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8회 佯狂脫禍 圍魏救趙(양광탈화 위위구조)

거짓으로 미친 척 하여 화를 면하는 손빈과

조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위나라를 포위하다.

1. 陷入網羅

- 방연이 친 흉악한 그물망에 떨어진 손빈 -

귀곡(鬼谷)에서 하산한 손빈은 위나라로 들어가서 원수부의 방연을 찾아가 자기를 천거해 준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표했다. 손빈의 말에 방연은 자기가 손빈을 위해 큰 은혜 베풀기나 한 듯이 얼굴에 덕색을 띄우며 거만한 자세로 손빈을 대했다. 손빈은 귀곡선생이 자기의 이름 빈(賓)을 빈(臏)으로 개명해 주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방연이 듣고 놀라 물었다.

「빈(臏)이라는 글자는 ‘죄를 얻어 다리가 잘리다.’라는 불길한 글자로 결코 좋은 뜻이 아닌데 어찌하여 그런 글자로 이름을 바꾸었단 말입니까?」

「스승님의 분부이니 내가 어찌 그 분부를 어길 수 있겠는가?」

다음 날 두 사람이 같이 입조하여 위혜왕을 알현했다. 전당에 있던 혜왕이 계단을 내려와 심히 공경하는 태도로 예의를 갖추어 손빈을 맞이했다. 손빈이 혜왕에게 절을 올리며 말했다.

「신은 곧 촌야의 일개 필부이온데 대왕의 부름을 받은 은혜를 입어 스스로 부끄러운 마음을 감출 길이 없습니다.」

「묵자께서 선생이야말로 손무의 비전을 유일하게 물려받은 사람이라고 칭송하셨습니다. 과인은 선생이 왕림해 주시시기를 목마른 사람이 한 모금의 물을 애타게 구하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제 오늘 이렇게 무거운 발걸음을 해 주시니 내 평생의 큰 위안이 되겠습니다.」

혜왕이 방연을 향해 물었다.

「과인이 손빈 선생을 부군사의 직에 봉하여 경과 함께 위나라의 군사에 대한 일을 관장시키려고 하는데 경의 생각은 어떠합니까?」

방연이 대답했다.

「신과 손빈선생과는 동문수학하면서 결의형제를 맺어 제가 형님으로 모시고 계시는 분입니다. 어찌 형님 되시는 분을 부군사로 삼을 수 있겠습니다. 우선 손빈 형님을 객경(客卿)의 자리에 임명한 후에 그가 공을 이루게 되면 신이 마땅히 그에게 군사의 직을 양보하여 그 밑에서 일하도록 하겠습니다.」

혜왕이 방연의 말을 기특하게 여겨 손빈을 객경으로 임명하고 안읍 성내의 한 구역을 손빈이 살집으로 하사하고 대우는 방연에 이어 그 다음 자리에 두었다. - 방연이 손빈을 객경으로 천거한 목적은 객경이란 직위는 손님의 대우를 받아 군주에게 신하의 예를 행하지 않아도 되어 외형으로는 매우 높은 대우를 받는 듯 같지만 실은 실권이 없는 자리였다. 방연이 군사에 관한 일을 손빈에게 나누어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 이후로 손빈과 방연은 서로 왕래를 빈번히 하다가 어느 날 방연이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손빈이 이미 손무의 비전을 전수 받았다고 하나 내가 아직 들어보지 못했으니 필시 그를 시험해 보리라!」

방연이 즉시 술자리를 마련하고 손빈을 청했다. 술잔이 몇 순 배 도는 순간 자연히 병사의 관한 대화로 옮겨지게 되었다. 방연이 묻자 손빈의 대답은 마치 흐르는 물과 같이 막힘이 없었다. 이어서 손빈이 방연에게 병법의 몇 구절을 물었으나 방연을 그것이 어디에 있는 지를 전혀 알지 못했다. 그래서 짐작가는 데가 있는 방연은 손빈에게 아무 것도 모르는 체 하고 넘겨짚어서 물어보았다.

「그 말은 손무자(孫武子)의 병법에 나오는 구절이 아닙니까?」

손빈은 전혀 의심하지 않고 대답했다.

「그렇다네!」

「이 재주 없는 동생도 역시 옛날에 스승님으로부터 전수를 받았으나 스스로 마음속에 새겨두지 않아 그 내용을 잊어 먹고 말았습니다. 오늘 형님에게서 그 책을 빌려 공부하게 된다면 다시는 잊지 않을 수 있겠습니다.」

「그 책은 스승님께서 상세히 주를 달아 원본과는 같지 않았는데 스승님께서 나에게 보여주시더니 3일 만에 다시 회수해 가셔서 베낄 틈이 없어 책으로 가지고 있지 않네.」

「형님께서는 그 내용을 기억하여 다시 글로 써낼 수 있습니까?」

「기억이 희미하기는 하나, 글로 써낼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네.」

방연은 비록 그 책을 구하여 전수를 받으려는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여의치 못하여 가슴을 바싹 태울 수 있을 뿐,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단지 일시적으로 손빈을 다그쳐서 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자 혜왕이 손빈의 재주를 시험해보기 위해 군사들을 연병장에 모아 놓고 열병식을 거행했다. 이어서 손빈과 방연으로 하여금 진법을 운영해 시범을 보이도록 명했다. 방연이 먼저 마친 포진 법을 손빈이 한번 보더니 즉시 그 진법에 대해 설명하고 파진법(破陣法)까지 말했다. 손빈의 차례가 되어 그가 진을 한 번 치자 방연은 그것이 도대체 무슨 진법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몰래 손빈을 찾아가 물었다. 손빈이 자기가 친 진법에 대해 방연에게 설명해 주었다.

「이것은 곧 전도팔문진(顚倒八門陣)이라는 진법이라네!」

「어떻게 변합니까?」

「공격할 때는 장사진(長蛇陣)이로 변한다네.」

방연이 손빈이 설명하는 말을 듣고 혜왕에게 먼저 달려가 자기가 아는 것처럼 손빈이 친 진법에 대해 설명했다.

「손빈이 포진한 진법은 전도팔문진이라 하옵고 공격할 때는 장사진으로 변하게 됩니다.」

혜왕이 진법의 시범을 마치고 자리에 돌아온 손빈에게 그 진법에 관해 물었다. 손빈의 대답하는 말은 방연이 먼저 설명했던 말과 틀림이 없었다. 그래서 혜왕은 방연의 재주가 손빈에게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마음속으로 기뻐했다.」

이윽고 방연이 원수부에 돌아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손빈의 재주는 나보다 크게 뛰어나니 만약에 그를 빨리 제거하지 않으면 후일에는 틀림없이 그에게서 박해를 받게 되리라!」

마음속으로 궁리를 하던 방연이 마침내 한 가지 계책을 생각해 냈다. 얼마 후에 은밀히 손빈을 청한 방연이 그의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형님의 친척들은 모두 제나라에 있는데 형님은 우리 위나라에서 벼슬을 살고 있습니다. 어찌하여 형님의 친척들을 불러와 같이 부귀를 누리시지 않으십니까? 」

손빈이 듣더니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동생이 비록 나와는 같이 공부를 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자네는 내 집안에 대해 모르는 일이 많네. 나는 5살에 모친을 여의였으며 9살에는 부친마저 잃었다네. 그래서 손교(孫喬)라는 숙부의 집에서 자랐네. 숙부께서는 제강공(齊康公)①에게 출사하여 대부의 직에 계셨으나 곧이어 전태공(田太公)②이 제강공을 바닷 속의 외딴 섬으로 보내고 강공을 모셨던 신하들은 모두 쫓아내거나 죽이는 바람에 우리 손씨 일족들은 사방으로 흩어지고 말았네. 이어서 숙부와 손평(孫平)과, 손탁(孫卓) 등의 사촌 형님들께서 나를 데리고 주나라로 란을 피했으나 그때 마침 몰아닥친 기근으로 인하여 주나라 왕성의 북문 밖으로 나를 데려다 주고 숙부님과 형님들은 어디론가 알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리셨네. 후에 성년이 된 나는 이웃 사람들로부터 학문이 높은 귀곡선생에 대한 소문을 듣고 마음속으로 앙모한 나머지 단신으로 귀곡으로 들어가 스승님의 제자가 되어 병법을 배우기 시작했었네. 그리고 많은 세월이 흘렀음으로 고향으로부터는 소식이 끊어지고 가족들의 행방은 더욱 묘연하게 되어 비록 종족들이 살다 있다한들 도대체 어디 가서 찾는단 말인가?」

방연이 다시 손빈을 향해 물었다.

「그렇다고 해도 선조들을 모신 분묘가 고향 어디에 있는 줄은 아시지 않습니까?」

「사람이 초목이 아닌 바에야 어찌 자기의 근본을 잃을 수 있겠는가? 스승님께서 내가 하산하여 길을 떠날 때 말씀하시기를 나 역시 고향에 가서야 공명을 이룰 수 있다고 했는데 지금 나는 위나라의 신하가 되었으니 이제는 맞지 않는 말이 되었네 그려!」

방연이 손빈의 내력을 알아내고는 짐짓 걱정해 주는 척하며 말했다.

「형님의 말이 참으로 옳으십니다. 대장부는 자기가 머무는 곳에서 공을 세우면 되지 구태여 고향에서만 입신출세하라는 법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반년이 경과할 때까지 손빈은 그 때 한 말을 모두 마음에 두지 않고 잊고 지냈다. 그런 어느 날 조회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갑자기 어떤 사람이 제나라의 말씨를 쓰며 손빈을 향해 말을 걸어 왔다.

「혹시 객경이신 손빈 선생이 아니십니까? 」

손빈이 산동 말씨를 쓰는 사람을 객경부로 데리고 가서 그 내력을 물었다. 그 사람이 말했다.

「소인의 이름은 정을(丁乙)이라는 사람으로 임치(臨淄) 사람입니다. 주나라를 오고가며 행상을 하고 있습니다. 선생의 형님 되는 분의 편지를 부탁 받고 전해 드리러 귀곡으로 찾아갔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는 이미 하산하시어 위나라에서 이미 관직을 얻으셨다는 소식을 듣고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정을이라고 하는 사람이 품속에서 편지를 꺼내더니 손빈에게 바쳤다. 손빈이 편지를 받아 겉봉을 뜯고 읽었다.

