려있던 곳을 지나가다가 상을 준다는 방문을 보고 어깨를 으쓱거리며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했다.

「소진을 죽인 사람은 바로 나요!」

시정을 지키던 관리가 그 자객을 붙잡아 민왕에게 데려왔다. 민왕이 죄형을 관장하는 사구(司寇)에게 명하여 형을 엄격하게 시행하여 국문하라고 명했다. 그 자객은 잔혹한 형에 못 이겨 소진을 죽이라고 자기에게 사주한 사람들의 이름을 모두 자백했다. 민왕이 그 일당들을 모조리 잡아들여 죽이고 그 집안도 연좌시켜 모두 멸족시켰다.

후세의 사관들이 소진을 논하기를 ‘몸이 비록 죽었지만, 마치 살아 있는 사람처럼 계책을 써서 그의 원수를 갚았으니 참으로 그 지혜가 뛰어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몸은 자객의 흉악한 손길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니 그가 반복무상하게 주인을 바꾸어 불충한 일에 대한 응보가 아니겠는가?’라고 했다.

소진이 죽고 그 문객들이 돌아다니며 평소에 소진이 획책하려 했던 계획을 누설하였다.

「소진이 제나라로 들어온 이유는 연나라를 위해서였다.」

소진에게서 속은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된 제민왕은 그때부터 연나라와 멀리하여 두 나라 사이에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민왕이 맹상군에게 군사를 주어 연나라를 정벌하려고 하였다. 이것을 알게 된 소대가 연왕에게 제나라에 인질을 보내 화친을 청해야한다고 하자 연왕이 그 말을 쫓았다. 소려가 연나라의 인질을 데리고 제나라에 가서 민왕을 접견했다. 민왕은 그때까지도 소진에게 속은 일에 대한 원한을 풀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소려를 잡아서 감옥에 가두려고 하였다. 소려가 큰 소리로 말했다.

「나라를 들어 진나라를 받들려고 하던 연왕에게 신의 형님 되는 소대께서 대왕의 위엄과 덕을 말하고 진나라보다는 제나라를 섬기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간언을 한 끝에 신으로 하여금 인질을 데리고 와서 화친을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대왕께서는 어찌하여 죽은 사람의 마음을 의심하여 산 사람에게 죄를 주려 하십니까?」

민왕이 소려의 말을 듣고 마음이 풀려 그를 후하게 대하였다. 소려는 데리고 온 인질을 제나라에 바치자 민왕은 소려를 대부의 직에 명했다. 소려의 형 소대는 연나라에 머물며 연왕 쾌를 모셨다. 후세의 사관이 <소진찬(蘇秦讚)>이라는 글을 써서 소진의 행적을 찬양했다.

계자(季子) 소진은 주나라 사람이다.

귀곡자에게 유세술을 배워

정진하여 학문을 이미 이루었음에도

음부경을 엎드려 꾸준히 읽었다.

季子周人(계자주인)

師事鬼谷(사사귀곡)

揣摩旣就(췌마기취)

陰符伏讀(음부복독)

연횡을 버리고 합종을 취해

육국의 재상 인끈을 허리에 찼으나

만절을 지켜 생을 마치지 못하고

연제 사이에서 반복무상 했도다!

合縱離橫(합종이횡)

佩印者六(폐인자육)

晩節不終(만절부종)

燕齊反覆(연제반복)

한편 위나라의 상국 장의는 육국이 군사를 출동시켜 진나라를 정벌하려고 했으나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철수하자 마음속으로 매우 기뻐하다가 다시 소진이 제나라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더욱 기뻐하며 말했다.

「지금이야말로 나의 혀가 필요한 때로다!」

장의는 즉시 기회를 엿보다가 위애왕을 접견하고 연횡책을 유세했다.

「위나라의 땅은 천리에 불과하고, 그 군사는 30만이 채 못 됩니다. 지세는 평탄하고 명산대천으로 막혀 있는 곳이 없는 관계로 제후들이 사방에서 군사를 이끌고 몰려들게 되어있습니다. 한나라의 도성 신정(新鄭)에서 이곳 대량(大梁)까지의 200리 길은 수레로 달리면 힘들이지 않고도 단지 하루 만에 쉽게 이를 수 있습니다. 위나라는 남쪽으로는 초나라, 서쪽으로는 한나라, 북쪽으로는 조나라, 동쪽으로는 제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어 위나라 군사들은 사방을 지켜야만 하지만 변방의 보루를 지키는 군사들은 10만이 채 안됩니다. 위나라의 땅은 원래부터 전쟁터였습니다. 우리 위나라가 초나라와 수호를 하고 제나라를 제외시킨다면 제나라는 우리의 동쪽 변경을 공격할 것이고, 그렇다고 우리가 제나라와 친하게 지내고 조나라와 거리를 둔다면 그때는 조나라가 북쪽에서 우리를 공격할 것입니다. 또한 한나라와 불화하게 되면 한나라는 우리의 서쪽을 칠 것이며, 초나라와 친하게 지내지 않는다면 초나라는 남쪽에서 우리를 공격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소위 사분오열(四分五裂)의 형세라고 합니다. 그리고 합종을 추진하는 제후들은 장차 사직을 안정시키고 강병을 길러 그 이름을 높이려는데 그 뜻을 두고 있습니다. 이제 합종을 주장하는 자가 천하를 통일하고자 형제가 되자는 약속을 하고 백마를 희생(犧牲)으로 잡아 원수(洹水)에서 회맹을 행하고 서로 약속을 굳게 지키자고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같은 부모에게서 난 형제임에도 금전과 재물을 서로 다툴 때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짓과 속임수를 반복한 소진의 말에 의지하려고 하시니 그것이 성공할 수 없음은 명백합니다. 대왕께서 진나라를 섬기지 않는다면 진나라는 군사를 내어 하외(河外)를 공격한 후에 권(卷), 연(衍), 산조(酸棗) 의지하여 위(衛)나라를 위협하여 양진(陽晋)를 취하고, 남쪽으로의 진공로가 막히게 되면 조나라는 위(衛)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군사를 보내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위(衛)나라도 군대를 북으로 보내지 않게 되고 그 결과 합종은 깨지게 됩니다. 합종이 깨지게 되면 대왕의 위(魏)나라는 비록 원하지 않더라도 틀림없이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 진나라가 한나라를 꺾고 위나라를 공격한다면 진나라를 두려하고 있는 한나라는 진나라와 한 편이 되고 그 결과 위나라는 그저 우두커니 서서 망하는 일만을 기다려야만 합니다. 이것이 신이 대왕을 위해 걱정하는 바입니다. 대왕을 위해 말씀드린다면 진나라를 섬기는 일보다 좋은 계책은 없습니다. 위나라가 진나라를 섬긴다면 초(楚)와 한(韓) 두 나라는 감히 움직이지 못하게 되고, 초와 한 두 나라로 인한 근심이 없어진다면 대왕은 베개를 높이하고 편안히 잠을 이룰 수 있으며 나라에는 모든 근심이 사라지게 됩니다.

또한 진나라가 약화시키고자 하는 나라는 초나라 외는 없습니다. 그러나 초나라를 약화시킬 수 있는 나라는 위나라 밖에 없습니다. 초나라가 비록 부유하고 대국이이라고는 하나 실은 허명에 불과합니다. 또한 그 군사들의 수효는 많다하나 싸움이 벌어지면 쉽게 패하여 도주하기에만 바빠 굳게 지키지 못합니다. 위나라의 모든 군사들을 거두어 남쪽으로 진공하여 초나라를 공격한다면 틀림없이 승리를 취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자기의 땅을 떼어 위나라에 보태주는 초나라는 타격을 받아 국력이 쇠퇴하게 되어 진나라에 복속되니 위나라는 화를 다른 나라로 돌리고 자신은 안정을 취할 수 있습니다. 이이야말로 위나라로써는 최선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대왕께서 신의 말을 듣지 않으신다면 진나라는 무장을 갖춘 군사들을 동쪽으로 진격시켜 우리 위나라를 정벌할 것이니 그때 가서 진나라를 섬기려 한다고 해도 그때는 이미 늦습니다.