『못난 형들인 평(平)과 탁(卓)은 현제에게 몇 자 적어 보내니 읽어보기 바란다. 옛날 낙양에서 너와 헤어진 후에 우리 가족은 송나라로 들어가서 농사를 짓고 소도 함께 키우면서 살다가 얼마 전에 너의 숙부께서는 병이 들어 타향 땅에서 숨을 거두셨다. 아들된 우리의 아픈 마음은 어찌 말로서 표현할 수 있겠느냐? 그런데 지금은 다행히 제나라 왕께서 옛날의 나쁜 감정을 모두 푸시고 우리로 하여금 고향에 돌아와 살게 하셨다. 그래서 우리가 동생을 불러 같이 살면서 쓰러진 가문을 다시 일으키려고 하는 중이다. 우리가 들으니 동생은 귀곡 문하에서 수학하여 좋은 옥으로 다듬어져 큰그릇이 되려는 자질을 갖췄다고 했다. 이에 이 사람 편에 우리의 소식을 전하니 다행히 제나라로 돌아올 계책을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마련하도록 하여 우리 형제가 다시 상면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겠다.』

손빈이 편지의 내용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큰 소리를 내어 목 놓아 울었다. 정을이 말했다.

「제가 선생의 형님 되는 분들로부터 당부 받기를 선생에게 권하여 하루라도 빨리 고향으로 돌아와 골육이 서로 상면하게 되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나는 이미 위나라에서 벼슬살이를 하고 있어 이 일은 서둘러서 되는 일이 아니오.」

이어서 손빈이 좌우에 명하여 술상을 내오게 하여 정을을 극진히 대접하게 하고 답장을 한 통 써서 주며 자기 형님들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편지의 서두에는 고향을 잊지 못한다는 말을 쓰고 말미에는 다음과 같이 썼다.

『이 동생이 이미 위나라에서 벼슬을 살고 있어 내 임의대로 귀향할 수 있는 형편이 못됩니다. 잠시 기다리시면 제가 공을 세운 후에 서서히 수구(首丘)③의 계책을 내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손빈이 정을에게 편지를 전하면서 황금 한 덩어리를 주어 노자로 쓰라고 했다. 정을이 편지와 황금을 받아 들고 작별 인사를 고하고 길을 떠났다.

그러나 손빈은 정을이라는 자가 바로 방연의 수하 심복인 서갑(徐甲)이라는 사실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옛날 손빈과의 술좌석에서 그에 관한 내력을 듣고 모두 기억한 방연이 손빈을 모함하기 위해 손평과 손탁이 쓴 편지를 위작하여 심복인 서갑을 제나라의 상인 정을로 위장시켜 전하게 한 것이다. 손빈은 어렸을 때 그의 사촌들과 헤어졌기 때문에 그들의 필적을 분간할 수 없어 그 편지가 가짜인 줄 몰랐다. 방연이 속임수를 써서 손빈의 회답을 받아 그의 필적을 모방하여 편지의 내용 중에 몇 구절을 다음과 같이 바꾸어 넣었다.

『동생의 몸은 지금 위나라의 조정에서 벼슬을 살고 있지만 마음은 항상 고국 땅 위에 걸려 있습니다. 조만 간에 고국 땅으로 돌아갈 계책을 세우도록 하겠습니다. 만일 제왕께서 동생의 하찮은 재주나마 버리시지 않으신다면 내 마땅히 나의 온 힘을 다하여 그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이윽고 방연이 몰래 입조하여 위혜왕을 알현하고 좌우를 물러가게 한 후에 자기가 위조한 편지를 바치면서 말했다.

「손빈은 우리 위나라를 배반하고 제나라로 돌아가려는 마음을 품고 있었습니다. 과연 얼마 전에 제나라에서 온 사자와 내통하고 써준 답서를 제가 사람을 시켜 교외에서 그의 길을 막고 있다가 붙잡아, 몸을 뒤진 끝에 찾아냈습니다.」

위혜왕은 방연이 바친 편지를 다 읽은 후에 말했다.

「손빈의 마음이 자기 고향 땅을 향해 있는 이유는 과인이 그를 중용하지 않아서 자기의 능력을 발휘 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니겠소?」

방연이 대답했다.

「손빈의 조부 손무는 오왕 합려 밑에서 대장을 지내던 사람이었지만 결국은 후에 오나라 대장 자리에서 물러나 제나라로 돌아갔습니다. 부모의 나라를 누구인들 잊을 수 있겠습니다. 대왕께서 비록 손빈을 중용한다 해도 손빈의 마음은 이미 제나라에 기우려져 있기 때문에 틀림없이 우리 위나라를 위해 온 힘을 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더욱이 손빈의 재주는 신에 비해 못하지 않으니 만약에 제나라가 손빈을 불러 장군으로 임용한다면 우리는 천하를 놓고 제나라와 다투게 되어 큰 낭패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이 일은 후일에 대왕의 크나큰 후환이 될 수 있으니 차라리 죽이십시오.」

「손빈은 나의 부름에 응하여 위나라에 들어왔고 그리고 그가 지은 죄도 아직 확실하게 들어 나지 않았는데 갑자기 그를 죽인다면 천하 사람들은 과인이 선비를 가볍게 대한다고 비난하지나 않을까 걱정되오.」

「대왕의 말씀은 참으로 지당하십니다. 신이 마땅히 손빈에게 대왕의 뜻을 전하여 만일 손빈이 위나라에 계속 머물겠다면 대왕께서는 손빈의 직위와 녹봉을 더욱 높여주시고 만약 그가 듣지 않고 위나라를 떠나려고 한다면 대왕께서는 신에게 명하여 손빈의 죄를 묻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신은 스스로 처리할 방법을 강구해 보겠습니다.」

방연이 혜왕의 면전에서 물러 나와 손빈을 찾아가 물었다.

「동생이 들으니 형님께서는 집안으로부터 천금과 소식을 들으셨다는데, 사실입니까?」

손빈은 원래 충직한 위인이라 아무런 의심함이 없이 방연의 말에 대답했다.

「동생의 말대로 편지를 받았소.」

손빈은 자기가 고향을 한번 찾아보고 싶다는 뜻을 적은 편지를 보냈다고 방연에게 설명해 주었다. 방연이 듣고 말했다.

「이 동생은 형님께서 오래 전에 떠나온 고향을 한 번 찾아가고 싶어 하시는 마음을 지니고 계시는 일은 인지상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형님께서는 어찌하여 위왕에게 잠시 한 두 달의 말미를 얻어 고향을 찾아가 성묘를 하고 다시 돌아오겠다고 청하시지 않으십니까?」

「대왕께서 내가 휴가를 청하면 의심하여 허락하지 않을까 걱정해서이네.」

「형님께서 일단은 청하시면 이 동생이 곁에 있다가 돕도록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훌륭한 동생을 믿고 표장을 올려 말미를 청해보도록 하겠네.」

그날 밤 방연이 다시 입조하여 혜왕을 찾아 손빈의 일에 대해 상주했다.

「신이 대왕의 명을 받들어 손빈의 집을 찾아가 대왕의 유지를 전했으나 손빈은 한사코 위나라에 머물 수 없다고 하면서 한편으로 대왕을 원망하는 말을 했습니다. 만약에 불원간 손빈이 휴가를 청하는 표장을 받으시게 된다면 대왕께서는 손빈이 제나라 사자와 내통한 죄를 묻겠다고 하시기 바랍니다.」

혜왕이 방연이 하는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날 손빈이 과연 한 통의 표장을 혜왕에게 올려 한 달여의 말미를 얻어 제나라에 있는 선조의 묘에 성묘를 하고 돌아오겠다고 했다. 혜왕이 표장을 보고 대노하여 표장의 끝머리에 비문을 달았다.

「제나라 사자와 내통한 손빈이 자기 나라로 돌아가겠다고 오늘 표장을 올리니 이것은 결국은 우리 위나라를 등지겠다는 속셈에서다. 손빈은 결국 나의 기대를 저버렸다. 그의 관직과 봉록을 삭탈하고 그를 붙잡아 군사부에 넘겨 그의 죄를 묻도록 하라」

군정을 맡아보는 관리가 혜왕의 명을 받들어 손빈을 붙잡아 군사부의 방연에게 호송하여 그의 죄를 치죄토록 하였다. 군사들 손에 잡혀온 손빈을 본 방연이 짐짓 놀란 척 하면서 물었다.

「형님께서 어쩐 일로 이렇게 잡혀 오시게 되었습니까?」

군정사가 혜왕이 내린 명을 전하자 방연이 왕명을 받드는 의식을 행하고 손빈을 향해 말했다.

「제가 생각하기에 형님께서는 억울한 누명을 쓰신 듯합니다. 미욱하나마 이 동생이 왕께 달려가 형님의 목숨을 보전토록 온힘을 다해 간해 보겠습니다.」

방연이 어자에게 수레를 달리게 하여 혜왕을 찾아가 알현하고 상주했다.

「손빈이 비록 제나라 사자와 내통했다고는 하지만 죽을죄에 해당하는 범죄에 해당하는 죄목은 아닙니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월형(刖刑)④과 묵형(墨刑)⑤을 동시에 집행하여 그를 폐인으로 만들어 평생토록 자기의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면 어떨까 합니다. 그렇게 되면 비록 그 목숨을 살려준다고 할지라도 또한 후일의 환난을 막을 수 있으니 이것은 대왕의 은혜를 지키는 동시에 후환을 피할 수 있는 두 가지 목적을 동시에 이룰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신이 스스로 결정할 수 없어 이렇게 특별히 만나 뵙고 주청을 드립니다.」

「경의 생각이 최선인가 하오!」

방연이 감사의 말을 드리고 혜왕 앞에서 물러 나와 군사부로 돌아와 손빈을 보고 말했다.

「크게 분노하신 대왕께서형님을 극형에 처하라는 명을 내리셨으나 이 동생이 재삼 간하여 다행히 목숨만은 보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월형과 묵형은 위나라의 법도라 이 동생이 힘을 다하여 감면을 권해 보았으나 그것만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손빈이 듣고 한탄하며 말했다.

「내가 하산할 때 귀곡 스승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비록 신체에 해를 입기는 하겠지만 목숨을 잃을 정도의 큰 불행은 당하지 않으리라!’라고 하셨는데 오늘 내가 목숨이나마 보전할 수 있음은 바로 어진 동생이 힘써준 덕분이라는 사실을 알겠다. 내가 어찌 동생의 은혜를 잊을 수 있겠는가?」

방연이 즉시 도부수를 불러 손빈을 포승줄로 묵게 한 후에 양쪽 다리의 슬개골(膝蓋骨)⑥을 뽑아 버리게 했다. 손빈이 고통에 못 이겨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르더니 정신을 잃고 땅바닥으로 쓰러졌다. 이윽고 시간이 반 시진쯤 경과하자 형리들이 달려들어 정신을 차린 손빈을 다시 침으로 얼굴에 ‘외국과 내통한 자[私通外國])’이라는 글자를 뜨고 그 외에 먹을 입혔다. 방연이 곁에 있으면서 거짓으로 손빈을 위해 곡소리를 크게 내며 우는 척하면서 무릎에 난 상처에 약을 바르고 다시 천으로 싸서 치료했다. 이어서 사람을 시켜 손빈을 부축하여 자기의 서재로 옮기게 하고 좋은 말로 위로하면서 그곳에 머물면서 상처를 치료하도록 보살펴 주었다. 이윽고 한 달여가 지나자 손빈의 무릎에 난 상처가 봉합이 되었으나 무릎의 종지뼈가 없어진 두 다리는 힘이 없어져 보행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손빈은 오로지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염옹이 시를 지어 이 일을 논했다.

빈(臏)자로 이름을 바꾸어 다가올 화를 미리 예언했건만

어찌하여 방연의 음모로 화를 입을 때까지 기다렸는가?

손빈의 지나친 고지식은 참으로 웃음거리로다!

오히려 자기의 생명을 구해주었다고 은혜에 감격했으니!

易名臏字禍先知(이명빈자화선지)

何待龐涓用計時(하대방연용계시)

堪笑孫君太忠直(감소손군태충직)

尙因全命感恩私(상인전명감은사)

2. 佯狂脫禍(양광탈화)

- 거짓으로 미쳐 방연의 마수에서 벗어나는 손빈. -

손빈은 결국 폐인이 되었다. 방연은 폐인이 된 손빈을 하루에 세 끼를 진수성찬으로 공양하고 매우 지극한 마음으로 공대했다. 이윽고 방연은 손빈에게 귀곡자 스승이 손무병법서(孫武兵法書)에 단 주해를 옮겨 적어 달라고 청했다. 손빈은 방연의 청을 흔쾌히 허락했다. 방연은 목간을 손빈에게 주며 그 위에 손무병법서의 주해를 옮겨 적도록 했다. 손빈이 손무병법서 주해를 옮겨 적는 작업을 십분의 일 쯤 했을 때였다. 방연의 관사에는 이름을 성아(誠兒)라고 부르던 하급 군졸이 있었다. 방연은 그에게 명하여 몸이 불편한 손빈의 시중을 들도록 시켰다. 손빈이 아무런 죄도 없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형벌을 받은 사실을 알고 있었던 성아는 평소에 연민의 정을 느끼고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방연이 성아를 부르더니 손빈이 병법서를 옮겨 쓰는 일이 얼마나 더 걸리겠느냐고 물었다. 성아가 대답했다.

「손장군께서는 두 다리가 불편하여 오래 동안 누워있어야 하는 반면에 앉아서 글쓰기는 잠시 밖에 하지 못해 하루에 겨우 이삼 책 밖에 쓰시지 못하고 있습니다.」

방연이 화를 내며 말했다.

「책을 쓰는데 그와 같이 더디어서야 어느 세월에 끝내겠는가? 너는 빨리 달려가 그를 재촉하여 하루 빨리 완성하라고 이르라.」

성아가 방연의 앞에서 물러 나와 방연의 근시에게 물었다.

「군사께서 손장군에게 책을 옮겨 적게 하기를 이렇듯 재촉하시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방연을 모시던 근시가 대답했다.

「그대는 모르는가? 손장군을 대하는 군사는 겉으로는 비록 동정하고 있는 척하나 마음속으로는 질시하고 있다네. 그런 군사가 지금 손장군의 목숨을 살려주고 있는 이유는 단지 병법서를 얻고자하는 마음에서 일 뿐이라, 만일 손장군이 병서의 필사를 다 마친다면 당장에 그에게 주는 음식을 중지시켜 굶겨 죽일 생각이라네. 자네는 절대 이 사실을 누설하지 말게나!」

성아가 그 사실을 아무도 몰래 손빈에게 고했다. 손빈이 크게 놀라 말했다.

「원래 방연이 의리가 없는 놈이었다는 사실을 내가 잠시 잊고 있었구나! 내가 어찌 그런 놈에게 병법을 전해주겠는가?」

그리고 손빈은 다시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만약에 내가 병서를 옮겨 적는 일을 중지한다면 그는 필시 크게 화를 내어 내 목숨은 끝이 날 터인데 이를 어찌 한단 말인가!」

손빈이 여러 가지로 생각을 하며 자기가 처한 위험한 상황을 빠져나갈 계책을 궁리하다가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났다.

「귀곡 스승님께서 내가 하산할 때 주신 금낭(錦囊)을 주시면서 ‘아주 위급한 상황에 처할 때 열어보아라.’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때가 바로 지금인 듯하다.」

손빈은 즉시 금낭을 찾아 열어보니 그 속에는 노란 색의 비단천 한 폭이 있었다. 그 가운데에 ‘미친 사람처럼 행동하라는 뜻의 사풍마(詐瘋魔)’라는 세 글자가 써 있었다. 손빈이 보고 말했다.

「원래 일의 시말이 이러했구나!」

그날 저녁 여느 때처럼 식사가 들어와 젓가락을 들고 식사를 시작하려던 손빈이 갑자기 정신이 혼미한 척하더니 먹던 밥을 토했다. 이윽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후에 크게 화를 내고 두 눈을 까뒤집으며 옆에 있던 성아를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너는 어찌하여 독약을 넣은 음식으로 나를 해치려고 하느냐?」

이어서 식탁 위의 술병과 음식 그릇들을 모두 쓸어서 땅 바닥에 던져 버렸다. 다시 자기가 그때까지 손무병법을 필사한 죽간을 가져와서 불 속에 던져 태워서 없애버린 후에 자신은 땅에 쓰러져 벌렁 자빠지더니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욕지거리를 끊임없이 해 대었다. 그런 손빈의 갑작스러운 행동거지가 손빈의 속임수인줄 모르고 황망한 마음으로 방연에게 달려가 그가 실성했다고 고했다. 방연이 다음날 친히 손빈이 묵고 있는 곳으로 와서 그의 상태를 살펴보니 손빈은 온 얼굴에 흘린 침으로 범벅이 된 상태로 땅에 엎드려 큰 소리로 웃다가 갑자기 대성통곡했다. 방연이 손빈을 향해 물었다.

「형님께서는 어째서 울다가 웃으시다가 하십니까?」

「위왕이 내 목숨을 빼앗으려 하고 있으나 나에게는 하늘에서 내려주신 십만 명의 천군(天軍)이 나를 돕고 있는데 그가 나를 어찌하겠느냐? 그래서 웃고 있다. 내가 통곡을 하는 이유는 손빈이 없는 위나라에 대장을 할 말한 사람이 없어 이를 슬퍼해서다.」

손빈이 말을 마치고 다시 논을 부릅뜨고 방연을 노려보더니 머리를 돌에 부딪치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귀곡 선생님, 이 손빈의 한 목숨을 구해주십시오!」

방연이 손빈을 보고 말했다.

「나는 형님의 동생 방연입니다. 나는 귀곡 선생님이 아닙니다.」

손빈이 방연에게 달려들어 그의 도포자락을 붙들고 큰 소리로 외쳤다.

「선생님 저를 구해 주세요!」

손빈이 계속 소리를 치며 붙잡고 있던 방연의 도포자락을 결코 놓지 않았다. 방연이 좌우에게 명하여 손빈을 강제로 잡아 당겨 떼어 내도록 했다. 방연이 비밀리에 성아에게 물었다.

「손장군의 미친병이 언제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는가?」

「어제 밤부터 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방연이 수레에 올라 군사부로 물러가면서 마음속으로 의심하는 마음을 풀지 않았다. 손빈이 혹시라도 일부러 미친척하고 있지나 않을까 걱정한 방연은 그 진위를 시험해 보기 위해서 좌우에게 명하여 손빈을 돼지우리 속에 던져 살게 했다. 돼지우리 속의 손빈은 돼지가 배설한 오물에 뒤범벅된 몸이 되어 풀어헤쳐 머리로 얼굴을 가린 후에 바닥에 누워 태연히 잠을 청했다. 방연이 듣고 다시 수하의 하인을 시켜 돼지우리 속의 손빈에게 술과 음식을 가져다주며 손빈의 마음을 떠보기 위해 다음과 같이 말하게 했다.

「소인은 평소에 선생을 존경하고 있었는데 선생께서 억울한 누명을 쓰시고 월형(刖刑)을 받으신 처지를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여 이렇게 음식을 원수 몰래 가져왔습니다.」

하인의 말은 방연의 계략이라는 사실을 이미 간파한 손빈은 두 눈을 흉악하게 부릅뜨고 욕을 해댔다.

「네 놈은 음식에 독을 넣어 나를 죽이려고 하는구나!」

손빈은 하인이 가져온 술과 음식을 바닥에 던져 버렸다. 방연이 보낸 사람이 다시 개똥과 진흙을 이겨서 덩어리를 만들어 손빈에게 주자 손빈이 손으로 받아서 아무 주저함이 없이 먹어 버렸다. 하인이 돌아와 방연에게 일의 전말을 상세하게 보고하자 방연이 듣고 말했다.