무릇 합종을 주장하는 자들은 큰소리만 쳤지 믿을만한 말은 적습니다. 제후 한 사람에게만 유세에 성공해도 봉후가 되기 때문에 천하의 유세가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팔뚝을 걷어 부치고 부릅뜬 눈에 이를 갈면서 합종의 이익을 설파하며 남의 임금을 혈안이 되어 설득하려고 합니다. 남의 임금된 자는 그 언사가 현명하다고 여겨 끌려 다니게 되니 어찌 그들에게서 현혹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신은 듣기에 깃털도 많이 쌓이면 배를 가라앉힐 수 있고, 비록 가벼운 물건이라도 많이 싣게 되면 수레의 차축은 부러지게 되고, 여러 사람의 입은 쇠도 녹이며, 여러 사람의 모함은 사람의 뼈도 깎는다고 했습니다. 그런 연유로 대왕께서는 계책과 의논을 깊이 하시어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신은 잠시 동안 위나라를 떠나 쉬려고 하니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과인이 비록 상국의 뜻에 따라 진나라를 받들려고 해도 진나라가 받아주지 않으면 어떻게 처리해야 합니까?」

「신이 대왕을 위해 진나라에 죄를 청하여 용서를 받고 양국이 화친을 맺도록 하겠습니다.」

애왕이 즉시 종복이 딸린 호화로운 장식을 한 수레를 장의에게 내주며 진나라에 가서 화친을 청하라고 명했다. 그래서 진나라와 위나라는 화친을 맺고 장의는 진나라에 머물면서 예전의 벼슬인 상국의 자리에 다시 앉았다. 위애왕은 마침내 장의의 말을 따라 합종을 배반하고 그를 통하여 진나라와 통호했다. 3년 후에 위나라는 다시 진나라를 배반하고 합종에 참가했다. 그러자 진나라가 위나라를 공격하여 곡옥(曲沃)을 점령했다. 다음 해에 위나라는 다시 진나라로 돌아섰다.

7. 讓國召兵(양국소병)

- 선양(禪讓)을 흉내 내어 불러들인 병화로 나라를 망친 연왕 쾌(噲) -

한편 연나라 상국 자지(子之)는 키가 팔 척이고 허리는 십위(十圍)④에 우람한 체격이었으나, 행동은 재빨라 능히 손으로 날아가는 새를 잡을 수 있었으며 달리기는 말과 같은 속도로 뛸 수 있었다. 자지는 이왕(易王) 때부터 상국의 자리에 있으면서 연나라의 정권을 오로지 해왔다. 기원전 321년 연이왕이 재위 12년 만에 죽고 그 뒤를 이은 연왕 쾌(噲)는 매일 주색에 빠져 오로지 즐거운 놀이만 찾으면서 조당에 임하여 정사를 돌보는 일을 게을리 했다. 연왕이 나라의 정사를 돌보지 않자 자지는 연나라의 왕위를 넘보려는 생각을 품기 시작했다. 소대(蘇代)와 소려(蘇厲) 두 형제는 평소에 자지와 교분이 깊었기 때문에 제후들의 사자가 연나라에 들릴 때마다 자지가 어진 사람이라고 칭송했다. 연왕 쾌가 소대를 시켜 제나라에 보낸 인질의 안부를 알아보게 하였다. 연나라에서 돌아온 소대를 향해 연왕 쾌가 물었다.

「내가 들으니 제나라의 맹상군이라는 사람은 천하에 보기 드문 인재라 하던데, 제왕은 그와 같은 어진 신하를 데리고 있으니 조만간 천하를 제패할 수 있지 않겠소?」

「불가합니다.」

「어째서 불가하다고 하오?」

「맹상군이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가 능력을 발휘하도록 일을 맡기지 않으니 어떻게 제왕이 패업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과인에게는 어째서 정사를 맡길만한 맹상군과 같은 신하가 없단 말이오?」

「지금의 상국 자지는 정사에 밝으니 그것은 곧 연나라의 맹상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왕 쾌는 그 즉시 자지에게 연나라의 모든 국사를 알아서 처리하라고 맡겨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연왕 쾌가 대부 녹모수(鹿毛壽)를 보고 말했다.

「역사상 수많은 군주들 중 어찌하여 유독 요(堯)와 순(舜) 두 임금만이 성군으로 숭앙을 받고 있는가?」

역시 자지의 일당인 녹모수가 대답했다.

「요순을 성군이라고 칭하는 이유는 요임금은 천하를 순임금에게 양보하고 순임금은 천하를 다시 우임금에게 전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유독 우임금만은 어찌하여 임금의 자리를 자기의 아들에게 전했소?」

「우임금도 처음에는 천하를 익(益)⑤에게 선양하려고 하여 정사를 대리하도록 했으나 태자를 미처 폐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연고로 우임금이 죽자 우의 태자 계(啓)가 결국은 익으로부터 천하를 빼앗습니다. 그래서 지금 사람들은 우임금의 덕이 요순 두 임금에 미치지 못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과인이 나라를 상국 자지에게 선양하려고 하는데 경의 생각은 어떻소?」

「대왕께서 선양을 하신다면 어찌 그 공덕이 요순과 다르다고 하겠습니까?」

즉시 여러 신사들을 대거 모이게 하여 태자 평(平)을 폐한 연왕 쾌는 왕위를 자지에게 선양한다고 선포했다. 자지가 짐짓 겸손을 가장하여 세 번을 사양하다가 선양의 뜻을 받아 들였다. 이어서 교외에 제단을 쌓고 하늘과 땅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곤룡포와 면류관으로 의관을 갖춘 자지는 규(圭)를 손에 들고 남면하여 왕이라고 하면서도 얼굴에는 전혀 부끄러운 표정을 짓지 않았다. 쾌는 신하의 반열에 서서 북면하여 절을 올리고 선양의 의식이 끝나자 왕궁을 비워주고 별궁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거주하였다. 소대와 녹모수는 모두 상경에 제수되었다. 장군 시피(市被)가 마음속의 울분을 참지 못하고 즉시 본부의 군사들을 이끌고 나와 자지를 공격하려고 하자 수많은 백성들도 그들의 뒤를 따랐다. 자지와 시피 양쪽의 군사들이 10여 일을 계속해서 싸워 수만 명의 사상자를 내었으나 결국은 시피는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고 자지에게 잡혀 살해되었다. 녹모수가 자지에게 말했다.

「시피가 란을 일으킨 원인은 태자 평이 아직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자지가 시피의 말을 듣고 태자 평을 잡아서 죽이려고 하였다. 태부 곽외(郭隗)와 태자평이 미복으로 갈아입고 둘이서 같이 무종산(無終山)⑥으로 들어가 몸을 피했다. 평의 서제 공자 직(職)은 연나라를 탈출하여 한나라로 망명했다. 연나라의 백성들은 하나 같이 자지를 원망했다.

연나라에서 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접한 제민왕은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여 광장(匡章)을 대장으로 삼아 군사 10만을 동원하여 발해만을 통하는 길을 이용하여 연나라를 공격했다. 연나라 백성들은 자지에 대한 원한이 골수에 맺혀 모두가 음식물을 준비하여 제나라 군사들을 환영하고 아무도 그 군사들에 대항하여 싸우려고 하지 않았다. 제나라를 떠나 출병하여 하루도 지체함이 없이 50일 만에 연나라 도성에 당도한 광장의 군대를 연나라 백성들이 성문을 열고 그들을 맞아 들였다. 자지가 거느린 군사들 중 대부분은 제나라의 대군이 거침없이 몰려오는 모습을 보고 그들 역시 두려움에 떨면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자신의 용력을 과신한 자지는 녹모수와 함께 남은 군사들을 이끌고 성안의 넓은 사거리로 나가 제나라 군사들을 막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연나라 군사들은 대부분 도망치고 남은 군사들의 수효는 수백 명에 불과할 뿐이었다. 녹모수는 싸움 중에 제나라 군사들에 의해 살해 되고 자지도 싸움 중에 몸에 중상을 입게 되었다. 그러나 자지는 여전히 기세가 등등하여 맨손으로 100여 명의 제나라 군사들을 때려죽인 끝에 힘이 다하여 사로잡히게 되었다. 별궁에 머물고 있던 연왕 쾌는 소식을 듣고 스스로 목을 메달아 죽고 소대는 혼란한 틈을 타서 도망쳐 주나라로 갔다. 제군 대장 광장은 연나라의 종묘를 모두 부셔버리고 연나라 부고 안에 있던 금은보화를 모두 꺼내어 수레에 싣고 함거에 가둔 자지와 함께 제나라 본국으로 호송시켜 제왕에게 전리품으로 바쳤다. 연나라 땅 사방 3천여 리 대부분은 제나라에 속하게 되었다. 광장은 연나라에 머물면서 연나라에 속하는 지방의 읍들을 다스렸다.

이때가 주나라 난왕(赧王) 원년 즉 기원전 314년으로 자지가 연왕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은 지 4년 만의 일이었다.

8. 千金買骨(천금매골)

- 천금으로 죽은 천리마의 뼈를 사다. -

제민왕이 함거에 갇혀 송환되어온 자지를 자기 앞으로 끌고 오게 하여 친히 그의 죄상을 열거한 다음 능지처참의 형에 처하고 그 고기로 젓을 담가 여러 신하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주었다. 자지가 연왕으로 재위한 기간은 겨우 4년 남짓했다. 어리석은 마음으로 왕위를 탐하여 스스로 몸을 망쳐 목숨을 잃었으니 어찌 가련하다고 하지 않겠는가!

연나라 백성들이 비록 자지에게는 원한이 맺혀있기는 했지만 제왕의 목적은 연나라를 멸망시켜 병탄하려는 데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마음속으로 불복하고 이어서 모두 뜻을 모아 무종산에 숨어있던 태자 평을 찾아 데려와 연왕으로 받들었다. 이가 연소왕(燕昭王)이다. 곽외는 연나라의 상국이 되었다. 그때 연나라를 병탄하려는 제나라에 불만을 품고 있던 조나라의 무령왕(武寧王)은 대장 악지(樂池)를 시켜 한나라에 망명해 있던 공자 직(職)을 연왕으로 앉히려고 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태자 평이 연왕의 자리에 올랐다는 소식을 들은 무령왕은 그 일을 즉시 중단했다. 곽외가 격문을 써서 연나라 도성 안의 백성들에게 전하여 태자가 연나라를 수복하려고 한다는 뜻을 전했다. 이미 제나라에 항복한 지방의 여러 속읍들도 곽외가 전한 격문을 보고 일시에 제나라에 반하였다. 광장이 연나라의 반란을 진압하지 못하고 즉시 군사를 거두어 제나라로 철수했다.

연나라 도성에 입성한 연소왕이 종묘를 수리하고 제나라에 원수를 갚기 위해 자기 자신을 낮추고 많은 폐물로 어진 선비들을 초빙하려고 하면서 상국 곽외에게 말했다.

「선왕께서 당한 치욕스러운 일을 과인이 아침저녁으로 잊지 않고 있습니다. 과인이 지혜로운 선비를 얻어 그와 함께 제나라로부터 당한 치욕을 갚을 수만 있다면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겠습니다. 온 몸을 바쳐 어진 사람들 받들려고 하는 과인의 뜻을 살피시어 선생께서는 어질고 지혜로운 사람을 찾아 천거해 주시기 바랍니다.」

「옛날 어떤 군주 한 분이 그 시종관에게 천금을 주어 천리마를 구해오라고 시켰습니다. 그 시종관이 천리마를 구하기 위해 길을 가던 도중에 길 가운데서 둥그렇게 모여서 탄식하고 있는 사람들의 무리를 보았습니다. 시종관이 탄식하는 이유를 묻자 그 사람들이 대답했습니다. ‘이 말은 살아 있을 때 하루에 천리를 달릴 수 있는 말이었는데 지금 죽고 말았으니 이를 애석하게 생각하여 탄식하고 있는 중입니다.’ 시종관이 즉시 군주가 준 천금 중에서 5백 금을 주고 그 천리마의 뼈를 사서 배낭에 짊어지고 돌아왔습니다. 그 군주가 거금을 낭비하여 죽은 말의 뼈를 사온 시종관을 보고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죽은 말의 뼈다귀를 어디다 쓴단 말인가! 너는 내가 준 황금을 헛되게 낭비하지 않았느냐?’ 시종관이 대답했습니다.‘ 제가 5백 금을 주고 산 이유는 그것이 천리마의 뼈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죽은 말의 뼈를 5백 금을 주고 산 행위는 세상의 기이한 일 중의 하나라서 사람들이 장차 이 일을 다투어 입으로 전하며 필시 다음과 같이 말할 것입니다. ‘천리마라면 그 뼈도 귀한 가격으로 사는데 하물며 산 말이라면 말해 무엇 하겠는가?’ 머지않아 천리마를 가지고 찾아오는 사람이 줄을 이을 것입니다.’ 그리고 일 년도 채 못 되었으나 그 군주는 천리마를 세 필이나 얻게 되었습니다. 오늘 왕께서 천하의 어진 선비를 초청하시려고 하신다면 청컨대 이 곽외를 천리마의 뼈로 생각하시어 높이 받든다면 항차 이 외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자기가 신보다 더 높이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데 어느 누가 달려오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연소왕은 특별히 곽외를 위해 별궁을 지어 하사하고 스승의 예를 갖추어 북면하여 가르침을 청하면서 한 자리에서 식사를 같이 하며 곽외를 극진하게 모셨다.

9. 황금대초현(黃金臺招賢)

- 황금대를 지어 천하의 인재를 모으는 연소왕. -

다시 천하의 어진 선비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 역수(易水)의 강변에 높은 누각을 지어 황금을 쌓아 놓고 초현대(招賢臺)라고 이름 지었다가 황금대(黃金臺)라고도 고쳐 불렀다.

이윽고 연왕이 어진 선비를 찾는다는 소식이 먼 지방까지 전해지자 조나라의 극신(劇辛)⑦, 주나라로 도망친 소대(蘇代), 제나라의 추연(騶衍)⑧, 위(衛)나라의 굴경(屈景)등이 달려왔다. 연소왕은 그들을 모두 객경의 벼슬을 제수하고 그들의 의견을 물어 국정을 수행했다. 원조(元朝)의 유인(劉因)⑨이라는 문인이 《황금대》라는 제목의 시를 지어 이를 논했다.

연나라 산하는 바뀐 적이 없고

역수의 강물 흐르는 소리도 여전한데

저 높은 황금대를 지은 뜻을 누가 아는가?

만고에 변하지 않는 세상의 인심이 있음을!

燕山不改色(연산불개색)

易水無剩聲(이수무승성)

誰知數尺臺(수지수척대)

中有萬古情(중유만고정)

그러나 잘고 용렬한 후세 사람들은

황금이라는 이름에 집착했는데

황금이 도대체 무엇이길레

현인들의 경중을 가릴 수 있단 말인가?