「손가가 마침내 미치고 말았구나! 이제는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

그후로는 손빈을 돼지우리 속에서 나오게 하여 나라 안을 돌아다니게 하였다. 손빈은 어느 날은 아침 일찍 나갔다가 저녁 늦게 돌아와 예전과 변함없이 돼지우리 속으로 들어가 잠을 잤으며 어떤 날은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고 시정의 길거리에서 거지들과 같이 자곤 했다. 어떤 때는 혼자 말로 중얼거리다가 다시 깔깔거리며 웃었으며, 어떤 때는 슬픔에 겨워 애통하게 울곤 했다. 시정의 사람들이 그가 위왕의 객경을 지냈던 손빈이라는 사실을 알고 미친병에 걸려 폐인이 된 처지를 매우 애처롭게 생각하여 음식을 나누어 주곤했다. 손빈은 어떤 때는 주는 대로 받아먹고 어떤 때는 먹지 않았다. 입으로는 쉴 새 없이 미친 소리에 황당한 소리를 지껄였기 때문에 손빈이 거짓으로 미친 체하고 있는 줄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방연이 관할의 수령들에게 분부하여 매일 아침 손빈의 소재를 고하라 하고 여전히 자기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에는 가지 못하게 했다. 염옹이 시를 지어 이 일를 노래했다.

칠국은 어지러이 뒤엉켜 싸우고 있는데

준걸은 때를 잘못 만나 그물에 걸렸다.

간신이 시기하는 마음을 품으니

좋은 친구 한 명을 가짜 미치광이로 만들었구나!

紛紛七國鬪干戈(분분칠국투간과)

俊杰乘時歸网羅(준걸승시귀망라)

堪恨奸臣懷嫉忌(감한간신회투기)

致令良友詐瘋魔(치령양우사풍마)

그때 묵적이 천하를 돌아다니다가 제나라에 들려 전기(田忌)⑦의 집에 손님으로 묵고 있었다. 위나라에 살고 있었던 제자 금활(禽滑)이 그의 스승을 뵙기 위해 제나라에 당도하자 묵적이 물었다.

「손빈이 위나라에 출사했는데 그가 뜻을 펼쳐 세상에 이름을 떨치게 되었느냐?」

손빈이 위나라에서 월형을 받는 모습을 직접 옆에서 지켜봤던 금활은 그 사실을 묵적에게 전했다. 묵적이 듣고 한탄해 마지않았다.

「내가 원래 손빈을 위해 위혜왕에게 천거한 일이 오히려 그를 해치게 만들었구나!」

이어서 손빈의 재주와 방연의 투기에 의해 손빈이 월형을 당해 폐인이 된 사실을 전기에게 말했다. 전기가 묵적에게 들은 손빈에 대한 일을 제위왕에게 고했다.

「우리나라의 훌륭한 선비가 이웃 나라에 가서 욕을 당하고 있는데 이것은 크게 잘못된 일입니다. 」

「과인이 군사를 일으켜 위나라를 쳐들어가 무력을 시위하여 손빈을 빼내오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방연이라는 자는 손빈이 자기 나라를 받드는 일도 용납하지 않았는데 어찌 제나라를 섬기라고 보내주겠습니까? 만약에 손빈을 데려오시겠다면 필시 여차여차한 방법을 써서 아무도 몰래 수레에 태워 와야 만전을 기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는 절대 불가합니다.」

제위왕이 전기의 계책을 따라 즉시 객경으로 있던 순우곤(淳于髡)⑧에게 명을 내려 위혜왕에게 제나라의 명차(名茶)를 바친다는 명목으로 사자로 삼아 위나라에 보내 손빈을 구해오도록 했다.

순우곤이 제위왕의 명을 받들어 차를 실은 마차를 몰고 국서를 받아서 위나라로 길을 떠났다. 금활은 순우곤을 수행하는 종자로 가장했다. 이윽고 순우곤의 일행이 위나라 도성인 안읍에 당도하여 위혜왕을 알현하고 제위왕의 명으로 차를 바치러 왔다고 고했다. 혜왕이 크게 기뻐하며 순우곤을 역관에 머물게 했다. 금활은 미친척하고 있던 손빈을 보았지만 아무런 말도 건네지 않고 모른척하고 지나쳤다. 이윽고 야심한 밤이 되어 비밀리에 손빈을 찾아가서 보니 그는 우물가의 난간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손빈이 금활을 봤으나 눈만 크게 뜨고 쳐다볼 뿐 아무 말도 건네지 않았다. 금활이 이윽고 눈물을 흘리며 손빈에게 말을 건넸다.

「손장군께서 어찌하여 이렇듯 곤욕을 당하고 계십니까? 저는 묵적 선생님의 제자인 금활이라는 사람입니다. 저의 스승 묵적 선생님께서 손장군의 억울한 일을 제왕에게 고하자 제왕께서 손장군을 매우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제왕께서는 손장군님을 구하기 위해 제나라의 객경으로 계시는 순우곤님을 보내셨습니다. 위왕에게 공물로 보내는 명차는 단지 핑계이고 실은 손장군을 몰래 제나라로 모셔간 후에 월형을 당한 손장군의 원수를 갚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금활의 설명을 듣고 난 손빈은 두 눈에서 비오듯이 눈물을 흘리더니 이윽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일찍이 흐르는 강물에 빠져 죽을 팔자인줄 알았는데 오늘 이런 기회가 올 줄은 정말로 몰랐소! 그러나 방연이 나를 의심하여 감시를 매우 삼엄하게 하고 있으니 나를 데려가는 일은 쉽지 않을 듯하니 걱정이 앞섭니다.」

「우리들은 이미 계책을 세워 가지고 왔으니 그렇게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닙니다. 우리가 정한 약속한 날이 되면 모시러 오겠습니다.」

금활은 손빈에게 만날 날과 장소를 서로 약속하고 절대로 다른 곳으로 옮겨가면 안 된다고 다짐해 두었다.

다음날, 위왕은 순우곤이 말을 잘하는 세객임을 알고 많은 황금과 비단을 하사하여 존경을 표하며 환대했다. 위왕에게 작별의 인사를 하고 돌아가려고 하던 순우곤을 방연이 붙잡아 장정(長亭)이라는 곳에 술자리를 마련하여 전별연을 벌렸다. 그날 밤 금활이 먼저 온거(溫車)⑨를 끌고가 손빈을 태우고 그가 입고 있던 의복은 왕의(王義)란 군졸에게 대신 입혀 손빈의 행세를 하도록 했다. 머리를 풀어 산발 한 왕의는 진흙을 얼굴에 발라 손빈의 모습으로 분장했다. 지방의 관리로부터 손빈의 소재를 미리 보고 받은 방연은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방연이 마련한 전별연에서 같이 술을 마신 순우곤은 이별을 고하고 장정을 출발하여 제나라로의 귀국 길에 올랐다. 금활에게 손빈을 태운 온거를 앞서서 달려가게 하고 순우곤 자신은 몸소 그 후위를 살폈다. 그리고 며칠의 날짜가 지나자 왕의도 역시 몸을 빼내어 제나라 사자 일행의 뒤를 따라왔다. 손빈을 감시하던 관리는 손빈이 입고 있던 더러운 의복만을 발견하고 사람을 풀어 그 일대를 샅샅이 뒤졌지만 그의 행적을 결코 찾을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그 관리는 손빈이 사라진 사실을 방연에게 보고했다. 손빈이 혹시 우물에 몸을 던져 죽지 않았는지 의심한 방연은 사람을 시켜 시체를 찾도록 했으나 찾을 수 없자 사람들을 시켜 계속해서 위나라의 안읍 성내를 구석구석 뒤져 손빈의 종적을 찾아보게 했다. 그러나 방연은 결코 아무런 단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오히려 위왕으로부터 책임 추궁을 받지 않을까 걱정한 방연은 손빈이 물에 빠져 죽었다고 보고하고 그 좌우들에게는 입조심을 시켰다. 그는 손빈이 몸을 빼서 제나라로 달아난 사실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3. 田忌賽馬(전기새마)

- 전기가 제왕과의 경마에서 이기다. -

한편 위나라 국경을 벗어나 안전한 곳에 이르게 된 순우곤은 온거에 숨긴 손빈을 꺼내 목욕시켜 의복을 갈아입힌 후에 행차를 계속 재촉하여 임치성(臨淄城)을 향해 달려갔다. 순우곤의 일행을 기다리고 있던 전기가 몸소 성문 밖까지 나와 손빈을 맞이했다. 전기가 제왕을 찾아가 손빈의 도착을 알렸다. 제위왕은 포거(蒲車)⑩를 보내 손빈을 태워 입조토록 했다. 손빈에게 병법에 대해 몇 마디 물어본 위왕은 곧바로 관직을 내리려고 했다. 손빈이 사양하며 말했다.

「지금까지 한 치의 공도 세우지 못한 제가 어찌 감히 작위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또한 위나라의 방연에게 신이 제나라에 임용되었다는 소문이 퍼진다면 그는 다시 투기심을 일으켜 제나라가 병화를 입게 되지나 않을지 걱정됩니다. 잠시 저의 일을 덮어두고 있다가 신이 활약할 때가 되면 그때 가서 저에게 관작을 내리셔도 늦지 않은 일입니다.」

손빈의 말을 따라 관직을 보류한 제위왕은 손빈을 전기의 집에 머물도록 했다. 전기는 손빈을 상객으로 대했다. 손빈이 금활을 찾아 묵적에게 감사의 말을 하려고 했으나 그 스승과 제자 두 사람은 간다는 말도 없이 제나라를 떠나 버리고 난 후였다. 손빈이 탄식해 마지않았다. 다시 사람을 시켜 자기의 사촌들인 손평(孫平)과 손탁(孫卓)을 수소문하였지만 그들의 행방은 묘연하여 찾을 수가 없었다. 그때서야 비로소 옛날의 편지는 모두 방연이 거짓으로 만든 속임수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제위왕은 여가를 즐길 때 항상 공실의 공자들과 말을 달려 경주를 하거나 활쏘기 시합을 열어 돈을 거는 도박을 락으로 삼았다. 전기는 여러 차례에 걸쳐 제위왕과 경마시합을 했으나 할 때마다 힘이 좋은 위왕의 말 때문에 거금의 돈을 잃었다. 하루는 전기가 손빈을 데리고 경마장에 가서 내기하는 광경을 구경시켰다. 손빈이 보기에 전기가 탄 말들은 제왕의 말들보다 그 힘이 그다지 심하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경마의 결과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전기의 말들은 세 번 겨루어 세 번 다 제왕의 말들에게 지고 말았다. 손빈히 내기에서 져서 의기소침해 있던 전기에게 조용히 말했다.