區區後世人(구구후세인)

猶愛黃金名(유애황금명)

黃金亦何物(황금역하물)

能爲賢重輕(능위현중경)

주나라의 도리가 동쪽 땅으로 전해지자

두 노인⑩은 모두 서쪽으로 가버렸다.

연나라가 현인을 구하여 백성들을 교화하니

왕업은 이로써 스스로 이루어졌도다.

周道日東漸(주도일동점)

二老皆西行(이노개서행)

養民以致賢(양민이치현)

王業自此成(왕업자차성)

10. 六白里變成六里(육백리변성육리)

- 육백리를 육리라고 속여 초나라를 농락한 장의 -

한편 제민왕이 연나라를 점령하고, 연왕 쾌를 스스로 자살하게 만들었으며, 다시 자지는 잡아와 처형시키자 그의 위엄은 천하를 진동하게 되었다. 진나라의 혜문왕이 듣고 이를 걱정했다. 또한 합종의 맹주가 되어 제나라와 우호관계를 깊이 맺은 초회왕(楚懷王)은 부절을 만들어 나누어 갖고 이를 신표로 삼았다. 진나라의 혜문왕이 초나라와 제나라 사이를 떼어놓기 위해 장의를 불러 그 계책을 물었다. 장의가 자기의 의견을 말했다.

「신이 세 치 혀를 이용하여 남쪽의 초나라에 가서 기회를 엿보아 초왕을 설득하여 그로 하여금 필히 제나라와의 우호관계를 단절시키고 우리 진나라와 친하게 지내도록 하겠습니다.」

「과인은 경만을 믿겠소.」

장의는 즉시 진나라 상국의 인장을 풀어 진왕에게 바치고 초나라를 향해 출발했다. 장의는 근상(靳尙)이라는 총신이 항상 초회왕의 측근에 있으면서 그가 하는 말이라면 초왕은 무엇이든지 들어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장의는 초나라에 당도하기 전에 사람을 근상에게 보내 교분을 맺고 싶다는 뜻을 전하게 하고 많은 재물을 바쳤다. 이윽고 초나라에 당도한 장의는 근상을 통하여 초회왕의 알현을 청했다. 장의의 이름이 이미 천하에 떨치고 있음을 익히 들어 알고 있던 초회왕은 장의가 초나라에 온다는 소식을 접하자 친히 도성 밖의 교외에까지 나가 맞이하여 도성으로 인도한 후에 자기 앞자리에 앉히고 물었다.

「선생께서 먼 길을 오는 노고를 마다 않고 우리나라를 왕림하셨으니 무슨 가르침이 있어서입니까?」

「신이 이렇게 온 이유는 진과 초 두 나라의 우호를 위해서 입니다.」

「과인이 어찌하여 진나라와 수교를 맺는 일을 싫다하겠습니까? 단지 진나라가 우리 초나라를 침략하기를 끊이지 않고 있으니 감히 화친을 청하지 못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오늘날 천하의 정세를 살펴보면 천하는 모두 일곱 나라로 합쳐졌다고는 하나 대국인 초(楚), 제(齊), 진(秦) 등, 세 나라가 제일 강대하다고 하겠습니다. 진나라가 동쪽의 제나라와 힘을 합한다면 제나라가 강대해지고, 진나라가 남쪽의 초나라와 힘을 합한다면 초나라의 세력이 강력해 집니다. 그러나 저의 군주께서는 마음속으로 제나라보다는 초나라와 수호를 맺는 데에 뜻을 두고 계시는데 어째서인지 그 이유를 아시고 계십니까? 그것은 제나라가 우리 진나라와 혼인한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진나라에 등을 돌려 독단적인 행동만을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군주께서 대왕을 받들고자 하시고 이 장의 역시 대왕을 위해 문을 지키는 충직한 종이 되려고 하고 있으나, 대왕께서 오히려 제나라와 통호를 하고 계시니 그 일로 인하여 저희 왕께서 초나라를 멀리하고 계십니다. 대왕께서 진실로 제나라로 향하는 관문을 닫고 외교관계를 끊으신다면 저희 왕께서는 옛날 상군(商君)이 초나라로부터 취한 상오(商於)의 땅 600여 리를 초나라에 돌려드리고 저희 왕의 따님을 첩으로 바쳐 대왕의 궁정을 청소하게 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진나라와 초나라는 대대세세로 혼인하여 형제의 나라가 되어 다른 제후국들의 침략을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부디 대왕께서는 저희 왕의 뜻을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초회왕이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진나라가 기꺼이 옛날에 빼앗아간 우리 초나라 땅을 돌려준다고 하니 어찌 내가 제나라와의 관계에 연연해하겠는가?」

초나라의 모든 신하들이 초나라가 옛날의 땅을 돌려받게 되었다고 초회왕에게 칭하의 말을 올렸으나, 유독 한 사람이 신하들의 반열에서 뛰쳐나와 초회왕에게 상주하였다.

「절대로 불가한 일입니다. 신이 살펴보건대 이 일은 마땅히 슬퍼해야 할 일인데 어찌 기뻐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초회왕이 보니 그 사람은 바로 초나라의 객경으로 있는 진진(陳軫)⑪이라는 사람이었다.

회왕이 진진을 향해 그 연유를 물었다.

「과인이 아무런 수고도 하지 않고 앉아서 600리의 땅을 얻게 되어 여러 신하들이 모두 나에게 축하의 말을 올리는데 경만은 나에게 위문한다고 하니 무슨 연유에서인가?」

「대왕께서는 장의의 말을 믿으십니까?」

회왕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어찌하여 그를 못 믿는다고 하는가?」

「진나라가 초나라를 가볍게 보지 않는 이유는 제나라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만약 우리가 제나라와 외교관계를 끊게 되면 그 즉시 초나라는 고립됩니다. 그렇게 되면 진나라가 무엇 때문에 고립된 우리 초나라를 무겁게 보고 600여 리에 달하는 땅을 들어 바치겠습니까? 이것은 장의가 우리를 속이려는 계략입니다. 만약 초나라가 제나라와 외교관계를 끊는다면 장의는 그 즉시 대왕과 한 약속을 헌신짝 버리듯 할 것입니다. 또한 제나라는 우리 초나라를 원망하고 오히려 진나라에 붙어 제와 진나라가 힘을 합해 우리 초나라를 양쪽에서 협공할 것입니다. 그리되면 초나라의 멸망은 시간문제입니다. 신이 대왕께 조상을 올린 이유입니다. 대왕께서는 먼저 사자를 장의에게 딸려 보내 600리의 땅을 접수하여 초나라 땅으로 만들어 놓은 연후에 제나라에 절교한다고 통지를 해도 늦지 않습니다.」

대부 굴평(屈平)⑫도 앞으로 나와 말했다.

「진자(陳子)의 말이 옳습니다. 장의는 반복무상한 소인배라 결코 믿으시면 안 됩니다.」

총신 근상이 말했다.

「제나라와 절교를 하지 않는다면 진나라가 우리에게 선뜻 땅을 내주겠습니까?」

초회왕이 머리를 가로 저으며 말했다.

「장의는 결코 과인을 속이지 않을 것이다. 진자는 입을 다물고 더 이상 말하지 말라! 그대는 진나라에서 땅을 받게 되는 과인을 지켜보기 바란다.」

초회왕은 초나라 상국의 인을 장의에게 주고 다시 황금 백일과 양마 40필을 하사했다. 다시 북쪽의 관문을 지키는 수장에게 제나라의 사자를 통과시키지 말라는 명을 내리고 장군 봉후추(逢侯醜)에게 명하여 장의를 따라 진나라에 들어가 땅을 받아오라고 했다.」

장의가 진나라로 돌아가던 중에 봉후추과 술을 마시면서 심경을 토로하는데 마치 피를 나눈 형제를 대하듯이 하며 즐겨하였다. 그들의 행렬이 함양에 가까워지자 장의가 거짓 술에 취한 척하며 발을 헛디뎌 수레 위에서 굴러 떨어졌다. 장의의 측근들이 달려들어 부축하여 일으켰다. 장의가 큰 소리로 말했다.

「내 정강이가 심히 다친 듯 하니 빨리 가서 의원에게 보여야겠다.」

장의는 침대가 구비된 수레를 대령시켜 갈아 타고 일행과 떨어져 성안으로 달려가 혜문왕을 알현하고 초나라와의 일을 복명한 후에 사람을 보내 초나라에서 따라온 봉후추는 역관에 머물며 기다리라고 전했다. 진왕 앞에서 물러 나온 장의는 상부(相府)의 문을 닫아걸고 병을 치료한다고 하면서 조정에 나오지 않았다. 이에 역관에 머물고 있던 봉후추가 진왕의 접견을 청했으나 번번이 거절당하곤 했다. 할 수 없이 장의의 집으로 가서 기다렸으나 장의의 가노들은 장의의 병이 아직 낫지 않았다고 말할 뿐이었다. 이렇게 3개월의 시간이 지나가자 봉후추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표문을 써서 진왕에게 올려 장의가 초나라에 주기로 한 땅을 할양해달라고 청했다. 혜문왕이 답서를 써서 봉후추에게 전하게 했다.

「장의가 초나라에 땅을 준다고 했다면 과인은 어김없이 그의 말을 실천하겠으되 단지 초나라와 제나라가 아직 절교를 하지 않아 과인은 초나라가 속이지나 않을까 걱정할 뿐이로다. 장의가 아직 병상에서 아직 일어나지 못하여 내가 아직 그 언약에 대해 듣지 못해 믿지 못하겠노라!」

봉후추가 다시 장의의 집 앞으로 와서 그의 접견을 청했으나 장의는 결코 만나주지 않았다. 봉후추는 할 수 없이 진왕의 말을 글로 써서 사람에게 주어 회왕에게 바치도록 했다. 봉후추의 서신을 받아 읽은 회왕이 말했다.

「진나라가 아직도 초나라가 제나라와 절교를 하지 않았다고 의심하는데 그것은 너무 심하지 않는가?」

초회왕이 즉시 용사 송(宋)이라는 사람으로 하여금 송나라로부터 국경을 통과할 수 있는 부절을 빌려 곧바로 제나라 경계에 달려가게 해서 민왕에게 욕설을 퍼붓게 했다. 민왕이 대노하여 즉시 사자를 진나라로 보내 두 나라가 힘을 합쳐 초나라를 협공하자고 제안하였다. 마침내 제나라 사자가 당도했다는 소식을 들은 장의는 자기의 계책이 이미 성사되었다고 생각하여 즉시 자기의 병이 다 나았다고 고하고 입조했다. 장의가 봉후추를 조문 앞에서 만나자 시치미를 떼고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장군께서는 어찌하여 아직도 땅을 받아가지 않으시고, 아직도 우리나라에 머물고 계십니까?」

「진왕께서 상국을 만나본 연후에 결정을 하시겠다고 해서 여지껏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오늘 다행히 상국께서 옥체가 쾌유되어 이렇게 뵙게 되었으니 같이 진왕께 들어가 상오의 경계를 정해주시고 저로 하여금 저희 대왕께 복명을 고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이런 일로 어찌 저희 대왕님을 번거롭게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 장의가 한 말은 곧 나의 봉읍 중 6리를 떼어 내가 스스로 초왕에게 바치기로 한 것뿐입니다.」

「제가 우리 군주로부터 받은 명은 상오의 땅 6백리이지 단지 6리의 땅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습니다.」

「초왕께서 아마도 저의 말을 잘못 들으신 듯 합니다. 진나라의 땅은 어느 곳이든 수많은 싸움 끝에 얻었습니다. 어찌 한 뼘의 땅인들 다른 나라에 선뜻 내줄 수 있단 말입니까? 하물며 600리나 되는 땅을 내 줄 수 있겠습니까?」

봉후추가 할 수 없이 초나라에 돌아와 회왕에게 복명했다. 회왕이 대노하며 말했다.

「장의란 놈은 과연 반복무상한 소인배로구나! 내가 그 놈을 잡아 산채로 그의 고기를 씹으리라!」

초회왕이 명령을 내려 군사를 동원하여 진나라롤 공격하라고 했다. 객경 진진이 앞으로 나와 말했다.

「이제는 신이 입을 열어 말씀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과인이 선생의 말씀을 듣지 않아 교활한 도적에게 속임을 당했습니다. 선생께서는 오늘 어떤 묘책을 갖고 계십니까?」

「대왕께서는 이미 제나라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태에서 오늘 다시 진나라를 공격하려고 하시니 제게 보기에는 싸움에서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차라리 초나라의 두 성을 떼어 진나라에 뇌물로 바치고 진나라와 힘을 합쳐 제나라를 공격한다면 비록 진나라에 땅을 잃겠지만 제나라로부터 잃은 땅을 보상받을 수 있습니다.」

「원래 우리 초나라를 속인 나라는 진나라인데 제나라가 무슨 죄가 있단 말이오? 제나라와 힘을 합쳐 제나라를 공격한다면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비웃지 않겠소?」

그 날로 초회왕은 굴개(屈匃)⑬를 대장으로 봉후추을 부장으로 삼아 10만의 군사를 일으켜 천주산(天柱山)⑭을 우회하여 서북으로 진격하여 남전(藍田)⑮으로 곧바로 쳐들어가게 했다.

진나라의 혜문왕(惠文王)도 위장(魏章)⑯을 대장으로, 감무(甘茂)⑰를 부장으로 삼아 10만의 군사를 일으켜 초나라 군사를 막게 했다. 또한 다른 한편으로는 사자를 제나라에 보내 초나라를 배후에게 공격하도록 청하자 제나라는 광장을 장수로 삼아 군사를 이끌고 가서 진나라를 돕도록 했다. 굴개가 비록 용기 있는 장수였다고는 하나 두 나라의 협공을 당해내지 못하고 계속되는 싸움에서 지고 후퇴하기 시작했다. 진과 제 두 나라의 군사들은 초군의 뒤를 추격하여 단양에 이르렀다. 굴개가 패잔병을 다시 수습하여 다시 싸워보려고 했으나 감무에게 사로잡혀 참수되고 말았다. 진제(秦齊) 연합군은 전후의 싸움에서 초나라 군사 8만 여명의 수급을 베고 명장 봉후추 이하 70여 명의 장수들을 전사하게 했으며 초나라 영토였던 한중(漢中)의 600여리 땅은 모두 진나라 차지가 되어 초나라를 진동시켰다. 초나라가 진나라와의 싸움에서 대패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 한과 위 두 나라도 역시 초나라를 기습하여 초나라 북변의 땅을 차지하려고 했다. 초회왕이 크게 두려워하여 굴평을 사자로 제나라에 보내 예전의 단교했던 일에 대해 사죄하도록 하고 다시 진진을 진나라 진영으로 보내 두 성을 바치고 강화를 맺기를 청했다. 진나라 장수 위장이 사람을 진왕에게 보내 하명을 청했다. 진혜문왕이 말했다.