「장군께서 내일 다시 한 번 내기를 하자고 왕께 청하십시오. 제가 능히 장군으로 하여금 틀림없이 내기에 이기도록 해 드리겠습니다.」

「선생께서 저로 하여금 내기에 이길 수 있도록 만 해주신다면 천금의 상금을 걸고 왕과 내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장군은 의심하지 마시고 단지 내기를 청하시기만 하십시오.」

손빈의 말대로 전기는 제위왕에게 경마내기를 청하며 말했다.

「신이 경마내기를 해서 여러 번에 걸쳐 대왕에게 졌습니다. 내일 제가 가재를 모두 털어 한 번의 큰 승부를 해 볼까 합니다. 매 경주마다 천금의 황금을 걸고 건곤일척의 승부를 걸어보려고 하오니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위왕이 웃으면서 전기의 청을 허락했다.

다음날 여러 공자들이 장식을 화려하게 차린 거마들을 이끌고 일제히 경주장에 입장했다. 백성들도 구경하려고 몰려들어 그 수효가 수천 명에 이르렀다. 전기가 손빈에게 말했다.

「선생께서 말씀하신 필승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제가 경주 한마당마다 천금의 황금을 걸었습니다. 희언하면 제가 큰 돈을 잃게 됩니다.」

「제나라의 좋은 말들은 모두 왕의 마구간에 몰려 있습니다. 그래서 매 번의 경주마다 장군이 왕과의 경주에서 이기려고 하심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경주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세 번의 시합에 출전하는 말들을 상중하로 나누어 장군의 말 중에 가장 힘이 약한 하사마(下駟馬)를 왕의 가장 뛰어난 상사마(上駟馬)에 대결시키고 장군의 상사마(上駟馬)는 왕의 중사마(中駟馬)에 다시 장군의 중사마는 왕의 하사마에 대결시키면 장군께서는 세 번의 승부에서 비록 한 번은 지겠지만 나머지 두 번의 시합에서는 이길 수 있습니다.」

전기가 듣고 말했다.

「참으로 훌륭한 방법입니다.」

이윽고 자기의 하사마를 금으로 장식한 안장과 비단으로 만든 언치⑪를 올려서 상사마로 꾸며 위왕과의 경주에 내보냈다. 전기의 말들이 힘이 딸려 위왕의 말들과는 크게 뒤쳐지게 되었다. 전기가 경주에 져서 다시 천금을 잃었다. 위왕이 즐거워하며 크게 웃었다. 전기가 위왕에게 말했다.

「아직도 두 번의 경주가 남아 있으니 신이 남은 경주에서 모두 졌을 때 그때 저를 비웃으셔도 좋습니다.」

이어서 두 번째와 세 번째의 경주를 연달아 전기가 이기게 되어 전기는 오히려 천금을 따게 되었다. 전기가 위왕에게 고했다.

「오늘 제가 대왕과의 경주에서 이길 수 있었음은 신의 말들이 힘이 세서가 아니라 손빈 선생의 가르침으로 해서 이기게 되었습니다.」

전기는 경주에 내 보내는 말들의 구분하여 내 보내 시합에서 이긴 사실에 대해 말했다. 위왕이 탄복하며 말했다.

「이것은 조그만 일이라고는 하나 이 일로 인해 손빈 선생의 지혜가 얼마나 깊은 지 짐작할 수 있겠소!」

그런 다음부터 위왕은 손빈을 더욱 존경하게 되었고 하사한 상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4. 圍魏救趙 桂陵之戰(위위구조 계릉지전)

- 기원전 353년 위위구조 작전으로 계릉에서 싸워 방연의 위군을 무찌르다. -

한편 손빈을 폐인으로 만들었던 위혜왕은 조나라에게 빼앗긴 중산 땅을 그때까지 회복하지 못했음을 이유로 방연을 책망했다. 방연이 위혜왕에게 고했다.

「중산은 위나라 땅과 멀리 떨어져 있고 조나라와 가까이 있습니다. 우리가 멀리 원정을 나가 그들과 전쟁을 하기에는 우리가 불리한 입장이오니 차라리 우리 위나라와 가까이 있는 땅을 빼앗아 중산의 땅과 교환하도록 하겠습니다. 신이 청컨대 왕을 위해서 한단으로 직접 쳐들어가 중산을 빼앗긴 원한을 갚겠습니다.」

위혜왕이 방연의 청을 허락했다. 방연은 병거 500 승을 동원하여 조나라로 쳐들어가 한단을 포위했다. 한단의 수장 비선(丕選)이 방연과의 싸움에서 연전연패하자 조성후(趙成侯)에게 표문을 올려 구원을 청했다. 조성후는 제나라에 사자를 보내 중산 땅의 일부를 바치겠다는 조건을 제시하면서 원병을 청했다. 이미 손빈의 능력을 알고 있었던 제위왕은 그를 대장으로 삼아 조나라를 구원하려고 했다. 손빈이 대장의 자리를 사양하며 말했다.

「신은 형벌을 받은 죄인의 몸이라 제가 장수가 되어 군사들을 지휘한다면 제나라에는 인재가 없다는 것을 천하에 알리는 결과가 되어 적군의 웃음을 사게 됩니다. 청컨대 전기(田忌) 장군을 대장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위왕이 전기를 대장으로 임명하고 손빈은 군사로 삼았다. 손빈은 항상 초거(轈車) 안에 머물러 있으면서 아무도 몰래 계책을 내어 전기에게 전했음으로 제나라 군중에 그의 이름은 아는 사람이 없었다. 전기가 군사를 이끌고 한단으로 가서 조나라를 구하려고 하자 손빈이 반대하며 말했다.

「조나라 장수 비선은 방연의 적수가 되지 못합니다. 우리의 원군이 당도할 때쯤이면 한단성은 위나라 군사들에게 의해 이미 함락된 후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방연의 퇴군로 중간에 주둔하고 있으면서 위나라의 양릉(襄陵)⑫ 땅을 공격한다고 소문을 내면 방연은 본국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없이 회군해야만 합니다. 회군하는 위군을 기다렸다가 공격하면 우리가 이기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전기가 손빈의 계책을 따랐다.

한단의 수장 비선은 제나라의 구원병을 기다리다가 힘이 다하여 결국은 성을 들어 방연에게 항복했다. 방연은 사람을 위왕에게 보내 한단을 점령해다는 첩보를 띄우고 계속해서 조나라의 다른 성을 공격하기 위해 진격을 하려는 순간 갑자기 제나라의 전기가 위나라가 빈틈을 타고 양릉(襄陵)을 기습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방연이 놀라 말했다.

「양릉을 잃게 되면 위나라 도성 안읍이 진동하게 된다. 내가 마땅히 군사를 돌려 위나라의 근본을 구해야 되겠다. 」

방연이 즉시 군사를 정돈하여 회군하다가 계릉(桂陵)⑬ 밖 20리 되는 곳에서 제나라 군사와 조우하게 되었다. 원래 위나라 군사의 행군로를 예측하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던 손빈은 먼저 제나라의 아장 원달(袁達)에게 3천의 군사를 주어 위나라 군사들의 길을 막고 싸움을 걸도록 시켰다. 방연의 조카 방총(龐葱)이 선봉에 섰다가 제나라 군사를 맞이하여 교전에 들어갔다. 두 사람이 어우러져 20여 합을 싸우다가 원달이 거짓으로 싸움에 패한 척을 가장하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제나라 군사들의 함정에 빠지지나 않을까 걱정한 방총은 감히 그 뒤를 추격하지 못하고 군사를 물리쳐 뒤따라오던 방연의 본대에 돌아가 보고했다. 방연이 듣고 방총을 꾸짖었다.

「제나라의 편장 하나 능히 붙잡지 못하고서 어찌 그 대장인 전기를 사로잡을 수 있겠느냐?」

방연이 말을 마치고 즉시 대군을 휘몰아 제나라의 뒤를 추격하기 시작하였다. 이윽고 방연의 본대가 계릉에 당도하자 전면에 제나라 군사들이 진을 치고 열을 지어 위나라 군사들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방연이 병거를 타고 앞으로 나가 제군의 진세를 살펴보니 그들이 친 진법은 옛날에 손빈이 위나라에 처음 왔을 때 자기에게 가르쳐 준 ‘전도팔문진(顚倒八門陣)’이라는 진법이었다. 방연이 마음속으로 의심하는 마음이 일어 생각했다.

「어찌 전기가 ‘전도팔문진’이라는 진법을 알고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손빈이 제나라로 돌아갔다는 말이 아닌가?」

방연이 병거에서 내려 위나라 군사들에게도 진법에 따라 진을 치도록 명했다. 이윽고 제나라 진영에서 ‘대장전기(大將田忌)’라고 쓴 깃발과 함께 융거 한 대가 앞으로 달려 나왔다. 수레에는 온 몸에 갑옷을 두른 전기가 화극을 손에 들고 그 정 가운데에 서있었다. 그의 오른 쪽에는 과를 손에 든 전영(田嬰)⑭이 차우장군으로 시립하고 있었다. 전기가 큰소리로 방연을 향해 소리쳤다.

「위나라 장수는 능히 감당할 만 하다고 생각하면 앞으로 나와 할 말이 있으면 해 보라!」

방연이 친히 병거를 몰고 앞으로 나와 전기를 향해 말했다.

「제와 위 두 나라는 옛날부터 줄곧 사이를 좋게 지낸 사이인데 어찌하여 조와 위 두 나라 사이의 원한 관계에 제나라가 끼어들어 좋은 우호국을 원수의 나라로 만들려고 하는가?」

「조나라가 중산의 땅을 우리 왕에게 바쳐 구원을 요청하였다. 이에 우리 대왕께서 나에게 조나라를 구하라는 명을 내리셨다. 만약이 위나라도 몇 개의 군을 우리 제나라에 할애한다면 내가 당장 군사들을 이끌고 물러가겠다.」

방연이 크게 화를 내며 말했다.