「과인이 바라는 것은 단지 검중(黔中)⑱의 땅만이라! 상오의 땅과 교환하는 일에 동의한다면 내가 즉시 군사를 물리치리라!」

위장이 진왕의 명을 받고 사람을 회왕에게 보내 전하게 했다. 회왕이 듣고 말했다.

「과인이 원하는 것은 땅이 아니다. 장의만 얻을 수 있다면 만족하겠다! 만약에 진나라가 장의를 우리 초나라에 넘겨만 준다면 과인은 정녕코 검중의 땅을 바쳐 감사의 표시를 하겠노라!」

《제92회로 계속》

주석

①포양(蒲陽)/ 포읍(蒲邑)을 말하며 지금의 하남성 장원현(長垣縣) 경내. 장원현은 개봉시(開封市) 북 황하 북안 동북으로부터 40키로 떨어져 있다.

②소량(少梁)/춘추 때 섬진의 영토로써 지금의 한성시(韓城市) 부근에 있던 성읍(城邑)으로써 섬서성과 산서성의 경계를 짓는 황하 서안의 도시임

③저리질(樗里疾)/ 진혜왕(秦惠王)의 서제로써 저리(樗里="지금의" 섬서성 위현(渭縣) 남)에 살았기 때문에 그곳의 이름을 성으로 삼았다. 처음에 서장(庶長)으로 임명되었다가 우승상이 되었다. 지략이 뛰어나 지낭(智囊)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었다.

④십위(十圍)/ 한 위(圍)는 한 뼘의 거리를 말하는 5촌을 말하며 1촌은 1/10 척임으로 10 위는 5척임. 춘추 때의 한 자는 약 22-23cm 임으로 자지(子之)의 허리 둘레는 110-115cm 임.

⑤익(益)/ 고대 전설에 나오는 인물로 백익(伯益), 백예(伯翳), 대비(大費)라고도 한다. 순임금으로부터 영(嬴) 성을 하사받아 진(秦)과 조(趙) 씨들의 선조가 되었다. 익은 우임금의 치수사업을 도와 고산대천(高山大川)을 안정시켰다. 다시 우임금으로부터 벼농사를 백성들에게 가르치라는 명을 받자 벼 씨앗을 지대가 낮은 습지에 뿌렸다. 우임금이 순임금으로부터 선양을 받아 제위에 오르자 그 부친인 고도(皐陶)의 보좌를 받아 나라를 다스렸다. 고도가 죽자 우임금은 익을 임명하여 국정을 맡겼다. 우임금이 죽음에 임하여 임금의 자리를 익에게 선양했으나, 익이 우임금을 보좌한 기간이 길지 못하고 천하가 아직 안정되지 못했기 때문에 제후들은 모두 익을 떠나 우임금의 아들 계(啓)에게 가서 조현을 드렸다. 우임금을 위한 삼년상이 끝나자 그는 임금의 자리를 계에게 물려주고 기산(箕山)의 남쪽으로 들어가 살았다.

⑥무종산(無終山)/ 지금의 천진시 계현(薊縣)에 무종국(無終國)이라는 나라가 있었으나 전국 때 연나라 땅이 되었다. 무종산이라 함은 계현 경내에 있는 산 이름을 지칭한다.

⑦극신(劇辛, ?-기원전 242)/ 전국시대 말 경 연나라 장수. 조나라 사람으로 연소왕이 많은 재물로 천하의 선비들을 초빙하자 그는 조나라를 떠나 연나라에 와서 벼슬을 살았다. 연왕 희(喜) 13년 (기원전 242년 )에 왕의 명을 받들어 군사를 이끌고 조나라에 쳐들어갔으나 오히려 조나라 장수 방훤(龐煖)에게 잡혀 죽었다.

⑧추연(騶衍)( 혹은 鄒衍 ?- 전 340 )/ 전국 때 직하(稷下) 학사 중의 한 사람. 음양가의 대표적인 학자로써 추자(鄒子)라 한다. 제나라 출신으로 위혜왕(魏惠王)이 어진 선비를 세상에서 널리 구할 때 위(魏)나라로 가자 위혜왕이 도성 밖 교외에까지 나가 맞이하고 갈석궁(碣石宮)이라는 집을 지어 그곳에 살게하고 스승으로 모셨다. 제선왕은 그를 초빙하여 직하(稷下)에 머물게 하고 상대부의 봉록을 내리고 신선(神仙)의 일에 대해 연구하도록 시켰다. 연소왕이 즉위하자 그는 제나라에서 연나라로 들어가 소왕의 신임을 받았다. 만년에 제나라를 위해 조나라에 사신으로 가자 조나라의 평원군(平原君)이 그를 접대하면서 감히 그와 마주 대하며 앉지 못했다. 그의 학설은 오행상생(五行相生)을 근거로 하여 저술한 <오덕종시(五德終始)> 56편이 있었으나 모도 실전하여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⑨유인(劉因)/원대의 문인. 자는 몽길(夢吉), 호는 정수(靜修)이다. 지금의 하북성 용성(容城) 출신으로 원세조(元世祖) 지원(至元) 19년, 서기1282년에 출사하여 승덕랑(承德郞)과 우찬선대부(右贊善大夫)를 지냈다. 이어서 모친이 연로하여 병이 들자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가 모친을 돌봤다. 지원 28년, 즉 서기 1291년 다시 원나라 조정은 그를 집현전학사로 임명하였으나 응하지 않고 고향에서 일생을 마쳤다. 유작으로는 <정수집(靜修集)> 30권이 있다. 유인(劉因)의 작품에는 유민사상(遺民思想)이 많이 반영되어 당시의 백성들로부터 많은 존중을 받았다. 백구, 도원행 등의 작품에서는 부물과 서경 그리고 영사를 막론하고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고국에 대한 그리움이 표출되고 있고 감정이 진지하면서도 침통하다. 몇몇 작품은 현실에 대한 불만을 완곡하게 드러나 있다. 언어는 소박하고 시풍은 웅혼하며 의미는 심장하다.

⑩이로(二老)/ 고죽국(孤竹國)의 왕자였다가 주문왕을 찾아간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를 말함.

⑪진진(陳軫)/ 전국 때 유세가(游說家). 초나라 하읍(夏邑 : 지금의 하남성 상구시(商邱市) 동남) 사람. 처음에는 장의(張儀)와 함께 진혜왕(秦惠王) 밑에서 벼슬하면서 두 사람이 서로 총애를 다투었다. 후에 진혜왕(秦惠王)이 장의를 총애하여 상국으로 명하자 초나라로 달아났다. 그러나 초나라에서 중용 되지 못하고 다시 예전처럼 초나라의 사자로 진나라에 파견되었다. 한(韓)과 위(魏)나라가 서로 싸우며 몇 년이 가도록 멈추지 않아 진혜왕이 진진에게 계책을 물었다. 진진은 대답하기를 한나라와 위나라가 오래 동안 싸우게 되면 큰나라는 상처를 입을 것이며 작은나라는 망하게 될 것인바 그 때에 가서 군사를 내어 상처를 입은 나라를 정벌하면 일거에 두 나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진혜왕이 진진의 말을 따라 위나라를 공격하여 대승을 할 수 있었다.

⑫굴평(屈平)/ 굴원(屈原)을 말한다. 평(平)은 이름이고 원(原)은 자(字)이다. 초나라 왕족 출신으로 초회왕(楚懷王) 밑에서 상관대부(上官大夫)와 좌도(左徒)의 벼슬을 살면서 내정과 외교에 많은 활약을 했으나 다른 신하들의 시기를 받았다. 초회왕이 진나라의 계교에 빠져 진나라에 억류되어 있다가 그 곳에서 객사하자 회왕의 장남이 경양왕(頃襄王)으로 즉위하고 막내 아들인 자란(子蘭)이 초나라 상국이 되었다. 자란의 잘못으로 인하여 초회왕이 진나라에 잡혀갔음으로 굴원은 자란을 비난하였다. 자란은 굴원을 참소하여 대부의 직에서 파직하고 쫓아내자 굴원은 초왕을 걱정하며 지금의 동정호(洞庭湖) 부근을 배회하다가 멱라수(汨羅水)에 돌을 품고 빠져 죽었다. 고대 시가문학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초사문학을 창시한 사람으로 저작에는 <이소(離騷)>, <어부사(漁父詞)>, <천문(天問)>, <구장(九章)> 및 <초혼(招魂)> 등이 있다.

⑬)굴개(屈匃 : ? - 기원전 312)/ 굴개(屈丐)라고도 하며 전국 때 초나라 장수. 미성(羋姓), 굴씨(屈氏)이다. 주난왕 3년 기원전 312년 초회왕 명을 받아 대군을 이끌고 진나라를 공격하였으나 단양(丹陽 : 지금의 하남성 단수(丹水) 북쪽)에서 오히려 진나라에 대패하고 자신은 사로잡혀 참수 당했다

⑭천주산(天柱山)/ 지금의 안휘성 곽현(霍縣)에 소재하는 곽산(霍山)의 주봉을 말한다. 수조(隋朝) 전까지 오악 중의 남악(南嶽)을 칭했다. 수조이후로 남악은 호남성에 소재하는 형산(衡山)을 말하게 되었다.

⑮남전(藍田)/지금의 섬서성 남전 서파하(西灞河) 서안(西岸), 서안(西安)의 남쪽에 있는 진령(秦嶺)을 넘는 전략상의 요충지.

⑯위장(魏章)/전국 때 위나라 출신으로 진나라 장군이다. 처음에는 위나라 장수가 되었다가 장의와 함께 진나라로 들어가 서장(庶長)에 임명되어 혜문왕을 섬겼다. 주난왕 3년 기원전 312년 군사를 이끌고 나아가 초나라를 공격했다. 저리질(樗里疾)과 감무의 도움을 받아 초나라의 군사들을 지금의 하남성 단수의 북쪽인 단양에서 크게 무찌르고 초장 굴개를 사로잡았다. 단양의 싸움에서 승리한 위장은 당시 초나라 령이었던 사방 600리에 달하는 한중의 땅을 점령하여 진나라 땅으로 만들고 그 곳에다 한중군을 설치했다. 같은 해에 다시 란전(蘭田 : 지금의 호북성 종상(鍾祥) 서북)에서 초나라의 대군을 궤멸시켜 초나라의 전력에 심대한 타격을 입혔다. 초나라는 이 두 싸움에서의 패배로 인하여 오랫동안 국세를 회복하지 못했다. 진무왕(秦武王)이 새로 즉위하자 장의와 함께 진나라에서 쫓겨나 위나라로 돌아가 그 곳에서 죽었다.

⑰감무(甘茂)/ 전국 때 진나라 대신. 하채(下蔡:지금의 안휘성 봉태현(鳳台縣)) 사람. 백가의 술을 배워 진나라의 혜문왕에게 임용되었다. 혜문왕의 뒤를 이은 진무왕(秦武王)이 진왕의 자리에 오르자 감무에게 촉후(蜀侯) 휘(煇)의 반란을 평정하라는 명을 내리고 좌승상에 제수하였다. 무왕 3년(기원전 308년)에 진나라가 삼천의 주나라 지방을 욕심내며 주왕실을 넘봤다. 감무가 진무왕에게 상주하기를 먼저 한나라를 공격하여 진나라의 강역을 넓히고 진나라와 한나라는 서로 국경을 접해야 한다고 했다. 진소왕이 무왕의 뒤를 이이 진왕의 자리에 올랐을 때 초나라가 한나라를 공격하자 한나라는 진나라에 구원을 청했다. 그래서 감무가 진소왕을 설득하여 구원군을 보내 한나라를 구원하게 했다. 이후로 우승상 저리질(樗里疾)과 협력하여 위나라를 공략하기 위해 진나라의 모든 힘을 경주하기 위해 한나라와 관계를 개선하려고 했으나 진소왕의 총애를 받고 있던 상수(向壽) 등의 의견과 맞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로부터 참소를 받아 제나라로 도망쳤다. 제나라는 감무를 상경에 임명했다. 후에 초나라에 사자로 들어갔을 때 진왕이 사람을 보내 진나라에 돌아오라고 유인했으나 응하지 않았다. 후에 위나라에 가서 그 곳에서 죽었다.

⑱검중(黔中)/전국 때 초위왕(楚威王 : 재위 전 340- 329년)이 초나라 땅으로 만들고 검중군(黔中郡)을 설치했다. 관할 지역은 호남성(湖南省) 서부와 귀주성(貴州省) 동북부이며 후에 진(秦)나라에 편입되었다.

⑲관택(觀澤)

[평설]

『선양(禪讓)을 배워 병화를 불러들인 연왕 쾌(噲)』편은 선양이라는 제도의 원래의 뜻과 달리 왜곡되어 시행된 일을 기술했다.

고대에 요임금이 천하를 순에게 선양했다. 그러나 주색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았던 연왕 쾌가 요순과 같은 성군의 행적을 흉내 내어 태자 평(平)을 폐하고 평시에 왕위를 넘보고 있었던 상국 자지에게 나라를 넘겨주었다. 기원전 316년 연왕 쾌가 현인에게 나라를 선양하려고 했던 일은 그 생각이 나쁜 것이 아니라, 문제는 그가 나라를 주려고 했던 자가 현인이 아니었던 데에 있었다. 군왕의 권력만을 매우 중하게 생각했던 자지는 결코 연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어 패권국을 만들 생각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은 백성들의 마음을 얻지 못한 자지는 그에게 반대하는 내란에 직면하게 되었다. 연나라의 그와 같은 한바탕의 소란스러운 선양이라는 연극은 요순이라는 명분으로 진행된 치열한 겸병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국제정세 하에서 약소국 입장인 연나라가 그 국가를 보존하고자 하는 절박한 심리를 반영한 것이다.

기원전 314년 제선왕은 내란이 일어난 연나라에 군사를 진격시켜 그 영토의 대부분을 점령했다. 이어서 제나라가 연나라 사람들을 자기 백성으로 만드는 일을 시작하자, 제나라 군사들이 출동한 목적은 연나라의 내란을 평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연나라를 멸망시켜 제나라 땅으로 만들기 위해서 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연나라 백성들은 일제히 봉기하여 제군에 대항했다. 이윽고 기원전 311년 태자 평(일설에는 공자 직(職))을 받들어 연왕으로 삼았다. 이가 연소왕(燕昭王)이다. 제나라가 독단으로 연나라를 병탄하려는 야욕을 품고 있다고 생각한 조나라의 무령왕은 제나라가 대국으로 등장하는 상황을 탐탁하지 않게 생각했다. 제나라의 군사행동에 대해 국제적인 정세가 제나라에 대해 불리하게 돌아가자, 제민왕은 어쩔 수 없이 연나라부터 철군해야 했다. 그것은 어떤 강대국이건 다른 나라를 멸망시켜 자기 땅으로 만드는 일은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한다. 그러나 그 일은 또한 동방의 강대국으로 등장한 제나라가 다른 나라를 병탄하려는 야심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기원전 317년 제군이 위와 조 두 나라의 연합군을 관택(觀澤)⑲에서 대파했을 때는, 제나라는 다른 나라에 대한 병탄의 의지를 확실히 나타내지 않았으나, 연나라를 침략했을 때는 그 뜻을 분명히 드러낸 것이다.