「네가 무엇을 믿고 감히 나의 앞길을 막으며 대적하려고 하느냐?」

「네가 능력이 있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우리가 친 진법이 무엇인지 알겠느냐?」

「그 진법은 곧 나의 스승이신 귀곡자님께서 나에게 전수해주셨다. 그런데 네가 어찌 그 중 한 둘을 훔쳐 배워서 오히려 나에게 묻고 있음이 아니냐? 그 진법은 우리 위나라에는 세 살 먹은 어린아이도 능히 알고 있느니라!」

「네가 능히 이 진법을 알고 있다고 하니 그렇다면 이 진을 깨뜨릴 수 있겠구나!」

방연이 마음속으로 주저하며 깨뜨릴 수 없다고 말하려다가 자존심이 상해 큰소리로 대답했다.

「그 진법을 능히 알 수 있는데 어찌 깨뜨릴 수 있는 방법인들 모르겠느냐?」

방연이 방영(龐英), 방총(龐葱), 방모(龐茅)를 불러 전도팔문진을 깨뜨리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옛날에 손빈이 이 진법을 파하는 방법을 간단하게 설명한 바가 있어 내가 기억하고 있다. 이 진법은 공격을 받게 되면 장사진으로 변한다. 그 머리를 적으로부터 공격당하게 되면 꼬리가 뒤에서 협공하고 다시 꼬리를 공격당하게 되면 머리가 협공하고, 다시 가운데를 공격당하게 되면 머리와 꼬리가 양쪽에서 협공하여 공격하는 측은 삽시간에 곤경에 빠지게 된다. 오늘 내가 저 진 속으로 들어가 깨뜨리려고 하니 너희 세 사람은 각기 한 떼의 병사들을 이끌고 있다가 제군의 진이 변하기 시작하면 일제히 진격하여 장사진의 머리와 꼬리가 서로 호응하지 못하도록 막도록 하라! 제군이 진법은 자연히 무너질 것이다.」

방연이 세 사람의 장수들에게 분부하는 말을 마치고 자기는 스스로 선봉 5천 명의 병사를 이끌고 제군이 친 진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방연이 이끄는 군사들이 제군의 진 중으로 들어가자 진 안에서 여덟 방향에서 여덟 가지 색의 깃발이 어지러이 휘날리더니 서로 자리를 바꾸었다. 과연 방연이 예상한 대로 각 방향에 한 개씩의 문이 나타났는데 그것은 각기 휴(休), 생(生), 상(傷), 두(杜), 경(景), 사(死), 량(惊), 개(開) 등의 여덟 개의 문이었다. 방연이 좌충우돌했으나 과를 든 제나라 갑사들에게 마치 숲속의 나무처럼 빽빽이 에워싸여 진 밖으로 나갈 수가 없는 상황에 빠지고 말았다. 방연의 주위에서는 오로지 쟁이과 북소리만이 어지러이 울릴 뿐이었다. 이윽고 사방에서 군사들의 함성소리가 천지를 진동시키면서 갑자기 수많은 깃발들이 세워졌다. 그 깃발에는 모두 ‘군사손(軍師孫)’이라는 세 글자가 뚜렷이 써있었다. 방연이 보고 마음속으로 크게 놀라 중얼거렸다.

「앉은뱅이가 과연 제나라로 갔단 말인가? 내가 지금 그의 계교에 떨어지고 말았구나!」

방연이 제군의 공격을 받아 바야흐로 위급한 지경에 처한 순간, 마침 방영과 방총이 이끄는 두 대의 군사들이 달려와 방연만을 간신히 구해 가지고 진 밖으로 탈출하고 나머지 선봉을 선 5천 명의 군사들은 한 사람도 남김없이 제나라 군사들에게 살해되거나 포로가 되어 버렸다. 방연이 자기 진영으로 돌아와 방모의 행방을 물었으나 그는 이미 싸움 중에 전영에게 살해되었다고 했다. 결국 자기가 거느리던 위나라 군사 2 만여 명을 한 사람도 남김없이 싸움 중에 잃어버린 방연은 매우 낙담해 마지않았다.

원래 팔괘진(八卦陣)은 여덟 방향의 군사들이 중앙의 무기(戊己)⑮ 괘(卦)에 해당하는 일대와 함께 9대를 이루어 그 형태는 정사각형을 이루는 진법이었다. 방연이 군사를 이끌고 들어와 진형을 파하려고 하자 머리와 꼬리의 두 대를 뽑아 정사각형의 두 모서리에 배치하여 외부의 구원군을 막게 하고 나머지 일곱 대의 거마를 이용하여 원형으로 변화시켜 방연을 공격했기 때문에 방연이 현혹되어 참패를 당한 것이다. 후에 당나라 때 위국공(衛國公) 이정(李靖)⑯이라는 사람이 손빈의 전도팔문진의 진법을 변형힌 진법을 만들었는데 육화진(六花陣)이 바로 그것이다. 의이것을 말하는 시가 있다.

전도팔문진의 진법을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이유는

옛날 귀곡선생이 어렸을 때 배워 전수했기 때문이다.

방연이 안 것은 단지 장사진뿐이라,

방원의 오묘한 변화를 어찌 알 수 있었겠는가?

八陣中藏不測機(팔진중장불측기)

傳來鬼谷少人知(전래귀곡소인지)

龐涓只曉長蛇勢(방연지효장사세)

那識方圓變化奇(나식방원변화기)

지금도 하남성 수현(睢縣) 경내의 당읍(堂邑) 동남쪽에 유명한 고대의 싸움터가 있는데 그곳은 곧 손빈과 방연이 진법을 놓고 다투던 곳이다.

한편 손빈이 제나라 진영에 있음을 알게 된 방연은 마음속으로 두려운 생각이 들어 방영, 방총과 상의하여 영채를 버리고 몰래 잠적하고 있다가 밤을 도와 위나라로 철수해 버렸다. 위나라의 영채가 비었음을 알게 된 전기와 손빈은 방연의 위군이 버리고 간 치중과 무기들을 노획하여 수레에 싣고 제나라에 개선하였다. - 이때가 주현왕(周顯王) 16년이며 제위왕 26년 즉 기원전 353년의 일이었다.-

5. 示假卜者 陷害田忌(시가복자 함해전기)

- 거짓 점을 쳐서 정적 전기를 함정에 빠뜨린 추기.-

위혜왕은 방연이 조나라의 한단을 점령한 공로를 생각하여 계릉의 싸움에서 패하여 많은 군사를 잃었지만 그 죄를 용서하고 계속 위나라 군사의 일을 맡겼다. 제위왕은 계릉에서 개선하고 돌아온 전기와 손빈을 더욱 총애하여 병사에 관한 일은 모두 두 사람에게 전결하게 하였다. 추기는 전기와 손빈이 제위왕의 총애를 받아 장차 자기의 상국 자리를 위태롭게 만들지나 않을까 걱정하여 비밀리에 자기의 문객 공손열(公孫閱)과 모의하여 전기와 손빈에 대한 제위왕의 총애를 빼앗고자 하였다. 그때 마침 방연이 사람을 비밀리에 보내 천일의 황금을 추기에게 뇌물로 바쳐 손빈을 쫓아내도록 부탁해 왔다. 추기가 그 일을 가슴속에 묻어 두고 있다가 얼마 후에 공손열을 전기의 가인(家人)으로 가장시켜 십일의 황금을 들고 가서 오고가 되자 점을 치는 사람 집의 대문을 두드리며 큰 소리로 말하게 했다.

「나는 전기 장군을 모시고 있는 가인인데 점을 쳐 점괘를 받아 오라는 분부를 받고 왔습니다.」

복자가 점을 쳐서 괘를 얻더니 공손열에게 물었다.

「점괘를 어디다 쓰려고 합니까?」

「내가 모시고 있는 전기 장군은 제나라 왕실의 공족이며 나라의 병권을 손에 쥐고 계십니다. 얼마 전에 계릉에서 막강한 위나라의 군사를 격파하여 그 위세가 이웃 나라들을 진동시키고 있습니다. 지금 대사를 거행하려고 하는데 그 길흉이 어찌되는지 궁금하여 점을 쳐 괘를 받아 오라고 하셨습니다.」

복자가 크게 놀라 말했다.

「이것은 패역에 관한 일이라, 내가 어찌 감히 이 일에 대해 그대와 왈가왈부 할 수 있겠는가?」

공손열이 복자에게 당부의 말을 했다.

「선생이 점괘의 풀이를 내켜하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지만 이 일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발설하지 말아주십시오.」

공손열이 복자의 집에서 나가자마자 추기가 보낸 사람이 곧바로 복자의 집안으로 쳐들어와 복자를 포박하고는 반역자 전기가 부탁한 점괘의 일로 잡아간다고 공표했다. 복자가 추기 앞으로 잡혀와 사실대로 말했다.

「비록 사람이 와서 점을 쳐달라고 했지만 반역에 관한 일이라 더 이상 쳐주지 않았습니다.」

추기가 즉시 입조하여 전기가 복자에게 사람을 보내 한 말을 제위왕에게 고하고 그 증거로 복자를 잡아 왔다고 했다. 위왕이 과연 전기를 의심하여 매일 사람을 보내 그의 동태를 감시하도록 했다. 위왕이 자기를 감시하고 있는 이유를 알게 된 전기는 즉시 병을 핑계로 병권을 내놓아 위왕의 의심을 풀려고 하였다. 손빈도 역시 군사의 직을 내 놓았다. 그리고 한 해가 지나자 제위왕이 죽고 그의 아들 벽강(辟彊)이 뒤를 이었다. 이가 제선왕(齊宣王)이다. 이때가 주현왕 27년 기원전 342년의 일이다. 은 원래 전기가 억울함과 손빈의 재능을 알고 있었던 제선왕은 두 사람을 다시 불러들여 옛날의 직위를 돌려주었다.

한편 방연은 제나라가 전기와 손빈을 쫓아냈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내가 이제야 천하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가 있게 되었구나! 」

그때 한소후(韓昭侯)가 정나라를 멸하고⑰ 도성인 신정성을 한나라의 도성으로 삼았다. 조나라의 상국 공중치(公仲侈)가 한나라에 와서 축하의 말을 전하고 두 나라가 군사를 일으켜 힘을 합해 위나라를 정벌하여 그 땅을 나누어 갖자고 제안했다. 공중치의 제안을 허락한 한소후가 회답했다.