그와 같은 정세 하에서 고난의 세월을 보낸 연나라는 몇 가지 교훈을 얻었다. 연소왕은 황금대(黄金台)를 짓고 천하의 인재를 널리 구하여 부국강병을 꾀했다. 겸병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국제정세 하에서 인재의 부재는 나라를 결코 온전하게 지킬 수 없다. 연소왕이 황금대를 지은 것은 비록 시간이 많이 걸리기는 했지만 훌륭한 인재들을 초치하기 위함이었다.

제나라가 연나라의 내란을 빌미로 그 땅을 병탄하려고 하던 그 시각에 진나라는 자기들의 동방 진출에 가장 걸림돌이 되었던 이민족 국가였던 의거(義渠)의 25개 성을 점령하여 그 서북지구를 지배를 공고히 함으로 해서 후방에 대한 근심을 완전히 덜었다. 그와 동시에 초나라의 서쪽 변경에 있었던 파(巴)와 촉(蜀)을 멸하고 그 곳에 백성들 만호를 이주시켜 진나라의 통일 전쟁에 소요되는 병참기지를 조성했다.

진나라의 그와 같은 군사행동은 전략상으로 볼 때 매우 탁월하다고 할 수 있다. 파촉의 인력과 물자를 장강의 순류를 따라 동진하게 되면 매우 신속한 속도로 초나라의 서쪽의 관문인 한관(扞関)에 당도하여 초나라의 도성인 영성을 위협할 수 있다. 초나라를 얻게 되면 진나라는 다시 서와 남 양쪽으로 나아가 한과 위 두 나라에 대한 포위망을 형성한다. 이윽고 한과 위 두 나라를 얻은 후에, 다시 방향을 북쪽으로 돌려 조와 연을 겸병하고, 마지막으로 동쪽으로 나아가 동방의 강대국 제나라를 병탄하는 천하 통일에 대한 전략을 추진하는데 매우 유리한 고지를 차지한 것이다. 동진인 상거(常璩)는 그의 저서 화양국지(華陽国志)※에서, ‘ 촉을 얻은 것은 초를 얻게 된 것이고, 초를 얻은 것은 천하를 얻은 것이다.’라고 기술했다. “ 거짓으로 땅을 바쳐 초나라를 속인 장의 이야기”는 그와 같은 역사적인 배경 하에서 발생한 것이다. 진나라는 남쪽으로 진출하여 초나라와 다투었고, 그 목적은 진나라가 동진할 때, 남쪽에서의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서 였다. 그러나 제와 초 두 강대국이 동맹을 맺은 상태에서, 진나라가 초를 제압하기 위해서는 제초 두 나라간의 동맹을 깨야만 했다. 그래서 장의는 진나라의 상(商)과 오(於) 6백 리에 달하는 땅을 초나라에 할양겠다는 미끼를 사용하여 초나라에게 제나라와 단교를 하고 진나라와 동맹을 맺을 것을 요구했다. 초회왕은 단지 진나라에서 주겠다는 땅에만 정신이 팔려 기원전 313년 장의의 제안을 접수했다. 회왕은 후속 조치로 제나라와 단교를 한다는 국서를 보내고 별도로 사람을 제나라 국경에 보내 제왕에게 욕을 퍼붓도록 했다. 제왕이 크게 분노하여 초와 단교를 행하고 진나라와 수호를 맺었다. 그때서야 비로소 장의는 자기가 주겠다고 한 땅은 6백 리가 아니라 단지 6리라고 시치미를 뗐다. 장의에게 속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초회왕은 군대를 보내 진나라를 공격했다. 진군이 반격하여 초군을 대파하고 오히려 초나라 령의 한중 땅을 점령해 버렸다. 한과 위 두 나라 역시 그 기회를 틈타 초나라를 공격했다. 초나라는 할 수 없이 두 개의 성을 떼어 진나라에 바치고 강화를 맺을 수밖에 없었다. 진나라가 땅을 떼어 준다는 미끼로 제와 초 두 나라를 속여 단교를 하게 만든 결과 결국 제초(齊楚)는 원수의 나라가 되었다. 외교적인 활동으로 초나라를 고립시킨 진나라는 야욕을 들어내 초나라를 공격하여 패주시키고 초나라 령인 한중군을 빼앗아 갔다. 이로써 진나라는 초나라를 공격하는데 한수의 순류를 따라 초나라를 공격할 수 있는 또 다른 길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진나라의 그와 같은 전략은 참으로 절묘하다 하겠다.

그러나 초나라의 한중군을 차지한 성과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던 진나라는 다시 초나라의 검중군(黔中郡)을 차지하여 초나라를 공격할 때 한수와 장강의 순류를 이용한 수군과 육로를 이용한 육군과 상호 호응할 수 있는 진격로를 확보하려고 했다. 그래서 기원전 311년 진나라는 다시 초나라를 향해 무관 이동 지역의 땅과 검중군을 바꾸자고 제안했다. 이에 초회왕은 무관 이동의 땅 대신 진나라가 장의만을 초나라에 보내주면 검중군을 진나라에 할양하겠다고 답했다. 이에 당연히 이해타산을 두드려 본 진나라가 관심을 보이자 장의가 스스로 초나라에 가겠다고 나섰다. 장의가 위험을 무릅쓰고 감히 초나라에 가겠다고 자청한 것은 미리 뇌물을 주어 매수해 놓은 초나라의 권신 근상(斳尚)의 존재를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근상은 다시 초회왕의 총희 정수(鄭袖)와 선이 닿아 있었다. 그래서 신변의 안전을 확보한 장의는 또다시 초회왕에게 유세하여 진나라와 혼인으로 친선관계를 맺도록 만들어 진초의 연횡을 성사시켰다. 비록 검중군의 땅을 얻지는 못했지만 초나라로 하여금 솔선하여 진나라 복종하게 만들어 진나라가 추진하고 있던 동진정책의 가장 큰 장애물이었던 초나라로부터의 위협을 제거하는 쾌거를 이루어 냈다. 진나라는 또 하나의 커다란 외교상의 승리를 얻었다.

※화양국지

동진의 상거(常璩)가 지은 화양국지(華陽國志)는 지방지라고도 하고 지방의 역사서라고도 하는데, 중국 서남지구의 사회와 역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써 역사적 가치가 높다고 인정하고 있다. 모두 12권으로 진대(晉代)의 양(梁), 익(益), 영(寧) 3주 지역에 관한 사서로 <파(巴)>, <한중(漢中)>, <촉(蜀)>, <남중(南中)>과 <공손술(公孫述)>, <유이목(劉二牧) : 유언(劉焉), 유장(劉璋)을 말함>, 촉의 유선주(劉先主 :유비(劉備)>, <유후주(劉後主 : 유선(劉禪)>, <대동(大同)>, <서진통일(西晉統一)> 등 13지로 나누었다. 특히 30여 소수민족의 명칭과 분포 상황을 비롯하여 파, 촉, 저, 강 등의 소수민족의 역사와 풍속, 전설과 한족 정권과의 관계를 수록하였으며, 저자가 성한(成漢)의 신하여서 동진에게 멸망당한 다음 받았던 억압으로 불편한 심기까지 드러내 놓아 지방 민족주의적인 정서를 보이고 있다. 고대 수리관개시설의 뛰어난 기술을 보여준 사천성 관현(灌縣)의 도강언(都江堰)에 관한 내용과 촉지(蜀志)와 파지(巴志)에는 특히 염전에 관한 기록이 상세하다. 때문에 정사에 기록된 것은 전국적인 것이어서 이 지역에 관한 기록이 누락된 부분이 많이 있지만 화양국지는 정사에 부족한 자료를 충분히 보충할 수 있다. 이종(李宗)의 <中國歷史要籍介紹> 上海古籍出版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