「마침 우리 한나라에 기근이 들어 지금은 군사를 일으킬만한 여력이 없습니다. 내년이나 되어야 군사를 일으켜 위나라를 토벌할 수 있겠소.」

한나라에서 활약하고 있던 세작이 보낸 보고를 받은 방연이 그 사실을 위혜왕에게 고했다.

「제가 들으니 한과 조 두 나라가 공모하여 우리 위나라를 쳐들어오려고 한다고 합니다. 이번에 그들이 아직 힘을 합하기 전에 먼저 한나라를 정벌하여 그들의 계획을 저지해야 할 것입니다.」

위혜왕이 방연의 청을 허락했다. 이어서 태자 신(申)을 상장군(上將軍)으로, 방연을 대장으로 삼아 위나라 대부분의 군사들을 동원하여 한나라 수도인 신정성을 향해 진격시켰다.

《제89회로 계속》

주석

①제강공(齊康公)/ 기원전 404년에 재위에 올라 379년에 죽은 강씨 성의 제나라 마지막 군주다. 진(陳)나라에서 망명해온 진경중(陳敬仲)의 후예들인 전(田)씨 성의 태공(太公) 화(和)가 기원전 386년 주안왕(周安王)으로부터 정식으로 제나라의 제후로 인정받자 강공은 서인이 되어 동해 바닷가로 옮겨 살아 강씨 성의 제나라는 없어지게 되었다.

②전태공(田太公)/ 태공(太公) 전화(田和)를 말한다. 기원전 386년 주안왕(周安王)으로부터 제후(齊侯)로 봉해져 전제(田齊)를 세웠다.

③수구(首丘)/ 여우가 죽을 때면 머리를 본디 살던 언덕 쪽에 두고 죽는다는 데서 ‘그 근본을 잊지 않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④월형(刖刑)/ 빈형(臏刑)이라고도 하며 발 뒤굼치를 베어 앉은뱅이를 만드는 고대의 오형(五刑)중 하나.

⑤묵형(墨刑)/ 경형(黥刑)이라고 하며 죄수의 얼굴에 글자를 바늘로 떠서 그 위에 먹으로 메기는 오형(五刑)중의 하나인 형벌

⑥슬개골(膝蓋骨)/ 종지뼈, 무릎의 한 가운데 있는 종지처럼 오목하게 생긴 뼈.

➆전기(田忌)/ 전국(戰國) 시대 때 제나라 장수. 사서(史書)에는 전기(田期) 혹은 전기사(田期思)라고도 했으며 서주(徐州 : 지금의 산동성 등주시(滕州市) 남)에 봉해져 서주기자(徐州期子)라고 불리웠다. 제위왕(齊威王)26년 (기원전 353년) 손빈(孫臏)과 함께 위(魏)나라의 공격으로부터 조(趙)나라를 구원하고 계릉(桂陵: 지금의 하남성 장원현(長垣縣) 서북) 에서 위나라 군사들을 크게 무찔렀다. 제선왕(齊宣王) 2년 (기원전 341년) 전영(田嬰), 전반(田盼), 손빈(孫臏)과 함께 마릉(馬陵: 지금의 하남성 범현(范縣) 서남)에서 위나라 군사를 다시 대파하고 위나라의 태자 신(申)을 포로로 하고 장수 방연(龐涓)은 싸움 중에 죽였다. 후에 제나라의 상국(相國) 추기(騶忌)의 참소로 초나라로 도망쳤다. 초나라는 전기를 강남(江南)에 봉했다.

➇순우곤(淳于髡)/ 제나라 직하(稷下) 학사 출신으로 박학하기로 유명하다. 여러 차례에 걸쳐 제위왕과 추기자로 하여금 내정을 개혁할 것을 건의하였다. 후에 위나라에 갔다가 위나라가 상경의 자리를 제의하자 사양하고 다른 나라로 떠나갔다. 다음은 사기 열전 중 활계열전(滑稽列傳)에 순우곤이 제위왕을 설득하는 구절이다. 이것은 원래 오자서의 증조부인 오삼(伍參)이 초장왕에게 말한 것을 순우곤이 인용한 것이다.

<순우곤이 은어로써 제위왕에게 말했다. 「나라 안에 커다란 새가 있어 지금 조정의 뜰에 머물러 있습니다. 3년이 되도록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습니다. 대왕께서는 이 새가 어떤 새인지 아시고 계십니까?」 위왕이 대답했다. 「이 새는 날지 않으나 한 번 날기 시작하면 하늘에 닿고, 울지 않으나 한 번 울면 천하의 백성들을 놀라게 할 것이다.」>

<史記>淳于髡說之以隱曰 “國中有大鳥 止王之庭 三年不蜚又不鳴 王知此鳥何也?」 王曰 「此鳥不飛卽已 一飛沖天 不鳴卽已 一鳴驚人.」

➈온거(溫車)/ 사방에 휘장을 둘러 밀폐시켜 안을 따뜻하게 하여 장거리를 이동 할 때 누워서 편히 갈 수 있게 만든 수레.

⑩)포거(蒲車)/ 수레가 굴러 갈 때 진동을 막기 위해 부들로 바퀴를 싼 수레. 주로 현사(賢士)를 초빙할 때 사용하였다.

⑪언치/ 원문은 천(韉)으로 말이나 소의 등에 까는 방석이나 담요 같은 물건을 말한다.

⑫양릉(襄陵)/ 지금의 하남성 수현(睢縣)에 있던 전국 때 위나라 성읍.

⑬계릉(桂陵)/ 지금의 하남성 장원현(長垣縣) 경내 서북

⑭전영(田嬰)/ 전국(戰國) 시대 때 제나라 대신. 제위왕의 막내아들이며 제선왕의 동생으로 봉호는 정곽군(靖郭君)이다. 맹상군 전문의 부친이다. 설(薛 : 지금의 산동성 등주시(滕州市) 남 ) 에 봉해져 설공(薛公)이라 불렀다. 전기등과 함께 제나라 군사들을 지휘하여 계릉(桂陵)과 마릉(馬陵)에서 위나라 군사를 크게 무찔렀다. 제선왕 9년 (기원전 311년)에 제나라 상국이 되어 그 후로 11년 간 제상으로 있었다.

⑮무기(戊己)/ 십간(十干)의 중앙에 해당하는 무(戊)와 기(己)를 말함.

⑯이정(李靖)/ 기원 571년에 나서 649년에 죽었다. 지금의 섬서성 삼원현(三原縣) 동북의 당나라 경조(京兆) 삼원(三原) 사람이다. 문무를 겸비한 인물로 수나라 대업(大業) 말년에 마읍(馬邑)의 군승(郡丞)으로 재직 중, 강도(江都)로 가서 수양제(隋煬帝)에게 이연(李淵)이 반역을 꾀하고 있다고 고발하고 장안으로 가는 길목에서 이연을 붙잡았다. 당태종 이세민(李世民)이 달려가 그 부친을 풀어 달라고 간청하자 이정은 이세민의 휘하로 들어가 평왕(平王) 이세충(李世充)을 모셨다. 기원 621년 당나라 무덕(武德) 4년 이효공(李孝恭)이 거느린 군대의 행군총관(行軍總管)이 되어 소선(蕭銑)의 란을 평정하는데 큰공을 세웠다. 정관 3년 기원 629년 이세적(李世勣)등과 함께 동동궐를 공격했다. 다음 해에 동동궐 왕 힐리가한(頡利可汗)을 사로 잡았다. 정관 9년 기원 635년 다시 출전하여 토욕혼(土浴渾)을 공격하여 평정했다. 후에 위국공(衛國公)에 임명되었다. 저서에 <육군경(六軍鏡)> 3권과, <이위공병법(李衛公兵法)>이 있었으나 일실되었다. <이위공병법>은 <통전(通典)>이라는 책에 실려 있다.

⑰한(韓)나라가 정(鄭)나라를 멸하다./ 정나라는 주열왕(周烈王) 원년인 기원전 375년인 한애후(韓哀侯) 2년에 한나라에 의해 멸망당했다. 한소후(韓昭侯)는 기원전 358년에 즉위하여 기원전 333년에 죽었다. 정나라를 멸한 이 대목은 원작자의 착오로 보여진다. 참고로 계릉(桂陵)의 싸움은 기원전 353년의 일이고 이후에 벌어지는 마릉(馬陵)의 싸움은 기원전 341년의 일이다.

[평설]

“방연이 계릉의 싸움에서 패하다.” 편은 전략전술의 귀재 손빈과의 충돌로 빚어진 일이다. 제와 위 두 나라 사이에 벌어진 계릉의 싸움은 다음과 같은 국제 정세 하에서 벌어졌다.

- 위나라는 전국 초기에 중국을 호령했던 패권국가였다. 위나라는 한(韓)과 조(趙)와 연합하여 삼진(三晋)이라는 이름으로 동쪽으로는 제나라를 서쪽으로는 진나라를 공격했고, 북쪽의 중산을 멸하여 패권을 공고히 했다. 그러나 각 국의 이해관계가 상충되자 삼진연합은 얼마 가지 않아 분열되었다. 삼국은 독자적인 행동을 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서로 전쟁을 벌리기까지 했다. 기원전 375년 위(魏)나라가 초(楚)나라의 유관(楡關)을 공격하자 그 기회를 탄 한나라가 정나라를 멸하고 그 도성을 신정(新鄭)으로 옮겼다. 기원전 386년, 조나라가 도읍을 한단성으로 옮긴지 1년 째 되는 해에 공자 조(朝)와 새로 즉위한 조경후(趙敬侯) 사이에 조나라 왕위 쟁탈전이 벌어졌으나 싸움에서 패한 공자조는 위나라로 도망쳤다. 위무후(魏武侯)가 공자조를 조왕의 자리에 올리기 위해 군사를 동원하여 한단을 공격했으나 역시 조군의 반격을 받아 패퇴하고 말았다. 기원전 383년 조나라가 다시 출병하여 위(魏)나라의 위성국 위(衛)나라를 공격했다. 이에 위(衛)가 종주국인 위(魏)에 구원을 청했다. 이에 위(魏)나라는 군사를 일으켜 조(趙)를 공격하여 조군을 크게 무찔렀다. 조나라는 다시 초나라에 구원군을 요청했다. 초군이 북상하여 위나라를 공격하자 그 틈을 타서 조군이 반격하여 위나라의 몇 개의 성을 점령했다. 그때는 이미 위나라가 조나라 영토 넘어의 중산국을 통제할 수 없는 처지에 노이게 되자, 그 틈을 탄 중산국은 기원전 380년 전후에 위나라의 지배에서 벗어나 나라를 다시 세웠다.

기원전 369년 위무후(魏武侯)가 죽자 그 뒤를 이은 위혜왕(魏惠王)과 그 동생 공중완(公中緩) 사이에 왕위 쟁탈전이 벌어졌다. 이에 조(趙)와 한(韓) 두 나라가 공중완을 위왕의 자리에 올리기 위해 연합군을 결성하여 위나라로 진군하여 탁택(濁澤)에서 위군을 크게 무찔렀다. 위나라의 처리문제를 놓고 두 나라 사이에 불화가 생기자 그 틈을 탄 공숙좌(公叔痤)가 이끄는 위군이 기원전 363년 한조(韓趙) 연합군을 회수(澮水) 북안에서 대파하고 공중완을 살해했다. 다시 다음 해인 기원전 362년 진나라가 서장(庶長) 국(國)을 시켜 위나라의 소량(少梁)을 공격하여 위군을 대파하고 위군의 대장인 상국 공숙좌를 포로로 잡고 위나라의 방성(龐城)을 점령했다. 이때부터 서하지역 쟁탈전에서 진나라가 우세를 점하기 시작했다. 또한 동쪽에서는 전씨들로 그 왕조가 바뀐 제나라가 흥기하여 강국으로 등장하여 위나라 동쪽 변경을 위협하자 진제 두 강대국 사이에 끼어 협공을 당하게 되었다. 이에 위나라는 다시 한과 조 두 나라에 유화정책을 사용하여 옛날의 영광을 다시 차지하려고 했으나 두 나라로부터 예전과 같은 호응을 얻지 못했다. 기원전 356년, 노(魯), 송(宋), 한(韓), 위(魏) 등 4국의 군주가 위나라에 들어가 위혜왕에게 조현을 하여 위나라의 패권에 복종했으나 조성후(趙成侯)는 오히려 평륙(平陸)에서 제와 송(宋)의 군주들과 회담하고, 연나라 군주와 아(阿) 땅에서 만나 그들과 연합하여 위나라에 대항하려고 했다. 중원의 패권을 쟁탈하려는 제나라는 즉시 조나라와 공수동맹을 체결했다. 이에 위나라는 그 전인 기원전 359년 동서 양쪽에서의 협공을 피하기 위해 진효공과 두평(杜平)에서 회담하여 우호조약을 맺음으로 해서 그 군사력을 동부전선에 집중하려고 했다.

기원전 354년 조나라가 위(衛)를 공격했다. 이에 패자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위(魏)나라가 군사를 일으켜 조나라를 공격했다. 조나라가 그 동맹국인 제나라에 구원을 요청하자 제위(齊魏) 두 나라 사이에 그 유명한 계릉(桂陵)의 싸움이 벌어졌다.

그때는 손빈은 이미 비록 방연의 흉계에 의해 두 다리를 잃었지만 위나라에서 탈출하여 제나라에 돌아가서 제위왕에 의해 군사(軍師)로 임명되어 제군의 총사령관 전기를 돕고 있었다. 설에 의하면 손빈은 손무의 후손으로 대략 맹자와 같은 시대를 살았다. 손빈과 방연은 병법을 동문수학한 사이였다. 방연이 공부를 끝내고 위나라에 들어가 장군이 되었으나 항상 그의 재능이 손빈에 미치지 못한다는 열등감을 마음속에 두고 있다가 손빈을 속여 위나라로 유인한 후에 모함하여 해를 입혔다. 방연은 손빈에게 간첩죄를 씌어 그 벌로 무릎의 슬개골을 제거하여 앉은뱅이로 만든 빈형(臏刑)을 받게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손빈(孫臏)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방연이라는 위인은 어질고 재능있는 사람을 질투했던 전형적인 소인배였다. 훌륭한 인품과 높은 학문으로 인해 해를 입게 된 손빈은 거짓미치광이가 되어 목숨을 부지하다가 어쩔 수 없이 위나라에 도망쳐 제나라로 들어갔다. 그런 손빈을 제나라의 장군 전기(田忌)가 제위왕에게 천거했다. 손빈이 전기에게 알려준 경마에서 이기는 방법은 그가 보여준 절묘한 운영 능력 중의 하나다.

전기는 원래 직접 한단으로 달려가 방연이 이끄는 위군과 결전을 감행하여 조나라를 구원하려고 했다. 그러나 손빈의 생각은 달랐다. “위군은 강하고 조군은 약하다. 따라서 제군이 임치성을 출발하여 한단성에 당도할 때에는 이미 한단은 함락되어 위군의 수중에 있을 것이다. 따라서 위군의 주력이 한단을 공격하기 위해 모두 출병하여 국내가 비게 된 틈을 타서 위나라의 도성 대량성으로 곧바로 진격하면 한단성을 점령하고 있던 위군은 본국의 도성을 방어하기 위해 철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라고 손빈은 생각했다. 손빈의 그와 같은 전략은 첫 번째로는 한단에 대한 포위를 풀 수 있고, 두 번째는 위군으로 하여금 먼 거리를 원정하도록 유도하여 피로에 지친 군사들을 위험지역으로 몰아넣을 수 있었다. 위군이 대량성을 구원하기 위해 지나가야만 하는 행군로의 요해처에 매복을 하고 있다가 기습공격을 하면 싸움에서 쉽게 승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손빈의 계책을 받아들인 전기는 지금의 하남성 장원시(長垣市) 경내인 계릉(桂陵)에서 방연의 앞을 가로막고 공격하여 위나라의 대군을 전멸시켰다. 손빈의 위위구조(圍魏救趙) 작전은 전쟁사에 있어서 가장 절묘한 사례로 기록되어 있다.

위군의 주력이 조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출동한 틈을 타서 진(秦)과 초(楚) 두 나라는 위나라의 일부 지역을 점령했다. 위나라는 결국은 주위 모든 나라로부터 적을 맞이하게 되는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제와 위 두 나라 사이에 벌어전 계릉의 싸움은 전국시대 기간 중 유명한 전쟁 중의 하나다. 계릉의 싸움은 조나라가 위나라의 패권에 대해 저항하자 위나라는 그 패권을 지키려고 했고, 이에 제나라가 끼어들어 위나라와 패권을 다툰 전쟁이다.

위나라가 조나라를 공격하기로 결정한 전략은 큰 잘못이다. 위나라의 안중에는 단지 조나라만 있었고, 그때 이미 형성된 조와 제의 군사동맹을 보지 못했다. 이로써 조나라의 도성이 비록 위군의 공격으로 함락되기는 했지만 계릉의 싸움 한 번으로 위군은 그 정수리에 일대 타격을 받고 쓰러져 버린 것이다.

조와 제 두 나라가 연맹을 맺은 상태에서 조와 위 두 나라가 서로 싸워 상처를 입게 만든 연후에야 조나라를 구원한 전략은 제나라가 패권을 차지하는데 부합되는 행위였다. 손빈이 창조한 위위구조(圍魏救趙) 전략은, 위군의 주력이 조나라에 있고, 그 도성인 대량성이 공허하게 비어 있는 상태이며, 또한 회군하여 시간에 맞추지 못할 경우 자기들의 국도는 적군에게 점령당할 위험에 빠진 상황이었다. 위군에게는 선택할 수 있는 별다른 방법이 있을 수 없고 단지 적군의 의대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손빈은 손무가 창안한 ‘적군이 반드시 구원해야 할 곳을 공격하라.’라는 원칙을 실전에 활용했다. 피로에 지친 적군을 중도에 매복하여 공격함으로써 출기불의(出其不意)를 구현했으며, 한단으로 곧바로 진격하여 그 포위망을 푸는 방법에 비해 적군의 도성을 우회 공격한 방법은 손빈의 풍부한 창조적인 정신에서 나온 전략이다. 그와 같은 창조정신이 없었다면 계릉에서 위군을 타격하여 섬멸할 수 없었을 것이다.

손빈의 저서인 <손빈병법(孫臏兵法)>은 오랫동안 실전되었었다. 그래서 결국은 손무와 손빈은 동일인이라는 설이 나오게 되고, 《손자병법(孫子兵法)》과 《손빈병법(孫臏兵法》 두 저서는 같은 책을 말하게 되었다. 1972년 4월 산동성 은작산(銀雀山)에서 한나라 때 조성된 묘지를 발굴하다가 그 안에서 《손자병법>과 《손빈병법》이 동시에 발견되어 오랫동안 계속되어왔던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손빈이라는 인물은 역사적인 실존인물이며, 《손빈병법》도 그의 저서라는 사실도 밝혀졌다. 동주열국지에 등장하는 손빈이라는 인물은 당연히 허구적인 인물이 아니라고 판명되었다.

위나라는 계릉의 싸움에서 패한 뒤에 즉시 그 경험을 교훈 삼아 재빠른 동작으로 일련의 조치들을 취했다. 기원전 352년 제나라와 강화를 맺고, 기원전 351년에는 다시 조나라와 동맹을 맺고 계릉의 싸움 직전에 점령했던 한단성을 조나라에 돌려주었다. 이로써 위나라는 동방의 제국들과의 적대적인 관계를 완화시킬 수 있었다. 기원전 350년 서쪽의 진나라를 공격하여 진나라로 하여금 위(魏)와 조(趙) 두 나라와 수호를 맺도록 압박했다. 위나라는 이런 일련의 조치로 패권의 보유를 어느 정도 연장할 수 있었다. 기원전 344년, 위나라가 진(秦)과 조(趙)를 포함한 제후들을 소집하여 봉택(逢澤)에서 회맹을 주재했다. 회맹을 끝낸 양혜왕은 제후들을 이끌고 주나라로 가서 주천자를 조현했다. 이 회맹으로 해서 위나라는 어느 정도 패자로써의 체면을 유지할 수 있었다.